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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길, 교회공동체의 길 - 본회퍼에 있어서 영성의 문제 -

by 【고동엽】 2021. 10. 27.
제자의 길, 교회공동체의 길
- 본회퍼에 있어서 영성의 문제 -
손규태


서론적 고찰


개신교에서 영성이 주제가 된 것은 종교개혁 당시의 루터와 대결했던 열광주의자들(Schwamer, Schwarmgeister)과 불링거(Bullinger)가 언급한 성령주의자들(Spirituoser)에게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성직자 중심의 제도적 교회와 화석화된 교리중심의 신학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보다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생활신앙을 추구했다. 루터 당시 이른바 반율법주의자들로 알려진 열광주의자들은 율법의 규제보다는 복음의 자유를 주창했고, 가톨릭의 공로사상에서 벗어난 종교개혁 운동마저도 다시 율법주의의 종교가 되어가는 것을 비판했었다.


종교개혁 이후 17-18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경건주의 시절에는 영성문제는 특히 정통주의의 교리적 고착화에 반대하는 개인적 신비주의자들, 종교적 주관주의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내적 말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의해서 추구되었다. 이로 인해서 종교개혁의 주류와 비주류로 알려진 종교개혁의 좌파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된다. 19세기 중엽에 들어와서 영성의 문제는 영국에서는 퀘이커 운동 등에서 등장하는데 대체로 교회의 제도적, 교리적 체제에 반대하는 신비주의적 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대륙에서 영성의 문제는 “평화교회”로 알려진 종교개혁 좌파들, 모라비안, 메노나이트, 휴그노파, 왈도파 등에 의해서 그들의 사회개혁운동과 평화운동을 통해서 그 활력을 얻었다.


요약하면 영성 혹은 영성운동은 주로 말씀과 성례전으로 구원을 매개하고 성서를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유일한 원천과 규범으로 보는 종교개혁 전통의 제도화된 교회에 대항하여 영을 내적 빛과 말씀으로서 신비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종교적 삶과 사상, 공동체의 일차적 구성요소로 보는데서 시작된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 사귐을 중시하고, 그리스도를 종교적 윤리적 모범으로 보며, 성서를 유형론적이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며, 중생을 종교적 삶의 중심으로 삼는다. 이런 운동들은 주로 중세기의 독일적 신비주의, 신플라톤주의 종교사상, 인문주의, 어거스틴의 사상, 르네상스의 자연철학 등에 영향을 받아서 발전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영성 혹은 영성운동은 기독교운동이 교리체제나 교회제도 안에 화석화되고 고착화되는 것에 대한 반대운동으로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려는 운동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영성운동은 여러 사상의 흐름들의 영향을 받아서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어떤 단일한 운동이라고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중세 가톨릭교회처럼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제도교회에 대항하는 영성운동으로서는 수도원 공동체 운동을 들 수 있고, 개신교 정통주의처럼 교리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중심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신비주의적 경건주의의 영성운동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영성운동도 크게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 사상 특히 신플라톤의 신비종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동방교회식의 명상에 집중하므로 신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피안적 초월적 방향이 존재한다. 둘째, 영성운동의 강조점을 순명과 기도와 노동에 두는 서방교회적 영성운동으로서 세상을 긍정하고 거기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차안적 내재적 방향이 존재한다. 후자는 구약의 사사들이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세상의 악과 투쟁하는 데서 보듯이 영성운동은 곧 세계개벽이나 사회혁명 내지는 변혁운동과 결합된다. 따라서 영성운동의 초월성이 전자에서는 공간적으로 후자에서는 시간적으로 이해되는데 전자는 피안으로의 도피에서 후자는 차안에서의 혁명으로 나타난다.




본회퍼의 영성이해의 출발점


우선 본회퍼에게서 영성문제의 출발점은 제도적이고 교리적 교회가 영성의 문제를 배척해야 하느냐 아니면 이러한 영성운동이 제도권 교회나 교리체제를 적대적으로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교회는 제반 제도와 교리체제들이 필요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삶의 역동성을 위해서는 영성문제와 영성운동을 무조건 배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본회퍼 당시 독일교회나 신학의 상황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교회는 관료화된 성직자 중심의 제도적 중산층 교회로서 자기보존과 자기유지에 만족하고 있었다. 당시 자본주의의 모순들 가운데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운동에 자극을 받은 독일 남부와 스위스 등지에서 등장하던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었다. 둘째, 대학들의 신학에서는 대체로 자유주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여기에 반대하는 신앙고백적 신학도 과거의 전통적 교리항목을 유지하고 해석하는 정도로서 화석화된 중산층교회를 지원하는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셋째, 1933년 히틀러의 집권으로 신앙 고백적 교회의 신학자들은 창조신학과 질서신학을 내세워 히틀러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교회는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이 장악함으로써 성서적 전통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러한 신학적, 교회적 상황에서 본회퍼가 직면한 교회갱신의 목표는 자유주의신학, 화석화된 중산층 교회의 극복과 함께 성서적 진리에서 이탈하여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에 굴복한 교회의 해방이었다. 당시의 제도적 교회를 갱신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본회퍼는 새로운 교회 즉 “고백교회”를 통해서 이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이 고백교회의 형성과 함께 새로운 기독교상을 구상하게 된다. 여기에서 영성과 영성의 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3-35년 본회퍼는 런던에서 목회하면서 나치하에 장악된 독일의 해방과 함께 자유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 신학과 황폐화된 교회를 재건하는 구상에 들어간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교의 핵심문제들 산상설교에 나타난 복음의 내용과 함께 그 복음의 전달자로서 제자들의 직무, 특히 제자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스위스의 친구인 슈쯔(Erwin Schutz)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전력을 다해서 교회의 저항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나에게 분명해진 것은 이 저항운동이 하나의 전혀 다른 저항운동으로 가는 잠정적 과정이라는 것이며… 아마도 후에 시작 될 본격적 싸움은 하나의 신앙을 건 수난의 투쟁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놀랄지 몰라도 나는 산상설교가 이 모든 문제를 결판내는 관건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1)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즉 그의 제자직의 바른 이해와 실천을 통해서만 당시의 신학적 교회적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회퍼는 확신한다.


그는 1935년 독일의 고백교회가 시작하는 목사수련소 소장으로 부임하기 전 런던에서 영국교회의 제자직을 위한 목회자의 교육훈련과 신도들의 교회생활에 관한 것을 상세하게 파악하고자 했다. 여기서 본회퍼가 특히 관심한 것은 목회자들의 영성훈련과 함께 뭔가 생동적 교회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서 알게 된 영국의 성공회 벨 주교의 안내로 여러 수도원들과 교회들을 방문했다.2) 여기서 얻은 경험 가운데 본회퍼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도원생활에서 추구하는 영성훈련 즉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독일의 제도적 부르주아적 교회에서 일하려는 신학생들은 대체로 모든 면에서 안정된 교회정부의 일원으로서 개 교회를 맡아 관리하는 관료적 멘탈리티로 신학의 길에 들어선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목회자라기보다는 제도화된 교회의 관료로서 직무를 수행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요즘 자본주의화 된 교회에서 목회가 일종의 “경영”이 되고 목회자가 경영자(CEO)처럼 행동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특권화된 제도교회가 아니라 고난 받던 고백교회의가 운영하는 핑겐발데 신학교에 들어 온 신학생들도 ”완전히 공허하고 탈진된 상태“라는 것을 발견한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강력한 영적 무장을 시키지 않고는 어려운 시대에 성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3)


본회퍼는 이 핑겐발데 신학교에 딸린 “형제의 집”이라는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공동생활을 통해서 그들에게 영성훈련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집에서 “목표하는 것은 수도원적 은둔처가 아니고 밖을 향한 봉사를 위한 가장 내면적 집중”에 있다고 생각했다.4)


여기서 본회퍼는 중세적 수도원이나 영국에서 본 성공회 수도원들의 대부분은 세상과는 단절된 은둔처가 되고 있고 또 그들의 영성훈련의 목표가 “내면적 집중”에 두고 있는 것의 잘못된 길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영성훈련의 목표를 “밖을 향한 봉사를 위한 내면적 집중”으로 잡고 있다. 이는 당시 교회투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호히 선포하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나 용기 있는 선포의 직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집에서 목사훈련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제도권 교회에서 목사신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특권들과 사회적 특권들을 포기하고 힘든 상황에서 교회를 봉사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회퍼의 영성(훈련)의 내용


우리는 여기서 본회퍼가 고백교회의 목사훈련소를 통해서 실시하려던 영성훈련의 중심 내용들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


첫째, 본회퍼가 이 영성훈련에서 일차적으로 역점을 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공동체 생활의 문제였다. 1935년 구푸러시아 연합교회의 상임위원에 보낸 서한에서 핑켄발데 목사수련소의 근본취지가 잘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 보면 “개신교 형제단을 구성하여 우리는 몇 년 동안 목사들로서 기독교적 공동생활을 영위하려고 한다”고 쓰고 있다.5) 이 공동체는 신학공부를 같이 하고 가끔 예배를 보는 신학생들의 사귐이 아니라 확고하게 질서 잡힌 규정에 따른 삶의 공동체를 말한다. 이것은 어떤 종파적 사고를 가진 열광주의자들의 집단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을 향해 구체적으로 같이 살고 행동하는 교회집단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공동생활의 구체적 프로그램으로서 기도와 명상, 성서연구와 형제적 사귐을 통해서 엄격하게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생활을 해 나가는 점에서 수도원적 성격을 띤다.6)


본회퍼는 공동생활의 구체적 프로그램인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모든 세상의 물질적 유혹과 제반 정치적 이념적 이데올로기 앞에서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해서 결단하는 영적 훈련을 시킨다. 여기서는 당시 성직자가 되는 것에서 누리던 제반 경제적 사회적 특권의 포기가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러한 형식을 중세적 수도원보다는 초대교회의 비밀집회(disciplina arcani)의 모델에서 찾는다.7)
본회퍼 당시 고백교회가 세운 핑켄발데 신학교와 “형제의 집”은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어서 어떤 면에서는 불법적 교육기관이었다. 따라서 중세기의 수도원처럼 공적으로 승인된 단체가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 박해받던 상황에서 교회가 수행하던 비밀집회 혹은 비밀훈련이 더 적합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이러한 모델의 영적 훈련을 통해서만 히틀러의 정치적 억압과 히틀러 편에 서있는 다수의 기득권을 가진 “독일적 기독교인들”의 반교회적 행태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목사후보생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동체 생활을 통한 형제적 사귐은 비밀결사체와 같은 결속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둘째, 그 다음으로는 영성훈련에서 역점을 둔 것은 그리스도 제자직(Nachfolge)의 문제였다. 본회퍼는 핑켄발데의 목사훈련소의 소장으로 있으면서 후보생들에게 교회사나 조직신학 성서신학 등 흔히 제도적 교회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적 신학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즉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그는 목회적 실천적 신학에 역점을 두었다. 성서연구 특히 공관복음서 주석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직”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것도 그와 같은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성서에 나타난 이 제자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일차적으로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제자직 즉 그리스도의 부름에 개인들이 조건 없이 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제자직은 “온전한 복종”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이 온전한 복종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유혹과 속박들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세계의 지배적 사상들과 이데올로기들 제반 정치적 경제적 체제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온전한 복종을 할 수 있다.


본회퍼에 의하면 개인들이 이러한 제자직으로 부름 받지만 이런 그들의 제자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공동체를 통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제자공동체는 중세의 수도원적 공동체형성이 아니라, 현존하는 교회의 갱신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제자직의 수행은 교회공동체와 연결되어 그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이렇게 말한다. “은혜로운 부름 덕택에 제자라는 복종의 길에 들어선 베드로는 고백하는 베드로였다. 고백교회는 제자직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8) 베드로의 소명 즉 교회의 소명은 이 경우 목사후보생 수련소에서의 본회퍼의 신약성서 강해의 출발점이 된다.


그가 가르치면서 저술한 『그리스도의 제자직』(『나를 따르라』로 번역 출간)이라는 책은 바르멘 선언의 제3논제 특히 그 마지막 부분을 발전시켜서 전개했다. 거기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교회가 자기의 메시지와 질서의 모습을 그때그때의 자의적이며 변화무쌍한 세계관적이고 정치적 신념에 내어맡겨도 된다는 왜곡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이러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에서 제자직으로 부름 받은 자들은 자기추구와 자기주장 특히 “특권의 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불의에 대항해서 “의로운 것의 실천”, 그리고 고난 받고 억눌리는 자를 위한 "타자를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했다.9) 이것이 바로 제자의 길이고 나아가서 교회공동체의 길이라는 것이다.




본회퍼의 영성훈련의 목표들


본회퍼가 1935년부터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저술한 책들 『신도의 공동생활』과 『그리스도의 제자직』에 나타난 영성의 내용과 영성훈련에 관한 것을 앞서 “본회퍼의 영성이해의 출발점”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제는 본회퍼의 영성과 영성훈련의 목표와 관해서 그 후에 출간된 책들 『윤리학』(대한기독교서회)과 특히 『저항과 복종』(『옥중서간』으로 번역됨)에 나타난 신학적 발전을 통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자.


앞에서 살펴 본대로 본회퍼는 영성훈련의 “목표는 수도원적 은둔처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고 밖을 향한 봉사를 위한 가장 내면적 집중”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밖”은 무엇이고 그것을 향한 “봉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말하는 밖(외부)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현장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의 아들을 보낸 세계”(요 3:16) 말하자면 그리스도라는 현실 혹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현실과 세계의 현실이 하나가 된 세계를 말한다. 세계의 현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현실과 화해된 세계현실이다. 따라서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이탈된 멸망당할 세계가 아니라 그의 구원의 대상이 된 세계이다.10)


그런데 본회퍼가 말하는 이 세계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숙한 세계”(die mundige Welt)를 말한다. 성숙한 세계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작업가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모든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배웠고, 모든 것은 하나님 없이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성숙한 인간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라는 “후견인”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점차 하나님을 멀리함으로써 반기독교적으로 되어간다.11) 이렇게 성숙한 세계에서 본회퍼가 관심한 것은 “성숙성”, “차안성”, “무종교성” 등의 개념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장 진지하게 관심한 것은 이러한 성숙한 세계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이고 예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이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다.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음은 그리스도교는 무엇이며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 누구인가?”12) 즉 그리스도는 어떻게 무종교적 인간들에게도 주님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숙한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 즉 그리스도의 제자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영성 즉 영적 능력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사는 것.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정의한다. 그는 초대교회가 그리스도를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한 것 즉 그는 신이시며 동시에 인간이라고 정의한 것이나 중세기에 그를 왕으로 규정한 것을 부정하고 그는 타자를 위해 산분으로 이해한다. 예수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하나의 초월적 경험 즉 영적 경험이며 이 경험에서만 인간존재의 전환이 가능하다.13) 말하자면 예수를 하나님이며 인간이라고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사고의 유희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이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이해하는 것은 행동적 차원을 내포한다. 본회퍼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타자를 위한 존재며,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도 타자를 위한 존재이며, 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도 타자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회퍼에 의하면 오늘날 성숙한 세계에서 그리스도는 타자를 위한 존재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도 타자를 위한 삶에서 또 그리스도의 교회도 타자를 위해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곧 새로운 영성의 능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과거에 가졌던 일체의 특권들을 포기하고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은 영적 사건이며 영적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본회퍼는 예수를 따름에 있어서 약하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적은 고백교회를 위해서 제도화되고 특권을 누리는 독일적 교회에 대항해서 투쟁하고, 거기에서 수난을 당했다. 그는 교회의 위탁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이해했다.


둘째, 기도하며 정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것. 그 다음으로 성숙한 세상에서 영성적 훈련의 목표는 세상에서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본회퍼는 감옥에 있는 동안 독일교회의 현실을 고찰하면서 이 교회가 해야 할 과제를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한다.


우리의 교회는 지난 몇 년 동안 단지 자기보존을 위해서 투쟁해 왔는데 그것은 일종의 자기목적적인 것이며 인간과 세계를 위한 구원의 말씀의 담당자가 되는데 실패했다. 우리가 이제까지 전한 말씀들은 능력을 상실했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기도하며 세상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모든 사상, 말, 조직들은 이러한 기도와 정의실천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14)


여기서 본회퍼는 이제까지의 교회가 자기완결적 집단으로서 자기보존하는 일만 해 왔기 때문에 선포의 말씀들이 능력을 상실하고 세상에서 외면당했음을 반성한다. 본회퍼는 이러한 교회가 다시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영성생활)과 함께 세상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기도와 노동”의 도식을 오늘날의 새로운 기독교의 도식 “기도와 정의실천”이라는 도식으로 대치시킨다.


이제까지 본회퍼에게서 영성문제의 출발점과 내용들 그리고 목표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급격한 사회변동 가운데서 등장하는 노동문제와 사회주의 문제 등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막고 안일한 자기유지에 몰두하던 부르주아적 중산층 교회의 개혁을 꿈꾸던 본회퍼, 히틀러의 폭력정치에 굴복해서 모든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누리던 제도권의 “독일적 기독교”에 대항해서 소수의 “고백교회”를 통해서 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투쟁하던 본회퍼,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인간이 되고 고통을 당하고 부활한 “타자를 위한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복종”, “충성스런 제자직”을 통하여 새로운 그리스도인상과 교회상을 제시한다. 오늘날과 같이 성숙한 세계, 세속화된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영적 능력, 영성은 뭔가 하늘에서 초월적인 것을 구하는 피안적 믿음에서가 아니라 땅에 대한 성실성을 통해서 타자를 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교회가 되는 일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기도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1)Dietrich Bonhoeffer Werke(DBW).
4 Nachfolge(그리스도의 제자직), S. 11.
2) Ebehard Bethge, Dietrich Bonhoeffer - Eine Biographie, Chr. Kaiser, S. 474; 본회퍼는 Mirfield에 있는 Community of Resurrection, Kelham에 있는 Society of Sacred Mission, Cowley에 있는 Society of John's the Evangelist 등 수도원과 캔터베리에 있는 성 어거스틴 칼리지와 옥스퍼드의 위클리프 홀 등 저교회의 중심지들을 방문해서 신학교육과 공동체 생활에 관한 것을 알아보았다.
3) Dietrich Bonhoeffer Werke(앞으로는 DBW로 표시함), 13 London. S. 11; 그는 이러한 사정을 바르트에게 편지로 알리고 그의 조언을 구한다.
4) DBW 14. Illegale Theologenausbildung Finkenwalde 1935-1837. S. 76-77.
5) 상게서 참조.
6) 여기에 대해서는 DBW 5 Gemeinsames Leben(신도의 공동생활)을 참조할 것.
7) 비밀집회 혹은 비밀훈련은 초대교회의 오리겐 이후에 생긴 교회관습으로서 일반예배들은 이방인들에게도 공개되어 그들도 참여할 수 있었으나 성례전 특히 주기도문, 신앙고백, 성례전 등은 비밀리에 거행했다. 왜냐하면 국가의 박해와 이방인들의 조롱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DBW 14, S. 549-551.
8) 아마도 베를린의 Gehard Jocobi를 둘러싼 집단을 겨냥한 이 편지에 보면(1934년 4월 NL A 41, 10) “고백하는 베드로는 따르는 베드로였으며 동시에 수난을 받도록 부름 받은 베드로다.” 예레미야 20장 7절에 관한 설교(1934년 구전집 V. 505-509) 참조.
9) 이러한 표제어들과 개념들은 1944년 4월 30일자 그의 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D. Bonhoeffer, Widerstand und Ergebung 1951, s. 176. 한국어 변역으로는 고범서에 의해서 “옥중서신”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독일어판의 직역인 “저항과 복종”이란 제목이 그 내용을 더 적절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10) DBW, 6. Ethik, S. 43-45, 39-41.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땅에 대한 성실성”을 말한다.
11) DBW 8. Widerstand und Ergebung, S.476-478.
12) 상게서 652면 이하 참조.
13) 상게서 558면 참조.
14) DBW 8, S. 435.


출처 : http://sgti.keh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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