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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성취를 위한 자세(2) (빌립보서 2장 12-14절)

by 【고동엽】 2022. 12. 27.

비전성취를 위한 자세(2) (빌립보서 2장 12-14절) 3. 원망이 없게 하십시오

 모든 일을 원망이 없이 하십시오(14절). 어떤 분은 힘들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전혀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명해주신 것에 대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기억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

 또한 모든 일을 원망 없이 하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일이 힘들어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이 때로 선한 목적을 가지고 힘든 과정도 허락하십니다. 비전이 금방 이뤄지지 않아도 원망하지 말고 더욱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위대한 성취는 대개 많은 연단 과정을 통해 주어집니다. 물론 어떤 일이 단번에 기적적으로 이뤄질 때도 있지만 대개는 하나님이 설정하신 모든 과정과 원칙을 끝까지 따를 때 이뤄집니다.

 이사야 40장 31절 전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영어로 “Wait on the Lord(주님에게 꼭 붙어서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기다림은 망부석처럼 슬픈 기다림이 즐겁고 희망적이고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포수의 총부리에 죽어 가는 사슴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며 거센 운명에 자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성경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운명에 맡기고 가만히 있는 운명론을 결코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저주란 말을 잘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저주’란 운명론적인 단어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약화시켜서 은혜시대를 살아가는 신약 성도들에게는 좋은 어휘가 아닙니다. 반면에 이단들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 등의 용어나 “당신 그러면 저주 받아.”라는 식의 표현을 통해 ‘저주’란 말을 자주 써서 두려움과 공포를 심고 계속 그 두려움과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영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씁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에게 더 이상 ‘저주’는 없습니다. 성도는 운명에 맡겨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존재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각본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각본대로 따르려고 하십시오.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원망이 없이 일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비전이 이뤄질 것입니다.

4. 시비가 없게 하십시오

 일할 때 원망도 없어야 하지만 시비도 없어야 합니다(14절). 어떤 사람은 비전을 이루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비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전을 이루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비전을 향해 나갈 때 최대한 시비가 없게 하십시오. 관계가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지면서도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관계가 망가지고 영혼이 망가지면 목표를 이뤄도 불행한 것입니다.

 왜 시비가 생깁니까? 자기가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는 죄성 때문입니다. 죄성을 유식으로 혼동하지 마십시오. 진짜 유식한 사람은 선악을 자기가 판단할 수 없다고 여기고 관용을 보입니다. 조금 알고 교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고 겸손한 것이 더 낫습니다. 형제 눈의 티를 뽑고 싶은 생각이 교만 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자기 눈의 들보부터 보려고 하십시오. “내가 알아!”고 소리치는 것은 “내가 무식해!”고 소리치는 것이 될 때가 많습니다.

 최고의 지식은 자기 들보와 무지를 볼 줄 아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자랑이 아닌 사랑으로 이끕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했습니다(고전 13:2). 지식을 내세우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에 늘 갈등이 생기지만 사랑과 온유를 내세우면 있는 갈등도 풀어집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습니다. 물질축복의 제일 원리는 온유함입니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참고 참으면서 끊임없이 친절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생명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함 속에서 자랍니다. 결국 온유함은 영적인 생명의 모태와도 같습니다. 항상 온유한 모습으로 시비가 없이 윈윈 전략을 가지고 나갈 때 비전성취의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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