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완성 10강 –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함 박영선 (38:55)
갈라디아서 2장 19절 20절말씀보시겠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내는 내가 산것이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가지 성경적 증거와 설명들을 통해서 결국 다시 이 결론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살고있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안에 살고계십니다.
20절에 있는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구원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때 신의 영화라는 우리의 이해를 위한 이 부분들이
결국 하나의 구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성하시는 모든 완성을위하여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실것이라니는것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런 구원에 대한 전적인 은혜성을 우리가 이해를 하면 어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수잇느냐, 율법주의에서벗어날수있습니다.
율법주의란 우리 신자된 현실을 이해하고 점검하는데 있어서 늘 괴롭히는 생각입니다.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옛날 과 분명히 달라야하는 것이 늘 괴롭히는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기대만큼 달라져있지않고 달라지고싶고 신자로써 멋지고싶은소원은있는데 이루어지지않고 어떻게해야될지모르는 괴로움속에서
자신이 안심하기위해 공로주의를 택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열심을 내거나 헌신하거나 어떤일에 수고하는걸로 자신을 확인하려는 공로주의로빠집니다.
많이쓰는 공로주의중하나가 기도많이하는것 헌금하는것 봉사하는것들이 포함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봉사하고 전도해서 본인의 실력이 늡니다 그거 자체는 우리가 잘못된 이해해서 출발했을지라도 현실적으로 성도들의 신앙성숙에 굉장히 도움이됩니다.
지난번에 지은 죄가 겁이나서 감사헌금을 힘에 지나게 하면, 아주 좋은 신앙 입니다.
지난번에 한 잘못생각나서 철야기도한것아주좋습니다. 그렇지않고는 우리는 기도하고 헌신하는 일을 배우지못합니다.
또 해야 헌신하고 실천들을 통해서 실제적인 신앙이 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문제는 풀어야되는것이 이런 잘못된 공로주의에 있으면 언제나 자신의 신자된 현실을 또는 점수를 확인할때 불안합니다.
늘 잘하지못하거든요. 10번잘못하면 한번갚고 이러니까 갚으면 본인이 속시원한지몰라도 그전에는 늘 불안함속에 사는거에요.
이것을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않는다는것을 확인해보십시다.
로마서7장으로갑니다 15절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ㅇ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로마서 7장에 등장하는 곤고한 사람과 어떻게 해결되는가 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해결입니다.
죄로부터의 해결에 대한 정확한 설명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사람이로다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형편을 선을 행하기 원하나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오는 사람인것으로 역사되고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아래있는사람을말합니다. 율법아래있다는것은 자신의 결과를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여 얻어야되는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아래있다는것을 법을 행위로서 인과율의 법칙으로 만족시켜야되는 조건속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 예전에 구원얻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이 원인과 법칙아래있는것입니다. 그때는 우리는 선한것과 의로운것을몰랐을뿐아니라 원해도 할 수없었습니다.
죄에 사로잡혀 죄가 우리를 부렸기 떄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구원을 위한 어떤 이유도 원인도 만들어낼 이유도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에 등장한 곤고한 사람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지만 육체아래 사로잡혀온다고 표현하고있습니다.
잘못이해해서 신자가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원과 그렇게 하지못하는 현실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사람으로 이분화해선안됩니다.
우리가 신자가 된 이후에 어떻게 해야되는지를알고 말씀을 따라서 가지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것은 우리의 소원에 비해서 우리의 실력이 미흡한탓입니다.
전체적인겁니다. 소원하는것도 나 자신의 전부이지 우리가 둘로 나뉘어서 영에속한사람 육에 속한 사람 싸우는게 아닙니다.
알지만 이룰 실력이없는것입니다.
우리는 다 영에 속해있습니다. 우리가 영에 속해있다는 것은 로마서 8장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기때문입니다.
이 로마서 7장에 말하는 사람은 율법아래있는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이 원인을 가져야 결과를 얻는 *그런 법칙 아래에 있는 사람을 육에 속했다 그러고 구원을얻은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아래있고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속한자입니다.
로마서 7장은 8장에 서는데, 하나님의백성들의 자유 이제 확인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어디에있었느냐를 얘기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의 뜻을 소원하되 이룰수없을 뿐 아니라 죄에 사로잡혀가는처지에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절망의 자리에서 벗어날수있으랴 라는 대답을 8장 1절은 이렇게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우리가 이루어야만 가지는 그런 법칙아래로부터,
어디러왔다구요? 예수 안에 잇는 생명의 성령의 법 또는 은혜 아래와있기때문에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얘기를 8장1절은 시작은뭐로부터하느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로 시작을 하죠 이 문제는 저도 로마서 7 8 장의 연결 7장의 곤고한사람이 8장의 해방으로오는가에대해서는 여러책을 참고했지만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못했습니다.
제가 얻은 답은 이것입니다. 7 8장얘기는 우리가 어떤 능력과 해결책을 가지게 되었는가에서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우리를 법적관계에서 은혜의관계로 바꾸셨다 라는걸말하는겁니다.
이 말뜻을 이해할필요가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56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용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이 나중에 없어질겁니다. 이유는 사망은 죄값이기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것에는 사망이 결과가 될 수 없습니다.
사망은 죄값입니다. 죄가 없는것에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타날수없습니다. 죄는 무엇때문에 성립되느냐, 죄는 법이 있어야 성립된다.
법이 없는 것에는 죄라는것이 성립되지않고 죄가 성립되지않으면 사망이라는 결과가 생길수없습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왜 이런것이없어지는가 다시 본문으로와서 이얘깁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하는얘기가뭐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거에요.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법적 관계가 아닌 관계이기때문에 법이 없으면 죄가 성립이 안되고 죄가성립안되면 사망이라는 결과를 선고할수없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로마서7장의 곤고한 사람이 8장의 해방을 맞게되는 이유입니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우리의 성경의 자세한 설명이필요하니 로마서5장으로 갑니다.
로마서5장12절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말미암아 사망이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있기전에 법이없으니까 죄가 성립이 안되죠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그러면, 죄를 져야 사망이 결과되는데 율법이 있기전에 사망이왜있었느냐 이얘깁니다. 말이안되지안느냐, 죄를 지어아 사망이결과되고 죄를지었다고 결정하려면 법이있어야 범죄라는게생기는것아닙니까 그런데 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율법을 주기 전까지도
사망이 있었느냐,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의 한 상징을 맡습니다.
대표로서의 상징입니다. 인류의 대표 즉 죄를 짓지않았는데 모세 이전,의 사람들이 왜 죽었느냐 아담이 범죄에서 죽게되었는데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이기때문에 아담의 후손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죄인의 후손이란 이유로 다 죄인이기때문입니다.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아담으로인하여 모든 후손이 죄인으로 태어나서 죽을수밖에없었던 것 같이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태어나게했듯이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가 새로운 인류의 대표가 되어 그 후손에게 배푸시는 의인으로 되는 구원을 얻는 이 인류도 같은법칙에 의거하여 충만하게 은혜가 연결되었다 이런겁니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이게 대표원리라는 겁니다.
아담이 인류의대표로서 죄임됨으로 후손을 다 죄인되게 한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인류의 대표되심으로 후손들을 다 의인이되게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겁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새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럼 율법은 왜 주었느냐, 우리가 죄인인 걸 이해시키려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죽느냐 죄인이냐 라는 것을 율법을 줌으로써 확인시켰다 라는 겁니다.
율법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가요? 예수께로 끌고가야합니다.
바로 이 대표원리르 말미암는 이 관계성 아담 안에서 죄인된 것 같이 예수 안에서 자녀 되는 이 일을 고린도전서 15장으로가보시면 설명하고있습니다.
15장20절부터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인제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때라
이 사망이 사람으로말미암고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이 사람 사람하는 이 표현은 아담의 대표자된것가 예수그리스도의 대표자 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같이, 또 그리스도안에서 대비되고있습니다.
45절로 가십시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를 아담이라고 표현하고있죠.
로마서 5장에서본대로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어떤의미에서 인류의 대표라는 면에서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요 마지막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된거냐 하면 비유하자면, 마태복음 1장에 나온 족보를 보시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해서 족보가나오죠. 누가복음에가면 하나님으로부터시작하여 예수까지족보가나오죠. 인류의 족보인것입니ㅏㄷ.
예수님이 마지막 족보의 상속자로 오셔서 죽어버린것입니다.
죽어버리셔서 이 족보가 가문이 문을 다는겁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아담으로 부터 시작한 족보를 마감하고 부활하셔서 인류는 상징적으로 없어진겁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아담 둘째 아담 이렇게나오죠.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는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사람 둘째사람 둘째사람은 인류를 대표했던 아담의 족보를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백성들의 인류를 새로 시작하는 대표자로 예수님께서 세우십니다.
어떻게 됬냐면 아담안에서 우리가 개인이 죄를 짓지않아도 죄인으로 태어날수밖에 없었듯이, 동일한 이유로 원리로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남으로 예수에게 해당된 것이 우리에게도 해당된 자로 태어나는것입니다.
아까 우리봤던 로마서8장으로돌아가보십시다.
7장 24절~25절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답을 얻었다 그래야 되잖아요.
그 답은 8장2절에 있는 것 같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게 답인데
고 사이 로마서7장25절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태껏 7장에있었던 갈등구조 넘어설수없었던 상황을 다시 얘기하고있잖아요.
감사는 해놓고 이게 무슨얘기냐면 구원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이 해결책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해서 얻게하는 결과가 아니고 우리 힘으로는 여전히 죄를 짓고 죄에게 지는 의욕이 따를지라도 결실할수없는 사망과 실패아래있는자임에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는 관계는
법적 관계에서 은혜와 사랑의 관계에서 옮겨져서 법적 지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뀌어서 우리의 죄는 더이상 죄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느 ㄴ겁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이걸 이해하는데 평생이걸립니다.
구원얻고나면 성령께서 간섭하사 죄를 늘 이기게 되는 승리의 생활을 줄것이다라고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구원얻고난다음에 놀라는것은 뭐냐면, 예전엔 양심을 따르는 선한 의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은혜도 알고 기도할줄알고 성령은혜를 아는대도 실패하는 자신을 보고 놀랍니다.
그때 성경이 하는 하는 얘기는 이제 너가 하는 잘못은 죄가 아니다 이겁니다.
그럼 뭐냐 부끄러운짓이다 이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잘 풀어야하는 구원에 대한 성경적 얘기가 뭐냐면 관계의 관한 얘깁니다.
우리가 왜 공로로 가며 쓸모로 가며 죄의 대한 승리를 요구하느냐면 관계를확인하려고 그래요. 관계확인하는것은 내가 구원얻은게 맞지 백성으로서 제대로 살고있는게 맞지 라는게 항상 궁금한겁니다.
성경이 하는 얘기는 그문제는 걱정하지말라는거에요.
이건 기본적으로 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틀리기때문입니다. 죄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분리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우릴 만들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목표하기로 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주시는 것으로 채우고 완성되는 것을 거부한것입니다.
우린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뜻을 정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게 죄죠.
요한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는 중요합니다. 줄기로부터 분리된 나무가지는 말라 버릴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의 분리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인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누리자, 하나님과 화목되었다 이런표현을합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고 은혜를입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얼하고 우리가 무얼하고 이전에 하나님이 하신 여러분 자녀를 길러보셔서 아시잖아요.
부모가 다 기릅니다. 애들이하는것은 미운짓밖에없습니다. 하라는건 꼭 반대로하죠. 왜그래요? 철딱서니가없어서, 부모가 해주는 교훈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자식을 미워하는부모는없습니다. 속상하고 안타까워하죠. 그건 사랑입니다. 제일 무서운건 부모가 간섭안하는겁니다.
부모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는 야단을 쳐야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혼자 살게놔두셔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 위에 우리 모든 신자된 근거와 권리가있다는것을 놓치지않아야합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에 어떻게소개되느냐하면 8장 8절부터 보죠.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실패한다고 육에 속한것이아니고 성공한다고 영에 속하는 이분법이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부르심받은사람은 누구나 영에속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수준과 승리에 미흡할수있습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당연히 일어나는겁니다.
존재가 다르다, 종자가 다르다 라고 이해하지 마십시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게 우리죠 말하자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에 해당하는 모든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뭐라고이어지느냐하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가나옵니다.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은 법 아래있는사람을말합니다.
종은 어떻죠 종은 법관계죠.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죽는겁니다.
종과 주인과 다르다. 이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 사이입니다.
어떤표현을쓰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않고 양자의 영을받았으므로
왜 양자를도입했느냐하면 로마시대에도 그렇고 미국도그렇습니다. 법적 적용과 질서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자기가 난 자식보다 법적인 자식 양자에게 더욱 법적인 혜택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난 자식에게는 유산을 안물려줄수있어도, 양자에게는 안물려주면 안되게 되있는것이 로마시대의법입니다.
양자라는말을쓰는이유는 혈연사회에서는 친자와 다릅니다. 감동이 안가지만 성경이 하는얘기는 우리가 분명하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가 확실하고 약화될수없는신분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양자라는 표현을 쓰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라는 말을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저는 딸을 키워보니까 세상에 재밌는게 이겁니다. 우리 딸은 저를 겁을안냅니다.
내가 어쩌다 야 하고 신경질부리면 놀라 쳐다보면서 신경질부리냐고 말합니다. 그럼 그말에 녹아서 아니라고합니다.
(35:20)너희는 무서워하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부끄러워해야하는 것 투성이입니다. 무서워하지는마십시오.
그래서 이 일은 전에도 인용한것으로 압니다만 요한1서 4장에 강조되어있습니다.
4장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심판날에 담대함을 갖는다는 것의 뜻을아시겠죠
법적으로 심판 받지않습니다 관계로 받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인 이상 그냥 가족 전용문으로들어가는겁니다.
18절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사랑이 가슴에서 튀는것이라고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우리를 향해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은 자주 식습니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부르신 것이 구원이라는겁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우리를 법적관계로 다루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요.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 은혜의 관계 성령의법입니다.
우리는 인도하심을 받고 자라나고 승리하고 영광의 자리에 설 것입니다. 신자들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신앙 실력의 부족함으로 경험하는 잘못이나 실패나 부족함이나 부끄럼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흠을 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깊이 이해하신다면 신앙의 대한 점검은 보다 더 현실적인 승리를 가져올것입니다 왜냐면 형벌보다 사랑이 더 우리 마음을 크게 감동시키는 탓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절 20절말씀보시겠습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내는 내가 산것이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가지 성경적 증거와 설명들을 통해서 결국 다시 이 결론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살고있고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안에 살고계십니다.
20절에 있는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구원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때 신의 영화라는 우리의 이해를 위한 이 부분들이
결국 하나의 구원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성하시는 모든 완성을위하여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실것이라니는것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런 구원에 대한 전적인 은혜성을 우리가 이해를 하면 어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수잇느냐, 율법주의에서벗어날수있습니다.
율법주의란 우리 신자된 현실을 이해하고 점검하는데 있어서 늘 괴롭히는 생각입니다.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옛날 과 분명히 달라야하는 것이 늘 괴롭히는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의 기대만큼 달라져있지않고 달라지고싶고 신자로써 멋지고싶은소원은있는데 이루어지지않고 어떻게해야될지모르는 괴로움속에서
자신이 안심하기위해 공로주의를 택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열심을 내거나 헌신하거나 어떤일에 수고하는걸로 자신을 확인하려는 공로주의로빠집니다.
많이쓰는 공로주의중하나가 기도많이하는것 헌금하는것 봉사하는것들이 포함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봉사하고 전도해서 본인의 실력이 늡니다 그거 자체는 우리가 잘못된 이해해서 출발했을지라도 현실적으로 성도들의 신앙성숙에 굉장히 도움이됩니다.
지난번에 지은 죄가 겁이나서 감사헌금을 힘에 지나게 하면, 아주 좋은 신앙 입니다.
지난번에 한 잘못생각나서 철야기도한것아주좋습니다. 그렇지않고는 우리는 기도하고 헌신하는 일을 배우지못합니다.
또 해야 헌신하고 실천들을 통해서 실제적인 신앙이 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문제는 풀어야되는것이 이런 잘못된 공로주의에 있으면 언제나 자신의 신자된 현실을 또는 점수를 확인할때 불안합니다.
늘 잘하지못하거든요. 10번잘못하면 한번갚고 이러니까 갚으면 본인이 속시원한지몰라도 그전에는 늘 불안함속에 사는거에요.
이것을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않는다는것을 확인해보십시다.
로마서7장으로갑니다 15절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ㅇ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로마서 7장에 등장하는 곤고한 사람과 어떻게 해결되는가 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해결입니다.
죄로부터의 해결에 대한 정확한 설명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사람이로다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형편을 선을 행하기 원하나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오는 사람인것으로 역사되고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아래있는사람을말합니다. 율법아래있다는것은 자신의 결과를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여 얻어야되는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아래있다는것을 법을 행위로서 인과율의 법칙으로 만족시켜야되는 조건속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 예전에 구원얻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이 원인과 법칙아래있는것입니다. 그때는 우리는 선한것과 의로운것을몰랐을뿐아니라 원해도 할 수없었습니다.
죄에 사로잡혀 죄가 우리를 부렸기 떄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구원을 위한 어떤 이유도 원인도 만들어낼 이유도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로마서에 등장한 곤고한 사람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지만 육체아래 사로잡혀온다고 표현하고있습니다.
잘못이해해서 신자가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원과 그렇게 하지못하는 현실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사람으로 이분화해선안됩니다.
우리가 신자가 된 이후에 어떻게 해야되는지를알고 말씀을 따라서 가지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것은 우리의 소원에 비해서 우리의 실력이 미흡한탓입니다.
전체적인겁니다. 소원하는것도 나 자신의 전부이지 우리가 둘로 나뉘어서 영에속한사람 육에 속한 사람 싸우는게 아닙니다.
알지만 이룰 실력이없는것입니다.
우리는 다 영에 속해있습니다. 우리가 영에 속해있다는 것은 로마서 8장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기때문입니다.
이 로마서 7장에 말하는 사람은 율법아래있는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이 원인을 가져야 결과를 얻는 *그런 법칙 아래에 있는 사람을 육에 속했다 그러고 구원을얻은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아래있고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께 속한자입니다.
로마서 7장은 8장에 서는데, 하나님의백성들의 자유 이제 확인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어디에있었느냐를 얘기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의 뜻을 소원하되 이룰수없을 뿐 아니라 죄에 사로잡혀가는처지에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절망의 자리에서 벗어날수있으랴 라는 대답을 8장 1절은 이렇게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우리가 이루어야만 가지는 그런 법칙아래로부터,
어디러왔다구요? 예수 안에 잇는 생명의 성령의 법 또는 은혜 아래와있기때문에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얘기를 8장1절은 시작은뭐로부터하느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로 시작을 하죠 이 문제는 저도 로마서 7 8 장의 연결 7장의 곤고한사람이 8장의 해방으로오는가에대해서는 여러책을 참고했지만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못했습니다.
제가 얻은 답은 이것입니다. 7 8장얘기는 우리가 어떤 능력과 해결책을 가지게 되었는가에서 하나님이 예수안에서 우리를 법적관계에서 은혜의관계로 바꾸셨다 라는걸말하는겁니다.
이 말뜻을 이해할필요가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56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용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사망이 나중에 없어질겁니다. 이유는 사망은 죄값이기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것에는 사망이 결과가 될 수 없습니다.
사망은 죄값입니다. 죄가 없는것에 사망이라는 결과가 나타날수없습니다. 죄는 무엇때문에 성립되느냐, 죄는 법이 있어야 성립된다.
법이 없는 것에는 죄라는것이 성립되지않고 죄가 성립되지않으면 사망이라는 결과가 생길수없습니다.
그곳이 천국입니다. 왜 이런것이없어지는가 다시 본문으로와서 이얘깁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하는얘기가뭐냐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거에요.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법적 관계가 아닌 관계이기때문에 법이 없으면 죄가 성립이 안되고 죄가성립안되면 사망이라는 결과를 선고할수없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로마서7장의 곤고한 사람이 8장의 해방을 맞게되는 이유입니다.
이 문제는 조금 더 우리의 성경의 자세한 설명이필요하니 로마서5장으로 갑니다.
로마서5장12절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말미암아 사망이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죄가 율법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있기전에 법이없으니까 죄가 성립이 안되죠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그러면, 죄를 져야 사망이 결과되는데 율법이 있기전에 사망이왜있었느냐 이얘깁니다. 말이안되지안느냐, 죄를 지어아 사망이결과되고 죄를지었다고 결정하려면 법이있어야 범죄라는게생기는것아닙니까 그런데 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즉 율법을 주기 전까지도
사망이 있었느냐,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의 한 상징을 맡습니다.
대표로서의 상징입니다. 인류의 대표 즉 죄를 짓지않았는데 모세 이전,의 사람들이 왜 죽었느냐 아담이 범죄에서 죽게되었는데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이기때문에 아담의 후손이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죄인의 후손이란 이유로 다 죄인이기때문입니다.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아담으로인하여 모든 후손이 죄인으로 태어나서 죽을수밖에없었던 것 같이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태어나게했듯이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가 새로운 인류의 대표가 되어 그 후손에게 배푸시는 의인으로 되는 구원을 얻는 이 인류도 같은법칙에 의거하여 충만하게 은혜가 연결되었다 이런겁니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이
한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이게 대표원리라는 겁니다.
아담이 인류의대표로서 죄임됨으로 후손을 다 죄인되게 한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인류의 대표되심으로 후손들을 다 의인이되게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겁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새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럼 율법은 왜 주었느냐, 우리가 죄인인 걸 이해시키려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죽느냐 죄인이냐 라는 것을 율법을 줌으로써 확인시켰다 라는 겁니다.
율법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가요? 예수께로 끌고가야합니다.
바로 이 대표원리르 말미암는 이 관계성 아담 안에서 죄인된 것 같이 예수 안에서 자녀 되는 이 일을 고린도전서 15장으로가보시면 설명하고있습니다.
15장20절부터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인제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때라
이 사망이 사람으로말미암고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이 사람 사람하는 이 표현은 아담의 대표자된것가 예수그리스도의 대표자 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같이, 또 그리스도안에서 대비되고있습니다.
45절로 가십시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를 아담이라고 표현하고있죠.
로마서 5장에서본대로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어떤의미에서 인류의 대표라는 면에서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요 마지막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된거냐 하면 비유하자면, 마태복음 1장에 나온 족보를 보시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해서 족보가나오죠. 누가복음에가면 하나님으로부터시작하여 예수까지족보가나오죠. 인류의 족보인것입니ㅏㄷ.
예수님이 마지막 족보의 상속자로 오셔서 죽어버린것입니다.
죽어버리셔서 이 족보가 가문이 문을 다는겁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아담으로 부터 시작한 족보를 마감하고 부활하셔서 인류는 상징적으로 없어진겁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아담 둘째 아담 이렇게나오죠.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는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사람 둘째사람 둘째사람은 인류를 대표했던 아담의 족보를 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백성들의 인류를 새로 시작하는 대표자로 예수님께서 세우십니다.
어떻게 됬냐면 아담안에서 우리가 개인이 죄를 짓지않아도 죄인으로 태어날수밖에 없었듯이, 동일한 이유로 원리로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남으로 예수에게 해당된 것이 우리에게도 해당된 자로 태어나는것입니다.
아까 우리봤던 로마서8장으로돌아가보십시다.
7장 24절~25절에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답을 얻었다 그래야 되잖아요.
그 답은 8장2절에 있는 것 같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게 답인데
고 사이 로마서7장25절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태껏 7장에있었던 갈등구조 넘어설수없었던 상황을 다시 얘기하고있잖아요.
감사는 해놓고 이게 무슨얘기냐면 구원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이 해결책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해서 얻게하는 결과가 아니고 우리 힘으로는 여전히 죄를 짓고 죄에게 지는 의욕이 따를지라도 결실할수없는 사망과 실패아래있는자임에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는 관계는
법적 관계에서 은혜와 사랑의 관계에서 옮겨져서 법적 지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뀌어서 우리의 죄는 더이상 죄가 아닌 존재가 되었다느 ㄴ겁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이걸 이해하는데 평생이걸립니다.
구원얻고나면 성령께서 간섭하사 죄를 늘 이기게 되는 승리의 생활을 줄것이다라고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구원얻고난다음에 놀라는것은 뭐냐면, 예전엔 양심을 따르는 선한 의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은혜도 알고 기도할줄알고 성령은혜를 아는대도 실패하는 자신을 보고 놀랍니다.
그때 성경이 하는 하는 얘기는 이제 너가 하는 잘못은 죄가 아니다 이겁니다.
그럼 뭐냐 부끄러운짓이다 이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잘 풀어야하는 구원에 대한 성경적 얘기가 뭐냐면 관계의 관한 얘깁니다.
우리가 왜 공로로 가며 쓸모로 가며 죄의 대한 승리를 요구하느냐면 관계를확인하려고 그래요. 관계확인하는것은 내가 구원얻은게 맞지 백성으로서 제대로 살고있는게 맞지 라는게 항상 궁금한겁니다.
성경이 하는 얘기는 그문제는 걱정하지말라는거에요.
이건 기본적으로 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틀리기때문입니다. 죄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분리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으로 우릴 만들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목표하기로 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주시는 것으로 채우고 완성되는 것을 거부한것입니다.
우린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뜻을 정하고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게 죄죠.
요한복음에 나오는 포도나무의 비유는 중요합니다. 줄기로부터 분리된 나무가지는 말라 버릴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의 분리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인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누리자, 하나님과 화목되었다 이런표현을합니다.
우린 하나님의 자녀고 은혜를입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얼하고 우리가 무얼하고 이전에 하나님이 하신 여러분 자녀를 길러보셔서 아시잖아요.
부모가 다 기릅니다. 애들이하는것은 미운짓밖에없습니다. 하라는건 꼭 반대로하죠. 왜그래요? 철딱서니가없어서, 부모가 해주는 교훈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자식을 미워하는부모는없습니다. 속상하고 안타까워하죠. 그건 사랑입니다. 제일 무서운건 부모가 간섭안하는겁니다.
부모는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는 야단을 쳐야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혼자 살게놔두셔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 위에 우리 모든 신자된 근거와 권리가있다는것을 놓치지않아야합니다.
그것이 로마서 8장에 어떻게소개되느냐하면 8장 8절부터 보죠.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실패한다고 육에 속한것이아니고 성공한다고 영에 속하는 이분법이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부르심받은사람은 누구나 영에속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수준과 승리에 미흡할수있습니다. 성화의 과정에서 당연히 일어나는겁니다.
존재가 다르다, 종자가 다르다 라고 이해하지 마십시오.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게 우리죠 말하자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에 해당하는 모든 성도들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뭐라고이어지느냐하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가나옵니다.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은 법 아래있는사람을말합니다.
종은 어떻죠 종은 법관계죠.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죽는겁니다.
종과 주인과 다르다. 이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 사이입니다.
어떤표현을쓰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않고 양자의 영을받았으므로
왜 양자를도입했느냐하면 로마시대에도 그렇고 미국도그렇습니다. 법적 적용과 질서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자기가 난 자식보다 법적인 자식 양자에게 더욱 법적인 혜택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난 자식에게는 유산을 안물려줄수있어도, 양자에게는 안물려주면 안되게 되있는것이 로마시대의법입니다.
양자라는말을쓰는이유는 혈연사회에서는 친자와 다릅니다. 감동이 안가지만 성경이 하는얘기는 우리가 분명하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관계가 확실하고 약화될수없는신분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양자라는 표현을 쓰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라는 말을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저는 딸을 키워보니까 세상에 재밌는게 이겁니다. 우리 딸은 저를 겁을안냅니다.
내가 어쩌다 야 하고 신경질부리면 놀라 쳐다보면서 신경질부리냐고 말합니다. 그럼 그말에 녹아서 아니라고합니다.
(35:20)너희는 무서워하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부끄러워해야하는 것 투성이입니다. 무서워하지는마십시오.
그래서 이 일은 전에도 인용한것으로 압니다만 요한1서 4장에 강조되어있습니다.
4장15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서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심판날에 담대함을 갖는다는 것의 뜻을아시겠죠
법적으로 심판 받지않습니다 관계로 받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인 이상 그냥 가족 전용문으로들어가는겁니다.
18절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사랑이 가슴에서 튀는것이라고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우리를 향해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은 자주 식습니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부르신 것이 구원이라는겁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우리를 법적관계로 다루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요.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 은혜의 관계 성령의법입니다.
우리는 인도하심을 받고 자라나고 승리하고 영광의 자리에 설 것입니다. 신자들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신앙 실력의 부족함으로 경험하는 잘못이나 실패나 부족함이나 부끄럼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흠을 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깊이 이해하신다면 신앙의 대한 점검은 보다 더 현실적인 승리를 가져올것입니다 왜냐면 형벌보다 사랑이 더 우리 마음을 크게 감동시키는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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