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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7대 성공비결 (누가복음 5장 1-11절)

by 【고동엽】 2022. 12. 30.

베드로의 7대 성공비결 (누가복음 5장 1-11절) 1. 땀을 흘리십시오

 어느 날, 많은 무리들이 몰려와 예수님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무리들 중에서 제자를 뽑지 않고 게네사렛 호숫가에 있는 두 배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주목하셨습니다(2절). 그 장면은 말씀을 들으려고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무리보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 일에 성실한 부지런한 사람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암시를 줍니다. 지금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산다면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어도 안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인은 뜨겁게 청산유수처럼 기도합니다. 심지어는 기도가 없으면 근육 무력증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기도할 때 계시도 받습니다. 그런데 일터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집안 청소도 하지 않고 초등학생 자녀가 혼자서 라면 끓여 먹게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기도자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잘하는 만큼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기도는 놀고먹기 위한 방편이 아닙니다. 기도한 후 가만히 있으면서 계시나 축복을 받으려는 것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일로 군살이 박힌 손을 들고 충성스런 종처럼 “주님!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씨도 뿌리지 않고 열매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잘못이고 가꾸지 않고 삶에 흉년이 왔다고 원망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두 손을 모으다 못해서 꽁꽁 묶어놓은 채 하나님의 계시나 돈벼락만 기다리면 안 됩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기도하십시오. 땀이 섞인 기도는 결코 배반이 없습니다.

2.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때 예수님이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셨습니다(3절). 그 배에서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베드로는 인생의 위대한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베드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능력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의 깊은 만남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인생이 위대하게 바뀝니다.

 현재 모습이 빈 배처럼 초라한 처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빈 배일 때가 오히려 주님을 깊이 만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베드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의 빈 배에 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빈 배에 예수님이 물질을 넘치게 주길 원하지만 예수님은 그 빈 배에 직접 타시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빈 배를 채워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주님은 우리의 재능과 사업장을 주님께 드리길 원합니까? 그것을 이용해 주님이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넘치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은 도덕이나 윤리나 수양이나 이론이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입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체험보다 예수님을 깊이 만난 체험으로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체험이 없으면 베드로는 시골 어부로 평생 지냈겠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으면 인생의 빈 배가 비로소 풍성한 은혜로 넘치게 됩니다.

3. 드릴 줄 아십시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피곤과 실망으로 축 처진 채 맥없이 빈 그물만 씻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그의 배에 올라타서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라고 했습니다(3절). 고기도 못 잡아 피곤한 상황에서 그런 요청을 하면 짜증날 수도 있지만 베드로는 한 마디 불평 없이 자기 배를 내어드렸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베드로는 신앙 유무를 떠나 기본적으로 남에게 베풀 줄 알고 드릴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귀찮고 힘들어도 자기 배를 내어드림으로 그의 빈 배가 예수님의 설교강단이 되었습니다. 자기 배에서 설교하는 예수님을 볼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같은 말씀을 들어도 확실히 남다른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헌신하며 들으면 더 큰 은혜를 체험합니다. 신앙 유무를 떠나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체질화시키십시오. 행복은 ‘채움’보다는 ‘드림’에 있습니다. 드릴 줄 알아야 불행과 저주의 사슬이 끊깁니다. 더 나아가 드릴 수 있는 능력과 위치가 주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채움의 수단’인 줄 알고 끊임없이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도 많이 곤란하실 것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진짜 사랑에 빠지면 달리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비족은 사랑한다면서 “용돈 달라! 아파트 사 달라!”고 하지만 진짜 사랑하면 자꾸 달라고 하기보다 자꾸 주고 싶어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면 달라는 생각보다는 드리려는 생각이 먼저 앞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드리기를 힘쓰면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살피시고 더욱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4.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설교 강단으로 삼아 무리를 가르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4절).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고기잡이 전문가인 베드로에게 고기잡이 비전문가인 예수님의 말씀은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말씀 선포나 하시지요, 고기는 제가 잡을게요.” 그러나 그때 베드로는 신기하게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했습니다(3절). 그 결과 자기 배는 물론 다른 배까지 고기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내 능력과 뜻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품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승리의 서막과 같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승리의 궤도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기적 전에 꼭 있는 것이 자기 뜻과 능력과 생각과 기분을 초월한 순종입니다. 베드로가 운이 좋아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도 단점은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베드로는 한 번도 예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은 순종하는 사람이란 큰 장점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수제자로 삼고 큰 인물로 쓰신 것입니다.

 신비주의자가 내세우는 신비한 기적이 신비가 아니라 순종이 신비입니다. 복된 삶을 원하면 순종을 실천하십시오. 고기잡이 전문가가 목수출신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파격적인 결단이 있어야 참된 제자가 되고 참된 축복을 받습니다. 가끔 몸과 마음이 힘들어 예배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더 예배에 나오십시오. 자기 능력과 기분과 귀찮음을 넘어선 순종이 진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주시기 전에 먼저 순종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순종하는 마음이 후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도 후퇴하지 않습니다.

5. 깊이 있게 사십시오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것은 얕은 곳에서만 놀지 말고 위험부담이 있어도 깊은 곳으로 가서 깊이 있게 살라는 암시도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면 두렵고 생소합니다. 사람은 잘 보이지 않으니까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야 큰 고기도 많이 얻습니다. 얕은 물에서는 신앙이 나태해지지만 깊은 물로 가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도 모르고 북적거리는 얕은 물에서만 놀려고 하기에 하나님은 가끔 사랑하는 성도를 깊은 물에 빠뜨리십니다.

 깊은 물에 빠진 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믿음의 경지에 오르십시오. 영어에서 “저는 깊은 물에 있습니다(I'm in deep water).”라는 표현은 “저는 큰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I'm in big trouble).”라는 부정적인 뜻입니다. 그러나 깊은 물에 있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깊은 물은 인생의 초점과 목적과 가치를 새롭게 깨닫게 합니다. 깊은 물로 들어가거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헌신적인 믿음을 결단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으셨지만 제자들의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얕은 물가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것보다 깊은 물가로 가서 실패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헌신의 깊은 바다에 과감히 자신을 빠뜨리십시오. 살면서 부담도 지지 않고 헌신도 하지 않으면 큰 인물이 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얕은 물가에서만 지내려고 하지 않고 조금 외롭더라도 깊은 데로 가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도 그 인생을 가장 복된 인생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6. 남을 생각하십시오

 베드로의 순종으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을 때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엄청난 고기를 잡고 베드로는 그 고기를 혼자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그물도 찢어지고 배도 가라앉았을지 모릅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른 배를 불러 그 배에도 고기를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더불어 살려고 했습니다. 더불어 살려고 하면 축복도 받지만 받은 축복도 오래 보관됩니다.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교회 입주를 극력 반대했습니다. 주차난이 심해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교회가 들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깊은 상처로 교회도 부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차난도 없었지만 유동인구도 없어지면서 상가들도 다 어려워졌고 아파트 값도 떨어졌습니다. 자충수가 된 셈입니다. 분당의 상권이 활력을 잃은 상황에서도 미금역 주변만 활기찬 것은 거기에 큰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주차난도 생기지만 그만큼 상권도 살고 상권이 살면 대개 아파트 값도 올라갑니다.

 자기 주차만 편하겠다고 하면 장사를 망치듯이 자기만 살려는 이기주의는 인생 장사도 망칩니다. 남을 이기게 해야 자기도 이깁니다. 늘 윈윈 정신으로 무장하고 리더에게도 최대한 협력하십시오. 힘써 리더를 세워주는 좋은 팔로워가 나중에 좋은 리더가 됩니다. 부모들은 가끔 자녀에게 말합니다. “너도 부모가 되어보면 알아!” 그런 심정을 가지고 부모나 리더의 고충을 이해하며 협력할 때 하나님은 그를 점차 머리가 되게 하시고 축복의 길에 필요한 좋은 사람도 붙여주실 것입니다.

7. 겸손을 잃지 마십시오

 베드로가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두 배에 고기가 차고 넘치는 대박이 터졌습니다. 그런 기적을 체험하고 베드로는 신나서 자기 성격대로 덤벙대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제 어디로 그물을 던질까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나 그때 베드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8절). 예수님이 떠나려고 해도 “예수님! 절대 가지마세요.”라고 붙들어야 할 상황인데 왜 예수님을 떠나라고 합니까?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야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적적인 체험 후에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최대한 낮췄기에 베드로는 최대한 높여졌습니다.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를 받고 체험을 할수록 겸손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축복받으면 여기저기 간증하러 다니지만 베드로는 축복받고 “내가 잘 믿었기에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하지 않고 “주님!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큰 축복을 받아도 간증집회는커녕 여전히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할 존재인 줄 아는 성도가 진짜 성도입니다.

 축복받았을 때 “내가 이렇게 헌신하고 기도해서 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처럼 되십시오.”라고 하면 그 축복은 곧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축복받을 때는 더 “내가!”가 없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성공하면 “내가!”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집니다. 그때 간증집회를 해달라고 초청할 때 잘 참지 않으면 간증이 조금씩 변하다가 나중에는 간증이 소설이 되고 결국 인생이 추락하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머물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하기를 힘쓰면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확률이 적습니다.

< 자기를 버리십시오 >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즉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11절). 베드로는 그때 잡은 많은 고기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결단으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소유가 많아지는 축복과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는 축복을 어떻게 비교합니까? 곧 사라질 세상 축복에 파묻혀 살지 말고 항상 더 소중한 사명을 생각하며 사십시오. 사명을 외면하면 인생의 길도 잃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살 때 고난과 고독이 있어도 선한 결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좋은 일에는 끈질긴 사람이 되십시오. 예전 올림픽 때, 한 역도 선수는 부상으로 바벨을 떨어뜨리면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충격적인 감동을 주어 그는 메달을 따지 못하고도 금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찬사를 받았습니다. 힘들어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사명과 비전을 붙들면 하나님도 충격적인 감동을 받으셔서 사람의 생각을 초월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저는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미국 성결교) 출신 목사로 귀국 후 가끔 장로교로 교단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청년 때 은혜 받은 교회가 장로교였고 제 목회 스타일 자체도 장로교 스타일이기에 장로교로 교단을 바꿔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목회도 편해지고 교회도 외적으로는 나아졌겠지만 크고 편하게 보이는 길만이 복된 길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자기 사명을 위한 길이라면 편안함을 희생하고 물질과 명예도 과감히 포기할 때 인물의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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