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완성 / 박영선
에베소서 1장 17절 이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교회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 이하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 후에 예수님께서 이 반석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던 그 교회 설립은 무엇에 근거하여 교회가 서는가 하는 것이고 에베소서 1장에 있는 교회의 설명은 교회가 무엇을 목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신약의 서신서들은 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 예수를 믿어 구원 얻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들입니다. 기모데서나 기도서 같이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있긴 합니다만 거의 대부분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지금 읽은 이 본문에 의하면 예수를 믿었기에 구원을 얻었기에 그들을 위하여 이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죠. 거기에 뭐가 등장하냐면 18절에 보는 바와 같이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알기를 원한답니다. 이것을 풀어서 얘기하자면 너희에게 시작되고 허락된 구원이 어디로 가며 어디까지 가며 무엇을 목적 또는 목표로 하고 있는가를 알기를 원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강의에 맨 서두에서 구원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대부분 기독교 신앙과 구원을 이해할 때 구원파적인 오해를 쉽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예수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그 경험과 변화는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대부분 구원을 확실하고 분명한 칭의의 부분에서 다 이룬 것으로 오해할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이후에 성화라는 것은 점진적이고 어느 날 무엇 때문에 어떻게 크는 지 모르듯이 마치 사람이 밥 먹고 크듯이 산삼 먹고 크는 게 아니라 그 밥에 그 나물 먹고 크듯이 그날이 그날같은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나날들을 거쳐서 조금씩 조금씩 커듯이 성화는 사실 그렇게 자라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구원파적인 구원관을 가집니다. 구원이 다 끝난 것 같이 왜냐하면 그 분명한 체험, 확인, 이런 것들로 인해서 성화의 과정을 구원 얻은 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쓸모있게 사는 것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성경의 분명한 깨우침이죠, 우리는 아직도 완성해야 할 구원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이 구원을 논하는 것은 굉장히 넓은 범위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자리까지가 구원입니다. 그래서 여기 너희가 지금 구원을 얻었는데 너희가 아직 가야할 데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고 19절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구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어떤 능력을 동원하고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20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를 죽이시고는 여기 없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꺼낸 얘기를 하는 중이 아니고 죄와 사망에서 꺼냄을 받은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과 능력으로 예수를 주셨는가 하고 얘기할 때 대부분의 성도들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이해합니다만 본문에서 보다시피 여기는 그 내용이 없고 살리신 부분이란 말이죠.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마태복음 28장 18절이 연상이 되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하는 이야기. 이 부분이 교회라는 이 대목이 말하자면 메시아 사역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 구원 사역은 십자가와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합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이라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까지의 구원의 완성에 이를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 지난 시간에 확인한 바와 같이 우리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는 바와 같은 성도들은 구원함을 얻은 이후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내가 산다하는 말의 실제적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산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산다, 예수께서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의 머리가 되셨다는 이 교회론에 관한 이해가 한국 교회는 아주 부족하고 그런 차원에서 대부분의 한국 교회 성도들이 신자된 이후의 신앙 현실에 대한 완성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성경적으로 턱없이 부족해서 많은 오해를 시행 착오를 만들어냅니다. 그 문제들을 앞으로는 중점적으로 다루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가봅시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13절)
구원을 얻은 자가 성령 세례를 받는다는 의미는 나중에 한번 더 남은 시간들 속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보기보다 여러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 성령께서 임하는 구원 받은 자의 자리에 온 것도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되신 거죠.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게 되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통 성령 세례라고 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세례를 주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한 것. 이것을 또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영어 표현이 필요한데요, '?? ??(10:18) by holy spirit into the body of christ.'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고린도서 12장 13절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가는 세례를 받았다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성령 세례입니다.
보통 우리가 성령 세례라고 얘기를 하면 '?? ??(10:50) by jesus christ into the holy spirit.'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을 받은 모든 이들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세례를 받았다. 그것도 성령 세례라고 얘기합니다. 보통 우리가 시중에서 쓰는 성령 세례는 체험적이고 감격적이고 하는 신앙상의 개인 신앙상의 문제들을 논할 때 보통 인용하고 있죠. 조금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그쪽으로 가지를 칠 수 없으니 계속 하겠습니다. 성경이 하는 얘기는 구원을 얻으면 예외없이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된다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까 본문으로 택한 에베소서 1장에서 그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와 일치하는 것이죠. 이것은 앞에서 우리가 살펴온 구원에 관한 칭의와 성화에 관한 여러 설명들 속에 이미 설명되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6장으로 가보시죠. 로마서 6장 5절.
(로마서 6장 5절~8절)
이 얘기의 의미들을 이제 아실 겁니다. 예수는 죽으심에도 우리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죄와 사망에 대해서 우리를 죽이시기 위하여 당신이 죽으시고, 예수의 죽으심 속에서 그와 연합되어 우리가 죽었고 그의 부활에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부활하심에 우리가 연합되어 예수의 부활에 우리가 함께 동참할 부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연합은 죽으심에도 연합되어있다시피 부활에도 연합되어있다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앞의 연합이 십자가라면 뒤의 연합은 교회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9절)
예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논하면서 살으심으로 인한 구원을 얘기하고 있죠. 죽으심으로 인한 구원은 십자가입니다. 살으심으로 인한 구원은 교회입니다. 아직도 예수께서는 그의 성도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메시아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구요. 모든 성도들이 십자가의 연합, 십자가 사역으로 인한 구원을 얻었듯이 교회로 인한 구원을 얻고 있고 얻을 것입니다. 이쪽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진행형과 미래형으로 얘기하는 것은 그 완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이 두 부분이 다 구원 전체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으로부터 성화되고 완성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에 근거하며 그 일을 실패치 않도록 하나님이 이 구원에 예수를 우리와 묶어서 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으며 십자가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믿듯이 동일하게 교회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묶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사역 속에 아직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참 감사한 일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가보시죠.
(에베소서 2장 4절~6절)
함께라는 게 왜 붙어다니나 잘 보세요.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이게 완료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거기에 우리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뜻으로는 이미 완료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우리가 연합되어 있어서 이 작정이 이 약속이 취소되거나 변계될 수 없다는 것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성도들이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어떤 의미고 그것으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 우리가 다 압니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하여 우리를 그 몸으로 불러 연합한 자 되어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가 성경은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23절이 그 얘기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묶으셨습니다. 이 설명은 에베소 뿐만 아니라 에베소 골로세, 교회를 중점으로 다루는 서신서에 아주 넘쳐나는 표현들입니다. 에베소 3장 14절.
(에베소서 3장 14절~19절)
이 기도는 지금 아까 에베소서 1장에서 본 바와 똑같은 기초 속에 있어요. 너희가 구원을 얻었기에 내가 이 기도를 한다. 에베소 1장에서 한 기도는 너희가 얻은 구원이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가를 보라.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를 알아라. 였다면 에베소서 13장 1절 이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는 것을 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알리고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 구절을 보죠.
(에베소서 3장 20절~21절)
교회 안이라는 말이나 예수 안이라는 말이 같은 의미라는 거죠. 사실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 얼마든지 십자가의 은혜를 간증하고 감격해 하는 사람들이 우리 얼마든지 만나고 당연히 여기고 그런 감격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전히 연합하여 그의 인도하심 속에서 충만해지고 복되게 실패 없는 그 구원의 여정을 보호받고 인도함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감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신자된 현실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고 성경적 시각으로 보면 아멘, 할 수 있는 감격이 얼마든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하고 강의를 계속해 봅시다. 에베소 4장 13절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16절)
또 충만이죠, 이 말 자주 나와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어떻게 자라느냐. 어떻게 이 완성이 충만이 이루어지느냐. 머리가 몸에 요구한다는 거죠. 모든 사람은 다 그 머리만큼 크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는 것만큼 크는 겁니다. 머리가 생각하고 머리가 목표하지 다른 지체들은 그 기능을 가지지 못합니다. 다른 지체들은 다 언제든지 게으를 소원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머리가 일어나라, 이빨 닦아라, 공부해라 하는 것입니다. 머리는 누구라구요? 그리스도라구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를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골로세서 1장으로 갑시다.
(골로세서 1장 9절~12절)
이건 어찌 읽으면 신자된 당연한 도리, 신자된 종교적 어떤 책임들, 이런 것으로 읽혀질 수 있습니다. 보다 교회론적인 이해를 갖고 읽으면 이 내용은 훨씬 달라집니다. 이어서 13절 봅니다.
(골로세서 1장 13절~23절)
이 긴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조금 전 설명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구원을 얻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자하는 윤리성과 도덕성의 개념에서 종교성을 발휘하는 신자의 책임을 가지는 그런 요구 정도가 아니고, 너희가 너희 마음대로 살던 죄와 사망의 자리로부터 구원함을 받아 예수 안에 있다 이거죠, 예수 안에 있는데 앞에 우리가 읽었던 9절 이하에 읽었던 내용이나 13절 이하의 내용이나 동일한 종교를 가진 자는 신앙을 가진 자는 윤리 도덕 이상의 종교성을 가져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영역적인 이해보다 훨씬 앞서는, 성경에서의 표현은 나라라는 것은 통치입니다. 예수의 통치 아래, 예수님이 왕 노릇하시는 나라에 우리가 보냄을 받습니다. 그의 명령, 통치에 순종하는 자 되는 것이 여기 나열된 모든 신자의 당연한 종교적 덕목들의 근거요 이유인 것입니다. 종교적 덕목들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것을 요구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골로세서 1장 17절,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이 얘기를 같이 묶고 있고 19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죄와 사망, 흑암의 권세로부터 그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구원하여 예수의 통치를 받게 하고 예수 안에 우리 성도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거하사 그 아버지의 충만하신 것이 우리의 머리시요, 우리의 통치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얻은 백성들을 충만케 하는 것. 이것이 구원의 완성이며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그가 교회의 머리고, 그 안에는 아버지의 모든 충만하심이 거기 있다. 그리하여 22절,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함이라. 그래서 우리는 교회론에서 중요한 기본적인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 그리스도의 통치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만. 이런 것들을 기본으로 가지고 좀더 내용과 현실적인 신앙의 현실적인 이해를 돕는 시각으로 오면 이 교회론 안에 무엇이 있느냐면 충만이라는 말과 흠없음이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등장합니다. 충만과 흠없음. 에베소서 5장 22절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27절)
여기 등장하죠 다시. 나중에 이 대목은 따로, 성령 충만을 강의할 때 하겠습니다만 부부에 대한 설명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인 것인데 어떤 것이냐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여기는 일차적으로 십자가로 인한 구원, 죄 씻음 같은 것들과 함께 말씀으로 말미암는 그 성화의 완성이 이어 나오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울 것입니다. 대단하죠?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에베소서 2장 3절식으로 얘기하자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뭐가 충만이죠?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이 될 것입니다. 자기 앞에 그리스도 앞에 그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설 것입니다. 해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 없이 거룩하고 흠없게 될 것입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흠없게 되고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채워지는 영광된 자리로 갈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교회가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메시아 사역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에베소서 1장 3절에도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5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다만 십자가만이 아니요 교회까지 포함한. 아주 신적 범위와 경지와 내용의 그런 설명들입니다. 뭐라 그랬다구요?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6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완성, 흠없는 거룩, 신적 충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함께하고 계십니다. 골로세서 2장입니다. 뜻밖에 서신서는 교회론인데 우리가 대부분 놓치고 있지요, 오늘 여러분께 설명하는 이 내용이 성경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고 있는가, 찾아보면 참 놀랍습니다. 골로세서 2장 6절입니다.
(골로세서 2장 6절~7절)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주를 위하여 살자. 맞습니다. 주를 위하여가 아니라 주를 의지하여 살자. 그래야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이제 내일은 다 끝났고, 보답하는 일만 남은 것 같이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아직도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 남아있고 그것이 우선하는 복입니다.
(골로세서 2장 8절~19절)
예수 믿는 자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일종의 분별과 가르침이 여기 나옵니다. 16절에 있는 바와 같이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이런 걸로 싸우지 말라 이겁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던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는 걸 무너뜨려도 좋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규칙, 법 같은 것을 신앙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지 말아라는 겁니다. 법이란 다 일종의 가이드 라인입니다. 그것 자체가 내용이거나 그것 자체가 본질은 아닙니다. 일종의 이정표이며, 안내판 같고 이런 것들이지 그것들이 내용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만이 내용입니다. 동일하게 18절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쫓아 헛되이 과장한다 그럽니다. 체험하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 그보다 더 확실한 감격과 확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체험이, 자신의 확신이, 그것이 근거가 되지 말아라는 겁니다. 언제나 모든 근거는 예수께로 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쫓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전 제가 잘 아는 교회에서 구원파에 열심인 분이 있으셨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누구든지 붙잡고 구원의 감격과 열심을 불을 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감격이 있어요. 체험이 있고. 못 고칠 병에서 치유함을 받은 아주 놀라운 간증도 있죠. 저희 어머님이 그렇게 부러워 하시는 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시다시피 이 잘난 아들을 목사로 둔 어머니요, 또 아버지도 훌륭한 목사님이셨던 그런 훌륭한 사이에 낀 권사님이십니다. 가정 예배를 보다가 제가 어느 구절을 설교했더니 저희 어머님이 거부권을 행사하셨어요. '야, 그렇지 않다더라.' 아니 어머니, 이런 말씀입니다. '그 양반이 그렇지 않다더라.' 그 분이 맞는 게 아니고 성경의 본뜻은 이겁니다. '야 그러지 말아라, 그 사람 얼마나 열심인지 아니. 불을 토한다 야.' 불 토하는 게 신앙은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항복을 안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보통 신앙에서 갖고 있는 기준점들은 뜻밖에도 성경이 아닌 적이 많습니다. 성경의 어느 한 부분, 그 자체는 진리입니다만 그것을 근거로 하여 신앙 전체를 여러분이 새로 재단하시면 내용 속에서 제거되는 것이 있고 내용 아닌 것이 포함됩니다. 머리를 붙들지를 아니하는 자,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니라. 사실 교회 생활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는 사실과 동일한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공동체로 조직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얼마나 중요한 신앙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손길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초월, 감격, 능력, 이런 것들이 균형과 조화와 질서를 놓치지 않도록. 체험한 내용, 얻은 바 감격의 기적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의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확인하여 하나를 체험하여 체험하지 못한 다른 모든 것들을 믿음과 약속으로 소유하는 그런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당한 신자요 교인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붙드는 것이요, 여러분의 확신을 헛되이 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당한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분별과 올바른 자라남이 교회 안에서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 가운데 늘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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