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고도 배부른 이유 요4:26~38
▲사람마다 먹지 않고도 배부른 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때 먹지 않아도 배부르셨습니까?
돈 1억원이 생기면, 먹은 것이 없어도 배부르지 않겠습니까?
자녀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먹은 것이 없어도 배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습니다.
수가 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믿음을 갖게 되자
그렇게 기쁘셨던 모양입니다,
▲드시도 않고도 배부르신 예수님
제자들이 마을에서 먹을 것을 구해 와서 예수님께 드시기를 권했는데,
시장하실 것이 분명하신 예수님께서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4:32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일로 너무 기쁘셔서
아무 것도 드시지 않으셨지만 배가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을 그토록 기쁘시게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입니다.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은 것,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부르게 하는 음식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기쁨의 조건, ‘먹지도 않고 배부른 조건’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어째서 사마리아 여인을 보고는 먹지도 않고 배가 부르실 정도였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사람을 보시는 눈이 우리들이 보는 것하고는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그 영혼을 보십니다.
제자들은 혹 누군가가 다른 먹을 양식을 갖다 드린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자 4: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아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4:34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께 그토록 기뻐하시고 만족스러워 하신 그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셨기에
먹지 않고도 배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여러 형태로 나누어 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단 그 사람의 외모를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인지 아닌지, 거기서 벌써 내 반응이 달라집니다.
지나고 보면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도
우리는 사람을 일단 <외모>로 좋다/나쁘다로 판단을 합니다.
그 다음에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배운 <학벌>의 사람인지,
<소유>가 얼마나 되는지,
<집>은 어디에, 어떤 규모의 집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조건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러다가 <고향>은 어디인지, 마지막에 <나이>를 따집니다.
그래서 내가 형인지 동생인지 이런 것에 관심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전혀 다르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에는 그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과거가 복잡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녀의 영혼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창조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입니다.
영혼을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사마리아 여인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영혼으로 보면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그래서 많은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
부정직한 세리장 삭개오,
겁 많은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
모두가 예수님의 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였습니다. 눅7:34
예수님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헐뜯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이 ‘상종 못할 사람들과 자주 상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남녀나 신분이나, 지위나 재산이나
나이나,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 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영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영으로 바라보면, 사람은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차별하는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일 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이웃을 싫어하거나 외면하는 것입니다.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 25:44~45
▲우리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실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확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충격적이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불성실하거나,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지 않으신다면,
똑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사랑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여러분이 싫어하고 미워해서 여러분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늘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몇 달 동안 계속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내 시각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차별적이던 내 시각이 바뀝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적대적이고 도움이 안 될 사람들에 대하여... 무덤덤합니다.
여전히 “영혼을 사랑하라! 영혼을 구원하라!”는 말씀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차별대우 하지는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내가 구원받을 때, 예수님께 먹지 않고도 배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외모로 판단치 않으시고 영혼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사람들을 보는 눈이 새로워집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어느 목사님의 아내가 두 주간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큰 딸이 몸도 아프고,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어,
엄마가 가서 거처할 곳도 마련해 주려고.. 미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 딸은, 엄마가 미국에 오자마자, ‘엄마가 한국에 돌아갈 걱정’을 합니다.
그렇게 엄마랑 좋게 지내다가, 엄마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터인데,
자기가 학교 갔다가 왔을 때,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을 보면 울 것 같은...
자기 딸이 그런 걱정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전해 들으니, 아빠인 목사님도 울컥했어요.
너무나 쓸쓸한 객지에, 딸을 혼자 두는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큰 딸은, 싸이월드 개인 홈페이지에
엄마와 헤어질 때 마음을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공항에서 엄마와 동생과(동생도 엄마 따라 갔었습니다) 헤어질 때,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하면서도, 울지 않고 참았다.
그렇게 하리라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다 떠나고 차에 돌아왔는데, 이제 나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옆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느껴질 때,
그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집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다 캄캄하고, 주방에서 음식 만드시는 엄마도 없고,
방에서 컴퓨터 하는 동생도 없고,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불러보고 또 부르다가 막 울어버렸다.
이 글을 읽고 목사님은 울었습니다.
혼자 지내는 딸의 심정이 너무나 깊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시고 먹지도 않고 배부르셨던 예수님의 심정은
바로 이런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을, 이제부터 이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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