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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 나갈만한 자 민1:1-54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민1:2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의 수를 계수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조사는 바로 군대조사인 것입니다.
왜? 인구조사를 하라고 합니까?
광야생활과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출12:41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의 군대’로 나왔다고 합니다.
‘군대’이니, 인구조사는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적으로도 교회를 전투적 교회라고 합니다.
세상과 악한 영들과 싸우는 전투적 교회만이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 종족과 가문을 따라 계수하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민1:2
‘종족과 가문에 따라’ 민1장에서 13번이나 나오는 말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군대로 출애굽 했습니다.
군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소속입니다.
소속이 없는 군인은 군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속을 분명히 하는 이유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질서가 없는 군대는, 싸움에서 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해군이 강했던 것은, 일사분란하게/질시있게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질서 있게 움직여야, 무서운 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2. 20세 이상으로 계수하라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대로 계수하되 민1:3
20세 이상은 성인들을 말합니다.
아무리 영특해도 어린아이는 싸울 수 없습니다.
영적 싸움은 신앙의 성숙한 자들의 몫입니다.
이십 세 이상 남자들은
애굽에서 종노릇 하면서 억압과 채찍 속에 고난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딤후2: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하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더 강건해 지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이 성숙치 못한 교인들은
영적 싸움에 임하기 전에 자기들끼리 싸웁니다.
오늘 교회 현실을 보면
성숙치 못한 교인들 때문에 교회 안에서 싸웁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마귀와 싸우기 위하여
신앙적으로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싸움에 나갈 만한 자’
‘싸움에 나갈 만한 자’란 말이
민수기 1장에서만 13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여
광야의 행군 시와 가나안 정복 시에 전쟁에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백성의 수에 들어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싸움에 나갈 만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해야 합니다.
군 입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싸우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합니다.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우울증 열등감 상처 있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잘 다투는 사람
다 신앙적으로 건강치 못해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영적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고전16:13
그런데 신20:5절 이하에 보면 싸움에 나가지 말아야 할 자를 언급합니다.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어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
왜?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는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딤후2:4절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그리고 두려워하여 마음이 허약한 자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까지 낙심케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삿7장에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전쟁하기 위하여
기드온 300 용사 뽑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드온이 깃발을 드니 32,000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수가 많으니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함이라.
그래서 22,000명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서 두려워하는 자 다 돌아가라고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까지 낙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안에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얼마나 되나? 보십니다.
오늘 교회 안에 싸움에 나갈만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백성의 수에 들어오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럼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영적 싸움은 바로 기도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출17장,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산위에 선 모세의 모습에서 잘 보여 줍니다.
모세의 팔이 들리어 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팔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바로 모세의 팔 기도의 팔입니다.
기도하는 교회만이 세상과 마귀와 싸우는 전투적인 교회입니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자입니까?」에서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이런 말을 썼습니다.
“오늘 현대 교회의 모든 문제는 교회가 탁아소가 된데 기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를 양성하는 영적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교회라는 요람에 가두어 놓고
우유만 먹이는 탁아소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에 영향을 기치는 스피릿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무서운 핍박과 악조건 속에서도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행4장과 12장에 보면
산헤드린 공회가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촛불 시위 하지 아니했습니다.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영적 전투를 치룬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싸우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안전한 가운데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생명력을 상실하고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유럽이나 미국 동북부로 가보면
목사로서 너무 안타까운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마을의 요지에 큰 건물들이 너무나 눈에 익은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면 100년이 넘은 교회들로서 호텔 아파트먼트 쇼핑센터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레스토랑으로 변모해 있습니다.
한 때는 다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 모였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안정된 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교인들은 떠나가고
도저히 건물 유지가 안 되어 교회가 문을 닫은 것입니다.
유럽 교회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싸움에 나갈 만한 자>의 수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20세 이상 남자 중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을 계수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4. 각 지파의 우두머리 한 명씩 너희와 함께 가라고 합니다.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하라 민1:4
그리고는 5-15절 까지
각 지파의 우두머리 이름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족장들이 자신의 지파의 인구수를 계수하여 신고하였습니다.
족장이 바로서야 공동체가 건강해 집니다.
교회는 직분자 특히 장로님들이 바로 서야 그 교회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소그룹의 지도자들
우리 교회의 경우 순장들이 바로 서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 족장들의 이름에 ‘엘’ 이란 말이 붙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파의 족장의 이름에 ‘엘’ 이란 말이 나옵니다.
엘리술-하나님은 반석, 수르미엘-하나님은 평화, 느다넬-하나님이 주신다.
엘리압-하나님은 아버지, 가말리엘-하나님은 나의 보수
엘리아삽-하나님이 더하신다. 아히에셀, 바기엘 등입니다.
즉 누가 교회 지도자냐? 지도자가 뭣 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 보여주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우리 직분자들 특히 우리 순장님들은 순원들 보기에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리더가 되시기 바랍니다.
각 지파의 수령들이 즉각적으로 인구조사를 하여 모세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후략)
<08.10.26. 김성덕 목사님 설교 스크랩 *원제목 : 싸움에 나갈만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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