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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마태복음 2장 13-23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의례히 성탄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주일 전부터 카드 발송할 주소들과 선물 줄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해서 준비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가는 카드나 선물 중에서 급조된 것도 가끔 있습니다.
전혀 카드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보내오는 바람에 미안한 마음에 성탄 지나서 카드를 보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코미디 같은 데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직장 같은 데서 동료가 자기에게 뜻밖의 선물을 줄 때 당황해서 자기도 그냥 자기 책상에 있던 것이나 주머니에 있던 것을 포장지에 적당히 싸서 마치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선물인양 상대방에게 건네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급조된 카드나 선물은 정성이나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며, 만약 상대방에게 알려지면 오히려 기분 나빠질 수밖에 없는 무례한 선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선물이란 오래 전부터 미리 줄 계획을 세우고 잘 준비하여서 보내어야만 진정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고맙게 받도록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 예수님을 탄생시키신 것은 사람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었습니다.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우리 같은 죄인 위하여 보내 주셨으니 정말 선물 치고 이런 선물은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선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충동에 이끌려, 혹은 마지못할 사정이 생겨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라면, 아마도 그 의미는 반감, 반의 반감되고 말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럴 분이 결코 아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최고의 선물을 보내 주셨을 뿐 아니라 최장의 준비를 거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바로 성경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은 실로 오래 전부터, 이미 창세기 때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이후 구약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곳곳에서 실로 자세하고도 빠짐없이 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메시아 강림이 결코 우연의 결과도 아니며 하나님의 즉흥적인 기분에 이끌려서 행하신 일도 결코 아닌 것을 명백히 보여 주는 증거인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사건이 기록될 때에도, 바로 이 사실이 누차 강조되고 있습니다.
1장 22절에서 요셉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계시될 때부터 이미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 2장 13절로 23절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를 이루려 하심이니라"는 꼭 같은 구절로 종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2007년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 예수님의 탄생에 따른 아주 특별한 사건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미리 예언되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하실 것이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13절부터 15절의 말씀에 "13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자기에게 돌아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아기의 소재를 알려 주면 당장 잡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던 헤롯은 닭 쫓던 개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 박사들이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헤롯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귀국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노기등등해진 헤롯이 어떻게 하면 그 아기를 죽일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중, 하나님께서는 미리 천사를 요셉에게 보내어 사전 경고해 주면서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있으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여기 13절, 14절, 그리고 20절과 21절에서 네 번이나 반복해서 "아기와 모친"이라고 아기 예수님을 모친 마리아 앞에 기록해 놓은 것은, 그 아기가 보통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물론 요셉은 그 말씀대로 즉시 애굽으로 온 가족을 피신시켰습니다.
당시 애굽의 큰 도시들에는 의례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구역들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으로서 애굽에 가서 산다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마치 이미 한인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의 어느 도시에 우리나라 사람이 이민 가서 살게 될 때 그리 큰 불편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신 가신 이 사건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과 밀접하게 상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옛날 야곱의 가족들이 흉년을 피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가서 또 다른 요셉의 보호를 받았던 것처럼, 여기 예수님께서도 육신의 부친인 요셉의 보호를 받으면서 애굽에 피신하셨습니다.
그 야곱의 자손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백 여년 후에 하나님께서 출애굽시켜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 역시 나중에 애굽을 떠나 유대 땅으로 돌아오시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갔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사건은 예수님의 애굽 피신에 대한 예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바로 그 사실, 예수님께서도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하나님께서 불러 주실 때 다시 나왔던 것과 꼭 같은 일을 겪게 되실 것을 두고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말씀으로 호세아 11장 1절에 이미 예언을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꼭 같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도 마태는 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바로 그 사실 "주께서 호세아 선지자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애굽 피신을 통하여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하여 헤롯의 유아 대학살 사건이 있을 것이 또한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16절 이하 18절까지에 기록하기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못 알았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세속적인 왕권을 차지하러 오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그런 끔찍한 살인극까지 벌이면서 어찌하든지 자기 왕위를 빼앗을 정적을 일찌감치 제거해 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기 헤롯이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는 말은, 이 동방 박사의 방문이 예수님의 탄생 직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음을 시사해 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만약 동방 박사의 방문이 예수님 탄생 직후였다면 신생아들만 살해해도 충분할 것이라는 사실은 헤롯의 머리로도 간단히 계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동방에서 베들레헴까지의 여행은 당시로서는 최소한 몇 개월 걸리는 길이었으므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 탄생과 동시에 별을 보았다 해도 바로 그날 밤에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도착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11절의 "집에 들어가"라는 말씀 역시 그런 추론을 뒷받침해 주는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 탄생 시에는 마구간에 계셨지 어떤 '집'에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아마도 예수님 탄생 후 최소한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과 함께 다시 베들레헴에 와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시각에 그 장소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해 주셔서 만나게 해 주신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쨌든 당시 베들레헴은 작은 동네였고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은 약 이 삼십 명 정도였을 것이지만 이 정도의 아기들을 죽이는 것은 헤롯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전에 유대를 다스렸던 왕가의 혈족을 완전히 단절시켰고, 산헤드린 공회원의 반 이상을 처형했으며, 삼백 명의 궁중 관리들을 죽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아내 미리암, 그의 장모 알렉산드라, 그리고 그의 아들 중 세 명을 처형시켰던 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것을 비꼬아서 말하기를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헬라어로는 '돼지(후스)'라는 말과 '아들(휘오스)'이란 말이 발음도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그의 아들 되는 것보다는 더 생명 보존하기 쉽다는 뜻의 익살이었던 것입니다.
하여튼 그런 악명 높은 헤롯의 명령에 의하여 베들레헴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와 같은 대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식이 눈앞에서 군인들의 칼날에 죽임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슬픔과 통곡이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충격적인 비극의 사건을 두고 본문은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 31장 15절에 기록된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라헬"은 야곱의 아내였으며 바로 베들레헴 근처에 장사되었던 여인입니다.
여기서는 물론 그 죽은 라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총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라마"에서 크게 통곡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 갈 때 '라마'란 곳을 지나서 가게 되었는데, 바로 그 장면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이 애통의 눈물을 흘렸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원수의 손에 붙잡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즉 위로하려야 위로할 길이 없는 극심한 비극이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구원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갈 때 겪었던 그 애통 역시 예수님의 탄생을 그대로 예표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마태는 이 일 역시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가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확증했던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성장하실 것이 또한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19절부터 23절의 말씀에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헤롯"은 소위 '헤롯 대왕'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죽게 되자 천사는 요셉더러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유대 지방에 새 왕이 된 "아켈라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무서웠습니다.
헤롯은 죽으면서 자기 왕국을 세 아들에게 분할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이두메 지방을 다스리게 된 아들이 바로 아켈라오였는데, 그도 역시 포악한 왕이어서 즉위하자말자 삼천 명의 유력한 인사들을 살해하면서 또 다른 공포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유대 땅으로 돌아가기를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천사는 그런 요셉에게 이스라엘 땅 중에서도 유대가 아닌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란 동네로 가서 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결국에는 베들레헴 대신 나사렛이 예수님의 대부분의 유년기와 청년기, 즉 사생애(私生涯) 시절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나사렛이란 동네는 당시 조금 전에 말씀드린 '헤롯 대왕'의 세 아들들 중에 하나인 '헤롯 안디바'가 물려받아 다스리게 되었던 갈릴리 지방에 속한 가난하고 아주 작은 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당시 국제 무역을 하던 대상들이 다니던 길목에서 아주 가까운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히 나사렛 사람들은 세상 물정 돌아가는 일에 대하여 빠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어떤 새롭고도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전통적 유대인들은 나사렛 사람들에 대하여 반감 내지는 멸시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나다나엘이 처음에 예수님을 소개 받을 때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날 수 있느냐"(요 1:46)고 말한 것이 바로 그런 감정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사렛 사람이란 가난하고 작은 촌 즉 '비천함'과, 대부분의 유대 사람들이 촌뜨기로 여기고 깔보던 갈릴리 사람 중에서도 특히 더욱 혐오를 받은 곳 즉 '멸시'의 대명사이기도 했었습니다.
본문 23절에 "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부분은 사실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즉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것은 어느 특정 선지자가 한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는 낮고 천한 몸으로 탄생하실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들을 총칭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마태는 예수님께서 그 성장기를 나사렛에서 보내시게 되었던 사실을 두고도 역시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은 본문에서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라는 말들과 "이루려 하심이니라 / 이루어졌느니라"라는 말들이 나타내듯이 구약 곳곳에 이미 예표되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획하셨던 일이었고 그 계획을 미리 예언해 주셨던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그 예언해 주신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성취된 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우연의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지구상에 끝없이 태어나고 있는 하고많은 신생아들 중에 하나로 어쩌다 태어난 생명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이란 존재는 그저 평범한 한 아기로 태어났다가 어떤 특수한 성장 환경과 조건에 의하여 나중에 무슨 성인들 중에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던 성자 하나님이셨으며, 이 땅에 오시기 훨씬 전부터 죄인들에게 메시아 즉 구세주로 오시기로 예정되어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그저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다.'라는 말씀뿐이었다면, 그저 무슨 우연의 일치라고 하든지, 아니면 대충 아무에게나 맞아 떨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예언이라고 속단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문에 기록된 사건들은 너무나도 특별한, 결코 흔치 않은, 정말 발생하기 드문 일들이었으며 그것도 세 가지나 되는 사건들이 연이어서 벌어졌습니다.
바로 이런 특수한 사건들까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으니 이 메시아의 탄생은 아무리 보아도 우연의 일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의 탄생은 하루아침에 급조된 무슨 날치기 선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화육강생이란 것이 하나님께서 아무 것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포장만 그럴듯하게 씌워서 보내신 것이 절대로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만세 전부터 이미 예비되어 있던, 하나님께서 동원하실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모든 능력이 완전히 동원되어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던 선물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수많은 예언들과 신약의 확증들이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역사상 비교할 대상이 없도록 가장 오래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후에 때를 꼭 맞추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의 구주로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 탄생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정성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으며 우리가 조금도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이 성탄절에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가장 큰 선물로 오래 전부터 준비해서 보내 주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함께 진정으로 감사하며 큰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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