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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종말론 발제

by 【고동엽】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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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장 종 말 론

김혜영


(1) 불멸성(不滅性)과 부활
구원에 관하여 여태까지 설명한 모든 것은 베드로가 지시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앙양(昻揚)시킨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으나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믿음의 결말을 얻을 때까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벧전 1장
8.9절)할 수 있을 것이라. 칼빈은 축복된 부활을 항상 묵상하는 사람만이 복음 안에서 견고
하게 숙달(熟達)된다는 것이다.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복음 전체는 허무하고 그
릇된 것이 되며 복음의 권위는 일부분만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 들이고
완성하는 일에 관계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모든 부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독자는 그리스도를 완전한 구원의 주관자로서 받아 들인 후에라야 몸 전체가 머리와 합치되
기 위하여 높이 올라갈 것을 배우게 된다. 또한 하늘의 영광과 불멸성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 안에서 성령이 부활에 관한 증거를 거듭거듭 보여 준다.육체가
부패했다가 일정한 시간이 오면 부활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많은 철학
자들이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하면서 육체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매우 적다. 물론 이것은
용서받을 구실이 될 수 없으나 이 진리는 인간의 마음의 동의를 요구하기에는 너무나 어려
운 것이라는 것을 경고해 준다. 이와 같이 매우 큰 장애(障碍)를 신앙이 극복하기 위하여
성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돕는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동질성 (同質性), 둘째는 하나
님의 전능(全能)이다. 언제든지 부활을 언급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기억하자. 그는 우
리의 본성을 친히 받으시고 이 죽음으로 생을 마치셨다. 그러나 지금은 불멸성을 획득하셨
으므로 그는 우리의 장래의 부활을 보증하셨다. 그는 성령의 힘으로 다시 사셨다고 이 성령
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목적으로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
의 부활과 생명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있어서 부활이 연기된다 할지라도 걱
정하거나 초조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이 안도(安堵) 할 수 있는 확실한 기초를 준비해 줄
것이다.


(2) 보통 제기되는 반대 의견에 답변함
사람의 마음은 이 문제를 연구하는 생각으로 항상 차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활
의 모든 기억을 완전히 철폐하려는 듯이 죽음을 만물의 결말이라고 하고 인간의 파멸이라고
도 한다. 이 야만적인 어리석은 생각은 이 세상의 모든 세대(世代)에 영향을 주었고 심지어
는 교회 안에까지 침투하였다.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으며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가르
쳤다. 그러나 이 무지로써 아무도 변명할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자연의 본능이 항상 불
신자의 눈 앞에 부활의 형상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사탄은 죽은 자의 육체와 함께 부활의
기억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가상(假想)과 결
국에는 그 교리의 전적 와해(瓦解)를 초래함으로써 교리 중에서 이 점을 없애려고 노력하였
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죄가 말살(抹殺)되고 죽음이 삼켜지고 영생이 완성될 때까지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칼빈은 인간의 사악한 호기심은 다른 두 가지 생각을 더 가지게 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에 그 사람의 전부가 죽고 영혼이 부활할 때에 육체와 함께 부활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인정하면서도 영혼은 새 육신을 입게 되므로 육
체의 부활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조성된 영혼을 죽을 수밖에
없는 이생동안에만 육체에 부착되어 있다가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고 말 호흡으로 생각하거
나 성령의 전(殿)을 섬멸(殲滅)시킨다는 것은 야만적인 과오다. 신성(神性)이 분명히 나타나
있고 불멸성의 특징이 눈에 뜨이는 이 부분을 박탈함으로써 육신의 상태가 영혼의 상태보다
나으며 더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야만적인 과오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교리는 분명히 다르
다. 성서에 의하면 육신은 거처(居處)와 같아서 죽을 때에 우리는 거기를 떠난다. 이 부분이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라고 성서는 평가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과오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혼은 현재 자기들이 속해 있는 육체를 다시 회복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를 입어서 전과는 다르게 된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소유하는
것 가운데 하늘 나라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라도 부활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서에는 현재의 우리의 육체가 부활한다는 것보다 더 명백하게 가르친 점은 없다.


(3)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
우리가 부활할 때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부활할 것이지만 그
질적면에 있어서는 다른 육체라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약소한 힘을 잊어버리고 체면도 없이 너무 높은 것을 추구해서 올라가려고 하다가
하늘 영광의 광채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하여 심중한 태도를 가질
것이 더 필요하다.


(4)불신자들의 운명.
버림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復讐)의 엄격성을 감히 묘사할 수 없는 것과 같
이, 그들의 괴로움과 고통은 유형적인 모양을 동하여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알려져 있다.예
를 들면 암흑과 통곡이 있고 이를 갈며 꺼지지 않는 불과 벌레가 쉴 새 없이 마음을 물어
뜯고 있다는 것이다. (마3장12절,8장12절,22장13절,막9장43.44,사66장24절) 이와 같은 표
현법을 통하여 성령이 우리의 모든 기능을 전율로 차게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표현
은 사악한자들의 파멸적인 상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시에 우리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안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당하는 불행에 주로 집중케 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의 입장에서 볼 때 그와 같은 갈등을 경험하는 동시에 그 위
엄의 계속적인 추적(追跡)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의 끊임없
는 실현을 참아야 하는 심판이 얼마나 크고 엄한 것일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흩어지게
하고 파멸에 넘겨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들을 이 세상에서 그들의 성품의 정도에
따라 격려하며 십자가의 짐 아래 있으면서도 그가 모든 것에 중심이 될 때까지 전진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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