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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버이와 그 자녀
고린도전서 4:14-17
얼마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고 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잇이 열 세 살 때에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수술에서 수혈이 잘못되어서 이 소년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고 하는 AIDS 라고 하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이 병원에서 잘못한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가정도 특별히 의사선생님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기쁘게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지게 될 때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린이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인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이 어린아이를 찾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병문안을 드렸습니다. 당시에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친히 이 어린 소년을 찾아 방문했고요 또 당시의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까지도 이 어린 소년을 방문해서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려서 더욱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 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니올시다. 전 지금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았지만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선물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습니다.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교회에 나아가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보다 위대한 선물은 다시 없으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무어겠습니까? 윌리암 F. 오그번(Willian F. Ogburn)이라고 하는 교수님의 Recent Social Trends 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서 가정이 그 기능을 상실했다, 가정이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말합니다. 가정의 기능이 뭡니까? 먼저는 경제적 기능입니다. 다 같이 먹고살아야 겠으니까요. 또 하나는 교육적 기능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지 않습니까. 또 종교적 기능입니다. 종교를 통하여 가치관을 배우고, 믿음을 배우고, 경건한 생활을 배웁니다. 또 하나는 오락적 기능입니다. 가정에서 우리 오락을 얻어야 합니다,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즐거움을 찾아야 됩니다. 이게 오락적 기능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그만 상실되어가고 있다, 라고 아주 면밀하게 비판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경제적 기능, 이 생산적 능력을 공장과 사무실로 빼앗겼다는 것이죠. 이 경제적 기능이라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자, 농사를 짓습니다. 같이 이 농사를 짓고, 보세요. 남편이 땅을 파고 부인이 씨를 뿌립니다. 전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땅을 파고 어머니는 서서 씨를 탁 뿌립니다. 그 장면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이게 생산적 기능입니다. 자, 베를 짭니다, 실을 뽑습니다, 아 이거 다 아버지가 도와주어야지요. 부인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농사와 길쌈과 모든 생산적, 그 아이들까지 거들어야돼요. 저도 가을만 되면 참 그 일을 같이 나가서 해야되고, 아무리 어린아이지만은, 예?. 또 겨울이 되면 가마니를 짜야되거든요. 가마니 짜 보신 분들은 압니다만은 그 기계로 짜는 것도 있지만 손으로 짜는 것은요 한 사람이 자를 대고 하구요 한사람은 내렸다 올렸다 하구요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싸울 일도 없고요 문제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생산, 그 과정 속에 가정이라고 하는 유대가 점점 깊어지거든요. 하나되어 가는데 이걸 그만 공장과 사무실로 빼앗겨버렸어요. 그 쪽으로 옮겨지고 말았습니다. 가정은 완전히 소비 기관이야. 생산기능은 없고 오로지 소비. '어떻게 쓸까? 어떻게 하면 더 쓸까? 남편의 것을 얼마나 빼앗아 쓸 수 있을까? 아내가 감추어 놓은 것을 내가 어떻게 빼앗을까?' 이 딴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은 '어떻게 용돈을 더 받을까?' 생산적 기능, 그것을 공장에게 빼앗기고 우리는 소비만, 오로지 가정은 소비기관으로 되어버렸다. 이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또 하나는 교육기능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뭐, 음식 만드는 것이나 농사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가정으로부터 배웠으나 지금은 학교에서 배웁니다. 교육은 학반에서 자기 친구들과 더불어 거기에다가 위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종교 문제, 이거 더더욱 중요합니다. 이건 완전히 가정에서 배워야 할 것인데 이것도 교회에다 맡겨버렸어요. "교회에 가라" 그리고 끝입니다. 여기서 가정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또 하나는 오락기능입니다. 가정에서 즐겁고 행복한 모든 행복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되요. 가정이 가장 행복한 오락기능을 발휘해야 되는데 이것도 극장과 운동장과 텔레비전과 컴퓨터에게 다 빼앗겼어요. 도대체 이렇게 되고 보니까 가정이 필요가 없어요. 일찍 들어와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재미는 다 밖에서 보고 사니까요. 자, 이것이 가정을 파괴했고 가정이 또 인간을 파괴했고 또 인간성을 파괴해서 이 세상은 불행해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학자의 이론,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가정에서 키워집니다. 가정에서 배웁니다. 가정에서 성숙합니다. 가정에서 인간이 됩니다. 가정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다 가정에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는 보람도 가정에 있는 거예요. 나는 그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가끔 외워봅니다. 그거 영어로 외워보면 맨 마지막 말에 참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오. 내 아들이 이러이러한 아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고 기도하고 맨 끝에 기도문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그는 장군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큰 일을 많이 했지만은 생각하고 보니 별 일이 아니에요. 그 얼마든지 나 아닌 사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고요 별 일이 아니더라구요. 마지막 남는 보람은 가정밖에 없어요. '내 아들이 훌륭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때 그리하여 내가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가정에 마지막 보람이 있는 것이에요.
자, 육체적으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태어납니다. 정신적으로 부모로부터 배웁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말씀과 성령, 아버지의 말씀과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랍니다. 인간이 됩니다. 오늘 성경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 안에서 내가 너를 낳았음이니라... 복음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다. 여기에 '에겟네싸'라고 하는 이 헬라어의 원 뜻은 'Get now'라는 말에서 나옵니다. '출생'이라는 말입니다. 이 출생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어요. 우리말은 어머니가 낳는 것도 낳는 거요, 아버지가 낳는 것도 낳는 겁니다. "내가 낳았다" 이렇게 말하게 되겠습니다만은 영어는 안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낳는 것은 'born'입니다. 아버지가 낳는 것은 'beget'입니다. 'beget!' 그래 오늘 말씀은 beget입니다. "내가 너를 낳았다" 어머니가 낳는 것 같은 그런 출생이 아니고, 생산적 의미가 있는가 하면 생명적 기원의 의미가 있는 거예요. "내가 네게 생명을 물려주노라" 그런 뜻이올시다. "그런 고로 너는 나를 본받으라.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되라. 그 부모의 그 자녀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본받을 만한 부모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받을 만한 부모가 되었느냐 이것이 문제올시다. 기독교 교육학자인 데이비드 스튜어드라고 하는 분이 Parents as Teachers 라고 하는 논문에서 중요한 교훈을 합니다. 가르침으로써가 아니라 부모는 자신을 끊임없이 부모화, 부모화, parenting, parent가 아니고 parenting 동사로 썼습니다. 그 특별한 용어를 만들었어요. Parenting! 부모화 함으로써 자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가르치려고 하는 별도 노력이 필요없다. 부모만 제대로 되라 이거예요. 부모만 되면 자녀는 되는 거예요. 그 부모 그 자녀예요. 예외 없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면 참 가슴 아픈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일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 하나가 히틀러가 육백만의 유대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6.25전쟁을 치루었지만은 피난민까지 포함해서 백 오십만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전쟁 중에 서로 쏘고 죽이고 이런 것이지만은 아, 조용하게 사는 유대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끌어다가 죽였어요. 육백만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숫자입니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보세요.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행상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사를 해서 늘 집을 비웠어요. 그리고 물건을 다 팔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요. 일주일도 그만, 한 달도 그만. 돌아다니다가 가끔가끔 집에 돌아왔어요. 집을 지키고 있는 그 부인은, 히틀러의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서 그만 부정한 생활을 합니다. 돈이 많고 타락한 유대사람, 돈 많은 유대사람, 권세가 있는 유대사람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아들이 압니다. 아들이 눈물로 말렸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그러나 이 어머니는 이 생활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 장사하는 동안에 어머니는 집에서 돈 많은 유대사람하고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대사람을 미워했습니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몇 번이고 죽이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히틀러가 권세를 잡는 날 유대사람을 죽입니다. 육백만을 죽였어요. 이 얼마나 무서운 사건입니까.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는 충격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만은 제가 결혼 주례를 무려 40년 동안 했거든요. 하면서 점점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옛날에는 신랑은 크고 신부는 작았어요. 아 이거 으례히 그랬어요. 그거 조금 키가 큰 신부는 아예 낮은 신을 신고 오고, 뿐만 아니라 결혼식 할 때도 꾸부정하고 있어요. 작게 보이려고. 그렇게 했는데 요새는 뭐 신부가 크고 신랑이 작은데 그래도 또 힐을 신었어요 보니까. 뭐 거침없이. 신랑이 작고 신부가 큰 게 많아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연상의 여인이 많아요. 내가 딱 보면 이건 연상이다. 이건 5년이다 이건 10년이다, 내가 보면 알아요. 연상의 여자가 많아요. 그것도 또 당당해요, 가만히 보면. 그 잠깐 여기서 결혼식 하는 그 동안에도요 남자가 여자 앞에서 꼼짝을 못해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있냐구요? 무려 24%가 연상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아이들을 엄마가 너무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다 챙겨주었어요.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얘들이 컸어요, 남자가 컸는데 그 때는 싫었어요.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렇게 싫었지만은 이제는 이게 체질화되었어요. 그 잔소리가 없으면 잠이 오질 않아요. 그 간섭이 아니면 불안해서 못살아요. 그래서 연상을 찾아가는 거예요. 엄마 찾아가는 거라고 저게.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이렇게 간섭받는 일에 길들여졌다니까요. 이건 알게 모르게 그렇게 배운 거예요 지금.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거예요. 마마보이를 만든 게 바로 엄마라는 것을 생각 못하세요? 그리고 결혼해 가지고 살면서도 여전히 마마보이예요. 조금 언짢으면 엄마한테 전화걸어서 "엄마, 나 지금 매맞았어" 그런 답니다. 어쩌다 이 모양을 만들었냐 이거예요. 이게 다 어머니가 만든 작품이거든요. 이 정신적으로 성품이 이런 관계가 와요.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새 아이들 가운데서는요 아버지를 향해서 이렇게 대드는 아이들도 있데요. 난 아버지 때문에 창피해 못살겠소, 당신의 아들 되었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당신 때문에 나는 연애도 못하겠대요. 누구 아들이라고 그러면 난 장가도 못 가니까. 어떻습니까?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런 고로 생각해야 합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은 논리성은 있지요. 지식에 불과해요. 정서로 가르치는 거, 평안함을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을 보이는 것이에요. 본을 보이는 것. 믿음과 존경으로 본을 따라서 배우게 됩니다.
가장 무서운 교육은 저절로 배워지는 거예요. 가장 확실한 교육은 무의식중에 있는 거예요. 의식보다도 더 깊은 세계에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보세요. 여러분 부모간에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그래서 문간에서 키스하는 것도 보여주라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아이들이 '아 아빠, 엄마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겠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요 대학 졸업하기가 무섭게 시집장가 갑니다. 그 꼴 보기 싫어서 빨리 가야겠다. 나도 간다 나도. 이게 된다고요. 믿으니까. 저렇게 행동 할 것 같으니까. 그런데 여러분, 요새도 보면 내 아들이 저놈이 장가를 안갑니다, 내 딸이 저놈이 시집을 안갑니다. 걱정하지만 그것이 이미 걱정은 지났어요. 당신이 행복을 보여주지 못했어! 여자에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남자에게 여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못 보여주었어요. 애들의 눈으로 볼 때 저렇게 살 바에는 왜 살아야 되나? 우리 아버지 왜 사는 지를 모르겠대요 도대체. 이렇게 자라왔는데 애들이 시집장가 가겠어요? 자 보세요.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어머니를 보았는데 이 딸아이가 시집을 가겠어요? 누가 와서 나에게 사랑한다 뭐란다 하면은 '이렇게 나오다가 결혼식만 끝나면은 이제 뻥뻥할 거지 이제?' 생각합니다. 이게 되겠어요 이게? 겁이 나니까 연애가 안됩니다 연애가. 도대체가 예? 자, 이게 다 말로 되는 게 아니에요. 야, 시집가라 장가가라, 그게 문제가 아니죠. 결혼생활이란 참 행복한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었어야지. 그 본을 보여주었어야지. 이건 보여줌이 없이 강요한다고 그게 될 일입니까? 그것이 말로 될 일이냐고요. 가정 교육이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가치관이 그렇고 행복관이 그렇습니다. 사는 행복,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걸 그대로 저들은 보고있지 않습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선한 일을 하는지, 선한 일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이런 것을 본 일이 없거든요. 참으로 불행합니다. 현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는 텍스트가 아니고 참고서일 뿐이다. 교과서가 아니고, 교본이 아니고 참고서일 뿐이다. 아니올시다. 부득불 교본일 수밖에 없어요. 원하거나 원치 않거나 교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대로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사도권이 어떻고, 생활이 어떻고 가정이 어떻고. 여러 가지로 비방을 하고 있었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6장에서 말합니다. "나는 마음을 넓혔노라. 내가 마음을 넓혔으니 보답할 량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내가 복음 안에서 이렇게 행복하다.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우선 그는 자기 만족에 살았습니다.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 많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행복할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사명에 만족했습니다. 이대로 관제와 같이 죽을지라도 나는 기뻐하리라. 하고 있는 일을 위하여 전심전력하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믿음과 행복과 사랑과 소망에 본을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믿었습니다. 이제 말합니다. "나는 너를 믿노라 내가 너를 낳았다.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사랑이 뭡니까?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요 사랑은 믿어주는 것이요 그리고 사랑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해산의 수고를 거쳐서 지금은 본으로 교육을 합니다.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귀한 가정 귀한 자녀들은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참으로 귀한 본을 보여서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새기게 하시고 복음으로써 낳고 복음으로써 키우고 좋은 본을 보여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한 행복을 찾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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