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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이동원 목사 성탄절 설교)성탄의 실현 :눅2장 1절 ~ 절

by 【고동엽】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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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실현 눅2장 1절 ~ 절 이동원목사

20대 초, 예수 믿기 직전 죽음을 생각해본 한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자살의 유혹을 느끼게 한 소설이 두 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까뮈의 이방인이었는데 주인공 뫼르소는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을 살인합니다.--살인의 이유가 뭐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 진것입니다. 그는 장례식에 가서 울지 않습니다. 해변가에 파티에서 웃지도 않습니다.--전 어쩐지 그를 이해할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의 소설(에세이)은 한국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시작됩니다."어서 차라리 어둬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중간에/나는 개울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않나?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덥다.--나는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무슨 제목으로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아무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이 두 개의 작품의 주인공이 걸린 병은 권태였습니다.(후자의 책은 초 현실주의 작가라고 불리우는 이상의 권태의 첫머리글 이었습니다.)

성탄의 계절인데 좀처럼 삶의 의욕이 없는 분들이 계십니까?

너무나 똑같은 그날이 그날이라는 이 평범성 때문에 삶의 의욕을 못 느끼고 계신 분이 있으신지요? 저도 한때 인생은 이렇게 부조리하고 권태로운 힘겨운 존재 그 자체라고 믿고있었습니다만 예수 믿고 나니까하루 하루가 기대요, 감격입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는 것이 그렇게까지 내 인생을 바꿀줄 정말 몰랐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2000 년 전 이 땅에 오신 사건을 기리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의 증언을 통해서 그가 이 땅에 오신 방법과 그 교훈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방법--그는 의외의 방법으로, 평범한 방법으로 오셨습니다.

1.의외의 방법

1) 의외의 상황

--가이사의 호적등록의 명령이 그것을 입증합니다./2:1--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초대황제이었습니다. (본명은 Caius Octavius, 30BC-14AD)줄리우스 씨저의 조카였던 그는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독재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은 그의 생일인 9.23을 새해로 바꾸었고, 그를 구세주와 신으로 선포했습니다.--세금수입이 중요했던 그에게는호적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고, 이것이 요셉과 마리아로 하여금 베들레헴에 가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진짜 구세주가 탄생한 것입니다. 가짜 구세주의 통치하에 진짜 구세주가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 의외의 장소

--베들레헴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의수도 로마, 성도 예루살렘, 항구도시 가이사랴, 욥바, 아름다운 갈릴리 해변 의 디베리아스도 있는데, 하필이면 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이라니? 오죽하면 미가 선지자 가 주전 650년경에 예언하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한 로마의 변방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도 작고 가난한 마을을 택하신 것이 의외가 아닙니까!

3) 의외의 인물

--마리아와 아기/나사렛땅의 틴 에이저 소녀를 통해 아기의 모습으로.구세주가 이렇게 오심도 의외였습니다.

2.평범한 방법

우리가 그의 출생에서 느끼는 의외성은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평범하게 오셔서는 안된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매우 평범한 방법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의외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1) 호적등록

--독재자의 통치수단인 인구조사로 세금을 강화하여 정부의 재원을 증가시켜 보겠다는 것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는 평범한 현실이 불과 합니다.

2) 베들레헴

--이스라엘 땅의 평범한 서민마을로 지금도 팔레스틴 통치아래서 인구수는--수지보다 적은 가난하고, 평범한 마을일뿐입니다.

3) 마리아와 아기

--미혼모였다는 것이 특별해 보이지만(우리는 성령의 잉태라는 사건을 알고 있지만) 외적으로만 보면 미혼모들을 통한 출생도 죄인들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그들 일행이 호적등록으로 분주한 이 마을에서 투숙 거절을 당한 것도 평범한 사건에 불과합니다.

II.교훈--의외의 방법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오셨다는 것-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두가지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1.평범한 일이 중요한 일이다.

2.평범한 일이 주님의 일이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삶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원론적 사고의 극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일과 세상일이,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따로 따로 존재한다는 사고 말입니다. 이런 사고로 가정일과 직장일 에 당당하게 임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십시오.

베들레헴 주민들과 여관주인의 입장에서 그 날 얼마나 많은 손님들을 치러야 했을까요?

무감각하게 될 수 있음을 이해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주님이 태어날것을 알았더라면, 메시아의 부모가 있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대했을까요?

그래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무슨일을 하든--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고 가르칩니다. 6-7절에 보면, 해산의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주님의 태어남을 알았더라면 그랬을까요? 그 일이 우리를 권태롭게 하는 아주 평범한 반복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섬김의 대상이 보잘 것 없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우리가 주님이 맡겨 주신일로 알고 주께하듯 한다면 우리의 일상적 삶은 얼마나 놀라운 삶으로 변신할수 있을까요?

이런 시각 곧 주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인생은-하루 하루가 특별한 날이요, 경험하는 모든 일이 특별한 일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인 평범한 아기에 대해서도 "당신은 나의 구세주요,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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