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 요일3:1~9
오늘 우리의 잘못된 믿음 하나를 바로 잡고 싶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죄는 짓고 살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죄 안짓게 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어도 죄는 짓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단,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또는 이미 모든 죄가 다 용서받았음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죄에 무너지고 맙니다.
△어느 대학 중간고사 시험 때,
학생들이 밤을 새워 시험 준비를 하고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교수님이 사정이 있어서 시험을 연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강의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나 항의했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갑자기 시험을 연기하시면 다른 과목 시험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오늘 꼭 시험을 치렀으면 합니다."
교수님이 물었죠. "자네 이름이 뭐지?"
학생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대답했다. "김철수입니다."
교수님이 출석부를 펼쳐들며 말했습니다.
"김철수 군,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자세가 보기가 좋군.
자네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A학점을 주도록 하지."
그러자 그 학생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제가 당황해서 이름을 틀리게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름은 이OO입니다.”
우리가 쉽게 이렇게 살기 쉽다는 거죠.
조금만 상황이 어렵게 되면 거짓말 하게 되고,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고 도피하게 되는...
이건 하나님의 자녀, 성숙한 크리스천의 태도가 아니죠.
▲우리에겐 죄에 대하여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러 왔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 주간이 자랑스럽습니까? 감격스럽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또 죄짓고 왔습니다!’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죄 안 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희미하고
‘죄 안 지을 수 있다’는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죄는 어쩔 수 없이 짓게 마련이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겠느냐?’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느냐?’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not continue to sin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3:6
아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고 축복입니다.
▲9절에도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오해하면 큰 일 납니다.
십자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으니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죄를 지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보시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나의 자녀다. 나는 네가 어떤 죄인이라도 나의 자녀로 받아들인다.
너는 이제 천국 백성이다. 이것을 믿기만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죄를 지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자녀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이젠 죄짓지 말고 정신 차리고 바로 살아 달라는 호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엄청난 것입니다.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 마귀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여전히 마귀 자식처럼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겠다’는 뜻이겠습니까?
아니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겠다’는 뜻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심각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여러분이 그동안 보았던 가장 도덕적인 사람보다
더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깨끗하게 살고자하는 소원이 생기게 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5절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인지 아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죄를 짓는지/ 아닌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심각한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 거리낌없이 죄를 짓고 살았던 이들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미혹에 빠지면 안됩니다.
▲7절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새번역)
‘예수님을 믿었으면 죄지어도 구원은 받는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 안지을 수는 없다!’ 는 주장은 미혹입니다.
우리를 죄 짓게 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8절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은밀한 죄, 습관적인 죄, 등 예수님을 믿고도
죄짓게 되는 일을 결코 작게 여기면 안됩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도 얼마나 심각한지 명심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주는 줄 몰랐기에
악한 생각, 죄된 마음을 작게 여기고 품었기에
결국 예수님을 판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8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죄에 끌려 사는 사람은
이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여야 할 것은 “죄짓지 말라”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9절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죄 짓지 않는 일은 우리 노력, 결심으로 안되는 일입니다.
반드시 실패입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 짓지 않게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축구를 예로 들면, 예수님이 코치해 주신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예수님이 대신 뛰어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적치유 세미나의 크리스티 김선교사,
대학생 때 디스코 춤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춤 추는 것에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알고 마음이 치료받고 난 뒤,
그녀는 더 이상 춤추는 것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돈주고 춤 추라고 해도 싫어졌다고 했습니다.
만약 여전히 춤을 추고 싶은데, 선교사이기 때문에 춤을 추지 못하고
억지로 참는다면,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죄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9절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씨’란 곧 하나님입니다.
곧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신 것, 영생이신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하신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씨를 보아야 합니다.
“나는 왜 특별한 체험이나 간증이 없을까?” 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간증 중의 간증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엄청난 간증을 가지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죄지을 때마다 괴로운 것입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9절 ...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약속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열쇠는 ‘하나님의 씨’가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계속 마음이 무너집니다.
음란, 욕심, 미움, 질투, 정욕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짓고 살 것이라는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거죠.
그러나 우리에게 육신이 강하지만 육신 보다 더 강한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엄청난 사실에 눈이 뜨여야 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지만 내일부터 한 주간 세상에 푹 빠져
상상할 수도 없는 죄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육신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놀라 자빠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사로잡혀 살기도 하지만 오늘 이렇게 교회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왠 까닭입니까? 하나님의 씨가 여러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씨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씨’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씨가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열매가 맺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포도씨’를 나누어 드렸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씨를 유리병에 넣어 찬장에 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씨를 땅에 심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씨를 심어 싹이 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린 포도나무가 되어 자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제 첫 열매를 맺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포도 나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삶이 다른지, 그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씨는 받았는데, 그 씨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순종으로 성령님은 더욱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충만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내겐 하나님의 씨가 심겨져 있구나!”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 나의 왕이십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용서받은 축복도 귀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면 안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 앞에 설 때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2절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참 마음 아픈 사연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 사연이 기가막힙니다.
그 아버지가 '성범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인 그의 아버지는
지방의 한 철도역에서 일하던 분인데,
봉사활동을 하러 온 여중생을 추행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학급에서 반장을 할 만큼 모범적이었던
중학교 2학년이었던 이 아들에게 '아버지가 성범죄자'라는 낙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박군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죄라고 하는 말을 믿고
아버지 재판을 위하여 변론자료 준비를 도우다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나자 박군은 절망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철도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은 "나는 불행하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붙잡고 "엄마도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너희들 때문에 꾹 참고 살았는데.“ 하며 울먹였습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자신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사는 그대로 주님 앞에 설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변화되겠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앞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말합니다. “예수 믿어도 소용없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예수 안 믿는 사람이나 같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더 하답니다.” 말도 안됩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 결단합시다. “주여, 저를 ‘하나님의 씨를 받은 사람은
죄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약속이 이루어진 증인으로 삼으소서!”
“저를 드립니다. 저를 사용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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