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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얻는 생활! (출 16:4-5)

by 【고동엽】 2022. 1. 22.

만나를 얻는 생활! (출 16:4-5)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먹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가장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세상에 문제가 많고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근본 원인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먹는 문제 때문입니다. 거짓말, 폭력, 도둑질, 강도질, 살인이 왜 일어납니까? 모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먹는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아주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대로만 살게 되면 문제가 없고, 고난이 없고, 실패가 없고, 갈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나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장정 60만 명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해서 모두 300백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꿈에 부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애굽을 빠져 나와 보니까 당장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먹는 문제입니다. 말이 300만 명이지, 또 이게 도대체 얼마나 되는 인구입니까? 지금 그 많은 백성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뭘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입니까? 솥이 있습니까? 쌀이 있습니까? 물이 있습니까? 연료가 있습니까? 재료가 있다고 한들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밥을 지어 먹입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을 탈출하라고 해서 나오기는 했는데 앞이 암담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인 먹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가능성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복을 주셔도 그냥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고, 공기를 공급해 주시고, 햇빛을 내려 주셔서 사람들은 그 재료를 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농사짓는 일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농사도 불가능하고, 농사를 지을 만한 시간도 없고, 그럴 만한 환경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도록 하셨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보면 희고, 둥글고, 마치 꽃 같은 것이 지면에 깔렸는데 그것을 거두어다가 먹었습니다. 그 맛이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그것을 만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3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만나를 40년 동안을 먹어 가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먹는 데는 몇 가지 법칙이 있었습니다. 그 법칙이 본문을 보면 네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이 법이 하나의 음식 문화입니다. 이 음식 문화만 잘 지키면 사람은 건강하게 되고, 장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특히 음식 문화가 많이 발달된 시대인데 이것을 한번 유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모두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날마다 거두라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나는 날마다 그날의 것을 거두어다가 먹으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거두기가 귀찮다고 해서 일주일 분을 한꺼번에 거두어다 놓고 편히 앉아서 먹자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날의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을 보아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했습니다. 사람이 한 날을 살기 위해서 그날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삶의 대원칙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매일 거두는 것이 귀찮다고 해서 며칠 먹을 것을 한꺼번에 많이 거두어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하루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썩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두느라고 헛수고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만나의 생활 법칙입니다. 얼마나 과학적입니까?
여러분, 오늘날도 보십시오. 오늘도 사람들이 그날 먹고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과용하지 않고 세상을 살면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관한 욕심을 가지고 먼 훗날까지 편히 않아서 먹고 살겠다고 무리하게 거둬 들이다 보니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노년을 대비한다고 해서 욕심껏 거두다 보니까 때로 뇌물도 받게 되고, 속이기도 하고, 투기도 하게 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마음대로 됩니까? 마침내는 체하기도 하고, 썩기도 하고,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이 원칙이 무너지면 반드시 곤란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거두어 놓은 것이 많아서 오늘 수고하지 않고 놀고도 살 수 있다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이 게을러지게 됩니다. 할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할 일이 없어지면 안 됩니다. 시간이 많아지면 사람은 건전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가난했던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 일을 하지 않고도 살게 되었다 해 보십시오. 돈 있겠다, 시간도 많겠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많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이때 남는 돈과 시간은 그에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재벌 2세들의 행각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날을 위해 그날의 수고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이번에는 반대로 오늘 먹을 것이 부족해서 내일 먹을 것을 꾸어다가 오늘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이번에는 근심 때문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걱정에 눌려서 살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가불해야만 살 수 있는 월급쟁이에게는 월급날이 가장 괴로운 날입니다. 언제나 한 달이 적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재물이 너무 많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보통 수양이 되지 않고는 건전한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적어도 어렵습니다. 사람이 가난한 생활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많게도 마시고 적게도 마시고 일용할 양식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날의 삶을 위해 그날의 수고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육신의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영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살아 보십시오. 적을지라도, 또한 많을지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근면한 삶을 살게 되고, 잡념 없이 살게 되고, 잠이 달고, 밥이 맛있는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장수의 비결이고, 건강해지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날마다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아침에 거두라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만나를 거두되 언제 거두느냐 하면 "아침에 일찍이" 거두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침에 늦잠 자고 나가면 하늘에서 내린 만나가 다 녹아서 거둘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 일이 급하다고 해서 일을 보고 나서 늦게 나가 보면 만나를 거둘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모두 굶어야 합니다.
참 기가 막힌 방법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매일 거두게 함으로써 근면하게 하고, 활동시켜 건강하게 살게 하고, 새벽에 일찍이 거두게 함으로써 일찍 일어나게 해서 절도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아침에 거두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특히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슬은 새벽에 내립니다. 히브리인들은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깁니다. 헐몬산에 내리는 이슬(시 133:3)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새벽은 그만큼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밤늦게 자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만나를 먹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 일찍, 새벽 시간을 선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만나는 육신의 만나든, 영의 만나든, 새벽에 거둬야 합니다. 새벽에 만나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은 그날은 굶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아침 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깊어지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매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했습니다. 여기 한 오멜은 두 홉 분량입니다. 이것으로 밥을 지으면 꼭 세 그릇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하루 세 번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량입니다. 이렇게 먹고 살면 살이 찌지도 않고, 영양 실조에도 걸리지 않는 적당한 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건강식의 방법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데 있습니다. 그 이상을 먹으면 병을 얻습니다. 병은 거의가 많이 먹어서 생깁니다. 적게 먹어서 생긴 병은 먹으면 낫는데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은 고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과식은 각종 병을 유발합니다. 모두 이 만나의 법칙을 무시해서 그런 것입니다.
가끔 먹기 대회라는 것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기 중에서 이 경기가 가장 야만스럽고 무지한 경기인 것같이 보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 많이 마시기 대회를 했는데, 어떤 사람이 많이 먹어서 우승을 하기는 했는데 그러고 나서 술에서 깨어나는 데 3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 계란 많이 먹기 대회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계란을 많이 먹어서 그만 목구멍이 막혀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무지한 행동입니까?
오늘 보면 너무 많이 먹으려고 하다가 그 고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닥치는 대로 거둬 들였습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위태위태하게 보였습니다. 저러다가 꼭 사고날 것같이 보였습니다. 사고, 팔고, 또 사고, 사서 담보 잡히고 돈 꺼내서 또 사고, 그래서 단 기간내에 부를 이루기는 했는데 그러다가 결국은 체했습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다.
하루 한 오멜씩만 거두어다가 먹고 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내서 더 거두어 오면 나머지는 모두 썩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먹을 만큼만 먹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생활이 질서가 있고, 건전함이 있고, 청결한 생활이 세워지고, 온전한 삶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도 안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셔서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되었다면 그것을 적당히 선용하는 방법을 찾아서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내게 그렇게 많이 주셨겠습니까? 그것은 적절하게 선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필요 적절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용하면 그 부가 오래갑니다. 기초가 튼튼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더 맡기시고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선용하지 않으면 그 부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곧 무너지고 맙니다. 얼마 못 가서 하나님께서 모두 회수해 가십니다. 그 부가 회수되고, 무너질 때는 엄청난 고통과 부작용을 동반하면서 없어집니다. 여러분, 그 같은 모습을 우리들 주면에서 어렵지 않게 종종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만나의 법칙입니다.

 

네 번째 안식일 전날에는 갑절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제육 일에는 갑절을 거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안식일 날에는 일하지 말고, 수고도 하지 말고, 쉬면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충실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날에는 두 배를 거두어도 썩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나를 위해서 욕심스럽게 많이 거두고, 많이 쌓아 놓으면 녹이 슬고, 썩고,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물질을 많이 소유한 곳에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쌓아 놓고, 하나님을 위해서 거두어 들이면 그것은 썩지 않고, 녹도 슬지 않고, 부작용도 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양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많이 쌓아 놓으려고 하고 많이 가지려고 하는데 많기만 하면 뭘 합니까? 많이 쌓아 놓기는 했는데 그것이 썩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쌓아 놓은 거이 아무리 많다 해도 녹이 슬면 아무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문제는 양이 아니고 질입니다. 그것이 조금일지라도 부작용이 없고, 썩지도 않고, 탈도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나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법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살면 건전한 삶이 주어지고, 건강한 삶이 주어지고, 가장 바랍직한 신앙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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