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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과제! (신 6:5-9)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쉼이 있고 평안이 있고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아침이 되면 밖에 나갔다 가도 저녁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위에 호텔이 있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어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잠을 자게 됩니다. 그것은 내 집이 최고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가서 잠을 자는 것에 더 평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나가게 되면 안정감이 없고 불편하고 부자유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내 집처럼 자유롭고 평안하고 안식하기에 더 좋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은 안식처입니다.
그런데 가정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우선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없는 가정은 쓸쓸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여인들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 기르는 과정이 어렵고 고되지만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그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아 기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가장의 행복의 요소이고 기쁨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 가정에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앙 안에서 복되게 자라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이 불량하고 탈선을 하고 사고나 저지르고 다닌다면 오히려 부모들에게 근심만 더할 뿐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행복을 앗아 가는 경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본문은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자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5절)."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명한 것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7절)"는 것이고, 셋째는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발라 기호를 삼으라(8-9)"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들에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의 세 가지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자녀들로 하여금 선량한 시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우선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로 하여금 잘 자라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간절한 마음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부모들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이 같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보면 불량한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탈선하고 반항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선량한 시민으로서 자격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이것이 부모들의 근심이고 사회의 문제입니다. 어린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유전적인 요소"입니다. 이 타락된 정신은 피를 통해서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벽이나 방랑성 그리고 주벽, 불성실, 유흥성의 기질은 대부분 유전됩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의 피 속에 다 들어 있는 유전적인 요소일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락된 본성입니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어느 정도 환경에 있습니다. 청소년의 시기는 정신의 변혁기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만큼 시기적으로 아주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곧고 고르게 균형된 인격을 지닌 인격체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청소년들이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우선 정신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에 틈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불화하고 갈등이 있는 환경에서는 정서의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성을 잃고 아이들이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마음이 떠납니다. 가정에 마음을 두지 않고 밖으로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고 몰려 다니게 되어 결국 탈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잉태하는 과정을 거쳐서 태중에서 여러 달 동안 조용하게 자라나고 만들어집니다. 그때에도 태중의 아이는 느낌이 있고 감각이 있습니다. 어느 임상학자가 그런 실험을 했습니다. 전깃불을 산모의 태중에 비추니까 태 속의 어린아이가 눈을 가리더랍니다.
이 아이는 빛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빛이 들어오고 어둡던 곳이 밝아지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가린 것입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내고 문을 꽝 하고 닫으니까 이 아이는 태중에서도 놀라는 몸짓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니까 그때서야 안정하고 조용히 있더랍니다.
그렇다면 매일같이 아버지가 수 주정을 하고 부부 싸움을 자주 하는 환경에서 잉태되고 자라난 아이들은 늘 긴장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자라서 성인이 되면 틀림없이 난폭한 성품의 사람이 될 것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안정된 분위기에서 자라고 성장한 아이라야 부드러운 성품과 인격을 지닌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들이 실내에 있으면 밖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더 크게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어린 태아는 태중에서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크게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심장 박동 소리가 정상적이고 평온을 유지할 때는 안정되고 균형 잡힌 심성을 유지하면서 자라겠진만, 불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듣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는 쉽게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아이로 형성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늘 싸우고, 화를 내고, 흥분을 잘하고, 욕을 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에게서 잉태되어 자라고 성장한 아이의 심성이나 성품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은 쉽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자녀 양육의 필수적인 교훈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 육성을 위해서입니다.
7절을 보면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으로 육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사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나중에는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신앙 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학교의 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한 역할입니다.
아이들도 분위기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존재입니다. 분위기와 환경에 따라서 신아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비신앙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신앙의 분위기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란 후에 잠시 이탈을 하는 수가 있어도 후에는 다시 돌아옵니다.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비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후에 신앙 생활을 하다가 이탈을 하게 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초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의 기초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63빌딩을 짓는 데 기초 공사만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기초가 그만큼 단단하고 잘되어 있으니까, 그 기초 위에 63층을 올려도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는 것입니다. 모태 신앙자들이 뜨겁거나 신앙의 활발성은 적지만 그대신 끈질기고 인내성이 있으며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이 기초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오랫동안 세계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든든함을 보여 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나라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명 의식을 가지고 대처했고 개입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좀처럼 실패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미국이 지니고 누렸던 저력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미국은 더 이상 미국이 아닙니다. 완전히 한물간 나라입니다. 쇠퇴했습니다. 약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들은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모든 공립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던 제도를 폐지했던 그 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모든 학교들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자랑하던 전통이고 힘이고 구심점이었고 미국이 지녔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먼저 그것부터 폐지시켰습니다. 그때부터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구심점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얻은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월남전의 패배입니다. 그때부터 미국은 세계 도처로부터 신뢰도를 잃게 되었고,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힘도 잃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완전히 종이 호랑이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미국의 몰골을 보십시오.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인 북한으로부터 질질 끌려 다니는 저 모습을 보면서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바라보게 됩니다. 국가든 사회든 그곳이 가정이든지 이같이 권위를 상실하게 되면 힘이 약화되고 구심점이 흔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들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신앙 교육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집집마다 가 보면 가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훈의 목적은 순전히 교훈성입니다. 가훈은 자녀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그 가정의 뜻을 반영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훈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 보면 좋은 정신이 들어 있는 가훈이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가훈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강력하게 가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낳아 놓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이고 키우는 것만도 다가 아닙니다. 육신의 양식도 먹여서 잘 키워야 하지만, 정신의 양식도 공급해 주어야 하고, 영의 양식도 충분히 먹여서 골고루 섭취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부여된 자녀 양육의 역할입니다.
오늘은 특히 어린이 주일로서 어린아이들이 헌아식을 하게 됩니다. 바리기는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 키우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상을 위해서 쓰임받을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부모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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