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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하나님의 의

by 【고동엽】 2006. 3. 28.
시절이 하 수상 합니다. 검찰개혁과 성소수자 문제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앞의 문제는 강호제현께 맡기고 교회문제를 생각 합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 공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렇게 한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이글을 읽기를 희망 합니다. 기독교가 머 하자는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1) 유대교(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는 이스라엘의 오래동안 발전해온 개념 입니다. 주전 8 세기 경부터 하나님의 의는 심판(판단,체데카,미쉬파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선한 사람은 보상받고 악한 사람은 벌받는 다는 사상 입니다. 예언서와 시편 전체가 이렇한 기조로 씌여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 군사적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던 모든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힘을 포기한 메시아(케노시스)의 도래를 예언한 제 2 이사야는(아사야 40-55장) 하나님의 의를 판단하지 않는 구원(이사야46:12)과 평화(이사야 54:14)로 사용 합니다. 예수시대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이 제 2 이사야를 무시했지만 예수를 만난 바울과 요한 등 제자들은 이 이사야를 주목 합니다.
2) 예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의
예수 앞의 세례요한까지 모든 선지자는 회개하면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준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회개하지도 않았는데 판단하지 않고 그냥 용서해 줍니다. 민족반역자요 파렴치한 착취범인 세리를 친구로 삼고 부정한 여인, 죄인을 그냥 용서하고 친구가 됩니다. 당시에는 중병이 걸리면 죄가 있어서 병이 났다하여 가정에서 공동체에서 쫓아 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병자들을 치유해서 가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예수의 메시아 출정식에서 예수는 지금이 은혜의 해 임을 선포 합니다.(누가 4:19) 그런데 이것은 예수가 이사야의 예언 중에서 판단(신원)은 빼고 은혜의 해만 선포한 것 입니다.(이사야 61:2)
3) 바울이 본 예수
이렇한 예수를 가장 올바로 본 사람이 바울입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설교 합니다.(사도행전 2:38) 예수 이전의 이스라엘 선지자의 설교와 같습니다. 바울은 '이사람을(예수)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개 전한다'(사도행전 13:38)고 합니다.예수가 그냥 죄사해 주는 것을 전한다는 말 입니다. 렘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양철학사'에서 예수는 운동가로 바울은 기독교 사상을 정립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철학계가 바울을 독특한 사상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말 입이다. 바울은 이제는 법(법률 문화 이념 사상 종교 도덕 등 모든 가치체계를 말 합니다) 이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로마3:21) 유대인들은 법을(할례, 음식규정,절기지키기) 통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합니다.(로마3:28) 따라서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의는 판단하지 않는 구원 입니다.
4) 기독교의 믿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판단이 되다.
4 세기에 아타나시우스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성경을 정했습니다. 성경에서 빠진 외경은 인간의 의가 강조된 글들이고요 바울서신은 하나님의 의가 강조된 글 입니다. 1. 5 세기에 기독교신학이 정립됩니다. 복음(성경말씀)이 세계화 되면서 세계인의 삶에 말씀이 적용되게 교리를 세운 게 첫 신학화 입니다. 그런데 이 때 신학자들 모두가 그리스 철학자이거나 관리였습니다. 특히 어거스틴이 기독교 신학을 정립했는데 그는 신플라톤주의 자 입나다. '인간의 완전성 추구' '선을 통해 신에게로 가는 의지' 등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가지고 신학을 세웠습니다. 바울의 '은혜에 의한 구원' 신학이 땅에 묻히게 된 것 입니다.
2. 16 세기에 루터가 바울의 은혜신학을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할 때 그 의는 좋은 관계라는 뜻의 히브리어 '체데카'인데 이말이 그리스어로 표기되면서 '디카이오슈네'가 됩니다. 그라스어의 의는 '선과 정의' 입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라라는 의미인데 루터는 하나님이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루터는 예수의 의가 그리스도인에게 전가 된다고 하는데 톰 라이트는 이것을 반대하고 존 파이퍼는 지지하면서 격렬하게 논쟁하고 있습니다.(루터의 이신칭의는 정당 합니다. 추후 설명하겠습니다.) 루터의 칭의로 인해 두 가지 오해가 생겼습니다.
1. 의를 선과 정의로 파악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의를 판단(심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2. 바울은 칭의를 하나님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한 반면에 루터는 칭의를 완전구원으로 이해하게 했습니다.
5) 하나님의 의는 판단이 아니라구원 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마태는 하늘나라, 마가와 누가는 하나님나라, 요한은 영생, 바울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고 하는데 모두 같은 의미 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는 악한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용납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 입니다. 바울은 하나님나라란 하나님과 인간 간에 그리고 인간 서로 간에 좋은 관계를 맺고 평화하고 가쁘게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로마14:17)
긴 시간 고맙습니다. 천천히 나누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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