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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롬8:22, 욥2:13

by 【고동엽】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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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롬8:22, 욥2:13    2014년 한국방문설교

필립 얀시 Philip Yancey 모음

본문 롬8장은 제가 굉장히 사모하는 말씀이고

제가 계속 계속 반복해서 나눌 것이고

제가 모든 성경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제게

제 싸인을 해 달라고 그러고

저한테 좋아는 성경구절을

적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구절보다,

“로마서 8장”이라고 쓰고는

제 서명으로 싸인을 해 드립니다.

   

제가 롬 8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장은, 세상에서 사는 우리를 삶을

너무 정직하게 그대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세상은

마치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토하듯이

우리는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고 본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미래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 세계는 탄식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하나님의 성령을 가진 사람도

이 영적으로 이 세상 속에서

함께 탄식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당신이 등록을 한다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프지도 않을거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현실적인 겁니다.

 

제가 봤을 때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똑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비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 둘 다 똑같은 비율로 아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분명하게 확실한 것은

비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은

둘 다 똑같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겁니다. 100%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탄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크리스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뭉뚱그려서 모든 세상이 다 탄식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개인적으로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아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오늘 CNN 뉴스를 봤는데

금년에 이 한국에 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2014년 세월호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이 현실 세상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삶 속에서 참 직면하고 싶지 않은

어려운 질문들이 있는데 ↓

 

‘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나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대처해야 되는지’ 알기를 원합니다.

  

제가 이제 노안이 와서 작은 글자로 된 책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책상에 장치하는 큰 돋보기를 샀습니다.

 

보석이나 손목시계를 고치는 분들이 사용하는

아주 좋은 큰 돋보기를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돋보기에 대해서 제가 배운 게 있습니다.

그 볼록렌즈 가운데 중심에는 촛점이 잘 맞춰지는데

그 중앙 중심을 벗어나면

렌즈 가장자리는 흐릿하고 뿌옇게 보입니다.

 

그러면서 깨달음이 온 게,

제 Yancey 가 기독교 작가로서 책을 쓰면서

저는 이 핵심 중앙 Jesus 을 놓치고,

그 주변의 희미한.. 잘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여러 삶의 문제) 속에서

뭔가 답을 찾으며 작가 활동을 오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돋보기 중심이 잘 보이듯이

내 삶을, 또한 인생의 문제들을

예수님 중심으로 보고, 해석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처럼 사는 삶이 어떠하며,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모델로서) 잘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저도 기도에 대해서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질문이 있을 때, 그 질문을 탐구해 가면서 책을 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기도에 대해 질문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그것을 정리해서 책을 쓰곤 합니다.

 

그 질문이란 이런 것들이죠.

‘하나님께서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 다음에는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문제입니다.

‘왜 내가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는 것은

응답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래서 저는 돋보기를 가지고

이 돋보기를

예수님 앞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봤더니

예수님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계셨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기 직전에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둬가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늘에서는 이루어진 것 같은데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

땅에서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삶의 고통 등)  *주기도문과 반대!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결정을 하실 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한테는 기도가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아셨습니다.

 

다 아시므로, 예수님은 기도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공생애 지상 사역이 중요하신 것만큼

기도에도 똑같이 그 비중을 두셨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진심으로 자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버려두시고

배를 저어서 호수 건너편 다른 곳으로 가버리셨습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과 나눌 이 내용을 가지고

돋보기를 예수님 삶 속에 이 촛점을 맞춰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생의 이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너무 급하게 대답을 주려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불행이 있을 때

그 상황을 이론적으로 이렇게 해석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불행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유, 섭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그분은 위로와 사랑과 소망으로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새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사실들이 굉장히 새롭습니다.

 

제가 처음 책을 쓴 책이 30년도 더 되었는데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Where Is God When It Hurts? 라는 책입니다.

 

제가 그 책을 쓸 당시에 저는 저널리스트로서

삶 속에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당한 사람들을

병실을 찾아다니면서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병실의 환자나 그 돌보는 가족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이야기가 뭐냐면

'나는 사고가 나서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는데

그런데 교회에 성도님들이 와 가지고는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든다'는 거에요.

 

어떤 교인은 와서

'왜 당신이 이렇게 병원에 누워 있는것은

과거에 당신이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거야!'

 

또 다른 사람은 와서 '그게 아니야! 

이 병의 원인은 사탄이야!

마귀가 너에게 공격하는데

믿음으로써 너는 이것을 이겨나가야 돼!'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해서

당신이 (욥처럼) 다른 사람들을 좋은 본이 되기 위하여 이런 일을 하신거야'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은

너무나도 혼동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자기 병실을 떠나가면 너무 기뻤답니다.

 

그래서 당시 저는 젊은 저널리스트로서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래서 그 문제를 연구하면서, 책을 써야 되겠다는 결론을 내려서, 결국 썼던 것이죠.

 

제가 이 책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을 쓰자

사람들은, 이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제게 강의해 달라는 많은 부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책을 쓴 이후에도

계속 그 문제를 골똘히 연구하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2012년에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 세상 3군데를 제가 방문해 보았습니다.>

 

◑1. 2012 년 3 월에 저는 일본에 갔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에 쓰나미가 일어난지 1 년 후 였습니다.  *2011.03.11. 

여러분은 뉴스에서 

아주 큰 파도가 치는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동차와 트럭과 기차와 비행기도

마치 장난감처럼 막 쓸어갔습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뭔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하고

쉽게 결론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돋보기를 놓고 예수님 삶속으로 딱 맞춰본다면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겁니다.

 

예수님께서 과부가 자기의 하나 밖에없는 아들을 잃었을때

하신 행동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원수인 로마의 군인 백부장이

자기의 종이 아팠을때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면

위로와 사랑과 소망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죄를 지어서 어떻다 저떻다 하지 않으셨어요. 일단 사랑으로 위로하셨습니다.)

 

▲일본의 그 후쿠지마 지역에는 교회가 대부분 작았습니다.

교인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한 동네에 교회가 있었는데

건물이 파도에 다 휩쓸려 갔습니다.

 

물론 이 동네는

모든 집들이 다 휩쓸려 갔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직장을 잠시 쉬고

일본으로 가서

그들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그 메세지를

몸으로 실천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보았던 한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후쿠시마의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학교에서 창문밖으로 내다봤을 때 파도가

쓰나미가 오는데 학교 건물보다 높이 오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모아가지고

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계단 쪽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어린아이 100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그 벽에 가면

물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학교에 체육관이 있었는데

체육관이 박물관처럼 바뀌어져 갔습니다.

 

이 쓰나미 때문에 남겨진

자그만한 부스러기까지도

이 사람들이 다 모아가지고

체육관 바닥에 유품으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일본인 한 어머니가 체육관 바닥의 박스들에 들어있는 수많은 유품들을

하나 하나씩 이렇게 일일이 살펴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매일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딸과 아들의 아주 자그마한 기억이라도

찾아내려고 그렇게 했답니다. 자녀의 유품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공책이나 필통, 도시락이라든지요.

 

제가 그 여인을 바라 보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도 저렇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사고와 생각속에 그들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생생하게요.

 

▲세월호 사건으로서 자식들을 잃은 부모님들이

아직도 자녀의 방을 집에 그대로 남겨 뒀다고 합니다.

'아 ! 내가 아들을 하나 잃었지만

또 다른 아들이 있으니까

죽은 아들은 잊어 버려야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 때문에

너무너무 화가 나는데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욱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퍼하듯이

하나님은 더많이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사고와 생각속에서

죽은이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려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로마서 8:26절 말씀에 보면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 groan 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저는 그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탄식하는데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없는데, 성령님이 어떻게 탄식하실까?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은 영이시라서 혹시 우리처럼 음성을 못 내실 텐데, 어떻게 탄식하시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는 어떻게 그 탄식하심을 알까, 알아들을까?')

 

저기 예배실 뒤에 유아실이 있습니다.

유아실은 아기들이 우는 방입니다.

 

제가 때로는 어느 젊은부부 집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새로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옆방에서 아기가 막 우는 거예요.

 

그 때 아기 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는 소리가 기저귀가 젖어서

불편해서 우는 소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저기서 우는 소리는

지금 옆방에서 우리가 너무 재미있게 대화하니까

아기가 여기에 같이 웃고싶어서 우는 소리라는 겁니다.

 

그 어머니는 그 예민한 그런게 있어가지고

그런걸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우리가 때로는 어떤 때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가 없을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때 우리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일들도

탄식으로 표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기독교인들이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욥기를 보세요

참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명의 친구가 왔습니다.

 

그 말씀을 잘 읽어보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을 처음와서 봤을때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슬퍼서,

그들은 7 일동안 옷을 찢고 앉아서 욥과 같이 슬퍼했습니다. 욥2:13

 

그러나 세 친구가 자기 입을 열었을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뭔가 불편하니까

이것을 설명할려고 하고 말을 많이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남을 도와주려고 할 때는

묵묵히 침묵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때

<고통에 관한 책>을 쓴 무슨 박사가,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줬다고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기가 힘들었을 때에

자기에게 가장 도움이 됐던 사람은

내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병원 병실 한쪽에 앉아있었고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간호사의 도움이 필요했던지

물을 마시는 상황이 됐으면

그 할머니는 항상 거기 계셨습니다.

 

이렇게 진짜 위로가 되는 사람은,

말은 안 하지만

소소한 작은 도움을 곁에서 주는 사람입니다.

 

 

◑2. 2012 년 가을에 저는 사라예보라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1990 년에

 

아주 힘든 내전을 치러서

유고슬라비아가 7개의 나라로 나누어 졌습니다.

 

사라예보가 그 중에 하나였는데

지형이 산으로 이렇게 사방이 둘러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군인들이 와서 포위를 해가지고

그 도시를 절대 못 벗어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4 년동안 그 누구도 들어오고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도시에 물도 너무 모자랐고, 음식도 적었고, 전기도 없었고

그 다음에 도시가스 이런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은 산 위에서 박격포탄을 도시로 쏘았고

저격수들이 총도 쏘고 매일같이 그랬습니다.

그 4년 동안 사라예보에서 1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시는 무덤으로 가득했습니다.

이제는 무덤을 묻을만한 장소도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축구장을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어떻게 이겨 나가셨습니까?'

제가 질문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자기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거기서 <Cellist of Sarajevo>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게 진짜로 일어난 사실입니다.  *실명은 Vedran Smailovi

 

사람들이 무료급식 빵을 타려고 줄을 서서 있었는데

바로 그 곳에 폭탄이 떨어져서 14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는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곳에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또 언제 폭탄이 다시 떨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어떤 사람 Vedran Smailovi 이 정장을 입고 

큰 악기 박스를 들고

의자를 가지고 와서

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곳에

긴 의자를 놓고 앉습니다.

 

그리고 가져온 박스를 열고 첼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거리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몇사람들이 자기 집 창문을 열고 그 음악을 듣지만

폭탄이 떨어졌던 그장소에 나오기는 두려워 했습니다.

 

그 다음날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간에

거기에 나와서 똑같은 연주를 하는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몇사람들이 대문을 열고 나와서

그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했습니다.

그 다음날도...

관중들은 날마다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폭탄이 떨어진 그장소에

이 분은 14 일을 계속해서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14 명의 죽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서

14 일째가 되는 날, 그 사라예보에 그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꽉차게 모였습니다.

 

이 첼니스트는 사라예보의 도시에 있는

죽음의 영들을 살려 놓았습니다.

 

이러한 스토리가 이런 이야기들이

어려운 때에 이 공동체들이 같이 모여서

힘을 합치면 그런것 때문에 힘을 얻어서

그어려운 일들을 이겨나갔다

 

만약 혼자였으면

절대 그것을 못이겨 나갔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 어려운 시간들이

나에게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라예보 시민들은

유엔이 제공하는

맛이 없는 국수들만 매일 먹었습니다.

 

맨날 똑같이

맛이없는 하얀 국수만 매일 먹었습니다.

 

어 그런데 가끔마다

우리 이웃 중 한 사람이

화단에서 우연히 파프리카(피망)를 발견합니다.

 

그 집 엄마가 그 풀(파프리카)를 발견해 갖고

그것을 잘라가지고 와서

이 하얀국수 위에다 뿌렸습니다.

 

새로운 색깔이 있어 가지고 너무 좋아가지고

주민들을 다 초청해서 나눠먹었습니다. (콩 한쪽도 나눠먹었다는 뜻)

 

그런데 어떤 여자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참 너무나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기가 있었는데

어떻하든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4년동안 난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시 난방인데, 전쟁 중이니, 도시 중앙 난방공장이 일을 안 한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땔감이 다 떨어지니까

집에 있는 가구들을 다 조각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어린 아이를 따뜻하게 하기위하여 가구를 태워서 난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얼마 안 지나서가구도 다 떨어져가고

그래서 꼼짝 없이 얼어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느날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

누가 와서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이웃이 뭔가 들어 온건데 큰 것을 들고 왔다는겁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얘기합니다.

 

이 이웃 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깥에 나갔다가

땅에 묻혀있던 나무뿌리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파가지고 큰 뿌리를 땔감으로 가지고 온 거에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이것을 태울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내인생에 여태껏 받아보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선물! 

그 어떤 것 다합쳐도 그 선물만큼 의미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 그래서 지금도 아직도 자기 집 거실에는

자기가 어려웠을때 자기를 도와줬던 그 마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 나무뿌리를 아직도 고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서로을 위하여

이와같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고통 가운데 있게된다면

교훈이 있습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십시오!"

 

공동체의 그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수술을 하게 된다면

그때 여러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면

그 수술 후 회복하는 시간이 더 빠르다는 겁니다.

 

뭐 굉장한 능력이 나타나서 그런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공동체안에 있다면

치유가 회복이 빨리된다고 합니다.

외로운 혼자인 환자 보다요!

 

정서적 안정과, 외로움의 극복,

교우들이 와서 전해주는 따뜻함과 그들의 진심어린 기도,

이런 것들이 다 쾌유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어느 공동체에 속해있는데

그 공동체가 당신이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

당신 집의 자녀를 우리가 돌보아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음식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음식을 해주겠습니다

 

그다음에 당신의 강아지나 고양이,

이런 애완 동물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 돌 봐 줄께요

 

여러분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몸에 있는 모든 힘을 가지고

병을 회복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라예보에 있을때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을 통해서

"내가 고통받을 때 어디 계셨습니까?"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았습니다.

 

답은 '우리가 고통받았을 때 하나님은 공동체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가운데 살고 있다면

우리는 "내가 고통받을 때 하나님이 어디 계셨습니까?"라는

이러한 질문은 안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하나님의 거하시는 것을 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지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그 마음을

우리 공동체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친구가 있는데

자기는 부메랑 기도를 한다는 거예요

 

부메랑이 뭔지 아십니까?

공을 던진다든지 누구랑 원반을 던질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들이 부메랑을 던지잖아요

그건 날아갔다가 휙 돌아서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저기 A 집사가 있습니다.

지금 그 집이 큰 일을 겪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음식을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 A 집사를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종종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마치 부메랑처럼 

"그럼 네가 가서 좀 도와줘라!" 하고 내게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공동체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떠한 모습인지 보고싶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보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제가 2012년에 일본에도 갔고 그 다음에 사라예보에도 갔고

그 다음 마지막 한군데 가서 고통에 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그 세 번째 장소는 미국의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 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지만 19세 된 젊은이가

정신이 이상해져 가지고 자기 엄마를 총으로 쏴 죽이고

그리고 학교에 가서 6~7살 난 아이들을 26명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그 도시에 있는 목사님이 제발 부탁이니 우리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해달라!

  

 

"내가 고통받을 때에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그 제목으로

당신이 오래전에 쓴 책이지만 좀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뉴타운에 갔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3일 후였습니다.

피해 당한 어린 아이들을 추모하는 그런행사들이

그 도시에 있었습니다.

 

너무 우울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아침에 학교를 보냈을때

아이들에게 키스를 해주고 사랑으로 보냈는데

오후에는 가서 피에 젖은 죽은 몸을 안고 울부짖는

그런 부모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무신론도 믿고, 타종교도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정말 힘들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신부님과 목사님들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한 번 생각을 해 봤어요

만약에 무신론 철학자가 와서

그 유명한 무신론자들,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여기에 와서 

이 부모님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잔인한 세계이니까

여기에 대해 익숙해져라!'  

 

'당신의 잃어버린 아이는 다시는 보지 못할거야

그러니까 빨리 잊어버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원래 그런 세계야!'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다른 시각이 있습니다.

위로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 부모님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확실하게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하신 말씀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너희를 위하여

더 좋은것을 예비하기 위하여 이곳을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사랑의 하나님 품안에 있으며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언젠가는 다시 또 만날것입니다.

이것이 위로와 소망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이 그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는것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는 탄식하는 사회다

 

엄마가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

애를 낳는것은 너무나도 아픈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구속 redemption)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세상을 좋게 만드실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는 탄식과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픔도 없고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삶속에서 나쁜 사건들이 일어나도

사도 바울은 이것이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단어는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재활용 recycle'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재활용 잘하는것 같아요

   

근데 저는 이 말이 너무 좋아요

하나님이 재활용하시는 것을 너무 좋아합니다.

 

본문 롬8장에 나오는 '구속'이란 말은

다른 말로 '재활용'입니다.

 

 

우리가 쓰레기같고 사용가치가 없는것을 가지고

우리가 상상도 할수 없는 그런 물건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재활용된 사도 바울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삶속에서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모든 고통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나하나까지도 들어서 좋은 것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로마서 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겪었던 고통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뱀에게 물렸고 배가 침몰하고 있는 사건도 있었고

채찍도 맞는 사건도 있었고 감옥에 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로마서 8:28절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것을 가지고

선하게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갈때

이것이 하나의 보청기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2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이세상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 보청기를 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이 고통을 가지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없었던 그것을 가지고 새롭게 사용해봐야 하겠다.'

라고 보청기 스위치를 켤 수도 있습니다.

 

▲2007년 전에 저도 이러한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오셨던 분들은 제가 차사고 난 사건들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밤중에 콜로라도 가다가

얼음을 얼음덩어리를 밟는 바람에

차가 5번이나 돌았습니다.

차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고 대파되었습니다. 나중에 폐차되었습니다.

 

차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이

저를 엠브란스 구급차에 실어서

그 다음에 작은 도시에 데리고 왔습니다.

거기에서 제 인생의 가장 긴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병원 침대에 묶여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들어왔습니다.

 

의사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얀시선생님 당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 그래요? 나쁘네요'

 

그는 이어서 말하길

'이 결과가 좋을수도 있고 나쁠수도 있는데

나쁜것은 가장 큰 동맥 옆에서 뼈가 뿌러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뼛가루가 동맥으로 들어가면 당신이 곧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얀시)가 '오 그래요 진짜 나쁜 소식이네요'

  

 

'우리는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되면

당신을 비행기에 태워서

근처 큰 도시의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갈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과 나만의 이야기인데

혹시라도 동맥에 이게 들어가서 피가 새면

당신은 덴버까지 못가고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오늘 밤에 당신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제 핸드폰 줄테니까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하십시오!'

하면서 자기 전화기를 제게 건네 줍니다.

 

저는 그냥 침대에 묶여있는 채로

'이제 5분 밖에 살수 못 살수도 있구나!

 

그러니까 이 5분을 귀하게

잘 사용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상황속에서는 진짜 같이 보낼수 있는 시간이

질문은 3가지 였습니다.

 

1)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마지막 순간에 이 전화기를 가지고 전화하라는 거예요

'내가 누구한테 전화를 할까?'

 

2) 그 다음 생각은, 내가 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느냐?

 

3) 나는 지금 앞으로의 사건이 무엇인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이지요

 

이 세상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3가지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너무 시간을 많이 투자합니다.

-은행에 돈이 얼마가 있고

-내가 책을 몇권이나 팔았고

 

그러나 만약에 내가 지금 죽는다면

이런것은 중요한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어떤 차를 타고있습니다.

그날 제차는 완전히 폐차가 됐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무슨 자동차를 탔느냐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행히 저는 살아났습니다.

이제 저는 이 3가지 질문에 대해서

저는 남은 제 삶을

여기에다 집중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내가 어떠한 삶을 살고있으며 살았으며

그 다음에 세계를 내가 지금 준비가 되어있냐는 겁니다.

 

저는 그 사고난 날의 경험이

제 삶속에 너무나도 중요한 변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아주 크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 문제들이

사실은 제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의 부부 생활속에서도

참 제가 중요시 여겼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그 (임종) 당시에 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결과적으로 저는 죽지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목에 기브스 같은것을 하고 살다가

지금 여러분 앞에까지 왔습니다.

 

지금 저는 살아있다는 것을 너무 실감하면서

은혜의 시간을 이제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세요 구름을 보세요 이 풀들을 보세요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가 평상시에 별로 한참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것들도

죽음의 앞에 있다 돌아오며는 모든게 다 소중한 것입니다.

 

 

만약에 나쁜일이 일어났을 때

보청기의 그 볼륨을 소리를 크게하라는

이런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과적으로

다시 죽은 사람도 살리실 것이고

그리고 이세상도 새롭게 만들어 주실겁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재활용의 탁월하신 전문가이십니다.

이분에게 우리는 소망을 가질수 있습니다.

 

삶의 고통은.. 우리가 원치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일을 가지고서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선한 것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야곱이 이제 레슬링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사와 함께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천사가 "제발 나 좀 나줘라!"

"나를 축복하기 전에는

내가 절대로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사는것을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말로 싸우는 것은 괜찮은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이러한 내용이 시편에는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놓치 않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축복하기 전에는 내가 놓치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 재활용의 대가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과 같이 더럽고 쓰레기 같은것을 가지고

좋은 것으로 만드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에게 물어봅니다.

 

영적으로 가장 많이 성장한 때가

언제였냐고 물어본다면

 

힘들고 어렵고 시련속에 있을때

그때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대부분들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재활용에 탁월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쁜것들을 가지고 좋게 사용할 수 있는것으로

만들어 주실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고통들 가운데서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없는것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태풍이 와서 회오리 바람이 와가지고서

한동네는 다 집어삼키고 한동네는 그냥 내버려 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른 배는 가라앉고 다른 배는 멀쩡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고통받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하면

 

1. 하나님께서는 항상 고통당하고 시련당하는

사람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예

  

 

2.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가운데 계십니다.

*사라예보의 예 

 

우리는 이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들로 살라는 사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소망을 가질수 있는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미국 뉴타운의 예

하나님은 반드시 구속하신다는 것입니다.

재활용하시고, 새롭게 만드신다는 소망입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시는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 사랑하는 공동체에

각 사람에게 건강을 허락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이것을 그냥 거저 아무 생각없이 받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못하지마는

어쩌면 참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속에 깊이 있는 고통들은

눈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자식들의 이름과 또한 깊은 우울증과

또 부모님의 아픔

이런것들은 보여지지 않습니다.

 

이 교회 이 공동체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

이러한 문제를 갖고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치유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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