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19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4)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J0vXiiRKD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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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 말씀 되겠습니다. 신약성경 271면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귀한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아멘.
유대 사람들은 세계관과 그 생활 양식에 있어서 좀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온 세계가 주목하고 연구하고 있지만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유대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세상을 매우 낙천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특별히 그들은 유월절이 되면 회당에 모여서 '아니 마민(Ani Ma’amin)'이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온 회중이 30분 이상 부른 찬송, 아니 마민입니다. 그 뜻은 히브리 말로 '나는 믿는다' 하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히틀러가 유대 사람 600만 명을 처형할 때, 박살 당할 때에 수용된 유대인들이 그 속에서 작사 작곡한 노래입니다. 누가 작사하고 누가 작곡한 것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렇게 죽어가며 처형당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형 직전에 끝까지 그들은 '아니 마민', '나는 믿는다' 하는 주제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들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우리들은 구세주가 올 것을 믿고 있다. 다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이 좀 늦어질 뿐이다.' 이렇게 찬송을 부르면서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불러일으키곤 했습니다.
여러분, 시험이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디나 있습니다. 언제나 있습니다. 이것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시험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시험이 없기를 바랍니다. 없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시험입니다. 시험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시험을 당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시험이 없는 때도 없고 시험이 없는 어떤 상태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험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병들면 시험 당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건강한 것이 더 큰 시험입니다.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악마도 병들면 천사가 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리 악한 사람도 병들어 있으면 어느 정도 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이에요. 오히려 건강하기 때문에 죄를 짓고, 건강하기 때문에 방탕하고, 건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시험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병든 가운데 시험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데, 그 위에 거기에 무서운 시험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실패하면 '아, 시험이 들었다' 하고 서로 위로합니다마는 아니요, 실패한 그곳에는 오히려 겸손과 회개가 있습니다. 성공의 문제입니다. 성공이 바로 시험의 한 문턱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수욕(羞辱)을 당하고 욕을 먹게 되면 아주 마음이 상해서 내가 시험 들었다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여러분, 내가 굴욕을 당할 때는 그대로 참고 기도하면 됩니다마는 가장 무서운 것은 칭찬입니다. 내가 분수에는 넘치는 칭찬을 듣게 될 때 교만하게 되고 쓰러지는 겁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 큰 시험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디나 시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깊은 이 말씀의 초점은 뭐냐면 '시험이냐 시련이냐' 하는 겁니다. '페이라스모스(peirasmos)'라고 하는 이 말의 어원은 '페이라조(peirazo)'라고 하는 말입니다. '페이라조'라고 하는 그 어원의 뜻은 두 가지로 해석이 됩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면에서는 영어로 말하면 '테스팅(Testing)'입니다. 사람을 넘어뜨리게 하는 것, 이것이 시험이고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트라이얼(Trial)', 시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말하면 시험이냐 시련이냐 두 가지로 다 해석이 됩니다. 시험이냐 시련이냐. 보세요, 내가 넘어지면 시험입니다. 내가 이기면 시련입니다.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한 가지 사건입니다. 같은 사건이 시험이 되기도 하고 시련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정밀하게 재미나게 우리에게 지적해 줍니다. '믿음의 시련'이 그랬습니다. 믿음의 시련. 물질의 시험이 아니고, 건강의 시험이 아니고, 명예의 시험이 아니에요. 시험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시련이 믿음 문제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믿음이 얼마나 강하냐, 얼마나 믿음이 순수하냐, 얼마나 하나님 모시기에 합당한 믿음이냐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돼요. 모든 시련의 핵심은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믿음. 믿음을 순수하게 키워주고, 믿음을 강하게 키워주고, 믿음을 온전하게 해준다면 이거는 시련이라고 하기보다도 축복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그 신앙고백은 대단히 초점을 맞추고 사건을 분석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시련이라는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적 차원에서의 오는 시련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어요. 또 한 가지는 죄가 있어서 고난을 당할 때가 있어요. 그 다음에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가 있어요. 베드로가 이렇게 세 가지로 말하는데 다시 한번 분석해 보면 도덕적 차원에서의 시련 그것은 죄 때문에입니다. 의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생각한다고 했지만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잘못된 거예요. 욕심이 많았어요. 신앙을 버렸어요. 도덕적으로 잘못돼서 내가 잘못한 죄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하는 거예요. 이것은 도덕적 차원에서 오는 시련입니다. 그러면 남은 일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겸손히 회개해야죠. 과감하게 용기 있게 회개해야죠. 그런데 많은 경우를 자세히 보면은 모든 시련의 제가 보기에는 대부분이 내가 잘못한 죄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것이 다른 사람 때문이다, 환경 때문이다, 세상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잘못된 변명이고, 깊이 생각해보면 전부가 내가 잘못한 것이에요. 내가 게을렀고, 내가 욕심이 많았고, 내가 사치했고, 내 마음속에 교만이 있었고, 내 마음속에 불신앙이 있었어요. 내 죄 때문에 내가 고난을 당하는 거예요. 그걸 인정을 해야죠. 그런데 이걸 환경의 책임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자기 반성, 모든 것은 자기가 내가 잘못한 것이다 해야 됩니다.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이 시련을 통해서 순수한 영혼으로 사실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차원의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총적 시련입니다. 은총적 시련.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해서 그 크게 만드시고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려고 하십니다. 마치 성경으로 돌아가보면 요셉이 17살 때 형님들의 아주 악한 마음 때문에 그가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가서 13년 동안 무지한 고생을 합니다. 노예 생활을 합니다. 감옥 생활을 합니다. 이 고생을 했지만 그 13년의 고생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은총입니다. 마침내 형들과 만났을 때 뭐라 그럽니까? "형님들, 형님들이 나를 팔아먹었다고 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민족을 살려주기 위해서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낸 겁니다. 보낸 겁니다. 팔려온 것이 아니고 보냄받은 겁니다. 내가 팔려온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보냄 받은 겁니다."라고 간증을 합니다. 이게 뭡니까? 은총적 시련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련이 이렇게 이렇게 결론이 되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고난당하는 것, 더 큰 축복을 위해서 있었던 일이다. 그건 축복을 위한 과정이었다.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얼마나 우리가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마는 깊이 신앙으로 살펴보면 다 은총입니다. 축복입니다. 그 시련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 내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북한에 갈 때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북한에 가서 그들과 얘기할 때마다 아주 저를 우대합니다. 그 이유는 제 아버지가 공산당에게 억울하게 총살당했거든요. 그걸 내가 보았어요. 총살당하는 장면을. 이런 장면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분들이 그 기록이 있으니까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산당에 의해서 목사님의 아버지가 총살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를 위하여 여기에 와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 그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똑같은 말을.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어렵게 총살당한 것은 참 안 됐지만, 그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에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북한에 자주 오고 가고, 거의 1년에 다섯 번을 갔으니까요.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큰 역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사건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반대로 우리 아버지가 공산당을 죽였다고 생각합시다. 전 못 가지요. 절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시련도 크게 생각해 보면 은총 속에 있어요. 은총 속에. 이걸 알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될 시련이 있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선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선교를 이루고 교회의 기초를 이룹니다. 순교란 바로 그런 겁니다. 순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이 완성이 됩니다. 이 순교라는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선교가 성공한 일이 없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때에 칭찬과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큰 구속사적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믿음의 문제지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저주나 심판으로 받지 않고 사랑의 매로, 징계로, 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큰 사역을 놀라운 기적으로 바라보며 오늘의 시련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순수하게 정화합니다(Purify).
보세요, 시련을 통해서 내가 버리지 못하던 거 버리게 합니다. 끊지 못했던 거 끊게 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름을 대지 않겠습니다. 소망교회 집사님, 지금은 장로님입니다만 그 교회 다니면서도 담배를 못 끊었어요. 교회 집사가 되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본인 말대로 담배를 못 끊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입원했어요. 의사가 "안 된다, 이 담배를 끊지 않으면 이 병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어요. 비로소 끊었어요. 비로소! 여러분, 어찌 생각하십니까? 내가 버리지 못하는 거 버리게 하고, 끊지 못하는 거 끊게 하고, 이기지 못하는 거 이기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 속에 있어요. 나를 순수하게, 내 믿음을 순수하게, 내 인격을 순수하게 만들어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강하게 만듭니다. 온전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암시한 바대로 인내를 키우게 만듭니다. 인내성을 만듭니다. 넉넉히 이기는 인내력을 키워 주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그 선교 역사 중에 보면 참 특별한 일이 한번 있었지요. 어떤 어머니가 자기 딸이 귀신들렸다고 해서 그 딸을 데리고 나오지는 못하고, 그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고쳐주세요." 예수님이 참 이렇게 말씀한 일이 없는데요, 딱 잘라 말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 없다." 아휴! 뭡니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줄 수 없다." 이 말을 듣고 이 여자가 기가 막힙니다. "개도 주인이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저는 개입니다. 이방 여자입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의 개입니다. 주인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감동이 되시어 "온 이스라엘이 이런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크게 칭찬합니다. "메가스 피스티스(Megas Pistis)!" '네 믿음이 크다' 칭찬하시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메가스 피스티스', 메가톤급의 믿음, '네 믿음이 크다'. 이러한 믿음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어야 했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여기까지 도달한 겁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 근처까지 왔습니다. 이 요단강만 건너가면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신앙으로 범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귀시켜서 다시 광야로 보내서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좀 더 걸러야 되겠고, 좀 더 순수해야 되겠고, 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고, 좀 더 겸손해야겠기 때문입니다. 광야로 들어가서 40년 동안 순수하게 순화시켜 가지고 정화시켜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당한 시련 납득이 안 가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로.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 속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시련, 필요한 것입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임을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분, 제가 언젠가 한번 전라도 광주에 있는 제자 한 사람이 제게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한번 바다 구경 하십시다. 한번 바다에 나가서 농어 낚시를 하려고 하는데 가십시다." "아니 광주에서 오라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번에 여름에 태풍이 불지 않았어요? 태풍이 불어서 온 바다를 휘저었기 때문에 이번 가을에는 농어가 많이 잡힐 겁니다. 오라고." 제가 못 갔습니다. 그 다음에 물어보았습니다. "얼마나 잡았냐고?" "굉장히 많이 잡았대요. 커다란 농어를 잡는 건데."
여러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태풍이 불어야 됩니다. 바다를 한번 휘저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모든 맑은 산소와 저 바다 밑에까지 들어갑니다. 그래야 그 후에는 풍어입니다, 풍어! 물고기가 많이 잡힐 수 있다는 거예요. 태풍, 바람, 고통, 질병, 전쟁, 찢어 놓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조용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큰 긍휼이 있고, 능력이 있고, 선교적 사역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련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내가 당하는 시련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내가 겪는 이 모든 시험 당하는 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믿음이 있는 자는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을 또다시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저희들이 주님 앞에 나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사건들을 생각하며 그 속에 시련이 있고 은총이 있고 축복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믿음을 새롭게 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합니다. 주여, 시련을 감사할 수 있고,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시험을 당할 때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는 그러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 내용 상세 요약: 야고보서 1장 2-4절 (시험과 시련, 그리고 인내)
본 설교는 야고보서 1장 2-4절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인이 겪는 '시험'을 '시련'으로 받아들여 온전히 기쁘게 여길 것을 권면하며, 그 과정을 통해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합니다.
1. 📖 본문 말씀의 핵심 (야고보서 1:2-4)
- 권면: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이유: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목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2. 🌍 유대인의 낙천적 세계관과 신앙 (아니 마민)
- 특징: 유대인들은 세상을 매우 낙천적으로 바라보고 행동합니다.
- 신앙 찬송: 유월절에 회당에서 **'아니 마민(Ani Ma’amin, 나는 믿는다)'**을 30분 이상 부릅니다.
- 역사적 배경: 이 찬송은 히틀러가 600만 명을 학살할 때 수용된 유대인들이 작사/작곡한 노래입니다.
- 고백: "우리들은 구세주가 올 것을 믿고 있다. 다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이 좀 늦어질 뿐이다."
- 의미: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 용기,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신앙 고백입니다.
3. 🤔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 시험의 보편성: 시험은 누구에게나, 어디나, 언제나 있습니다. 시험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자체가 시험일 수 있습니다.
- 시험의 본질적 위치:
- 병듦 vs. 건강: 병든 것이 시험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것이 죄짓고 방탕하게 하여 하나님 뜻을 거스르게 하는 더 큰 시험일 수 있습니다. (악마도 병들면 천사가 될 수 있다.)
- 실패 vs. 성공: 실패한 곳에는 겸손과 회개가 있으나, 성공이야말로 시험의 문턱에 있습니다.
- 굴욕 vs. 칭찬: 굴욕/욕을 당할 때는 참고 기도하면 되지만, 분수에 넘치는 칭찬이야말로 교만하게 만들고 쓰러지게 하는 가장 무서운 시험입니다.
- 결론: 언제나, 누구에게나, 어디나 시험은 존재합니다.
4. ⚖️ 시험(Peirasmos)과 시련(Trial)의 구분
- 어원: '페이라스모스(peirasmos)'의 어원 '페이라조(peirazo)'는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 부정적 해석 (Testing): 사람을 넘어뜨리게 하는 것 $\rightarrow$ 시험
- 긍정적 해석 (Trial): 이겨내게 하는 것 $\rightarrow$ 시련
- 구분 기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이 구분합니다.
- 넘어지면 $\rightarrow$ 시험
- 이기면 $\rightarrow$ 시련 (같은 사건이라도 달라짐)
- 핵심 초점: 본문은 '믿음의 시련'을 말하며, 시험의 핵심은 믿음 (믿음이 있느냐, 강하냐, 순수하냐)임을 강조합니다. 시련은 믿음을 순수하게 키우고, 강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여 결국은 축복이 되게 합니다.
5. 🔍 시련의 세 가지 차원
1) 도덕적 차원의 시련 (죄 때문에 오는 시련)
- 원인: 자신이 잘못한 죄 (게으름, 욕심, 사치, 교만, 불신앙 등)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 해결: 이 시련은 겸손히, 과감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환경이나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자기 반성을 통해 순수한 영혼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2) 은총적 시련 (축복을 위한 과정)
- 원인: 하나님께서 이 시련을 통해 크게 만드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려 하는 경우입니다.
- 예시:
- 요셉: 형들의 악한 마음으로 노예, 감옥 생활을 했지만, 나중에 형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살려주기 위해 나를 미리 애굽으로 보낸 겁니다."라고 간증합니다. (팔려온 것이 아니라 보냄 받은 것)
- 설교자 개인 경험: 아버지의 공산당 총살 사건이 오히려 북한 선교 사역을 가능하게 한 은총이 되었습니다.
- 결론: 겪는 시련을 깊이 신앙으로 살펴보면 더 큰 축복을 위한 과정,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종교적 차원의 시련 (선교적 사역의 완성)
- 원인: 시련을 통해 선교를 가능하게 하고 교회의 기초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 예시: 사도 바울의 고난과 감옥 생활이 선교를 이루고 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 순교: 순교라는 고난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이 완성됩니다.
- 베드로전서 1:7 인용: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때에 칭찬과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6. ✨ 시련이 가져오는 유익
- 믿음의 정화(Purify): 버리지 못하던 것을 버리게 하고, 끊지 못하던 것을 끊게 하며, 이기지 못하던 것을 이기게 하여 나 자신, 믿음, 인격을 순수하게 만듭니다.
- 인내의 완성: 인내성을 만들고 넉넉히 이기는 인내력을 키워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게 합니다.
- 큰 믿음의 획득: 예수님께 "네 믿음이 크다 (메가스 피스티스)" 칭찬을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큰 믿음은 많은 시련을 통해 도달하게 됩니다.
- 순화와 정화: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생활처럼, 시련은 납득이 안 가더라도 하나님의 경륜 속에는 꼭 필요한 것이며, 순수하게 순화시키고 정화시키는 과정입니다.
7. 🌊 결론: 태풍 후의 풍어처럼
- 태풍의 원리: 태풍이 불어 바다를 휘저어야 맑은 산소가 깊이 들어가고, 그 후에 풍어(풍성한 수확)가 옵니다.
- 영적 적용: 고통, 질병, 시련, 고난 등 "찢어 놓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조용하게 이루어집니다.
- 믿음의 선물: 시련 속에 하나님의 능력, 지혜,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믿는 믿음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 마지막 권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믿음이 있는 자는 기쁘게 여길 것)
이 설교는 신앙인이 겪는 고난을 단순한 '시험'이 아닌, 믿음을 성숙시키고 온전하게 만드는 '시련'으로 재해석하여, 그 과정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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