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형통의 복! (시 1:1-6)
시편은 ‘히’어로 ‘찬양의 책들’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인의 찬송가인데 ‘슬픔과 절망과 고뇌’를 찬양과 기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히브리인들의 마음을 쏟아내는 찬송만이 아니라 나의 절망과 나의 환탄과 나의 간구와 나의 고백과 나의 찬송이 됩니다.
▶시편 안에는 5대 신학사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⑴신관: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⑵구원관: 철저한 회개만이 구원받는 길임을 죄악 된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고,
⑶메시야관: 시22/31/69편은 십자가 고난 당하는 메시야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⑷심판관: 시편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악인은 멸망하고 의로운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⑸부활관: 시편 기자들은 자신의 영혼이 음부에 버려지지 아니하고, 육체가 썩지 않을 것을 믿는 부활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150편 가운데 제1편은 시편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서론이요, 중론이요, 결론입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 모두가 다 좋아하는 말씀이 들어 있는데, 바로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만사형통’이란 뜻입니다. 형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기 ‘형통’이란 ‘번영하다, 번성하다, 성공하다, 강성하게 되다. 잘 되다.’라는 뜻으로, 형통의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전제 조건들이 있습니다. 본문은 버려야 할 것 세 가지와 취(행)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버려야 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1).
①악인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악인은 ‘악한 일을 만드는 자, 하나님 믿지 않는 자. 불 경건한 자, 의도적으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자, 범죄자,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를 말합니다. 본문에 보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들과 의논하지 말라, 동행하거나 함께 일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형통의 길을 막는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정말로 형통의 길을 소원하신다면 악인의 꾀를 쫓지 말아야 합니다.
6절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4절에 보니 악인의 길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겨는 쭉정이를 말합니다.
②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의 길은 반역의 길이요 불순종의 길이요 불법자의 길이요 하나님의 목표에 벗어나는 길입니다. 죄라는 원어의 뜻은 과녁을 벗어난 화살을 의미합니다. 과녁에 못 미쳤던지, 지나쳤던지 빗나간 것을 죄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못 미치거나 지나치거나 빗나간 것이 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죄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성도이며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짖는 죄인과 어울려 살지 않고 의를 따라 선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③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자는 자기 자신을 절대화시키며 독선과 이기주의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편도, 아내도, 집사도, 교역자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나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오만했습니다.
▶우리는 복 있는 자이기에 자기의 신앙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조심해서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성도는 악한 자, 하나님을 조롱하고 거역하는 자와 결코 교제하면 안 됩니다. 이는 성도라면 신앙 관이 다른 자, 복음을 비웃고 교회를 비난하는 무례한 무신론자와는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 천국에 갈 사람, 주님의 신부가 될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의 방식대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2. 취(행)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2절)
①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 말씀을 좋아한다 는 말이요, 사랑한다는 말이요, 관심을 갖는 다는 말이요, 소원한다는 말입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는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②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주야’라 함은 ‘항상’을 의미합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새김질하여 말씀 그 자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주야’의 의미는 순경과 역경의 때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밤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에서 빛이 나오고 등불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낮에도 역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누구나 괴롭고 외로울 때는 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기쁠 때, 즐거울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안됩니까?" 하며 원망과 짜증을 내기 전에 내게서 형통하지 못한 이유를 찾아봐야 합니다. 과연 내가 악의 꾀를 버렸는가? 죄인의 자리에서 떠났는가? 오만한자의 자리에서 일어났는가?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기뻐했는가? 내게 주신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는가?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만사불통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버릴 것은 버립시다. 그리고 취할 것은 취합시다. 그리하면 분명히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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