두 여인의 초대 (잠 9:1~6, 13~18)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친구나, 사회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로부터 초대를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역시 많은 초대를 받아 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초청을 받아 참석하였을 때 만족스러운 초대가 있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초대는 단순히 음식의 양에 있지 않고 전체 분위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음식의 양이 많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주고 받은 대화, 그리고 서로의 교제, 장소의 분위기에 따라 만족스럽기도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초청한 그 주인공이 누구냐에 있습니다. 초청을 한 주인에 따라 그 연회의 분위기가 크게 다릅니다.
본문에 대조적인 두 유형의 초청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여 주인의 초대이고, 다른 하나는 미련한 여인의 초대입니다. 이 두 상반되는 초대의 분위기가 너무 다릅니다. 그것은 초대하는 주인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여인이 호스티스가 된 연회의 분위기는 매우 밝고 화려하고, 웅장한 감마져 느끼게 됩니다. 연회를 베푼 장소가 일곱 기둥이 있는 새로지은 옛날 신전과 같은 장소입니다. 그곳에 입맛을 돋구는 각종 짐승 요리와 최상의 포도주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연회에 마련된 음식은 여 주인이 손수 며칠동안 직접 진두 지휘하면서 준비한 것입니다.
본문에 묘사되어 있는 지혜로운 여주인, 일곱기둥으로 된 연회의 장소, 짐승, 혼합한 포도주는 모두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상징들이 갖는 의미는 만족, 충만입니다. 이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만족, 충만함을 갖게 됩니다. 그러한 자족은 육신적인 배부름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족은 그 연회를 배설한 지혜로운 여인을 통해서 경험하게 됩니다. 연회의 주인인 지혜로운 여인은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 공의, 정직, 생명, 명철의 길을 알려줍니다. 지혜로운 여주인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가운데로 사람들을 안내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주로 초대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미련한 여인은 매우 감각적 입니다. 미련한 여인이 준비한 연회의 음식들은 모두 도둑질한 음식들입니다. 그리고 크게 떠들며 사람들을 유인합니다. 이 여인이 마련한 연회의 장소는 매우 음산합니다. 그 안에는 사람의 마음을 현란하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들어온 문으로 다시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뒷문으로 나가 깊고 음산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회장의 뒷문 구렁텅이에는 죽은 사람의 시신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연회에 참석했다가 생을 망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이 미련한 여인은 지혜로운 여인보다 더 매력적으로 자신을 잘 가꾸고 길거리에 나와서 손님들을 초청합니다. 여인을 보는 사람마다 충동을 억제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감각적인 것들은 사람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하지 못합니다. 분별력을 마비 시킵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결단하게 합니다.
미련한 여인이 마련한 연회의 이러한 묘사는 고갈, 중독, 죽음을 상징합니다. 미련한 여인의 연회는 사람들의 충동을 불러일으키지만, 거기에는 희망, 생명이 전혀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사망이 있을 뿐입니다. 미련한 여인이 차려놓은 연회 석상의 "도둑질한 물, 떡"은 금지된 성, 거짓, 불의, 삶의 질서를 파괴하는 온갖 어둠의 행위들을 의미합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로 귀를 기울이는데가 미련한 여인의 초대입니다. 미련한 여인이 제시하는 초대에는 다음과 같은 매력적인 문항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을 평생 한번 경험할까말까하는 기막힌 연회에 초대합니다. 저희 연회에 참석 하시면 세상 근심걱정 다 잊어버리고 완전히 휴식할 수 있는 멋진 쾌락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평생 고생하며 수고해도 얻을 수 없는, 노력하지 않고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소원하는 성공과 출세를 쉽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여인의 초대의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며 감각적입니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동적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의 초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마음의 평강을 원하십니까? 진정 생명의 길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희망을 바라십니까? 제가 준비한 연회에 참석하십시오. 당신이 만약 나의 연회에 참석하신다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명철한 사람이 될 것이며, 올바른 희망을 갖고 살게 될 것이며, 생의 자족을 경험하며 살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합니다. 사람들은 별로 그의 초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너무 고갈되고, 희망이 없기 때문에 아주 현실적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와 상관이 없는 머나먼 고대 시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미련한 여인이 배설한 연회 장소에는 사람들이 항상 만원 사례입니다. 심지어는 뒷거래를 해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듭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의 초대에는 썰렁할 정도로 한산합니다. 인기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는 너무 중독증 환자들이 많습니다. 마약 중독, 알콜중독, 컴퓨터 중독, 일 중독, TV중독, Sex중독, 담배 중독, 놀음 중독, 카지노 중독, 돈 중독, 권력 중독 등입니다. 미련한 여인의 초대에 응해 "도둑질한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고갈이 더욱 심해지고, 결국 고갈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독 환자가 되게 합니다.
미련한 여인의 초대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가는 것은, 오늘 우리시대에서 사람들이 자족함이 없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자족이 없을 때 쉽게 감각적인것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결핍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 결핍은 마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감각적인 것은 계속해서 우리를 고갈시킵니다. 목이 몹시 갈한 사람에게 소금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자는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는 것을 배워가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잠언 첫 부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여러 곳에서 지혜자는 이 길을 제시 합니다. 역시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9장 10절에도 그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그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에서 깨달아가는 중요한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생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입니다.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됩니다. 의의길, 생명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됩니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게될 때 미련한 여인의 초대가 인생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게 될 때 그 전에 보이지 않던, 그 여인의 초대를 받고 그 집에 들어간 사람들이 스올의 깊은 곳에서 신음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 다음 자신과의 소외 현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중독에 걸린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 자신과 소외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과 단절된 상태에서 오는 불만족과 고갈을 외적인 것으로 충족시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중독증에 걸립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요구되어지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도 갖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일수록 결핍과 고갈을 외적인 요소로 채워 가려고 합니다. 그러한 외적 요인들에 집착하게 합니다. 집착은 결국 중독에 걸리게 합니다.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사랑, 생명, 희망입니다. 이러한 것은 sex,돈, 명예, 마약, 알콜로 충족될 수 없습니다. 미련한 여인은 매우 교활하기 때문에 인간들의 이러한 내면성을 꿰뚫어 보면서, 그 약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족하는 사람 대신 중독증 환자를 만들어 놓습니다.
제가 지난주 지방에 다녀올 일이 있어 기차로 여행하면서 읽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헨리 밀러"(Henry Miller)의 "사다리 아래에서의 미소"입니다. 그 소설은 '어거스트'라는 어느 광대의 이야기입니다. '어거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한 서커스 광대는 무아경을 연기하는 것으로 널리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는 멋진 연기로 많은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며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사다리 아래에서 벌어진 이 작은 군중들의 집회가 점점 성공적으로 되어갈수록 어거스트는 더욱더 자신의 꿈에 목말라했습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그 웃음소리들로 마음의 상처는 깊어가기만 했고, 마침내 어거스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무대에서 무아경에 빠져 그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때 그는 그 다음 연기를 잊어버리고, 그는 관객의 갈채가 아닌 그들의 조롱과 야유 속에서, 그 전에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어거스트는 비로서 자기 자신을 찾게 된 것입니다.
어거스트는 자기 자신을 찾게 된 이후 변두리 유랑 서커스단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무명인으로 살아 가면서도, 그런 인기있는 광대로 살 때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는 그후 계속해서 "세상의 광대가 아니라 신의 광대"의 경지로 깨달음의 창을 열어 갑니다. 그는 그의 동료 '안토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너 자신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야,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것은 정말 제일 어려운 묘기 중의 하나지.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야."
이 소설은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광대놀이에 정신을 빼앗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즈막하게, 그러면서도 애절하게 속삭이는 지혜로운 여인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개 금년 한해 광대놀이에 몰두하지 말고, 나의 연회에 와서 네 자신이 되어가는 길을 배우지 않을래?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우리는 진정 자족의 삶을 경험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단순성, 절제, 검소는 자족함에서 옵니다. 도둑질한 물건으로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그것을 먹을수록 배고픔을 느끼게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에서는 자족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자족에서 옵니다.
시인은 자기가 하나님을 그의 목자로 삼고 살아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른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은 자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진정 고귀한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의 생을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동요하지 않게 합니다.
지도자가 되는 자격 가운데 하나가 자족의 삶을 바르게 터득해 가는 것입니다. 자족의 비결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항상 정권욕, 공명심, 재물에 목말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혜로운 여인의 초청에 언제나 귀를 기우리고 그 초대에 응해야합니다. 우리는 그 초대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거기서 분별력을 얻게됩니다. 우리는 그 연회에서 광대놀이에서 빠져 나오는 길을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초대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우게됩니다. 우리는 자족의 삶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길이 행복의길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로운 여인의 초대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연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왕이 베푼 연회로 비유하셨습니다. 그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들을 길거리로 내보내 지나가는 사람들을 초청해 그 연회장을 채우게했습니다.
하나님은 금년 한해에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초청할 것입니다.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초청에 응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초대에 응해서 더욱더 지혜의 삶을 배워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한 연회의 초대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하겠습니다.
출처/ 임영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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