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로마 카톨릭 교회인가?(성영은 교수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2009년 새해 첫날 중앙일보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정진석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가 전면으로 실렸다.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 표적에 대한 해석과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및 진화론의 고전인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를 맞는 소감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2월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으로 가톨릭이 다시 한번 사회의 주목을 받는 일이 있었다. 고신대학교 손봉호 석좌 교수의 칼럼 제목인 ‘김수환 추기경 현상’(국민일보 2월 20일)으로 일컬어질 만큼 그는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 불교 등 종교계, 나아가 전 국민적 관심과 추모의 대상이 된 듯했다. 정진석 추기경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라면 개신교에서 당연히 반론이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김수환 추기경을 ‘참된 신앙인의 표상’이니 ‘겸손히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라 평하여도 개신교는 침묵했고 오히려 동조하는 인상까지 주었다. 손봉호 교수의 칼럼조차도 김 추기경의 삶의 행적을 칭찬하고 그런 지도자가 없는 개신교의 각성을 촉구하는 정도에서 멈추고 있었다. 가톨릭교회 지도자의 언행이나 행적과 이에 대한 개신교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칼빈 탄생 500주년 벽두에 일어난 이 일련의 일들은 사람들이 왜 다시 로마 가톨릭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과 더불어 우리가 왜 다시 로마 가톨릭의 신앙을 심각히 생각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잘 보여 준다. 정진석 추기경은 그 인터뷰 기사에서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표적에 관해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1)그는 그 표적을 이제껏 우리가 알아 왔던 대로 예수님의 구원의 표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로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저마다 몰래 숨겨 왔던 도시락을 꺼내 낯선 사람들과 서로 나눔으로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이야기로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해괴한 해석을 ‘즐거운 상상’이라는 말로 거들고 나선 신부도 있다.2)오병이어의 표적에 관한 해석으로 볼 때 정 추기경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낸 표적을 부인함으로써 결국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이런 기적을 부인하는 그가 매 미사 때마다 소위 성찬의 떡이 예수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기적(화체설)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의문이다. 이와 같이 가톨릭은 중세 이래로 오늘날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이 ‘불신’과 ‘미신’ 사이를 오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모욕하는 지도자를 둔 교회를 과연 하나님의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정 추기경의 일을 계기로 이미 성경에 대해 이런 종류의 거짓된 해석을 일삼았던 자유주의에 대해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던 주님의 교회들의 판단을 다시금 명심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하늘만큼 높아져 주께서 하신 일조차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그를 보면서 먼저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셔서 그와 같은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구하게 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詭詐)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시 120:2). 동시에 주의 말씀을 사사로이 풀어 속이는 일에 대해서는 주님의 엄중하신 경고를 전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엡 5:6-7). 정진석 추기경은 같은 인터뷰 기사에서 또 과학의 진화론과 빅뱅 이론(우주는 지금부터 150억여 년 전쯤에 대폭발로 생겨났다는 과학 이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3) 언뜻 보면 과학계가 환영할 만한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빅뱅 이론은 1951년 교황 비오 12세가 빅뱅 모델을 창세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자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강력하게 지지했다.4) 진화론에 대해서도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지 선언을 했다. 이후 가톨릭교회는 사제 계서제(司祭階序制, hierarchy)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교황이 지지한 이 이론들을 당당히 진리로 이야기함으로써 과학계의 환영을 받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그랬다.5) 정진석 추기경은 이 인터뷰 기사에서 그러한 가톨릭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타락한 세상이 과학 이론을 통해 결국 무엇을 주장하려 하는지를 잘 살펴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락한 세상은 과학 이론을 통해 150억 년 정도 되는 긴 시간만 있으면 창조주가 없어도 우주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그렇게 보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는 것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은 이 세상은 그런 식으로 수십억 년은 더 유지될 것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이나 종말은 없다고 주장하려 한다. 21세기에 들어와 과학은 여기저기서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6)그러나 주의 말씀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 3:3-5). 이런 점에서 신앙인에게 현대 과학은 현대 과학과 과학자들 배후에 있는 죄악과 악의 세력과 대결하는 신령한 싸움터라 할 수 있다. 과학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써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앞에 굴복시켜야 하는 싸움이다. 바른 믿음이 있는 교회 지도자라면 신자가 과학 분야에서 신령한 싸움을 싸우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과학과 과학자 안에 있는 죄악을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음을 역설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동안의 행적을 통해 신령한 싸움에는 관심이 없음을 이미 드러냈다. 다만 인기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진 과학과 결탁하여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교회가 과학을 지배하여 그 힘을 이용하려 할 뿐이다. 올해 3월 초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배아 줄기 세포의 연구를 승인한 일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사람들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교황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은 한때 진화론에 대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가 진화론이 세상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지지하는 입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가톨릭교회가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해서도 얼마나 오랫동안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왜냐하면 이 연구로부터 얻게 될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벌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7)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이 가톨릭의 신앙을 그의 삶으로 잘 보여 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평가는 그런 그에 대해 칭찬 일색이고 그것이 가톨릭에 대한 호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에 대한 호감은 대체로 정의와 인권 옹호 활동에 대한 긍정적 역할, 타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 헌신적 사회 복지 활동, 돈과 물질에 대한 청렴함 때문인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교황과 가톨릭, 장로 대통령과 개신교, 법정 승려를 포함한 불교계, 김지하 씨 등 우리 사회의 종교계와 지식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까지도 너나없이 이런 그의 행적을 높이고 대동소이한 추모사로 그를 기렸다. 지난 2월 21일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는 한국인의 87.7%, 개신교도의 86%가 그를 존경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가톨릭신문은 그를 주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낸 ‘성자’라 평하고 있는데 많은 개신교인들도 그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8) 그런데 지면의 제약으로 일일이 논할 수는 없지만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 보아도 그의 일생을 그렇게 좋게 평가할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세상이 칭찬하는 그의 정의와 인권 옹호 활동, 타종교에 대한 태도, 사회 활동은 불신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일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여 죄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주님의 종의 본질적인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정 추기경의 말이나 김 추기경의 삶은 가톨릭의 그릇된 신앙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이 김 추기경과 가톨릭에 대해 호감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사실은 신앙으로 포장된 세상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을 때 소리 질러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를 생각해 보라. 그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를 지지했는가? 예수께서는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는 그런 군중들의 환호에 부응하지 않고 악의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구원의 일을 하시고, 자기 백성에게도 자기와 같이 좁은 길을 가라고 당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한국의 개신교는 말씀에 무디어져 가톨릭과 싸울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그리스도의 적과 대치하여 싸웠던 개신교의 최전선이 이미 붕괴된 듯하다. 가톨릭 지도자들이 주의 말씀을 말이나 행동으로 모독하고 주의 나라를 공격해도 의연히 일어나 주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는 교회가 변변히 없는 것이 그 증거다. 칼빈 탄생 500주년이라 하여 기념 학회 개최, 전기 출간, 『기독교 강요』 원판 번역본 출간 등으로 기독교계가 요란하다. 그러나 칼빈이 목숨을 걸고 가르쳤던 주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일에는 잠잠하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 3:6) 한 다윗의 용기는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시 3:8)라는 그의 신앙에서 나왔다. 이제 누가 나설 것인가? -------------------------------------------- 1)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일화를 꺼냈다.……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기적’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감사의 기도’에 주목했다. “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이 굶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나누고 남은 게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겁니다. 거기에 ‘오병이어’ 일화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그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다름 아닌 꼭꼭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신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도시락을 나누게 하신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2) ……예수님이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기적 이야기를 우리 모두 잘 압니다. 저 나름대로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갑자기 “펑”하고 터지면서 산처럼 솟아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당신 도시락을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드셨습니다. 이를 보고 너도나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자기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최승룡 신부(가톨릭 서울대교구 사제단 대표), 김수환 추기경 고별사, 2009년 2월.] 3)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시간’을 전제로 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등 생물이 나왔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럼 ‘시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를 알아야죠. 시간은 빅뱅 때 생겼습니다. 빅뱅으로 인해 이 우주가 생겼고,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도 생긴 거죠. 그래서 매 순간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느님도 시간의 영향을 받는 분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왜냐고요?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존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계신 분이죠.……” 4) “모든 것은 물질적 우주가 적당한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엄청난 에너지의 축적에서 출발한 우주의 시작은 처음에는 빠르게 그리고 다음에는 느린 속도로 현재의 상태로 진화해 왔습니다.……실제로 오늘날의 과학은 수백만 세기를 뒤로 돌아가 창조의 순간에 행해진 최초의 말씀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빛과 복사선의 바다에서 물질이 만들어지고 화학 원소들은 분리되어 수백만 개의 은하를 형성했습니다.……따라서 창조자는 존재합니다. 신은 존재합니다! 아직 확실하거나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이었습니다. 현대 인류가 과학으로부터 듣고 싶어 했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교황 비오 12세, ‘현대 자연 과학에 의한 신의 존재 증명’, 로마 교황청 과학아카데미 연설, 1951년 11월 22일.) 5) 창세기에서는 하느님께서 6일 동안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 아는 6일로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우주 기원설에서는 빅뱅이라는 것이 맨 먼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주가 대폭발을 한 다음 그것이 우주의 진화, 생성, 발전을 거치면서 은하계가 생겼고, 다시 태양계, 즉 지구가 생기고 해와 달, 이런 것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기간이 약 150억 년 정도 걸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200억 년 걸렸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나는 것은 현재까지는 우주에 수없이 많은 별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고, 현재 우리가 지금 보는 은하계만 해도 천억이 넘는 별들이 있는데, 그러나 하여튼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지구만이 비록 조그마한 별이지만 육지와 바다가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빅뱅이라는 우주 대폭발이 있었고, 수많은 별들이 생기고 은하계가 생기고, 이렇게 생성 발전해 오면서 그 목적은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 이 조그마한 지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거기서 생물이 나오고, 의식할 줄 아는 인간을 내기 위해서 수많은 별들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이처럼 하느님 창조의 손길을 인정하는 한, 150억 년 동안 우주의 생성, 발전, 진화를 통해 변화된 우주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창조주 하느님’, 사제 연례 피정 강의, 1999년 5월 8일.) 6)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無)로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갖추고 창생(創生)했다는 우주 기원론을 찾고자 한다.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생하는, 그래서 현재의 우주 모습을 이루게 하는 우주 창생 모형을 세우고자 한다.……우주는 무로부터 저절로, 필연적으로 생겼다.’……우주는 수십억 년 뒤에 생길 때처럼 그렇게 종말을 맞을 것이다. (박창범 서울대 교수,『인간과 우주』, 2006.) 7) 가톨릭이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지 않고 세상의 여론과 인기에 영합하여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예는 제사를 금지하다가 나중에 허용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2009년 3월 5일 자로 중앙일보의 인터넷 판인 조인스닷컴에 실린 다음의 기사를 보라.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다=2000년 5월 23일, 김 추기경은 성균관대학 600주년 기념관에서 ‘심산상(心山賞․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유림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려 제정된 상)’을 받았다. 김 추기경은 수상 소감에서 ‘유교와 제사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17세기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이 땅에서 만났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제사 금지령은 달레(프랑스의 천주교 성직자)의 말대로 ‘조선 국민 모든 계층의 눈동자를 찌른 격’이었다.” 그리고 조선 정부가 ‘전통 유교의 파괴자’라며 천주교를 박해해 100년간 1만 명 이상이 순교하는 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돌아보면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보본추효(報本追孝)였다. 이를 인식한 천주교에선 1939년 조상 제사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8)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우리 시대의 ‘성자(聖者)’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몸소 보여 주었다. 사제직으로 불림을 받은 58년간 김 추기경이 주님의 종으로서 보여 준 삶은 그를 따르던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비신자들까지도 그리스도의 향기에 젖어들고 좋으신 주님을 맛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교회 안팎에서 뿜어낸 향기는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상의 성자 하느님 나라에 들다’, 가톨릭신문 사설, 2009년 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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