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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해야하고, 안 하면 염려해야 할 일 마18:23~35

by 【고동엽】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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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해야하고, 안 하면 염려해야 할 일    마18:23~35         11.07.03.설교녹취

 

네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18:33

 

 

◑서론

 

▲‘성도의 교제’가 매우 중요하다.

구약에 예배 중심지는 성전이었다.

성전에는 제사, 예배가 그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를 세우시면서 주님은 그들을 ‘제자’라고 부르셨다.

 

구약 히브리 백성들은 ‘예배자’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세웠다.

그렇지만 신약에서는 백성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그래서 그 신약교회의 핵심은, 성도의 교제 fellowship에 있다.

 

하나님은 ‘교제’를 통해서 우리들을 제자로 만들어 가신다.

그것이 바로 신약교회의 본질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도, 12명이 필요했다.

12명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다.

베드로 한 명 갖고는 안 되며, 바울 한 명 갖고도 물론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각기 은사가 다른 여러 지체가 필요한 것이다.

 

주님은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윗, 다니엘 등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 받은 은혜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그들과 교제함으로써.. 우리가 온전하여 진다.

 

▲교제하면서 가까워지다 보면.. 싸움이 생긴다.

그런데 목회를 하다보면,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지게 되면 거의가 시험에 든다.

그래서 교인들이 서로 가까워지면, 목회자가 심히 불안해 진다.

성도들이 너무 가까워지다가, 서로 싸움 난다.

그래서 가까워지는 교인들을 볼 때, 저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여러분, 부부도 보시라.

연애할 때보다, 일단 결혼하면 초기에 서로 더 싸운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교회생활 하다 보니까, 가장 근본되는 키워드가 - 용서이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나 용서를 받아야 될 사람임을 절감하고,

또 내가 용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본론

 

▲사람은 근본적으로 ‘용서를 받아야 사는 존재’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했다.

‘도대체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되나요?

한 7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

 

그때 예수님의 답변은,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마18:22

 

예수님과 베드로는,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그 관점이 달랐다.

베드로의 생각에는, 사람을 7번 정도 용서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 사람이 7번 정도 용서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그런데 예수님은, ‘70번씩 7번정도 해야 될 걸!’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베드로와, 예수님이 보시는..

사람 보는 시각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10달란트와 1만 달란트.. 1천 배 차이

주님은 이어서 ‘1만 달란트 빚진 자 예화’를 말씀하셨다.

왕이 1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을 용서했다.

 

마25장에 예수님이 달란트를 주실 때, 각자에게 1, 2, 5달란트를 주셨다.

나중에 갑절로 되받아도, 최고로 10달란트를 받았다.

 

우리가 평생 살아도, 1달란트를 경영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중 최고로 잘 경영해서 사는 사람은, 10달란트를 경영해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일평생 자기 역량/은사/능력/지식/재물이..

아무리 그게 많아도, 모두 10달란트 이내란 말이다.

 

그런데 용서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1만 달란트이다.

그만큼 우리의 죄짐이 무겁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생 이룬 업적은, 많아야 최고 10달란트이고,

그런데 갚아야 될 죄의 빚은, 1만 달란트나 된다.

 

여러분, 지금까지 인생을 사시면서

돈 벌고, 업적 쌓는데 평생 들어간 에너지가, 다 합치면 많아야 10달란트인데,

그 와중에 우리가 죄를 지은 값은, 용서를 받아야 되는 값은

1만 달란트나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시기 바란다.

 

▲천국의 본질은 ‘용서’에 있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말씀이다.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 회계하려고 하는 임금과 같다고 했다.

-이 말씀은, 천국의 본질은 ‘용서’에 있다는 것이다.

 

천국은, 용서받는 곳이다. 천국은 능력이 아니다.

현재 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가다가, 자기에게 조금 빚진 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1백 데나리온(약 3달치 임금)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고,

관청에 고소했다.

 

‘그를 다시 옥에 가두어라. 그리고 1만 달란트 전부를 갚기 전에는

절대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의 관계이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1만 달란트를 용서 받아야 될 사람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구원 받기 어렵다.

 

여러분이 듣기 싫어도, 또는 기분 나빠해도,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여러분이 듣기에 상처 안 받게, 기분 안 나쁘게,

말을 부드럽게 설교하려고 해도,

‘1만 달란트 빚진 자’ 그 죄짐이 무거운 것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

 

우리가 일평생 최선을 다해 이룰 수 있는 일, 그 10달란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무게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지옥을 산다.

최근에 인터넷에, 안젤리카 라는 남미 아이의 동영상이 있다.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다. 그가 엄마 앞에서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

그 어린아이가 놀란 것은,

지옥에 온 가장 많은 사람들의 부류는.. 살인죄, 간음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환상과 체험을 다 믿지는 못하지만, 이것은 성경과 일치하는 환상이다.

 

사탄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너무나 쉽게

그렇게 큰 죄가 아닌 것처럼 위장해서, 지옥으로 데려간다.

 

여러분,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용서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지금 현재 지옥을 살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 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그러한 마음 상태에 있는가?

그것이 바로 현재 지옥을 사는 것이다. 장래에도 지옥 간다.

 

▲주기도문에서도, 가장 강조된 것이 ‘용서’이다.

마6장에 주기도문이 나오는데,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우리가 평생을 기도할 내용을 가르쳐 주셨는데,

 

마6:9~13에서, 주기도문을 다 가르쳐주시고,

마치고 다시 한 번 중요한 내용을 복습해 주셨는데, 그것은 딱 한 가지 - '용서'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우리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구원 못 받는다, 지옥 간다는 말씀이다. (위 소년의 환상과 일치한다.)

 

▲주기도문에 ‘죄’는 원래 ‘빚’이다.

그래서 원래 원어적으로 주기도문을 읽으면

‘우리가 우리에게 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을 탕감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된다.

 

이것은 정확하게 우리가 지금 읽은 본문, 마18장 예화에 나오는

바로 그 단어다. ‘1만 달란트 ’                 *헬, 오페이레

 

주기도문에는 원래 ‘죄’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빚’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것은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얼렁뚱땅 못 넘어간다는 것이다.

 

저는 젊어서, 우리 부모님이 사업 실패로 빚진 적이 있었는데,

온 가족이 거의 죽는 줄 알았다.

잠을 편히 못 잤다.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여러분, 그러므로 마6장의 주기도문을 읽거나 기도하실 때에는,

마18장 본문을 같이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같은 ‘빚’(오페이레)이란 단어가 쓰였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아버지께서도 내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신다.

 

여러분, 누구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관계에 있어 보셨는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 있을 수 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생기는가?

그것은 내가 주님께 어떠한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주님께 용서 받았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지금 누군가를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머리로만 용서는 안 된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이렇게 마친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네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35

 

머리로만 용서하면 안 된다

중심이란 ‘심장’인데, 다른 뜻으로는 사람 속의 센터 center 이다.    *헬, 카르디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지 않으면,

주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우리 인생의 딜레마는,

나는 분명히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되는 사람인 줄은 아는데,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평생을 돈을 벌고, 업적을 쌓은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내가 남을 용서하는 일이다.

 

▲내가 기준이 아니고, 상대방이 기준이다.

마5:23~24에

‘너희가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너는 예물을 내려놓고, 먼저 그 사람과 화해하고 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말 성경에 번역이 모호한데,

‘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한글성경에 주어는 ‘너’이다.

그런데 원문 성경에 주어는 ‘너의 형제’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아니라

그 형제가 생각하기에, 내가 그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 이다.

기준이 자기가 아니라, 그 형제이다.

 

‘네 형제가, 너를 원망할 일이 있다면,

너는 예배와 예물을 내려놓고, 먼저 그에게 가서 원망을 풀라’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 그 사람, 속이 되게 좁네’

 

그런데 주님은, 화해할 기준이

그 ‘속 좁은’ 형제란다.   물론 진짜로 그가 속 좁은 것은 아님.

 

▲급히 해야 하고, 안 하면 내가 염려해야 할 것      ←

설교문 제목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화해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5:25

 

함께 있는 동안에, 화해해야 한다.

여러분 화해는, 급히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암에 걸린 사실이 발견되면, 급히 조치를 취한다.

수술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조치를 조속하게 취한다.

 

그런데 인생의 가장 큰 암은 ‘용서’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요, 또한 ‘용서룰 구하지 않는 마음’이다.

 

성경은 ‘급히 화해하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이것을 염려하라’고 말씀한다.

 

여러분, 성경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단 한 가지, ‘이것을 염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염려하시기 바란다.

 

먹고 사는 것을 염려하지 마시고,

용서 받아야 할 일,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은.. 염려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용서는, 완전히 용서할 때까지, 계속 용서할 일이 생긴다.

역도 운동을 예로 들면,

1차 도전에 실패하면, 2차 도전도 있고,

또 다른 시합에 보면, 3차 도전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도 마찬가지다.

그 시험을 내가 완전히 이길 때까지, 합격할 때까지,

계속 내게 시험이 찾아오는 면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합격시키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용서의 예를 들면,

내가 완전히 용서할 때까지, 용서할 일이 계속 내게 찾아온다.

1차에 실패하면, 2차, 3차 계속 찾아온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나, 어떤 애인을 용서 못한 사람은,

결혼 한 후에도 자기 배우자를 용서 못 하는 것이다.

결혼 후에, 2차 시험이 또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것은 정확한 사실은 아니라 추측인데,

요셉도 또 용서할 일이 찾아왔다.

처음에 형들이 용서되지 않아서, 보디발의 집에서 무척 갈등했는데,

이제 또 용서할 일이 찾아왔다.

감옥에서 보디발의 아내를, 보디발을 용서해야 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기 전에, 감옥에서 먼저 ‘용서의 총리’가 되었다.

만약에 요셉이

감옥에서 ‘용서의 총리’가 되지 못했더라면,

‘애굽의 총리’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 운이 좋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더라도,

그가 용서를 배우지 못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오래 못 버티고, 쉽게 낙마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러분도, 세상에서 어떤 성공의 자리에 이르기 전에,

요셉처럼 먼저 ‘용서의 총리’가 되시기 바란다.

그러면 다른 일도.. 다 잘 될 것이다.

 

▲우리는 남에게 용서를 받고는 싶은데,

다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는 것은, 다들 힘들어 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만한 신앙은 있는데,

용서해야 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에게 나아갈만한 신앙은 없다.

이 감옥에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주님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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