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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눅1:5~25
▶나이가 먹어갈수록 다음 기회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경험을 쌓지요. 그런데 그 경험을 이용할 다음 기회가 옵니까.
자식은 이미 다 자랐는데 누구한테 그 경험을 쓰겠습니까.
또 젊었을 때는 ‘내가 나이가 들면 내 소득이 많아지겠지.’라고 기대를 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장차 내 소득이 더 많아질 가능성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내가 회고록을 써서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은 적습니다.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 할 수만 있어도 감사한 일이에요.
또 나이가 들수록 신앙적 영웅담의 가능성도 줄어듭니다.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을 이긴 것은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지,
그가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영웅담을 보여줬다는 성경구절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단기선교 · 비전트립 이런 것도 젊었을 때 가능하지요.
나이가 들어서 어느 정글에 들어가서 텐트치고 거기에서 머무는 거,
이거 여러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젊었을 때는 텐트를 치고 하는 여름수련회를 자주 다니면서 설교를 했는데
지금은 오라고 부탁을 해도 못 갈 겁니다. 지금 이 나이에 텐트에서 자고 설교하고...
해야 된다면 하겠지만 아마 부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실질적인 경건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하냐. 오늘 본문을 읽는 이유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1. 첫째로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중에 미혼이신 분, 사별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예외는 늘 존재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가 중요합니다.
그 반대를 주장하는 분들은 농담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수많은 농담,
그냥 재미있으라고 하는 것이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에 천사가 사가랴의 이름을 말하면서 아내 엘리사벳의 이름을 같이 말하는 것을 보세요.
‘사가랴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거명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한 단위로 묶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라고 남편과 아내를 하나로 묶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계획하신 것은 이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13절에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협조를 해 주어야 남편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엘리사벳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가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쳐서 협조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도리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를 귀중히 여기고 서로 의지해야 됩니다.
▶2. 둘째로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한 경건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됩니다.
6절에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젊은 사람은 신앙이 있더라도 바쁘고 신경 써야 될 일이 많고
남자는 직장일로 여자는 아이 키우는 일로 바쁘기 때문에
경건의 삶을 제대로 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가지치기가 저절로 되기 때문에
덜 바쁘고 정말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부각되는 것입니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진다고 하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무엇을 하면서 살겠습니까.
결국은 경건에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
여행 · 레저 다 좋아요.
그러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경건한 신앙생활의 모습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내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바쁘기라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무슨 이유가 있다는 얘기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함께 경건의 삶을 사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지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내 생전에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데 인생은 짧고 신앙은 깁니다.
그러므로 내 살아생전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미처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그것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됩니다.
다윗이 살아생전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성전이 세워질 수가 있었던 것이고
모세는 살아생전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을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세대에 가서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살아생전 스페인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스페인뿐만 아니라
더 멀리 있는 지역까지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느냐.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천사가 말하기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눅1:15~16
이 일을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친히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 세대인 요한의 세대에 이르러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같은 경건한 부모가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 같은 선지자를 배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대단한 야망입니다. 신앙적인 야망입니다.
사가랴가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그랬더니
가브리엘이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니라’
사가랴가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됐어요.
놀라운 약속을 받았지만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우리 마음속에 비밀로 남겨진다는 뜻도 됩니다.
사가랴가 말을 한들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를 납득하겠습니까.
우리 마음속의 일은 비밀과도 같습니다. 영적인 일은 비밀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가랴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침묵하면서 기다렸어요.
이것은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이 된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비밀을 가진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영적인 면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육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깊은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는데
깊다는 말은 비밀스럽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신이 쉽게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것입니다.
영적인 비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신비를 소유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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