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상처 받는 사람들에게 히4:15, 빌3:12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들뜨고 행복해하기 보다는,
‘그저 성탄절이 후딱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서구문화에서) 일년 중 최고의 명절입니다.
그래서 엄청 비싼 비행기 표를 끊어서라도,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고,
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과 선물을 주고 받으며
정말 (미국인들은) 한 달 전부터, 선물을 구입하고, 포장하고,
선물도 한 사람 당 평균 20개 이상은, 아마 준비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탄 축하 모임에도 .. 나가기가 주저되고
또한 심지어 가족 모임에도 .. 참석하기가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성탄절 같은 명절은..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라,
그저 연례행사에 불과합니다. 어서 빨리 후다닥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것이지요.
‘정말 그런 분이 있을까?’ 하며 믿기 어려워하시는데..
여러분, 정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 주위에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어떤 분들인가 하면요,
-자기 자녀가 몸은 이미 어른처럼 다 컸는데, 아직 기저귀를 갈아 줘야 할 때,
-여러 종류의 복잡한 약봉지들을 먹이면서, 하루도 약을 안 먹으면 위급해지는 가족을 둔 사람들,
-아이가 부진아여서 늘 놀림을 당하고, 그래서 부모가 따라다니며 늘 아이를 지켜야 하는 신세.
-아주 어릴 적부터, 장애아 되어서 살아가는 자녀를 둔 부모들.
이들 부모들은, 가족 모임이 있어서 참석해 보아도,
전혀 흥겹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님 집에 다 함께 모였는데,
조카들, 그러니까 자기 brother이나 sister의 자녀들은, 건강하게 깔깔거리며 뛰어 놀고
서로 선물을 주거니 뺏거니 하면서, 집이 온통 소란스러울 정도인데,
자기 아이는, 장애아로서 멍청하게 웃고만 있거나
아니면 아파서 순간 순간 자기 아이를 계속해서 돌보아야만 할 때..
건강한 조카아이들과 비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떻게 성탄절이 마냥 기쁠 수 있겠습니까!
가족 모임이라서, 참석은 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착잡한 것입니다.
거리에 나가보아도, 우리 애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은
성탄절이라고 즐겁게 뛰어다닙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웃으며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지진아, 장애아를 둔 가족은
사실 레스토랑도 마음 놓고 못 갑니다.
혹시 가면, 러시아워를 피해서 가야 합니다. 남들에게 피해 주면 안 되니까요.
또 이웃집을 보니까, 성탄 연휴라고.. 가족 여행을 떠난다네요...
그러니까 장애아를 둔 가정은, 성탄절이 오히려 ‘고문’인 것입니다.
이웃들이 행복해 할수록,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는 법이지요.
그래서 성탄절이, 어서 훌쩍 빨리 지나가 버리기만을 바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부모가 뭐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방을 뛰어 다니며, 온갖 해 볼 수 있는 조치들은, 거의 다 시도해 보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 받고, 치료 받는 것은 물론이요,
좋다는 것은 다 해보고,
자녀의 질병의 완치를 위해서, 기도는 또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자녀를 위해, 주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요?
그런데도, 남들 아이들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수많은 평범한 일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보이고,
그 불치병은 전혀 치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까..
남들이 즐거운 시간에.. 오히려 더 마음이 우울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일부터 빠져 주기도 합니다.
차라리 핑계를 대면서 빠져주는 것이,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 말은 안 해도, 그 마음이 얼마나 상하고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알아주십니다.
▲예수님이 동정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계시는데,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한 점을 동정하시는 분이시오.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시험(고통)을 받으신 분이시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히4:15
여기서 ‘동정 sympathy’ 이란 말은,
그냥 불쌍히 여긴다.. 정도가 아니라
‘자기가 그 똑같은 아픔을 겪어봐서 안다. 그 마음으로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1~2
“참으사” 라고 했지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라고 했지요?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가족만 바라보고, 부러워할 게 아니라,
성탄 트리 주위에서 뛰어노는 조카들만 바라보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성경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하십니다.
남의 집 아이들만 바라보면.. 한 없이 우울해 지겠지만,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솔직하게.. 별로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그 고통을 다 당하시고, 참으셨네요..'
▲우리는, 예수님의 강한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저는 이럴 때마다, 빌3:12절을 깊이 묵상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잡힌 바 된 그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장애인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 중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연도 없고, 실수도 없으십니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그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요,
주님이 내게 정하신 어떤 길이요, 내가 도달해야할 목표지점입니다.
그건 정상인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가, 모든 가정이.. 각자가 하나님의 강한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그 하나님의 강한 손에 붙잡혀 있음을 믿고,
더 잘 붙잡혀 있기 위해서, 우리는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붙잡힌 것을, 뿌리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붙잡힌 것을, 더 견고하게 잘 붙잡히기 위해서, 우리는 달려가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가정에 장애아가 있더라도,
‘그게 하나님이 정하신 뜻’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으로는 ‘하나님께 잡힌바 된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나,
그 주님의 섭리와 뜻을.. 빨리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잘 잡히려고’ 좇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탈출’이 아니라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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