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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월 29일]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창 25:27~34)

by 【고동엽】 2023. 1. 21.

[2023년 01월 29일] 축복을 잃어버린 사람(창 25:27~34)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UN3x6u0lF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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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오늘은 창세기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 25장 27절부터 34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게 되겠습니다. 구약성경 35면입니다. 구약성경 35면, 창세기 25장 27절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야곱이 죽을 쑤고 있는데,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가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아멘. 일곱 살 먹은 아주 장난꾸러기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동년배 다른 아이가 벌써 호루라기를 하나 사 가지고 열심히 불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그 아이가 불고 있는 호루라기가 마음에 들어서 같은 것을 사려고 했는데, 마침 그 가게에 호루라기가 하나밖에 없어서

벌써 이 아이가 사서 놀고 있고 지금은 호루라기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열심히 불고 다니는데, 이 소년은 따라다니면서 "저것이 꼭 가지고 싶어요. 나도 저걸 가지고 싶은데 없다니까 못 사는데." 마침내 가서 붙들고 얘기했습니다. "내가 웃돈을 줄 테니 그것을 나한테 팔아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년이 빙그레 웃으면서 "웃돈을 많이 주면 팔지." "너 달라는 대로 줄게." 그래서 웃돈을 주고 그가 불고 있는 호루라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불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돌아다니면서 호루라기를 불고 다니니 온 집안이 시끄럽습니다마는 이 일곱 살 난 소년이니 차마 말릴 수가 없어요.

마침내 물어보았습니다. "야, 그 호루라기 어디서 샀냐?" "오늘 가게에서 샀다고." "얼마 줬냐?" "얼마 줬다고."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그 아버지는 이걸 알고 있거든요. "너 그거 네 배를 주고 샀구나. 네 곱을 주고 샀구나." 하고 말하니까 웃돈을 주고 산 것을 자기가 알고 있잖아요. 웃돈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네 배나 주고 샀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속이 상한지, 아주 마음이 아파 가지고 그만 엉엉 울었습니다. 창피해서. "아니 그 호루라기 하나 사기 위해서 네 배를 주고 사서 불었다니. 내가 도대체 뭐냐?" 이 아이가 아주 창피해서

엉엉 울었다 하는 얘긴데, 이것이 누군지 아세요?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일이 뭡니까? 속는다는 겁니다. 진실을 잃어버릴 때, 진실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게 될 때 부끄럽습니다. 창피합니다. 자기 스스로 절망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뭡니까? 속는다는 거예요. 여기저기 정치, 경제, 문화 할 것 없이, 이웃 관계까지, 심지어는 부부 관계까지 속는다는 것. 그 속았다는 걸 알게 될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허무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남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속은 거예요. 그걸 깨닫게 될 때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 뭘 가진 줄 알았는데 이제 결산해 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사업이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사업 진단해 봤더니 완전히 빚더미. 내가 뭘 더 많이 아는 줄 알고 지식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아무것도 몰라요. 아는 것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능력도 없어요. 가장 무서운 것이 이것입니다. "나는 그래도 진실하다. 정직과 진실만을 자기 자존심으로 얘기하는데" 이제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어요. 진실하지 못했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내가 믿음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려운 시련을 당하면서 보니까 믿음 없는 사람으로 자기 노출이 될 때 기가 막힙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입니까?" 이 존재 의식이 증발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서 오는 고통과 실망이 큽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성경의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넌센스 같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심각합니다. 아니,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나도 심각합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고 샀다.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까? 장자라고 하는 명분을 어떻게 팥죽 한 그릇으로 팔 수 있으며 또 살 수 있습니까? 두 사람 다 아주 사기극을 벌인, 아주 넌센스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 여러분 나와 여러분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거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야곱은 집요하게 축복을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는 쌍둥이 중에 동생으로 태어납니다. 쌍둥이니까 동생이나 형이나 마찬가지지만 아닙니다. 축복권에서는 장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풍속으로는 유산을

나눌 때도 형은 두 몫을 줍니다. 동생은 2분의 1. 유산, 재산으로도 그렇고 명분에 있어서 교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가는 장자의 명분, 이것은 장자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쌍둥이라도 형은 형입니다. 형의 축복이 장자의 유업이 그 속에 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쌍둥이로 태어난 바에 내가 동생 이거 정말 억울하다" 그 생각을 하고 늘 거기에 집념하고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에서가 사냥을 하러 나갔거든요. 사냥하고 돌아다니다가, 아 그거 들판을 뛰어다니니 얼마나 힘들어요. 저녁에

돌아오다 보니까 배가 고파요. 아주 죽을 지경으로 배가 고픈데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는 거예요. 팥죽을 쑤고 있는 거니까 동생에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 죽게 되었는데 그 팥죽 한 그릇을 나에게 먼저 좀 주라" 그럽니다. 야곱에게는 지금 기회가 왔습니다. 딱 한마디 합니다. "형님,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세요. 그러면 내가 팥죽을 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팥죽을 얻어먹었다. 이 본문에 그런 내용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홀히 여겼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하게 여겼다. 이게 문제가 있습니다. 왜요? 보이지 않으니까요. 장자의 명분,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 축복.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당장은 보이는 거 없잖아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여기 에서의 큰 실수가 있습니다. 현재에 집착하고 미래를 잃어버렸습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하는데 정말

죽을까요? 이 시간에 팥죽 한 그릇 못 먹으면 죽는 겁니까? 바로 그 의식 자체의 문제가 있는 거예요. "죽게 되었으니." 이게 뭡니까? 이것은 자기의 현재의 작은 고통을 극대화한 것이지요. "죽게 되었으니." 그리고 절대화하고 정말로 이해하는 거예요. 이게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가다가 '불가피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불가피성을 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인가요? 여러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나요? 타협할 수밖에 없었나요? 그 길밖에 없었나요? 얼마든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만은 "불가피하다(Futility). 불가피하다. 다른 길은 없다. No choice."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죄악에 빠지는 거예요.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어요. 얼마든지 넓은 길이 있어요. 넓은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을 현재에 집착하는 순간 "이 길밖에 없다. 선택은 없다. 불가피하다." 아니요,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지난날에 우리가 실수한 것, 잘못한 것,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얼마든지 피할 길이 있었어요. 아니, 그럴 수 있는 길이 있었어요. 죄악을 면할 수 있었어요.

선한 길로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이렇게 감옥에 가두려고, 스스로 자기를 가두어 놓고 생각합니다. "이럴 수밖에 없다." 그 의식 자체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재에 집착하며 미래를 포기했습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중요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네, 우리는 '보이는 현재'라고 하는 것에 집착해서 이 모든 일을, 나머지 일을 다 포기하는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하는 말씀이죠.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사업 시작하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 광야에서 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40일 40야를 금식합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합니다. 주리셨다고. 네, 주리셨어요. 피곤해지셨어요. 그런데 마귀가 와서 말합니다. "저 돌로 떡 만들어 먹어라" 그랬어요. 해석에 의하면 그렇게 심리학적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파요. 40일을 금식했어요. 아주 힘들어요. 그 앞에 광야에 여기저기 놓여 있는 돌덩어리가 있는데, 돌덩어리가 이렇게 보이는데 "저 돌이 떡이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귀가 말한 거예요.

"너는 능력이 있지 않느냐. 명령을 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명령을 해서 저 돌을 떡을 만들어 먹어라"라고 유혹했다. 그럴 것 같아요. 정말 40일을 금식한 절절한 시간입니다. 절박한 시간입니다. 정말 돌덩어리가 저기 떡이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런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여러분, 넉넉한 중에 한 말이 아닙니다. 40일 금식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순간도, 그 순간도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말씀이 먼저입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40일 금식한 그 절박한 시간에도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오늘 에서와 한번 비교해 볼까요?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유업을 생각하지 않은 인간의 "내가 죽게 되었으니." 그건 과장이에요. 그것은 아주 자기 비하로 인격이 무너지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성경에서 제가 개인적으로요, 성경을 가끔 외워 봅니다.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가니라." "먹고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후회했다" 그래야지. 그리고 동생 보고 "야야, 아까 한 건 내가 배고프니까 실수한 거다. 취소한다" 해야지. 오직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그냥 가버렸어요. 뉘우침이 없어요. 배고플 땐 그렇다 치고, 이제 배불러서 정신 차렸으니 돌아가야지. 이제라도 회개해야지. 어찌 그 시간에 먹고 마시고 그냥 가버렸습니까? 난 이 말이 너무 마음에 걸려요. "먹고 마시고 가니라." 여러분,

실수는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실수한 뒤라도 되돌아가야죠. 엄청난 실수를 했더라도, 어떠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회개해야죠.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되죠. 저는 그렇게 상상해 보아요. 에서가 팥죽을 먹고 나서 정신 차리고 나서, "야곱아, 야, 아까 말한 거 취소다." 아, 그래야 되잖아요. "그래도 팥죽 한 그릇 가지고 장자의 명분을 사고팔고 할 수 있는 거냐?" 정신 차리고 한마디 해야지. 어떻게 "먹고 마시고 그대로 가니라." 그게 마음에 안 들어요. 회개가 없어요. 뉘우침이 없어요. 아니,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렸어요. 회개의 기회는

딱 한 번이세요. 놓치면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어떤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회개하고 정직함을 회복해야지요. 인격을 회복해야죠. 믿음을 회복해야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깨닫는 순간 무릎을 꿇어야 되고, 생각이 나는 순간 바로.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명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그런 얘기가 있지요. 그가 장사하고 있을 때입니다. 아주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을 때인데,

물건을 밤새 하루 종일 계산을 하면서 보니까, 이렇게 돈을 거슬러 주는데 아, 많지도 않아요. 5센트, 5센트를 덜 준 것이 기억이 나는 거예요. 이 5전(5센트)을 손에 들고 그 집을 2시간 동안 마차를 타고 갔어요. 가서 잠자는 사람을 깨워 가지고 "아까 내가 거스름돈을 줄 때 5전을 덜 준 거 있는데, 이거 받으세요." "아니, 그걸 안 줘도 되고 다음에 주면 되지, 뭐 이렇게 밤중에 왔느냐고." 아브라함 링컨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오늘 밤 내가 죽으면 나는 영영 이 빚을 못 갚을 뿐만 아니고..." 잊지 말아야 돼요. 회개는 기회가 있는 거예요.

놓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다시 원상 복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서둘러야죠. 빨리 제자리로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에는 이 말씀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 자세히 분석해 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에서가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에서 해석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고 "야곱이 나를 속였습니다" 통곡을 해도 이미 끝났어요. 히브리서는 이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 회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서의 어리석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에 집착하면서 미래를 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보이는 것, 그보다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축복, 영원한 약속, 영원한 기업. 그는 스스로 포기한 겁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원망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회개를 하지 않고 그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다고 해결이 되는 겁니까?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원망할 것 없습니다. 내가 속았습니까? 속인 자를 원망하지 마세요. 속은 내게 문제가 있습니다. 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탓할 것도 아니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겁니다. 에서는 자기반성은 없이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큰 죄인이 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이 넌센스 같은 이야기 중에서 에서의 모습을 한번 다시 한번 그려보세요.

"먹고 마시고 일어나 가니라." 그러한 모습이 우리 자신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을 주의 전에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려운 세대에서도 조용하게 예배드릴 수 있게 하셨고, 하나님의 전에서 찬송하며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을 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떠난 때가 많았고, 항상 우리에게 재촉해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건만, 서둘러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한 모든 죄를 자복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에 따라 살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향하여 살고, 항상 자기 성찰에 우선하며 하나님 앞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음악] 주님의 사람들 되게 하시고, 그 영원한 약속을 기업으로 받기에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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