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05일]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1~8)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yaL6o4kK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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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2장 1절로 8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367년입니다. 367년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면하시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이제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셨으니 너희가 참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니 그 징계가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아들이 아니니라. 아멘.
유명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여러분이 잘 아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명저가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그 속에서 절망의 정도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절망에 빠지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지요. 구제불능입니다. 자기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소망이 없는 거죠. 그다음 두 번째 사람은 절망을 깨닫는 절망. 자기가 소망이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고민해요. 이런 사람이 있고. 세 번째는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이 절망에서부터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절망이 있다. 이렇게 세 가지로 자세하게 그 책 한 권 전체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절망에 대해서는 키에르케고르가 단연 특별한 교사라고 우리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 가장 핵심되는 부분은 딱 한마디입니다.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했습니다. 절망의 원인은 믿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적 고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I and Thou'라고 하는 '나와 너'라고 하는 책이 있죠. 그 속에서 말합니다. 현대인들의 특징, 절망하게 되는 원인은 뭐냐?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깨어진 세계, 단절된 세계에서 산다. 하나님과의 단절, 이웃과의 단절, 아니 나 자신과의 단절.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 소외에 빠지고 자기 존엄성까지 완전히 부정해 버리고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회복, 그것만이 길입니다. 근데 그것이 가능하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서야 자기 자신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면 나 자신이 또한 그대로 절망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까지는 나 자신도 어떤 존재인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믿음, 이 소중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60년 동안 목회하면서, 설교하면서, 가르치면서 지내온 모든 세계의 제 경험의 가장 결론이 뭐냐 하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자리에서 설교를 들어도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고,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고 안 찾는 사람이 있어요. 역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그것을 자꾸만 계속 느끼고 확인하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서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 말씀 가운데 참 중요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 그분을 바라보자.
믿음의 주 이 무슨 말입니까? 아르케곤(ἀρχηγὸν). 그리고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 하는 말은 텔레이오테스(τελειωτὴν)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믿음의 주라는 말이 우리말로 말하면 '주인'이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인이라 하는 의미의 주가 아닙니다. 아르케곤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면 맨 먼저 배우는 게 **아르케(ἀρχή)**입니다. "만물의 아르케가 뭐냐? 만물의 근원이 뭐냐?" 만물에 대해서 그렇게 공부하지 않습니까? 아르케곤 그것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가 하면 텔레이오테스라는 말은 '완성자'를 뜻합니다. 완성한다. 그러니까 믿음의 주여 하는 말은 믿음의 시작이요 또 믿음을 완전하게 완성해 가신다. 그것이 주님이시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인이라는 말보다는 원조라는, 원천이라는 말이 가깝습니다. 또 시작이라는 말이요, 뿌리라는 말입니다. 뿌리, 근원이란 말이야. 믿음의 근원, 우리 믿음의 근원이 주님이십니다. 원조가 된다는 말입니다. 애당초 믿음의 시작은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내게서 출발해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려고 하는, 약하니까 강해져야 되겠다고 그저 나 자신의 욕구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페적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 시초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셔서 거기서 믿음이 성립이 됩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 믿음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자기 욕구에 의해서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보고, 뭐 전부가 에로스적인 겁니다. 아가페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 이것이 진짜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보세요,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선물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온전하게 하신다.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잘하게 하시고, 믿음을 훈련시키시고,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믿음을 온전히 하신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온전하게 하신다.
이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보세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닙니다. 자세히 봐야 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은 것이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우상을 많이 섬기는 마을에 사는 이 사람을 불러 가지고 "아브라함아!" 부릅니다. 그 부름 속에 사랑이 있고 믿음의 원초가 거기에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 시작이 하나님께 있어요.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런가 하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기는 했습니다마는 그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휘청했어요. 고향을 떠나서 할 가나안 땅을 주셨는데,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 그러면 아멘하고 거기서 흉년이 들든 풍년이 들든 견뎌야지요. 지켜야지요. 약속의 땅을. 그런데 몇 년 흉년이 들어 가지고 좀 어려우니까 다 거둬 가지고 하나님께 이렇다 하고 한마디도 한 거 없어요. 그냥 애굽으로 피난을 가세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버렸어요. 그로 인해서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말대로 말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버렸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4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는 해석을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겠지요. 그런가 하면 또 여기 여행하다가 좀 어려운 일 나가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하지를 않나. 더 그런가 하면 아니 하나님께서 분명히 내가 네게 아들을 준다 했는데 중간에 편법을 써 가지고 이스마엘을 얻었어요. 휘청휘청했어요. 그때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엄한 말씀이 떨어집니다. "아브라함아, 내 앞에서 온전하라!" 왜 그렇게 휘청거리느냐? 왜 믿음이 그렇게 흔들리느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지만, 말씀을 듣고 약속을 믿고 가지마는 여러분, 아브라함이 훌륭한 점은 그렇게 넘어졌다가도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면 아멘 받아들입니다. 벌써 이스마엘이 14살이에요. 벌써 이렇게 됐는데 자기 아내는 단산했고요. 아마도 이런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때에 내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 인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이제 그만합시다. 다 끝났는데요."라고 하겠지요. 아브라함은 아니 그래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리고 백 세에 아들을 낳아요. 이것이 믿음이요, 온전하게 하시는 믿음이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온전하게 하시는!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이제 완전한 믿음에 도달한 것을 인정하시고 믿음을 온전히 온전하게.
그런가 하면 한 사람만 더 예로 들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바울은 유대 사람들의 율법에 따라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바울을 만난 것이지요. 예수님이 바울을 부른 거예요. "사울아!" 하고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이렇게 이 시초가 하나님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울을 불러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도 아데네 갔을 때 옛날에 공부했던 헬라 철학이나 자기의 옛날의 모든 문화가 그냥 오면서 아덴에서 궤변을 늘어놓아요. 그래 가지고 전도에 실패합니다. 인간 지능, 인간 지혜, 인간의 논리에 취했다가 그만 실패하고 조용히 고린도로 피해 갑니다. 핍박도 없는데 거기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고린도전서 2장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심히 떨었노라." 그러나 "아니, 이제는 아니다.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노라." 기가 막힌 얘기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생각지 아니하기로 십자가 중심의 신앙으로 재무장을 합니다. 믿음이 승화됩니다.
그리고 그가 많은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 중심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마침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섭리 앞에 온전히 헌신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로마로 향해 갈 때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이 276명이나 탄 큰 배가 파손이 됩니다. 이 큰 고난이 파손이 되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적 섭리. 이렇게 됨으로 로마 선교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 276명이 전부 다 사도 바울의 전도사가 됩니다. 이래서 로마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 놀랍다! 이 고난 여러 날 동안이나 굶고 헤매던 그 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성공적으로 여기서 믿음이 새로워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디모데후서 4장에 가서 보면 "내가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내 앞에 면류관이..." 그는 감옥에서 아직 순교하기 전에 훗날 자기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을 바라보게 됩니다. 거기까지 여러분,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온전하게. 사도 바울의 믿음을 끝까지 그 과정 하나하나 이렇게 훈련을 시켜서 온전한 믿음에까지! 그렇습니다. 텔레이오테스(τελειωτὴν), 피니쉬(finish), 완성! 완성된 믿음에 도달하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가 본문에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시작이요, 원천이요, 믿음의 과정이요, 믿음의 완성인 온전하게 하시는 이 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면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자랍니다. 병든 믿음이 치유가 됩니다. 약한 믿음이 강해집니다. 잘못된 믿음이 수정됩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도록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우리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어려움, 모든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믿음을 온전하게! 왜냐하면 믿음만 중요하니까. 끝까지 재산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 건강도 중요하지 않아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그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주 예수를 바라보세요. 오늘도 바라보세요. 그러면 내 믿음이 점점 온전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주여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에도 저희들을 불러주셔서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시며, 잘못된 믿음을 고쳐주시며, 넘어진 믿음을 일으켜 주시며, 방황하는 믿음으로 하여금 새로운 정로를 찾게 해 주시는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그 예수를 오늘도 바라보면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고, 날마다 성장하게 하시고, 날마다 온전함에 이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상세 요약: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8 강해)
이 글은 히브리서 12장 1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믿음의 근원과 완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으며, 우리가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분을 바라봐야 한다는 핵심 내용을 구체적으로 강해하고 있습니다.
1. 📖 본문 말씀: 히브리서 12장 1-8절
- 경주와 인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생각하며,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해야 합니다.
- 예수님을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으며,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 징계의 의미: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해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는데, 이 징계는 우리가 아들됨을 증명하는 것이며,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아들이 아님)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경히 여기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2. 🤯 키에르케고르의 '절망'과 '신앙'
- 절망의 세 가지 유형: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명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나오는 절망의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하며, 가장 무서운 것은 절망하고 있음을 모르는 절망이라고 설명합니다.
- 절망의 반대: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정의합니다. 절망의 근본 원인은 믿음 문제입니다.
- 현대인의 절망 (마르틴 부버):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I and Thou)'를 인용하여, 현대인의 절망은 하나님,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단절(깨어짐)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3. ✨ 믿음의 주와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 믿음의 길: 결국 믿음의 회복만이 유일한 길이며, 하나님을 믿을 때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을 인용하며, 목회 경험을 바탕으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 예수님의 두 가지 역할:
- 믿음의 주 (ἀρχηγὸν, 아르케곤): '주인'이라는 의미보다는 **'원조', '원천', '시작', '뿌리', '근원'**을 뜻합니다. 만물의 근원인 '아르케'처럼, 믿음의 시작이 그리스도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참된 믿음(아가페적 신앙)은 사람의 욕구(에로스적)가 아닌,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과 부르심에서 출발합니다.
- 온전하게 하시는 이 (τελειωτὴν, 텔레이오테스): **'완성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훈련시키고, 강하게 하시고, 완전하게 완성해 가시는 분입니다.
4. 🏃♂️ 믿음의 완성 (텔레이오테스)의 예시
두 인물을 예로 들어, 믿음의 시작과 온전함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 아브라함:
- 시작: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써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 휘청거림과 징계: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피난,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편법으로 이스마엘을 낳는 등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고 흔들렸습니다.
- 온전케 하심: 창세기 17장에서 "내 앞에서 온전하라!"는 하나님의 엄한 말씀을 듣고, 100세에 이삭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아멘으로 받아들여 믿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 "이제야 내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는 인정을 받으며 완전한 믿음(온전함)에 도달했습니다.
- 사도 바울:
- 시작: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바울을 부르심으로써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 인간 지혜의 실패: 아덴(아테네)에서 헬라 철학과 인간 지혜에 취하여 복음 전도에 실패하고 고린도로 피합니다.
- 온전케 하심: 고린도에서 깊은 고민 끝에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며 십자가 중심의 신앙으로 재무장합니다. 수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섭리를 깨닫고 믿음이 더욱 새로워집니다.
- 완성: 디모데후서 4장에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내 앞에 면류관이..."라고 고백하며, **완성된 믿음 (피니쉬)**에 도달했습니다.
5. 🎯 결론: 예수를 바라보자
- 믿음의 성장과 치유: 믿음의 시작이요, 과정이요,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병든 믿음이 치유되고, 약한 믿음이 강해지며, 잘못된 믿음이 수정되어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 최고의 가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재산이나 건강이 아닌 '믿음'뿐이며,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 권면: "믿음의 주여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오늘도 바라보면서" 날마다 승리하고 성장하며 온전함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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