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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상과 동시에 천상에 존재하고 있다 계4:1-11, 21:2

by 【고동엽】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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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상과 동시에 천상에 존재하고 있다     계4:1-11, 21:2      출처보기  

*원제목 : 하늘에 있는 나를 보자

 

◑‘지상의 교회’ 위에 ‘천상의 교회’가 지금 존재합니다.

 

우리는 보통 천국을 앞으로 다가올 일로

곧 우리가 죽은 다음에 경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믿음생활의 대가로, 상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이런 것을 의식하고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의 무의식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자리 잡고 있음을 봅니다.

 

이렇게 현재 <지상의 교회>만 생각하고,

<천상의 교회>는, 죽은 후의 까마득한 미래 일로만 생각하고,

아예 <천상의 교회>에 대해서는, 현실에서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예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아주 ‘현실에 충실한 신자’로 살아가는데요...

성경은 우리에게

‘지상의 교회’와 동시에, 지금 현재 하늘에 ‘천상의 교회’가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아래에서 그 성경적 근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교회’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성도 각각 개인이란 의미의 ‘교회’로.. 둘 다 의미합니다.

 

▲1. 계4장의 사도요한의 증거

 

오늘 우리가 다루는 본문은 계시록 4장입니다.

계시록 4장과 이어지는 5장의 두 장에 걸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요한이 본 하늘의 성전에 대한 환상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에 관한 내용과 대비가 되고 있습니다.

곧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는.. <지상의 교회>를 말하며,

4장과 5장의 환상은.. <하늘에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이 두 교회를 연이어 말함으로써

지금 사도요한은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를 대비하여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은 지상의 교회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천상의 교회를 또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앞으로 불러내어진 성도 여러분이 바로 지상의 교회인데,

그에 상응하는 천상의 교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그는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은 없지만

성경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이미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부활할 때, 또한 우리도 함께 부활하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지상의 교회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천상의 교회에 속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 우리는 한편 이 땅에서

비록 마귀의 권세와 싸우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고통 받는 교회로 있지만,

동시에 천상에서는 승리한 교회로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존전에 있다는

놀라운 이상을 요한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이를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결국을 보여줌으로써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천상의 성전은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으로 인해 얻게 된, 우리의 최종적인 위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현실에서 말입니다.

 

▲2. 사도바울의 증거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바울은 직접적인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엡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골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바울은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고, 함께 하늘에 앉아있다고

분명하게 우리의 천상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영원히 이 땅의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곧 이곳은 잠깐 있을 나그네의 곳이고,

우리의 유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 유대에는 ‘쿰란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들은 오늘 메시지와 같이 자신들이 천상에 있음을 온전히 믿고 또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신앙은, 이 땅에서의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신앙보다도, 더 성도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3. 계시록 21장의 증거

 

계시록 21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여기서 새 예루살렘은, 교회 또는 신부를 말하는데

그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가 하늘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의 성전에 있는 24장로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본문 계4장에는, 하늘의 성전에는

천상의 교회를 나타내는 24장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본 환상을 유대 묵시문학의 형식을 통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또한 상징(묵시)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24장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4절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 24보좌가 있으며

그 보좌들 위에 24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천상에서의 교회의 위치와/ 상태와/ 영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징적으로 표현된 이 24장로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전체 곧 교회를 상징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사들이 보좌에 앉거나, 면류관을 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천상의 모습을 보면, 천사들이 나오지만,

천사의 기본은 ‘부리는 영’으로서 그들이 영광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보좌에 앉거나(4절), 면류관을 쓰는 영광은(4절)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만 (즉 24장로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2. 역대상 24장을 보면, 이 땅의 제사장 계열인 아론의 24반차가 나옵니다.

 

“이와 같은 반차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희 조상 아론에게 명하신 규례대로 수종들었더라” 대상24:19

 

지금 계시록 4장에서 환상 가운데 보여주는 광경은

바로 이 말씀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모든 믿는 자가 제사장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4장로는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총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지상의 교회’와 대비되는, ‘천상의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24’라는 숫자는 ‘12’라는 숫자가 두 개 합하여 된 수이며,

성경에서 ‘12’는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24’는 구약의 백성 전부를 상징하는 12지파와

신약 백성의 전부를 상징하는 12사도의 합을 나타내고

이는 곧 24장로가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또한 계시록 5장 9절에는 24장로들이 하나님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후

그들의 기쁨을 여호와께 노래한 것과 연결됩니다.

 

이제 영원하고도 완결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곧 24장로가

하나님께 ‘천상의 교회’에서 ‘새 노래’로 부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지금 우리는, 마음에 원함은 있으나 원치 않은 것에 이끌리는

자신의 모습을 애통한 마음으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현실, 곧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연약하지만

천상에 있는 나는 그 모든 약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해서는 안 되며 인내로 오늘을 견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승리한 싸움을 이 땅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만 받았다고, 무조건 다 천상의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고,

이 현실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싸우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성도만.. 천상의 교회에 참여할 것입니다.

 

 

◑적용

 

▲1. 천상의 교회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 우리는 한편 이 땅에서

비록 마귀의 권세와 싸우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고통 받는 교회로 있지만,

동시에 천상에서는 승리한 교회로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존전에 있다는

놀라운 이상을 요한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이를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우리의 결국을 보여줌으로써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위로하기 위한 것입니다.

 

천상의 성전은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으로 인해 얻게 된 우리의 최종적인 위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천상의 교회를 보면서, 용기와 격려를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이 2-3장에서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를 말하는 일곱 교회는,

칭찬받을 만한 것도 있었지만, 여러모로 책망 받을 일이 많은 교회들이었습니다.

 

연이어 계4-5장에서 천상의 교회를 보여준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미 성취된 교회의 영광스런 모습을

오늘을 사는 교회에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이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늘에 거하는 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언제나 땅으로부터의 공급으로서가 아니라, 하늘의 공급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늘의 임재로, 이 땅에 발을 디뎌야 함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육신의 눈으로 제한된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그에 걸맞게, 명예와 품위를 갖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고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우리의 천상의 위치를 분명하게 볼 때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은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늘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요한처럼 직접 환상을 보진 않았으나

우리는 말씀을 통해 그 환상을 믿음으로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늘 희망과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이 땅을, 곧 지상의 교회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막연한 희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진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3. 천상으로부터, 능력을 공급 받읍시다.

 

우리는 천상의 교회의 것을 이 땅에 가져와서, 살아내고,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천상의 것이 이 땅에 연결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늘에 속한 사람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이 되길 원하시는지요?

 

▲4.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삶 가운데서 가까운 분의 죽음을 목도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와 똑 같이 죽음을 목도하게 되지만

거기서 지혜를 얻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머지않은 시간에, 피할 수 없는 실존으로서 다가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너무 늦은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살면서, 늘 내 소속이 천국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때 막상 임종의 시간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늘 천국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 육신의 장막을 벗고, 속히 천국에 가는 것을, 그 임종의 때에 더욱 사모할 것입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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