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막막함과 그것을 돌파하는 기도 행16:6~34
*원제목: 간절히 기도하고 온전히 순종하라
사도행전 16장을 계속 ‘기도’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장면1. 막막한 가운데, 기도로 마게도냐로 건너가다
명확한 인도함을 받지 못해, 처음에 당황하는 사도바울
오늘 본문 말씀은 교회사 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도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트로이)에서 한 환상을 보고
동쪽 소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서쪽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역사의 연구>를 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때 드로아에서 바울을 태우고 마게도냐로 가고 있었던 그 배가
바로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배이었으며, 유럽의 문명사의 미래를 안고 가던 배였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유럽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유럽과 서구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사도바울에게 있어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할 말씀이 있습니다.
사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러분, 왜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경험하지 못하는가요?
이 말씀을 정확하게 붙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계획은 너무 좋은데도, 하나님의 계획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2차전도여행을 출발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계획이란, 1차전도여행에서 세워진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고
여유가 있으면 소아시아 지역으로 더 멀리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계획이 아닙니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계획입니까?
하나님께서 팍 팍 도와주실 계획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세운 좋은 계획이라고
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계획이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세운 계획이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너무너무 다를 때가 많습니다.
▲비두니아로 가는 길이 계속 막혀서.. 결국 드로아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차전도여행 때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굶고 매 맞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희한하게도 전도의 문은 계속 열어주셔서
전도를 나가면 문이 열리고 전도를 나가면 문이 열렸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렇게 고백을 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2차전도여행을 떠났는데, 어째서 전도하려고 하는 길마다 다 막히느냐 말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자세히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눈이 왔는지, 산사태가 났는지 모르지만
아시아 지역으로 전도하러 가는 깃이 점점 막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실라, 그리고 함께 한 디모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전도하면서 굶기도 하고, 추위에 떨기도 하고, 돌에 맞기도 하였지만,
기도하면 막힌 길도 열리며 전도문이 열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수고한다. 더 열심히 전도하거라.’ 하시는 것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전도여행에서는, 시원하게 뚫려있던 길도 막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막으신다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 수 없는 비두니아 길을 포기하고,
갈 수 있는 길로 가다 보니.. 드로아란 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너무나 답답해했습니다.
‘우리의 길이 왜 막혔을까?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을까?’
▲행16장의 핵심 키는 ‘기도’입니다. 사도바울은 막힌 길에서 ‘기도’로 길을 열었습니다.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사도바울의 기도입니다.
사도바울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순간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의 핵심 키는 기도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성령님이 계획하신대로, 사도바울은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를 정확하게 받을 수 있었고
결국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여
유럽에 교회를 세우고, 그 때부터 유럽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셨고, 바울은 기도하면서
바울 일행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고
유럽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행16장에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그랬습니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잠을 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도 문이 다 막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잠이 오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밤에 주무시는지 기도하는지 모르게
기도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무셔도 앉아서 주무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답이 오지 않았는데 편안하게 잠을 잘 바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여기 드로아까지 왔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이제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사도바울이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처럼, 바울도 기도 중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바다 건너편의 유럽 지역인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나타나더니
애절한 눈빛으로 “마케도니아로 건너 와서 우리들을 도와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보고 사도바울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때까지 답답하고 생각이 복잡하였는데, 가슴이 시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유럽으로 건너가라는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전 계획에는 없었지만.. 유럽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적용 :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일이 분명해집니다.
많고 복잡한 문제도.. 그 핵심이 머리에 잡히게 됩니다.
또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기도제목도 명확해 집니다.
기도의 역사입니다. 기도하면 일이 분명해집니다. 간단해집니다.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살지만..
지나고 보면 막상 거둘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거둘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1년 동안 속회 열심히 하고, 1년 동안 선교회 열심히 했는데도,
1년 동안 부서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애썼는데..
연말이 되니까 뚜렷하게 거둘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그러니까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길은 ‘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생 사는데.. 이것 조금해 보고, 저것 조금 해보고.
우리가 한 주일을 살아도 한달을 살아도.. 이것 조금 해보고, 저것 조금해 보고
이 사람 만나보고, 저 사람 만나보고.. 이렇게 살다가 세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기도에 집중하지 않으니까.. 집중해야할 일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사역에 집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 붙들어야 되겠다.’
▲설교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책을 읽다 보면.. 설교할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 말씀을 이번 주에 어떻게 다 전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두 세 시간 간절히 기도하면
그 모든 말씀들이 마음속에 정리가 되면서
하나님께서 이 주일에 전하라고 하는 말씀이 ‘하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나머지는 다 곁가지인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냥 좋아보여서, 전하고 싶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보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설교할 말씀을 추려내고.. 주일에 증거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됩니까?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하나’를 붙들면..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송곳 같은 사역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장면2. 마게도냐로 건너와서도 막막했지만, 기도로 돌파구를 찾다
▲계속 막막, 계속 기도
사도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에 도착해서 또 막막해졌습니다.
기다려 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환상에서 본 사람이 나타나서
'제가 손짓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전해 주세요.' 이래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길도 막고, 저 길도 막고, 요 길이다!’ 하면서 이끌어가셨으니까
빌립보에 들어가면 ‘축 환영! 바울선생 일행 환영!’ 이렇게 나올 법 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안 벌어집니다.
‘정말 환상을 본 것이 맞는가? 분별을 잘한 것일까?’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때도 오직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그런데 기도하러 가는 중에 옷감파는 상인 루디아를 만납니다.
그녀가 마음을 열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며,
루디아의 집은 나중에 빌립보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시간을 단축시켜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지체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일이 빨리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평탄하냐 아니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너무 가까이 계시고,
자상하시고 친절하신 하나님으로.. 왜 경험을 하지 못하는가요?
하나님의 길을 판단하는 기준을 잘 못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평탄한 길만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기도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사도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가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16:13절에서,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나고,
16:16절에서,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귀신들린 여종을 만납니다.
환경은 막막하고, 더 막막해지지만.. 기도 가운데.. 미지의 세계로 인도함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면3. 감옥에 갇혀서 더 막막했지만, 기도로 돌파구를 찾다
▲계속 더 막막해지는 환경.. 그러나 더 기도!
사도바울이 기도하러 가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주어
귀신을 쫓아내 버렸더니, 그 일로 수입이 그친 주인의 고소로
온 몸에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험난한 길이고/ 썰렁한 길이고
어떤 때는 매 맞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길이 좁으냐/ 넓으냐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는 사람은 다 실패하고 맙니다.
기도하고 하나님 뜻대로 나가는 길에도 어려움은 반드시 옵니다.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은 또 혼란스러워졌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뭔가? 열심히 기도하고 복음 전하고
주님이 가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다니!’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깨달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입니다.
이 때 사도바울은 또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니 주님이 함께 하심이 분명했습니다.
비록 몸은 매를 맞아 아프고 지금 감옥에 있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니 감사가 되고 찬양이 터졌습니다.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렇게 바울과 실라가 성령 충만하여 옥중에서 찬송하는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문이 다 열렸습니다. 차꼬에 매였던 것이 다 풀어졌습니다.
간수가 와서 이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 때 바울이 그 간수를 살려주며, 유명한 선언을 합니다.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간수와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용광로와 같은 기도의 사람, 바울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이렇게 친절하시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능력으로 함께 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용광로와 같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광로와 같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사에 사도바울처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
하나님은 사도바울 뿐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가까이서 인도하십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는 식어집니다.
기도는 용광로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할 제목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 교회의 지체들, 구원받지 못한 가족들...
기도할수록.. 기도의 지경은 넓어지고, 더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떠오르지만,
기도하지 않을수록.. 이 모든 것들은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간 것처럼 바짝 말라
종국에는 기도해야 될 아무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가 완전히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불이 붙은 사람은, 기도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기도할 제목이 한도 끝도 없이 많습니다.
▲말씀에 기도가 더해져야..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어떤 기도의 아궁이 속에 들어있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집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운 성도 속에 말씀이 들어가면.. 정말 말씀은 기적을 일으켜냅니다.
그러나 기도가 식어진 가운데 있으면
능력 있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아도
한 순간 지성 속에 맺힌 인상으로 끝나고
그 깨달음이 마음까지 다다르지도 못하고
말씀대로 살게 되지도 못하고, 역사가 나타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있는데도,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도
기도의 용광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우면 반드시 사랑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으면.. 그냥 말씀이 좋았던 것으로 끝납니다.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대로 살아지지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막막한 환경도 ..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함 받는 길은, 언제나 평탄할 것이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막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3장면을 보면, 사도바울이 계속 더 막막한 환경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마치 음악의 크레센도(점점 크게)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평탄한 환경 속에서만 ‘하나님의 길’을 발견하려다가는
계속 신앙적 딜레마에 빠질 것입니다. 사55:8-9참조.
그럼 왜 하나님은, 본문의 바울처럼, 점점 더 어려운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걸까요?
지금 나는 다 모르지만, 그 길이 전능하신 섭리에서 볼 때, 가장 완벽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내가 깨닫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판단이 정확하게 맞았다는 사실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바울을 더 막막한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예측해 봅시다.
①이렇게 해서, 빌립보교회는, 감옥과 더불어 탄생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써서 ‘항상 기뻐하라’고 보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다 알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빌립보 교회의 시작부터가.. 감옥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간 것을 보니, 거기서 또 무슨 역사가 있으려나 보다’
이렇게 기대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시위대와 가이사 인척들이 전도됨)
만약 행16장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히는 이런 막막한 역사가 없었더라면,
빌립보와 그 인근지역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나중에 바울의 로마감옥행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②지금 빌립보는 유럽 선교의 시작점입니다.
거기서 감옥에 갇혔는데.. <옥터가 무너지면서> 어째 어째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사도바울의 유럽 선교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 감옥에 갇히는 일을 당한다고 해도.. 전혀 두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옥 터가 무너지게 해 주시는데, 더 이상 뭘 더 두려워하겠습니까?
<막막한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더 많이 있겠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2가지만 위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보기에, 내가 처한 막막한 환경도,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지.. 한숨쉬고 원망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 더 읽으실 분 ...........................................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아가지고 온 엘리트 목사님이
어느 교회 후임자로 갔습니다. 한 500여 명이 모이는 교회에 가서
자기는 그래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이고
정말로 학문적으로 모자랄 게 없어서..
강단에 서서 주일마다 아주 짜임새 있게, 조리 있게, 조직적으로,
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잘 증거 했어요.
그래서 자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그런데 교인들이 자꾸 줄어 500명이 450명으로 줄고,
450명에서 400명으로 자꾸 줄어들자... 이 목사님이 겁이 났어요.
그래서 그 교회에서 20여 년 이상 오랫동안 사찰로 일하는 권사님에게
"권사님, 전에 있던 목사님하고 나하고 다른 점이 뭐요?
좀 솔직하게 좀 얘기해주세요.”
그랬더니 그 사찰 권사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다 비슷해요. 다 비슷한데요. 한 가지만 조금 다른 게 있어요.
지난 목사님은 새벽기도에 강단에 엎드리면 일어날 줄을 모르고,
목사님은 강단에 앉자마자 그냥 팔딱팔딱 일어나는 것,
요것만 조금 달라요."
▲여러분, 말씀이 똑같아도 역사가 달리 나타납니다.
목사만 그렇습니까? 말씀을 받는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설교는 똑같아도, 듣는 성도들마다 역사가 달리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가 다른 것입니다.
기도의 용광로가 뜨거우냐, 기도의 용광로가 식었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용광로가 필요합니다.
‘마가 다락방’이 지금까지 우리 교회역사를 이루어내는 용광로라고 믿습니다.
그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말씀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분별을 받으려고 ‘마가 다락방’에 갔더니
추석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허전함이 컸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용광로와 같이 불이 붙는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시고
우리 방향을 정하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계획대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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