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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성취에 필요한 것(5) (삼상 7장 12절)

by 【고동엽】 2022. 12. 30.

비전 성취에 필요한 것(5) (삼상 7장 12절) <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고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에벤에셀의 역사로 지켜주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 교회의 앞날도 지켜주시고 교회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성도들의 앞날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굳건한 믿음을 가질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반드시 예비될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에 떼로 몰려와서 다시 떼로 몰려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 후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고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전을 위해 예비된 일꾼도 서서로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그런 반전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은 2가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어려움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예배 후 교회에 등록한 한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듣고 그런 어려움을 겪었는지 몰랐습니다. 목사님의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고 기쁨이 넘쳐보여서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은 분 같습니다. 만약 목사님이 편하고 기쁜 얼굴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등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집사님의 마음은 하나님도 똑같은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시련을 당했다고 슬퍼하고 울상만 하고 지내면 하나님도 좋은 분들을 보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시련을 당해도 죽도록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새로운 기회도 주십니다.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감사를 잘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대개 감사에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최고의 부자이고 최고의 성도입니다. 또한 최고의 기도는 감사가 넘치는 기도이고 최고의 영성은 감사하는 영성이고 최고의 예언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감사하는 말입니다. 그처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둘째, 어려움 중에도 선교사 후원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려워도 선교사들이 다치면 열심히 기도하며 병원비를 후원했고 선교사들에게 어떤 물품이 필요하면 교회 물품은 못해도 선교사들의 물품을 먼저 마련했고 선교사들에게 긴급하게 재정이 필요하면 교회도 재정이 필요해도 선교사들의 필요에 먼저 반응하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감당하지 못할 때는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가 극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줄 때도 있었습니다.

< 사랑을 베풀며 사십시오 >

 성령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헬라어로 ‘파라클레이토스’라고 합니다. 그 말은 ‘옆에서 돕는 보혜사’란 뜻입니다. 성령님이 옆에서 도와주듯이 성령 충만하면 옆 사람을 돕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고 선교사들의 필요에 힘써 반응하십시오. 돈을 벌 때도 그런 목적을 가지고 돈을 버십시오. 그렇게 살 때 찡한 쾌감을 주는 화려한 은사와 기적은 없어도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삶의 핵심 표식입니다.

 누구에게나 천사의 씨앗과 악마의 씨앗이 동시에 있습니다. 어느 씨를 뿌리며 살지는 전적으로 자기 선택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천사의 씨앗을 뿌리면 자신이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얻는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그처럼 복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면 불행의 그림자가 어떻게 드리워지고 사단이 감히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오래 전에 교회에 차량이 필요할 때 경제가 어려워서 아무도 헌금을 못했습니다. 그때 어렵게 사는 한 집사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가진 차를 팔면 8백만 원 정도 받는데 그것을 헌금할게요. 그 돈을 계약금으로 걸고 교회 차를 사세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마지막 남은 재산을 바치겠다니까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그 얘기를 듣고 재정 집사들과 그 헌금을 받아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그때 한 집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그런 고귀한 마음을 주신 것이니까 기쁘게 받읍시다.” 그때 제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우리가 아무리 급히 필요해도 저는 그 헌금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다른 경로를 통해 주시겠지요. 그런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믿고 그 헌금을 받지 맙시다.” 결국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기쁘게 드리는 것을 사양하는 것은 또 다른 인색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렵게 사는 성도의 마지막 희망의 씨앗은 도저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받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고 그 집사를 불러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의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지만 그 헌금은 도저히 받을 수 없습니다. 헌금은 받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절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 대화가 오고간 순간은 성령님이 감격적으로 운행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초월해서 좋은 일을 위해 무엇인가를 바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이제 ‘나’라는 말을 ‘우리’라는 말로 바꾸며 사십시오. 자기 욕심을 포기하고 선한 일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고 그런 삶이 진정 복된 삶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힘들고 문제가 많은 때에 남까지 신경 쓰며 어떻게 사나?” 그러나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 신기하게도 내 문제가 풀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늘 어려운 사람을 힘써 돕고 선교도 더욱 힘쓰십시오.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선교사를 지정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삶도 꿈꿔보십시오. 저는 선교사님들로부터 기도와 후원요청 편지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선교사님들의 요청에 반응하며 살려고 할 때 사랑과 믿음도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늘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실천적인 나눔과 사랑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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