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05일]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1~9)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WB5Wq69tJ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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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5장 1절로 9절 말씀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149면입니다.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이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라.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아멘.
이스라엘을 400년 애굽 노예 생활에서 구출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 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위대한 지도자요, 믿음의 사람이요,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비스가 산 언덕에 올라가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저 앞에 있는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면서 그리워했습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데 아직 그러한 여건이 되지를 못해서, 또 하나님의 허락이 있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 바라보면서 점점 나이가 많아지는 것도 느끼고 쇠약해지는 것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아주 절절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못내 잊지 못하는 저 가나안 땅, 온 백성이 함께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죽기 전에 나라도 아주 정탐꾼처럼 좀 들어가서 저 가나안 땅을 발로 밟고 한번 다녀보고, 그리고 돌아와서 지상을 마치고 싶은데 하나님, 어쨌든 저 가나안 땅을 한번 들어가 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십니다. 늙어서 쇠약해져서 모세가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모세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도자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심판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절망하고 불신앙적으로 저주했느니라."
여러분,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이렇게 큰 죄가 됩니다.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으므로 원망을 합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 속에 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었어요. 그분들이 농사하고 산 게 아니에요. 40년 동안 전혀 농사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고 살았어요. 근데 잠시 지금 물이 없는 거예요. 물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고 이렇게 소란을 떠는 그런 장면에서 모세가 잠깐 돌아섭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그리고 반석을 치고 혈기로 두 번 칩니다. 이 사건이 죄가 돼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비참한 얘기입니까? 그래서 그는 비스가 산 언덕에서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기만 하고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이 사건은 아주 충격적입니다. 여러분,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 심리학자요 상담가인 데이비드의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파탄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심리적 무기이다. 곧 절망이다."
절망하게 되면 자기 자신이 가진 소중한 재능을 발굴할 수가 없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습니다. 그리고 절망하게 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일이 있습니다. 남을 원망하게 됩니다. 세상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절망하는 순간 하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절망이 주는 결과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38년 된 환자가 있습니다. 38년 생각하면 그 일생을 병상에서 보낸 겁니다. 병자로서 정상적인 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일생을, 그 중요한 젊은 나이를 다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38년 된 환자입니다.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축하하고 즐기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못 움직이는, 혼자서 가장 고독한 사람, 가장 불행한 사람,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절망적인 사람을 찾아갑니다. 가서 오늘 만난 얘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요, 넌센스 같은 질문을 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병자가 낫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를 앓았던 간에 건강하고 싶은 것이 소원 아닙니까? 그런데 "낫고자 하느냐?" 이게 말이 됩니까? 넌센스 같은 질문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물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아직도 낫고자 하느냐? 아직도 건강해 보겠다는 소망을 잃지 않았느냐?" 이렇게 물었어야지 "낫고자 하느냐?" 어떻게 이렇게 물을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소망을 묻는 겁니다. 아니, 믿음을 묻고 있습니다. "네가 아직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느냐?" 좀 더 깊은 말씀으로는 "아직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환자의 대답은 엉뚱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 "예, 낫고자 합니다. 고쳐주세요. 내가 살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해야지 대답이 엉뚱합니다. "물이 동할 때 나를 이 연못에 데리고 가서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미신입니다. 혹은 그 사람들이 오랜 그런 전설이기도 합니다. 이 연못에 고요한 연못에 가끔 바람도 없이 물이 동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거는 천사가 와서 목욕을 하는 것이다." 뭐 우리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얘기들이 있잖아요. "하늘의 전사가 내려와서 지금 목욕을 하는 순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목욕을 하는 물이 동할 때에 어떤 환자라도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라도 나을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믿고 있어요. 이건 전설이요, 이건 미신입니다.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럼 심리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 물이 이렇게 움직이면 그 환자들이 여러 사람들이 기다렸다가 서로 앞을 다투어서 먼저 들어가게 되는 거예요.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는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 혼자서 물이 동할 때 들어갈 수 있는 기력이 없어요. 누군가가 도와줘야 되는데 어기적 거기적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다 들어가고 자기는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것이 소원이에요. 그거 하나에다 소원을 걸고 예수님을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내가 저 물이 동할 때 좀 먼저 들어가고 싶은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날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잘못된 미신적인 그런 믿음을 간증하고 있는 거예요.
이 헬라 원문으로 보면은 더 절절합니다. 여기 보면 안트로포언 우개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코'란 말은 'have 동사'입니다. "이건 내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고, "I have not"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그 한 사람이 없습니다"가 아니고요, "가지지 못했습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 한 사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38년 된 환자, 깊이 생각해 보세요. 다 떠났습니다. 다 버려야 할 정도로 했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몸도 건강을 잃었지요. 38년 동안 환자로 살았으니 말입니다. 또한 38년의 소중한 세월, 그 젊음의 세월을 다 이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도 다 떠났습니다. 또한 바른 기대감도, 낫고자 하는 마음, 정상적인 신앙,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 다 접었습니다. 그저 한 가닥 저 물이 동할 때 내가 먼저 한번 들어가 보았으면 하는 막연한 미신적 그런 병리적 소원, 병리적 소원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몸도, 마음도, 세계관도, 가치관도 다 병들었습니다. 몸만 병든 게 아니에요. 마음도, 생각도, 그리고 신앙도 병들었더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찾았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실 때 "물이 동할 때 나를 도와서 물에 먼저 넣어줄 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도와서 물이 동할 때 한번 맨 먼저 들어가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아주 본질적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아직도, 아직도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는 이런 처지에서도 38년 된 환자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느냐?" 그 믿음을 묻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참 귀중하게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미신적인 잘못된 병리적 소원과 신앙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사람아, 몸이 병들었든지 마음도 병들었구나. 저기 저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뭐 어쩌고 그따위 미신적인 신앙에 매여 있느냐? 정신 차려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어요. 이분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보면 책망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쌍히 여기세요. 불쌍히 여기세요. 이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대로 예수님은 받아 주십니다. 귀한 얘기입니다.
우리도 가만히 보면은 이 오랜 동안 내려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종교적 상황이라는 것은 무속신앙, 불교 신앙, 유교 신앙, 그리고 우리가 전쟁으로 인해서 오는 많은 상처받은 잘못된 신앙들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무속 신앙에 매여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가만히 보면은, 자 여러분 너무 잘 아시죠. 어느 방향으로는 이사하면 되고 어느 방향으로는 이사하면 안 되고. 자, 안 된다는 손이 있다는 날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래서 이사를 전문으로 해서 이 사업하는 분들이 다 그거 가리고 있어요. 기독교인이 최고래요. 기독교인은 아무 날이나 하면 되니까.
자, 그것뿐입니까? 아이고, 목사인 저로서도요, 때때로 한마디 하고 싶은 데가 많아요. 저 아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몇 월 며칠 날 시간이 있어요?" 그래요. "있지요. 왜 그래요?" "그런데 그날 몇 시에 우리 아들 결혼하려는데 주례해주세요." 그날 몇 시, 그 누굽니까? 어디 가서 점 보고 온 거란 말이야. 그리고 그날 몇 시에 결혼을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이거 주례해야 할까요, 말까요? 어렵습니다. 그런 거 많아요. 뭐 이날은 안 되고 저 날은 되고, 뭐 아이고, 복잡합니다.
자,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이 잘못된 신앙, 이 미신적인 신앙에 대해서 꾸짖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자체가 병이거든요. 몸만 병든 게 아니에요. 마음도 병들어서, 가치관도 병들어서, 세계관도 병들어서, 몸과 마음이 다 병들은 이걸 어찌 책망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사람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한 마디도 꾸짖지 아니하시고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이게 될 수 있는 얘깁니까? 38년 동안을 누워 있은 사람이에요. 근데 이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라 그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말을 듣고 순종해서 이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은 뭡니까? 이 사람이 어떤 것 같습니까? 보통 사람이라면요, 예수님이 일어나라 그럴 때 "여보세요, 누구는 일어날 줄 몰라? 내가 38년 동안 누워 있었어.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잔소리하지 말고 물이 동할 때 나를 좀 데려다주는 그 일을 한 번의 마지막 소원이니까 들어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건강한 사람에게 말씀하시듯이 "일어나!"입니다. 벌떡 일어났어요. 놀라운 신앙입니다.
이 사람, 38년 동안 누워 있었다고 하는 잠재의식도 있어요. 병든 의지, 병리적 의식도 있어요. 그리고 미신이 바로잡혀 있어요. 몸과 마음이 다 병들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예수님의 음성에 순종합니다. 즉각 순종합니다. 그동안 자기가 가졌던 생각, 잘못된 제의와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나가는 그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이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 사람은 자기의 과거 비참한 모든 생활을 싹 잊어버리고 오늘 현재적으로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지난날에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아니 38년, 아니 50년이라도 좋아. 아, 잊어버리고 오늘 주시는 말씀에 응답해야 되는 거예요. 마가복음을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나가서 베드로를 만납니다. 밤새껏 물고기를 잡아 보려고 그물을 치더니 한 마리도 못 잡아서요. 그 물고기라는 게 이게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잡을 땐 많이 잡고 못 잡을 땐 한 마리도 못 잡는 거예요. 밤새껏 수고하고 못 잡고 지금 그물을 씻어서 말리고 있는 중이에요. 이 정리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이 찾아왔어요. "베드로야,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이게 될 수 있는 얘깁니까? 밤새껏 해봤는데 수고했는데 못 잡았는데 이제 말씀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목수요, 베드로는 전형적인 어부입니다. 지금 목수가 어부에게 명령을 하는 겁니다.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이 어부의 생각으로선 절대 안 되는 겁니다. 근데 그 한마디에 베드로가 밤새껏 수고해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만,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리라"라고 그물을 내려요. 깜짝 놀랐어요.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나를 떠나소서." 어떤 죄인입니까? 우리 일반적으로 다 죄인이지만 그럴 의미가 아니에요. 예수님 말씀하실 때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할 때 "나는 믿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빈 그물로 들고 '보라고요, 이렇다니까'라고 하고 싶었어요." 그 죄를 자복하는 거예요. 불신앙의 죄를,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그런 의심 그 죄를 자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한다. 밤새껏 수고해서 잡을 것이 없습니다만 그물을 내립니다. 고 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경험 다 포기하는 겁니다. 자기의 관측도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납니다. "네 부모와 친척을 떠나라." 떠납니다. 소행지도 없습니다. "떠나라" 하는 말씀 하나만 듣고 그는 고향을 떠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오직 믿음, 오직 믿음.
믿음의 즉각적으로, 전폭적으로, 완전하게 순종하는 순간 내 본래 가졌던 생각, 많은 경험, 많은 절망, 많은 낙심, 다 접어버리는 거예요. 오직 말씀에만 운명을 거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정적 순간입니다. 내 소원은 물이 동할 때 한 번 들어가 보는 겁니다. 그러나 내 소원을 버리고 "일어나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면서 그는 그 크신 능력을 힘입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지난 내 모든 선입견이나, 지난날의 경험이나, 지난날의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 이성적 비판 다 접어두고 다 버리고. 그래서 유명한 얘기를 합니다. 칸트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기 위해서 내 이성을 제한하라." 내 이성, 내 생각, 내 잠재의식, 이거 다 가지고는 절대로 바른 신앙을 할 수가 없어요. 깨끗이 잊어버려야 돼요. 이성적 비판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아주 단순한 믿음.
아직도 주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옵니다. 그 순간 지난날의 모든 생각을 다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부인하고, 깨끗하게 오늘 들려지는 말씀에 깨끗하게 순종할 때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기적은 있습니다. 그건 믿음이 있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많은 동안 실패하고 시련을 겪고 좌절하고 절망 가운데 살아왔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주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주시고 우리 마음에 있는 모든 그릇된 생각을 다 접어버리고 깨끗이 부인하고 오늘 주시는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면서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 위대한 주님의 능력을 오늘 우리 생활에서 경험하며 간증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상세 요약: 요한복음 5장 1-9절 말씀과 '믿음'의 중요성
제공해주신 글은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9절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 치유 사건을 본문으로 하며,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닌 믿음'**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의 내용입니다.
1. 📖 본문 말씀: 요한복음 5장 1절~9절 (38년 된 병자)
- 배경: 유대인의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에 올라가셨습니다. 이 연못에는 행각 다섯이 있었고, 많은 병자(맹인, 다리 저는 사람 등)가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믿음(미신)이 있었습니다.
- 38년 된 병자: 그곳에 38년 동안 병을 앓아 누워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 예수님의 질문: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문이 아닌, **'아직도 소망과 믿음을 잃지 않았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며 믿음을 묻는 것이라고 해석함.)
- 병자의 대답: 병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미신적인 소원에만 매여 있으며,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I have not)**는 절망적인 상황을 드러냄.)
- 예수님의 명령과 결과: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2. 🚶♂️ 모세의 불신앙과 절망의 위험성
- 모세의 실패: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40년간 이스라엘을 인도했으나,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스가 산에서 바라만 보다가 죽었습니다.
- 가나안 미입성 이유: 그가 늙거나 쇠약해서가 아니라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원망할 때, 모세가 낙심하고 절망적으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며 혈기로 반석을 두 번 친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작용했습니다.
- 절망의 심각성: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은 큰 죄가 되며, 이는 **'파탄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 절망은 재능 발굴, 미래 비전을 잃게 하며, 남과 세상을 원망하게 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앙을 잃게 만듭니다.
- 핵심 교훈: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3. 🔍 38년 된 병자의 병리적 상태와 예수님의 태도
- 병자의 상태:
- 육체적 병: 38년 동안 병상에서 젊음과 일생을 보냄.
- 심리/관계적 병: 38년 동안 간병하던 가족들도 다 떠나 도움을 줄 '한 사람'도 없는(I have not) 극도의 고독과 절망 상태.
- 영적/신앙적 병: 정상적인 신앙을 접고, 물의 움직임에 먼저 들어가는 미신적 전설에만 막연한 소원을 걸고 있음. 몸, 마음, 세계관, 가치관, 신앙이 모두 병든 상태.
- 예수님의 질문의 의미: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병자의 미신적인 소원이 아니라, **'아직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 책망 대신 긍휼: 예수님은 병자의 잘못된 미신적 신앙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 이는 몸뿐 아니라 마음, 가치관, 신앙까지 병들어 그럴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대로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속 신앙, 잘못된 신앙에 매인 우리도 마찬가지로 불쌍히 여기심.)
4. ⚡ 즉각적인 순종과 믿음의 능력
- 예수님의 단순한 명령: 예수님은 병자의 사정이나 미신을 꾸짖지 않고, **"일어나 걸어라"**는 엉뚱하고 단순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 병자의 놀라운 순종: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였지만, 예수님의 음성에 즉각적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순종하여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 (만일 불순종했다면 "누구는 일어날 줄 모르냐, 잔소리 말고 물에 넣어달라"고 했을 수도 있음.)
- 믿음의 본질: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 자기의 과거 비참한 생활, 잠재의식, 병든 의지, 잘못된 미신적 생각을 싹 잊어버리고 포기하며, 오늘 현재적으로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순종하는 것.
- 베드로의 예 (마가복음):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어부 베드로가, 목수인 예수님의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는 말씀에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리라' 하고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이는 자기의 경험과 관측을 다 포기하고 말씀에 운명을 건 것입니다.
- 궁극적인 믿음: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듯이, 믿음은 즉각적으로, 전폭적으로, 완전하게 순종하는 순간 내 이성과 생각, 경험, 절망을 다 접고 오직 말씀에만 운명을 거는 것입니다.
5. 🙏 결론 및 기도
- 기적의 비결: 내 이성적 비판, 내 생각, 내 잠재의식을 제한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도, 설교를 통해 들려오는 음성)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 기도 내용: 지난날의 실패와 절망을 포기하고, 오늘 주시는 말씀에 깨끗하게 순종하여 그 말씀의 능력과 주님의 위대한 능력을 삶에서 체험하며 간증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설교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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