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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यू की-सेओङ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요일2:1-6

by 【고동엽】 2024. 3. 27.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요일2:1-6 


우리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 갈 죄인이라도 천국에 가게 되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다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만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후에 지을 죄도 다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의롭다 거룩하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된 경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복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복음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죄를 지어도 되겠네!” 초대교회 때부터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을 몰라서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속죄의 복음을 주신 것은 
‘이제부터는 안심하고 죄를 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아, 너는 여전히 의로운 자요 거룩한 자야, 믿기만 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잖아.”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하는 사람들 중 한 무리가 구원파 이단입니다. 
이것은 십자가 복음을 순전히 교리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사도는 본문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요일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죄짓지 않도록 하려고” 이 서신을 쓰고 있다고 했죠.

여러분은 예수 믿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까?” 
“죄 안 짓고 살고 싶습니까?”

이것이 열쇠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가 육신이 약하여 
다시 죄를 짓게 되더라도 
주님은 완전한 대책을 마련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요일2:1 ...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계시는데,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 사람은 분명히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모든 죄를 지고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저 사람의 죄는 제가 이미 다 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습니다. 이제 저 사람은 죄지은 자가 아닙니다.“

일례로, 서커스 곡예 중, ‘공중 그네타기’가 있습니다. 
그 묘기가 펼쳐질 때 밑에 그물을 쳐 놓습니다. 곡예 도중에 떨어져도, 
언제나 안전하게 받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몇 번이고 받쳐 줍니다. 
만약에 그물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그네 타기 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갈 때, 
완전한 용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혹시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여 주십니다.

서커스 그물이 떨어지라고 쳐 놓은 것입니까? 
아니죠. 안심하고 묘기를 부리게 하려고 쳐 놓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완전한 용서를 주신 것은 
안심하고 죄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죄짓지 않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짓지 않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끈질김」이라는 책에서 존 비비어 목사님은 고등학생 때 
<십계> 영화를 보고 고라 무리들이 모세에게 반역을 일으켰다가 
땅이 갈라져 산채로 생매장 되는 장면을 보면서 미친 듯이 회개하고 
다시는 악하고 정욕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어떤 친구가 전도하였는데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과 똑같이 죄악 된 삶을 계속 살았습니다.

몇 년 후에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이 말씀이 무거운 벽돌처럼 비비어 목사님을 내리쳤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거잖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율법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율법적인 논리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요구했지만, 자신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길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기도하는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거룩함은 네 육신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 은혜의 산물이다.’

우리에게는 완전한 용서의 은혜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라 죄를 지었어도 
즉시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허물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용서의 은혜를 교리로만 알면 안됩니다. 
주님과의 '사귐' 가운데 누려야 합니다.


◑2:3-4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그 사람 속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여기 ‘안다’는 말은 지식이 아니라 '사귐'을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사귐'입니까?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오실 정도의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사귀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예수님과 '사귐'을 갖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5절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속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참으로 완성됩니다.

사랑의 완성(=성숙)! 정말 가슴 떨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부인하였던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 마디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한 가지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우리 마음에 오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난 금, 토 양일간 <일터사역 컨퍼런스>가 우리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주제가 “일터(직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라!”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요? 
일터에서 오래 일하거나 월급 많이 받기만 원하는 사람은 
무서워서 기도도 못할 일입니다.

이번에 보니 일터를 사명지로 여기는 증인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그렇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직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직장에 기독교 핍박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을 무너뜨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선언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사람을 전도하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악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힘든 것 만이 아닙니다.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힘들다, 어렵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요 비젼이 됩니다. 
하늘꿈학교 건축, 탈북 청소년들의 변화에 감동을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DTS 수료간증, 김혜성 자매)
“서울에 와서 너무 힘들 때, 집사님이 인도해 주셔서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육신의 아버지처럼 믿어져요. 
이제는 하나님을 그냥 “아버지”라고 부를 거예요!

“아버지~!”하며 울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을 알고 나니 
변화가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하늘꿈학교 이사회, 
한 청년이 기도를 받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금식기도에 들어가려고 하는 학생, 진로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부모로부터 이어지는 강한 죄의 힘이 제거되기를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학생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5절 ...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압니다.

6절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과 같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만이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의 핵심은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짓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밑바탕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서운 율법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죄짓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무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종교생활, 율법생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았습니다.

▲플로이드 맥클랑은 어린 시절 미국 남부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을 다녀왔는데, 정말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잘 믿는 지역이었습니다. 
큰 교회들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흑인 노예, 인종차별을 수용했던 곳입니다.
플로이드 맥클랑은 거기서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을 보고 성장했습니다. 

율법생활,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의 특징은 
열심이 있으나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은 별로 없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입니다. 
누군가의 결점을 찾아 눈을 부라리며 살핍니다. 말이 무섭습니다.

교회에서 모이는 횟수는 너무 많지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찬송가를 부르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았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데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엄숙하냐가 기준입니다. 
예배가 끝나는 시간이 얼굴이 가장 은혜롭습니다.

위선적인 모습 때문에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들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살다 보면 
자신도 어느덧 그런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죄책감으로 괴로와하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약점과 잘못을 숨기느라 늘 좌불안석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해서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교리적인 신앙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전혀 달라집니다. 
죄짓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유치원 선생님인 자매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다 예수님을 잘 믿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며 동행하여야 함을 알지 못하였답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일하다 보니,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힘들 때가 많더랍니다.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을 때도 있고 좌절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영성일기를 쓰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주님이 함께 하심이 느껴지더랍니다. 그러니 변화가 일어나는데, 
아이들 하나하나의 영혼이 품어지고 간절해지고 어려움이 올 때도 
주님께 묻고 주님의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도요한도 사도바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서 그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방법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24시간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병년 목사님, 이번 세미나 때 참가하셨는데 
이번에 내신 「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한거야」 하는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모님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9년 동안 전신마비인 사모님을 간병하는 
목사님의 애틋함과 사랑, 그리고 사모님 없이 자녀를 교육하고 목회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솔직히 나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제자훈련 세미나를 마치고 어느 교회 금요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왔다고 
하시면서 어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나는 밤에 이동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호텔이나 모텔같은 곳을 지나는 것이 싫었다. 
아름다운 길도 혼자일 때는 서러움이 되어 돌아오니까. 
그리고 언제나 유혹이 마음에 찾아온다.
그리움이 마음 한켠에서 베어 올라온다. 그래서 싫다. 

그러나 어제는 그런 요란한 호텔, 모텔의 간판들이 전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저기 저런 시설들이 있구나 정도로. 내가 갈 곳은 아니지.

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하는 실제를 그 순간에 경험한 하루였다. 
어둠이 스며들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았다. 
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둔 내 마음이 무섭다.”

여러분 모두도 그저 예수님을 믿는다는 수준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보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죄짓지 않고 사는 놀라운 기적, 죄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사랑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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