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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한 아버지의 통곡(삼하 18:28-33)

by 【고동엽】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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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의 통곡

사무엘하 18:28-33 

 

28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 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 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 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 이다 29왕이 가로되 소년 압 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 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 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 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30왕 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 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31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 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 나이다 32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 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 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 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 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

 

우리 나라에 젊은 가수 신 해철이라고 하는 가수가 있는 데 그 가수가 부르는 노래 중 에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제 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의 노래가 반주가 너 무 크고 박자가 빨라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됩니다마는 이 '아버지와 나'라고 하는 노래 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 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 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 외받고 돈 벌어오는 자의 비 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의 어느 곳에도 이제 더 이상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 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 내와 다 커버려 집을 나간 자 식들....."

그런 노래입니다.

지난 4월 23일 날자, 우리 나라 신문에는 나지 않았습니 다.

"U. S. Today"라고 하는 미국 신문에 난 것을 보고 가 슴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금년 정월로부터 3월까지 한 국에서 2,248명이 자살했습니 다. 2,248명의 아버지가 죽었 습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세운 아버지 상이 어떻습니 까? 이 아버지에 대한 이미 지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변 한다고 합니다. 네 살 때는 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전지전능하다.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다. 힘 도 참 되게 세다.' 생각을 합 니다. 열 두 살이 되면은 '아 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열 네 살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모두 구식이다. 마음에 안 든다.' 생각하고, 스물 한 살이 되면 '아버지는 영 골동 품이다.' 스물 다섯살이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제법 아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생 각을 합니다. 서른 살이 되 면은 내가 결정할 이 문제를 놓고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싶다.' 오십 세가 되면 '역시 아버지는 훌륭했다.' 육십이 넘으면 '나는 아버지만 못하 다.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하 고 모든 것을 아는 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 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운 아버지 상만큼 여러분의 존재는 평가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격하시키면 내 자신 이 또 격하됩니다. 아버지를 높은 분으로 높이는 순간 내 존재의 위치도 높아진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버 지 이미지라는 것은 요새 와 서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습니 다. 그러나 여러분 믿거나 말거나 사실입니다. 아버지 이미지에서 우리는 공의와 선 과 질서를 배웁니다. 우리는 어머니 이미지에서 사랑을 배 우고, 은혜를 배우고, 자비를 배웁니다. 이렇게 배워서 한 평생 그 배운 바대로 살아가 는 것이올시다. 여기서 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하나님 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 버지라는 단어를 하나님을 설 명하는 계시적 용어로 사용합 니다. 그렇기 까닭에 우리가 가진 Father Image 아버지 이미지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아버 지가 엄했답니다. 너무 엄해 서 그저 재깍하면 때리고 호 령하고 폭군적인 아버지였다 고 기록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만 나와도 그 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거예 요. 그래서 루터의 신학을 연구할 때는 'Wrath of God', 하나님의 진노 개념을 빼고는 루터를 연구할 수가 없습니 다. 하나님은 아주 무서운 하나님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그가 지닌 아버지 인상에서부터 그 러한 철학, 그러한 신학, 그러 한 신앙구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 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서는 탕자의 아버지로 하나님 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 님은 이러한 분이다. 탕자의 아버지를 보라. 이 탕자 비 유에서 나는 늘 생각을 합니 다마는 그 아버지 참 훌륭한 아버지요. 좋은 아버지입니 다. 보세요. 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내 놓으라는 겁니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왜 돈을 주어서 집을 나가게 했나? 안 주면 못나갈 것 아 니요. 뻔한 일인데 왜 유산 까지 나누어주었던가요? 그 아들이 그 돈 내 놓으라고 얼 마나 못 되게 놀았겠습니까? 성경에 없지만 알만해요. 그 렇지 않아요? 얼마나 못 되 게 놀았으면

"그래그래. 나 죽은 다음에 줄려고 했지만 까짓 거 지금 가지나 그때 가 지나 마찬가지다. 가지고 나 가봐라."

아버지 세상 떠나 기 전에 유산을 잘라서 줍니 다. 그리고 내 보냅니다. 천 하에 못된 자식에게 왜 재산 을 주어서 내 보냈는가 말이 요. 아버지의 마음은 이러했 을 겁니다. '이 돈 다 없애도 좋다. 뭐 돈이 대수로운 거 냐? 제발 다 없애도 좋으니 깐 착한 아들이 되어 돌아와 서 아버지라고 불러다오.' 이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집 을 내 보냅니다. 나가서 무 얼 했는지 뻔히 알잖아요. 어떻게 될 거 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 아버지는 그 아 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대로 기다립니다. 꼭 돌아올 줄로 믿고 기다립 니다. 살아올 줄로 믿고 기 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세 요. 아들은 아버지를 못 알 아볼 때 오히려 아버지가 아 들을 알아봅니다. 상거가 멀 때 알아보고 나가서 끌어안는 아버지를 보세요. 이것이 아 버지요. 이 못된 자식을 무 엇이라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 까? 또 그를 영접합니다. 잔치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말던 내 아들이 살아왔 다. 잃었다 얻었다 죽었다 살았노라 그리고 잔치를 베푸 는 그 기뻐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 역시 탕자의 아버지이 기에 탕자임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의 탕자입니다.

구약으로 올라가보면 다윗 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로 대표적인 분으로 오 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여러 분 맥락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윗은 본래 목동이였습니다 마는 사울 왕에게 발탁되어서 충성된 장군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사울 왕을 위해 서 충성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서 그는 쫓겨나야 했고 광야 를 헤메고 고생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서 유대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와 서는 또 아들이 아버지를 배 반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성경맥락을 연구해 보면은요 압살롬은 셋째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형 둘이 죽었습 니다. 실질상 지금 첫째아들 입니다. 맏아들이요. 그 인 물도 잘났답니다. 출중해서, 머릿결이 좋아서 아주 축 늘 어졌는데 모두가 칭찬하고,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었답니 다. 온 백성이 추앙하는 그 런 아들이었어요. 인기가 있 는 아들이요. 가만히 기다리 면 아버지 죽으면서 왕이 될 텐데 무엇이 바쁘고 초조해서 아버지를 배반하는 겁니까? 악당들과 작당을 해서 이 아 버지를 죽이겠다고---. 아버 지는 그대로 왕의 보좌를 내 놓고 광야로 피난길을 떠납니 다. 그리고 정처 없이 방황 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대열에서 전쟁이 납니다. 그 러나 아버지는 계속 물어봅니 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 하냐? 내 아들 압살롬이 무 사하냐? 불효는 고사하고 이 런 패륜아들이 어디 있습니 까? 세상 어느 역사에 이런 아들이 있단 말입니까? 용서 할 수 없는 이런 나쁜 아들이 지만도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 어요. 모든 사람이 다 대적 으로 생각했고, 원수로 생각 했지마는 아버지는 여전히 저 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이 평안하냐? 그가 죽 었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머 리채가 나뭇가지에 달려서 매 달려 있는 것을 장군이 찔러 서 죽였습니다. 통쾌하게 죽 었습니다마는 이 죽었다는 말 을 아버지에게 못합니다. 이 거 얘기했다가는 자기도 살아 남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 만큼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 문에 마침내 구스사람이 기어 이

"당신 아들이 죽었소"라는 비보를 가지고 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는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 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대 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것 을..."하면서 계속 통곡을 하 는 아버지의 통곡을 볼 수 있 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버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천하에 죽일 놈이요. 못 된 사람이요. 패륜아라고 했 겠지만, 원수라고 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했습 니다.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왜 그는 피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까? 왕의 보좌를 내놓 고 피난을 가는 이유가 뭡니 까?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에 신앙적으로 이 사건을 받 아들인 겁니다. 왜냐하면 그 가 밧세바라는 여자에게 취해 서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일 이 있거든요. 자기 밑에 있 는 충성된 장군을 그 아내를 뺏기 위하여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나단선지자가 책망하 시면서

"너의 집에 칼이 떠나 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세 월이 흘렀습니다. 형제들간 에 다투면서 죽이는 일이 있 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 고요.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강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심판이라고요. 그가 피 난의 길을 나설 때에 시므이 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저 주합니다. 옆에 있던 장군이 그대로 칼을 들어서 목을 내 려치려고 합니다.

"아서라. 그러지 말라. 하나님이 저를 저주하라. 하기 때문에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앞에 서 받는 채찍이요. 심판이니 까 나무라지 말라."고 그리고 훌쩍 떠나서 정처 없는 피난 의 길을 광야로 들어갑니다. 이대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 리고 그 하는 말 좀 보세요.

"자, 일어나 도망가자."

그래 도망갑니다. 다윗편에 장군 이 많습니다. 얼마든지 압살 롬과 그 일당을 전멸할 수 있 습니다마는 그리하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 보좌를 놓고 그는 도망갑니다. 왜요? 중 요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 다. 이 아들에 이와 같은 패 륜이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았 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못하고 있는 게 아 니라, 내 죄 때문에 저 아들 이 이러한 아들이 되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 려 아들이 어렸을 때 잘못된 것을 보았고, 내가 좋지 못한 본을 보여 주어서 그 결과로 이 같은 일이 있다고 믿고 있 기 때문에 그는 아들을 나무 라지 않았어요. '너도 피해자 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집을 나서게 된 겁니다.

어떤 집의 아들 아이가 속 을 어지간히 썩여요. 말썽도 많이 부리지만 공부도 안하고 집을 나가고 걸핏하면 가출이 에요. 그의 어머니는 속이 상해가지고 심지어 제게까지 찾아오면서 너무 답답해 가지 고

"또 가출했습니다. 또 말 썽입니다. 이 자식이 언제 사람될까요?

"

그저 괴로워하 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자

"이 젊었을 때 이 중요한 나이에 공부 안하고 저러고 다니면 어떻합니까?"

그러고 발발 떱니다마는 아버지는 태 연합니다. 아무 말이 없습니 다.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말없는 것이 속상하대 요.

"책임은 나 혼자 지는 거냐? 어째서 당신은 말이 없느냐?"

아버지는 여전히 말 이 없습니다.

"아들이 나갔 어요!"

그러면

"

그래? 그랬 구먼."

"돌아왔어요"

 

"오.. 그랬구먼."아무 말이 없어요. 왜? 그 아버지는 그때마다 생각합니다. 내가 아버지 속 을 어지간히 썩였거든요. 이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속을 썩인 것을 생각하기 때 문에 자식을 보면서 자기 모 습을 보는 거예요. 그런고로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것 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아버 지의 모습입니다. 자녀의 모 습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보 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참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이 쓰리고 괴롭지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말 없는 아버지라 고 나무라지 마세요. 저 속 은 더 썩고 있는 겁니다. 이 걸 잊지 말아야 돼요. 그래 서

"일어나 도망가자."

그랬 어요.

"일어나 도망가자."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이 있 습니다. 자, 아들을 죽여서 해결하겠습니까? 내가 죽어 서 해결하겠습니까? 다윗의 입장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 요. 저 아들을 죽이면 아들 을 죽인 아버지가 됩니다. 그냥 앉아 있다가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면 아들을, 아버 지 죽인 아들을 만드는 겁니 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조용히 피난 의 길을 떠납니다.

이런 전해지는 중요한 얘 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공자 선생님의 제자 증 자라고 있는데 그 증자는 효 자로써 소문이 난 분입니다. 어느 날 친구 한 사람이 공자 에게 증자에 대해서 말했습니 다.

"증자는 이렇게 효도하 는 분입니다."하고 효도한 한 사건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공자 선생님은 효도는 고사하 고 노발대발합니다.

"그런 불효자가 있나?"

그러더랍니 다. 무슨 사건이냐 하면, 증 자가 어떤 날 아버지와 같이 참외밭을 맸어요. 참외밭을 매다가 실수해서 참외의 뿌리 를, 참외의 넝쿨 뿌리를 끊어 버렸어요. 아버지가

"이 따 위로 하면 되느냐? 아니 김 맨다고 하다가 참외를 죽였잖 아."

그래 가지고 얼마나 나 무라는지 때리기 시작을 했습 니다. 증자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못했고 화가 나는 아 버지니까 때리고 싶은 대로 때리십시오. 화가 풀릴 때까 지 때리십시오.' 하는 마음으 로 맞았습니다. 아 거기 몽둥 이가 있었어요. 몽둥이로 두 들겨 팼습니다. 결국은 기절 했습니다.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까 일이 이렇게 됐거든 요. 아버지가 화가 나 있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그는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 아버 지 화를 풀어 드려야지. 그 저 때리고 싶은 대로 때려서 그래서 화가 풀어질 수 있다 면 얼마든지 때리십시오.'하는 마음으로 그는 오히려 아프지 도 않고 마음도 괴롭지 않습 니다하는 뜻으로 거문고를 치 면서 노래를 불렀대요. 이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효도 아니냐?"

해서 얘길 했 더니 공자 선생님은 아니라 고, 나쁜 놈이라고

"증자 자 네 이리 오라우."

불러 놓고 얘기를 합니다. 순 임금의 이 야기를 하는데

"봐라, 중국 역사에 나오는 순 임금은 효 자다. 그는 그 아버지가 못 되가지고 그저 발끈하면 화를 내고 발끈하면 때리는데 때릴 때마다 그저 자 고마운 마음 으로 맞았다. 그러나 때리다 가 아버지가 옆에 몽둥이가 있어서 몽둥이를 들면 그러면 재빨리 도망을 갔다. 왜 도망 간 줄 아느냐? 내가 이제 아 버지로부터 몽둥이로 맞아서 피가 나면, 상처가 나면 나를 때려 놓고 그 다음에 아버지 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뒤에 아버지가 얼마나 후회하 며 마음이 아플까? 그 생각 을 해서 도망갔느니라. 어느 쪽이 효자냐? 너는 불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때리는 사람 앞에서 '나 죽여라.' 하 면서 맞는 거 맞아 싸요. 왜 때리는 사람을 만들어? 왜 나 쁜 사람을 만드느냐 이 말이 에요. 생각해 보세요. 때릴 때는 재빨리 도망가서 착한 사람을 만들도록 힘써야지 부 모가 화났기로서니 화 풀릴 때까지 맞겠다고 대드는 요런 사람이 나쁜 거죠.

자, 생각해 보세요. 다윗 이 왜 떠났느냐구요? 내가 여기에 있다가 아들을 죽이겠 습니까? 아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여기서 내가 죽으면 천하에 용서할 수 없 는 죄를 아들로 짓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를 죽 인, 죽이는 아들을 만드는 거 예요. 내가 안 죽으면 못 죽 이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 는 피난의 길을 떠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들은 악 합니다마는 그러나 더 악한 아들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정처 없이 어디 가서 죽더라 도 이 길을 떠나야 했다는 말 입니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 불효자 자식 을 만드는 것도 때로는 부모 라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그래 오늘 사무엘하 18장 5절 에 보면 이 전란속에서 계속 다윗은 말합니다.

"나를 위 하여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 하라."

이 불효자식, 이 패륜 자식을 놓고도

"나를 위해서 내 아들을 너그럽게 대하라"

고 그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아들 이 죽었을 때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는 기다린 겁니다. 이런 와 중에서 돌아오기를 믿고 있었 습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참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 었습니다. 참 아들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 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 음이었습니다.

1997년 8월 31일자에 중앙 일보에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미화원을 하고 있는 아버지인 데, 청소부란 말입니다. 어떤 날에 보니까 그 아들이 아주 높은, 고급 브랜드 청바지를 입었어요. 자기가 돈 준 일이 없는데... 그래서

"너 어디서 나서 이것을 옷을 입었느냐?"

호되게 나무라니까 사실대로 불었습니다.

"전철역에서 남 의 돈을 훔쳤습니다."

아버지 는

"그래, 아무리 가난하고 어렵기로서니 남의 돈을 훔쳐 서야 되느냐? 이놈아!"

붙들 고 울고

"그래선 안 된다."

이걸 끌고 파출소에 갔어요. 자수했습니다. 자술서를 쓰면 서 보니까 이게 처음이 아니 에요. 그전에 또 한 일이 또 있었어요. 이걸 아버지가 알 게 되어 너무 기가 막혔어요.

"그래, 내가 가난하고 어려워 서 옷을 못 사준 죄다. 그걸 입고 싶어서 했겠지만 어째 이럴 수가 있느냐? 이놈아 그래서야 되느냐?"

하면서 그 냥 죽어버렸어요.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재판정에서 얘기했습니다.

"이놈에게 중 죄를 내려주세요. 이놈은 나 쁜 놈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중죄를 내려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재판정은 판사는

"무죄"

그랬습니다. 무죄선언을 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판사의 말 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처 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 절대로 잘못될 수 없음을 믿 고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 한 아버지가 있으면 그 자식 은 잘못될 수가 없다 이겁니 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버지 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 러분이 세워 놓은 아버지의 위상만큼의 내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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