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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논쟁인 한국교회 ‘신학적 뿌리’

by 【고동엽】 2011.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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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 ‘신학적 뿌리’ 칼 바르트 논쟁 점화

 


한국교회 일각에서 최근 20세기 신학의 거장이자 한국교회의 신학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카를 바르트에 대한 일련의 신학적 논쟁이 진행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보수적인 신학 풍토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거장 바르트의 신학사상은 하나의 경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대부분의 목회자나 조직신학자들은 설교나 강의를 통해 항상 바르트를 강조하는 것이 지난 세기 한국교회의 현실이었다.또 소위 신정통주의 신학의 태두로 분류되는 그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만 진행됐을 뿐 한동안 금기시되기도 했다.따라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바르트에 대한 학자들간의 논쟁은 그만큼 흥미로운 사건이다.

바르트에 대한 논쟁은 지난해 기장신학연구소 발행 ‘말씀과 교회’ 24호에 실린 손영진 박사(부산외대 겸임교수)의 ‘카를 바르트의 기독론은 위로부터의 기독론인가’에서 시작됐다.이에 대해 최영 박사(한신대 강사)는 바로 다음 25호에 ‘칼 바르트는 과연 자연신학의 지평을 열어주었나?’라는 논문으로 답했고 여기에 정승훈 박사(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도 ‘카를 바르트와 타자의 해석학’으로 가세했다.

먼저 손박사는 바르트의 기독론이 로고스 기독론이라는 의미에서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강조해온 대부분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거절했다.특히 그는 “바르트가 세상의 말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는 분명히 구분하고 있으나 이들을 통해 화해의 진리가 말해진다면 이것은 결국 자연신학을 인정한 것”이라며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향해 새로운 긍정과 지평을 열어주었음을 밝혔다.그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전적인 타자’임을 강조했던 기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최박사는 손박사가 주장한 바르트 신학의 자연신학적 가능성은 근거가 없다고 답했다.그는 논문에서 “단지 성서만이 사람에게 계시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고 그에게 화해의 사실을 확신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후 최박사는 ‘말씀과교회’ 최근호에도 ‘카를 바르트의 빛의 론’을 발표하고 “바르트에 의하면 피조 세계의 빛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참된 빛 안에서 그리고 그 능력에 의해서만 빛을 발한다”며 일관되게 바르트의 자연신학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편 정승훈 박사는 당시 논문에서 바르트의 후기신학에 주목해 그의 종교다원주의적 성격을 평가했다.특히 그는 ‘말씀과 교회’ 최근호에도 ‘카를 바르트와 자연신학의 논쟁을 보면서’를 싣고 손박사와 최박사의 논지들을 분석했다.그는 먼저 손박사에 대해 바르트가 기독론에서 자연신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을 밝힌 것은 독창적이지만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의 충분조건을 찾으려면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의 현실에 집중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최박사에 대해서는 “바르트 신학의 위대한 공헌은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데 있다”며 그가 손박사를 무리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결론적으로 정박사는 바르트에 대해 에큐메니컬 신학의 차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손박사의 입장을 어느 정도 지지하고 있다.그는 또 “하나님의 진리의 빛은 교회 밖에 존재하는 타종교나 문화에서 찾아질 수 있고 이것을 통해 교회는 새롭게 변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는 바르트 이후 주로 그의 정치적 입장에 초점을 맞춘 바르트 좌파와 우파가 등장,사변적 논쟁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하지만 교단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의 신학풍토에서 순수한 신학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에 대해 기장신학연구소 연구실장 정재동 목사는 “신학적 대화나 논쟁이 미약했던 한국 신학계에 거장 바르트에 대한 학문적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향후 바르트 관련 논쟁의 귀추가 주목된다.


◇카를 바르트는…

카를 바르트는 20세기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학자.‘20세기의 교회 교부’라고도 불리는 그는 19세기 슐라이어마허 이후 진행된 인간학적 자유주의 신학의 분위기를 일소하고 마르틴 루터처럼 ‘신학의 대상은 신’이라는 혁명적이면서도 기본적인 명제를 신학계에 복귀시켰다.하나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죄성을 강조했던 그가 세계 신학계와 교회에 미친 영향은 너무도 분명해 오늘날의 조직신학은 그의 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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