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의 정결법전에서 배우는 몇몇 교훈(김기찬 목사)
레위기의 율법들은 신약 백성들에게도 주야로 묵상할 하나님의 복된 말씀이며 성신께서 그 백성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실 때 쓰시는 방도여서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 됩니다. 연초에 레위기의 화목제 규례에 비추어 신약 예배를 생각한 데 이어서1), 레위기의 정결법전에서 배울 수 있는 몇몇 교훈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레위기 11-16장에 나오는 정결법전은 소위 ‘부정’(不淨)의 사례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11장은 음식과 관련된 부정, 12장은 출산의 부정, 13-14장은 문둥병의 부정, 15장은 유출의 부정을 각각 다룹니다. 이 ‘부정’의 사례들은 언약 백성의 신체적 건강을 해치는 위생적 불결이나, 언약 백성의 도덕 생활을 허무는 부덕(不德)이나, 여느 종교 체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피(터부) 현상이나, 혹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를 위협하는 불완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기 11-15장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부정들은 무엇보다도 성소에 임재하시는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부정의 사례들은 여러 기준에 의하여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어떤 사례는 그 상태가 하루 동안, 어떤 사례는 7일 동안, 또 어떤 사례는 부정 상태를 일으키는 원인(이를 유대교에서는 ‘부정의 아비’라 부릅니다)이 존재하는 동안 지속되는가 하면, 어떤 사례는 부정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간단히 몸을 씻거나 옷을 빠는 절차가 필요하고 어떤 사례는 속죄제를 드려야 하며 또 어떤 사례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예식이 필요합니다만(가령, 문둥병자의 경우), 정도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부정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성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만일 그가 가까이 나아가면 레위인의 칼에 죽임을 당하거나 여호와의 직접적인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죽 살펴볼 때에, 성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부정의 상태는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 언약 바깥의 상태를 표상하는 듯합니다. 이는 부정의 사례들을 규율하는 정결법전의 내용들을 살필 때에 특별히 분명해집니다. 레위기에서 다루는 부정의 사례들은 의외로 몇 가지밖에 없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음식, 출산, 문둥병, 유출과 관련된 부정의 사례들이 전부입니다.2) 그리고 마지막 16장은 이스라엘의 부정과 위반으로 오염된 지성소를 속죄제의 피로 정결하게 하여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하는 대속죄일 규례를 다룹니다. 이런 내용들의 주제들은 음식, 출산, 여호와의 거룩하심, 부부 관계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이 주제들은 창세기 1:26-30(창조 명령과 음식 규례)과 창세기 2:16-25(선악과 금령과 혼인)에서 동일하게 다루어지고, 또한 선악과 금령을 위반한 우리 시조와 우리 시조를 유혹한 뱀에게 내리시는 심판(창 3:14-19)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3) 부정의 사례들은 몇 가지 되지 않지만, 그 주제들은 창세기 1-3장의 역사를 요약하면서 시내 산 언약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교훈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간단한 방식으로 정결 규례를 제정하셨지만, 그와 동시에 깊고 호방한 교훈을 그 안에 담아 놓으셔서, 가령 모르는 사이에 부정한 상태에 들어갔든지 혹은 그런 경우를 보았든지 간에 정결법전을 통해서 큰 교훈을 배워서 언약 백성답게 서서 나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정결법전의 입법 목적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결법전은 성소에 임재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인생으로 하여금 어떻게 성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인데, 거기에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 산 언약을 체결해 주신 뜻이 무엇인지를 교훈하시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약 바깥의 상태, 곧 아담 안에서 타락한 인생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상기시키고, 그런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을 건져서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살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언약의 근거와 성격). 둘째로, 이는 동시에 시내 산 언약에 들어오게 하신 것은 인생을 창조하신 본의를 성취하게 하심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 곧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은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본의를 성취하게 하심입니다(재창조로서 시내 산 언약). 그러므로 셋째로,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장 나라로서 여호와를 늘 가까이할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언약의 목표).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런 입법 목적이 하나님께서 태초에 친히 세우신 거룩한 제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성취되도록 하셨습니다. 음식 정결법은 인생이 날마다 살고 숨 쉬고 기동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있는 사실과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한 것들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맛보면서 그것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출산 정결법과 유출 정결법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을 때 사람이 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내며 살도록 혼인과 가정의 제도를 수립하신 사실과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내신 중보 직임을 통해서 거룩한 사회를 이루어 나감으로 창조의 본의를 성취할 수 있게 하신 사실을 잘 가르쳐 줍니다.4) 문둥병 부정은 부정의 사례 가운데서 가장 심각한 것이며 이 부정을 다루는 문둥병 정결법 역시 가장 길고 복잡합니다. 문둥병 정결 예식은 나실인 재서원 예식(민 6장)과 대제사장 임명식 예식(레 8장)에 준하며, 그 내용도 서로 상당 부분 겹칩니다. 이 문둥병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하심을 침해한 자에게 내리시는 형벌을 상징하는데(참조. 역대하 26장에 나오는 웃시야 왕의 사건과 민수기 12장에 나오는 미리암의 사건), 문둥병자가 거기서 회복될 때에는 대제사장을 임명할 때나 이스라엘 백성이 대제사장적인 삶을 살려고 서원할 때에 맞먹는 그런 예식을 통해서 정한 상태로 회복됩니다. 이 문둥병 정결법이 의미하는 바는 언약 백성이 여호와를 가까이하며 살 때에 대제사장의 마음과 심정과 열의를 가져야만 언약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결법전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유아기의 언약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 수준에 맞게 율법을 내려 주신 사실을 발견합니다. 시내 산 언약에 속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실질적인 방도는 제사를 통해서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결법전은 이런 실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그 안에 언약의 핵심적인 교훈을 담고 있어서 누구든지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고 겸손히 성신을 의지하는 언약 백성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더욱 깨달아서 언약의 목표를 능히 이루고 나아갈 수 있는 빛을 제공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약의 모든 율법을 완성하신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은혜로 살리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엡 2:5-6).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고 하나님을 거슬러 행하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으로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감을 얻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통치 아래 순종하는 새 언약 백성이 되며 하나님의 기이한 사랑 가운데 속한 권속(眷屬)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무엇이든지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심정을 품고 모든 사람을 대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거룩한 열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한번은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이름 없는 풀을 예로 들어서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을 교훈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마 6:26-34). 예수님은 친히 그런 태도로 지상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공황이 닥친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지만, 주님의 태도를 본받는 신자는 산이 요동하고 바다가 흉용하는 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남녀의 구별을 부정하고 혼인의 신성함을 훼손하며 창세 때 세우신 기둥 같은 권위들을 허무는 파괴적 주장과 악한 행습이 물밀 듯이 들이닥치지만, 주님의 심정을 품고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나아가서 이웃에게 그리스도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본의를 변함없이 이루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시며, 주님의 기도는 늘 아버지께 열납(悅納)될 것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5-17)
한 달 남짓 뒤면 2008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만, 한 해가 지나가면 그만큼, 주님의 기도가 완전히 성취되는 날,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거룩한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세세토록 찬송할 날이 우리에게 가까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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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고, 화목제와 신약 예배, 「성약출판소식」 제63호, 2008년 2월.
2) 그 외에는 민수기 19장에서 시신 접촉에 의한 부정의 상태를 언급할 뿐입니다.
3) 다음의 내용을 비교해 보십시오.
(레 11-16장)
1. 음식-정결법 2. 출산-정결법 3. 문둥병-정결법(문둥병: 여호와의 거룩하심 침해) 4. 유출병-정결법 5. 대속죄제일(금식, 여호와의 거룩하심)
(창 1:26-30과 2:1-25)
1.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 2. 부부 관계 3. 창조 명령(생육, 번성, 충만: 출산) 4. 음식 5. 선악과 금령(음식,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함)
(창 3:14-19 여호와의 거룩하신 심판)
1. 뱀에 대한 저주(부정한 동물의 기준, 레 11:41-45), 2. 여인의 후손(출산의 고통) 3. 부부 관계(여인의 자주장과 남편의 강압적 다스림) 4. 노동과 음식.
4) 참조. 김홍전, 『혼인, 가정과 교회』(성약출판사, 1994년), 특히 제1, 5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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