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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전서 5장 7-11절)

by 【고동엽】 2022. 9. 14.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전서 5장 7-11절)

자신을 극복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추구합니다. 성공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목적만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공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을 돕고 보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공하면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전도 가능성도 커지는 엄연한 현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성공적인 인생이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이 인터넷 설교를 통해 저를 알았다가 아들 진학 문제로 저를 만나기 위해 분당으로 찾아왔습니다. 금방 가까워져서 그분도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선교연맹(KECMA)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분 교회에는 영화배우 이정재가 나옵니다. 그래서 작은 지하교회인데도 전도할 때 “우리 교회에 이정재가 나와요.”라고 하면 얼마나 전도가 잘 되겠습니까? 실제로 매주 몇 사람씩 전도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설교할 때 이정재가 정자세로 듣고 말씀도 받아 적으니까 예배 분위기도 아주 좋아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그가 헌신해서 교회를 리모델링 했고, 그 건물 3층까지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한 사람의 성공을 영혼 구원에 활용하면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일 저녁에는 그 교회 설립 5주년 기념으로 서울대 명예교수인 테너 박인수 집사 초청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가봤습니다. 그때 박인수 집사가 자기 친구들은 다 장로인데 자신이 70세가 되도록 집사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대표기도를 못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분은 기도하려고 머리만 숙이면 생각했던 모든 기도제목을 다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몇 번 대표기도를 해보려고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기도문을 깡그리 외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이면 신기하게도 외운 기도문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몇 번 그렇게 창피를 당하면서 “나는 기도를 못해!”라는 무서운 자기 암시에 빠져 지금도 머리만 숙였다 하면 완전히 먹통이 되어 장로 되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너무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대인시선 공포증이 있어서 24살 때까지 남 앞에 서면 모든 논리를 다 잃어버리고 말을 못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려고 머리만 숙이면 신기할 정도로 다 잊어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정말 신기하게 그런 현상이 생겼습니다.

그처럼 남 앞에 서면 말을 못하고, 머리만 숙이면 기도를 잊어먹는 사람도 지금은 매주, 매일을 설교하고 기도합니다. 사실 제가 매주, 매일 강단에 서는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을 비교할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우리는 “나는 못해!”라는 자기 암시에 빠지지 말고 자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

살다 보면 가끔 어떤 일이 두렵게 느껴지고, 때로는 삶 자체가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본문을 통해 3가지로 그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모든 삶을 맡기십시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맡겨 버리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약한 자도 하나님을 붙들면 누구보다 강한 자가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진심으로 붙들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전도사를 하면서 청년부 설교를 할 때 설교기술이나 경험도 없고 선천적으로 말도 못해서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준비를 했는데 매주 말씀을 통해 청년부에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얼마 후, 29살 때 수요일 저녁에 전체 교인들을 대상으로 처음 설교했습니다. 역시 너무 부족하고 떨려서 일주일 내내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때도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예배시간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유학생으로 고생하는 얘기를 하면서 설교하니까 불쌍하게 보였는지 성도들이 많이 울어주셨습니다.

얼마 후 수요 예배 때 또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가장 은혜 받았던 체험과 예화를 써버려서 밑천이 많이 떨어져 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님 붙잡고 일주일 내내 말씀과 씨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새로운 밑천을 더해주셔서 두 번째 설교도 큰 감동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때 성도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 특별히 한 사람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때 학비를 벌려고 졸업 때까지 7가지 일을 했습니다.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유대인 저택에서 잔디도 깎아봤고, 세탁소에서 하루에 와이셔츠를 2백 벌까지 다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몇 달 동안 쭈쭈바 공장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주인이 제가 섬기던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분이 설교 후에 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꼭 붙잡고 말씀을 높이니까 하나님께서도 저를 높여주셨습니다. 결국 내가 약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꼭 붙잡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약해져야 하고,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약해져야 합니다. 얼마만큼 약해져야 합니까? 자기를 의지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하나님만을 간절히 붙들 만큼 약해져야 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 성도들이 능력이 없게 하소서!” 그래야 하나님을 더 겸손하게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너무 많아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있어도 항상 겸손하고 순수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감격하지 않고 우리의 태도에 감격하십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하워드 핸드릭슨 목사님이 목요 제직 기도회를 인도하는데, 그 기도회 광고를 보고 아무나 참석해도 되는 줄 알고 한 초신자가 참석했습니다. 예배 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하는데, 마침내 그 초신자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그의 손을 잡자 그가 손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용기를 주려고 그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습니다.

조금 후에 그가 겨우 용기를 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짐(Jim)인데요. 지난주에 처음 교회에 나왔어요. 그런데 하나님! 죄송해요. 저는 기도할 줄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이 참 좋아요. 앞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닐게요. 하나님! 다음에 또 뵐게요.”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끝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면서 몇 사람이 기도 중에 간간이 웃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순수함과 진실함에 감격해 울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못해도 좋습니다. 어떤 분은 대표기도를 할 때 떨면서 어색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떨면서 하는 그 기도가 더 감동을 줍니다. 지금 많은 신앙인들이 속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의지하고 있고, 능력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 능력으로만 살고 있습니다. 너무 능력이 많아서 탈입니다.

진짜 능력이 무엇입니까?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님께 나를 드리며, 주님의 뜻에 나를 전적으로 내맡기는 것이 진짜 능력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십시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시고 지경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축복의 관건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 생애를 맡기느냐에 달렸습니다.

2.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본문 8-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이 구절을 보면 지금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길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마귀에게 절대 틈을 보여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심리가 있습니다. 귀신이 무서우면 귀신을 멀리하면 되는데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귀신 생각을 하고 귀신 영화를 봅니다. 그렇게 귀신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날 밤부터 화장실에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귀신과 두려움은 아예 처음부터 불러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허점을 보여서 두려움의 영을 불러들이고 나서 그 두려움의 영을 이기고 내쫓겠다고 하는 것은 몇 배 힘듭니다.

어떤 분은 생각할 때마다 귀신을 생각하고, 말할 때마다 귀신 얘기를 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귀신의 역사라고 합니다. 그렇게 귀신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영계의 비밀을 꿰뚫고 있는 것 같고, “귀신아! 물러가라!”라는 소리를 많이 하면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은 귀신 생각을 많이 하고 귀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더 잘 찾아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크게 보고, 주님에 대한 확신이 강하면 귀신은 아예 범접도 못합니다. 그런데 맨 날 귀신 얘기를 하니까 그 생각 속에 귀신이라는 존재가 항상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고, 그래서 조금 믿음이 약해지면 금방 두려움에 젖고, 귀신이 쉽게 침투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이제 귀신을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말의 영역 밖으로 완전히 몰아내십시오. 귀신이 없다고 부인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귀신이 존재는 인정하지만 귀신 생각은 그만 하고 항상 주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귀신은 아예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무시해버리십시오. 실제로 귀신은 주님을 믿는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주님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믿는 우리도 마귀에게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귀신을 두렵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확고히 붙잡으면 “귀신아! 물러가라!”고 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귀신은 공포에 젖어 물러갑니다.

때로는 겁에 질려서 “귀신아! 물러가라!” 하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귀신이 겁에 잔뜩 질려서 내는 그 소리를 듣고 물러갑니까? 귀신은 영물입니다. 속으로 겁을 내면서 “귀신아! 물러가라!”는 소리치면 영적인 틈을 보고 더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견고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귀신은 물러갑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본문에서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깨어라!”는 말씀을 보면 항상 새벽기도가 먼저 생각납니다. 저는 새벽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저에게 새벽 시간은 가장 위대한 시간이고, 놀라운 재창조의 시간이고, 문제가 해결되는 시간입니다. 그때 놀라운 지혜가 생기고, 감사가 회복되고, 지극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그렇게 새벽에 평안을 찾으면 어느새 문제도 풀리고,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처럼 깨어 기도하면 삶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고난은 잠깐임을 아십시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이 말은 우리의 고난은 잠깐이고 고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우리를 더욱 온전하고 강하게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요새 한국 교회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작년에 2600개의 교회가 설립되었는데 3000개의 교회가 폐쇄되었습니다. 요즘은 100개 교회가 개척되면 그 중에 1개가 살아남고, 또한 전문직 종사자 중에 목회자 실업률이 모든 직군에서 1위라고 합니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 우리 교회는 교회 개척을 하면서 교단 개척도 하는 상황입니다. 그 길은 마치 길이 없는 숲을 헤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고난은 잠깐이고 나중에는 더 큰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1992년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인천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 저에게는 한국에 동역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목사 안수 동기 6명 중 5명은 미국에 남고 저만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오니까 신학교 선배나 후배, 그리고 만날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너무 외로웠습니다. 또한 그때는 미국 기독교 선교 연맹(C&MA) 교단이 한국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서 우리 교단이 이단이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많은 한국 목사님들이 우리 교단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전한 복음주의 선교교단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15년간은 쉽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가끔 “너무 외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지나보니까 만날 사람이 없는 것도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만날 사람이 없으니까 예수님께 생명을 걸었고, 말씀에 몰입해서 지금까지 22개의 방대한 설교파일 세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 미션퍼블릭에서 낸 두 번째 책 ‘하나님과 깊은 만남’의 경우에는 끝까지 다 읽어본 목사님들과 평신도들로부터 얼마나 감사전화와 감사메일을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제까지 8권의 책을 썼지만 그렇게 뜨거운 호응을 받은 책은 이번 책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전화나 메일을 받을 때마다 큰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고, 문서선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주님은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어내십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미래는 주님께서 주신 축복의 백지수표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쓰면 거기에 쓴 대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미국의 설교가 윌버 채프먼(Wilbur Chapman)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젊었을 때 미국 동부의 가난한 교회를 섬겼는데 서부에 계신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부로 갈 비행기 표가 없어서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주일에 한 장로님이 목사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광고했습니다.

예배 후에 한분이 채프먼 목사님의 집에 찾아와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백지수표였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 수표에 원하시는 만큼 금액을 기입하시고 어머님께 갔다 오는 경비로 쓰세요.” 훗날 채프먼 목사님은 그때 상황을 묘사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백지 수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주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상황이 어려워도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면 고난은 수많은 축복의 열매를 남기고 사라질 것입니다.

전 단국대 이사장이었던 장충식 이사장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단국대 총장으로 28년째 있을 때 정치권에 잘못 보여 총장직에서 강제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후임 총장서리한테 교직원 월급이 26억원 모자란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대학병원을 세운다고 했다가 자금난에 빠진 것입니다. 결국 돈을 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분 마음속에 희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번 하나님께 기도해보자!” 한때 금산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려고 했던 그분은 교회에 나가본 적도 없고 기도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무실 문을 잠그고 울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잘못입니다. 제가 욕심을 부려 병원을 세우려다가 지금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 자금 문제를 해결해주세요.”

그분은 난생 처음으로 한없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26억원이 하루 만에 마련되었습니다. 그 후 그분은 집에 있던 불상과 불경을 다 버리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에도 숱한 고난이 있었고 자금 압박이 계속되었습니다. 매일 죽을 맛이었지만 어려움이 심할수록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신기한 일은 그처럼 매일 자금압박에 시달렸지만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감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자신의 교만도 회개했습니다. 총장직에서 물러나자 그 동안 측근으로 있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당하고 처음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으나 그 상처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극복했습니다. 결국 얼마 후에 그분은 다시 단국대 이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반드시 길을 열어주십니다.

<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이제 어떤 상황을 만나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면 마귀만 좋아해서 찾아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귀신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어떤 환경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신이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귀신은 오히려 우리를 두려워하고 도망갑니다.

미국 LA 한인 사회에서 떠도는 말입니다. 그곳 한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흑인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니까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한인들을 공격했습니다. 두려워하면 그 두려워하는 대상이 임합니다. 암을 두려워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많아집니다. 그처럼 한인은 흑인을 두려워하는데 흑인은 멕시칸을 두려워합니다. LA에서는 멕시칸이 흑인보다 많고 그곳은 멕시코 국경과 가까워 흑인도 멕시칸을 조심합니다.

반면에 멕시칸은 월남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월남 사람들은 나라 패망 후 목숨 걸고 보트를 타고 미국에 건너온 한 많은 사람들이기에 잘못 건드리면 폭발합니다. 실제로 LA 월남 갱들은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났습니다. 그들은 숫자가 적지만 한번 당하면 잔인하게 보복해서 멕시칸들도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반면에 월남인들은 한국인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월남전에서 한국인들이 극한상황에서 얼마나 무섭게 되는지를 체험했기에 갱들도 한국인을 건드리면 초상나는 줄 알고 잘 건드리질 않습니다. 그 말은 결국 두려움은 사실보다는 마음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하지만 귀신은 오히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이제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갈 때 실패 후에 축복이 있습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합니까? 너무 실수할까봐 부끄러워서 말을 잘 안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조건 말을 해야 언어도 잘 배웁니다. 미국 선교사들은 한국에 2년 정도만 있으면 한국말을 상당히 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담대하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한국에 온지 1년쯤 되었을 때 송구영신 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툰 한국말로 준비한 설교를 읽는데 한국말에서 ‘1년, 2년’이란 말은 배웠지만 ‘한해, 두해’란 말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담대하게 한국말로 설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밤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새년이 옵니다. 새년은 어떤 년일까 불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세요. 이년도 새년도 다 하나님이 주신 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년을 맞아도 잘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년을 맞이해 잘 사시길 바랍니다.”

그때 교인들은 곳곳에서 킬킬거리며 웃었지만 선교사님은 그냥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선교사님이 2년 만에 한국말을 완전히 터득하고 선교사역을 누구보다 잘했다고 합니다. 이제 더욱 담대하게 사십시오. 때로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고 담대하게 나가면 곧 고난은 끝나고 복된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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