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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6-13)
최근 -뉴욕타임즈-에서는 나이 오십 세를 전후한 간부사원, 엘리트사원들이 보다 젊 게 토이기 위해서 괴 눈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여리분, 우리는 "젊음은 곧 유능"이라는 등 식이 성립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불룩 하게 나온 배는 옛날에는 사장님 배라고 좋 아했지만 요새는 별로 달가와하지 않습니 다 또 벗겨진 이마, 주름진 얼굴 등은 사람 을 늙어보이게 하고, 낡고 고루한 인격이라 는 인상을 준다는 것입너다. 그래서 무능한 축으로 몰리고 어쩌면 감원 대상이 뵉 것이 라고 생각한니다. 그래서 어떵게든 젊게 보 이려고 멸의별 비상수단을 다 씁니다. 앞을 다투어서 옆머리를 짧게 치기도 하고, 노화 방지크림을 열심히 바르기도 하고, 몸에 착 달라달는 살빼기용 속옷을 입기도 하고, 노 화된 피부각질을 괄어내기도 합니다 갖은 방법으로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 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 며 별효과가 없다, 이제는 통하지 알는다" 고 해서 요즘은 성형수술이 유행을 합니다. 얼굴 주름살을 펴고, 목에 있는 주름살을 제 거하고, 눈 아래의 지방질을 걷어내고, 가슴 과 허벅지에 실리콘을 넣어서 근육을 탄탄 하게 보이도록 수술을 합니다. 한 해에 2만 명의 엘리트가 이런 수술을 받고 있는데 직 종, 직업, 연령충을 상대로 조사해보면 4분 의 1정도가 수술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너 다. 소위 bionic executive-생체공학적 간부 라고 아예 이름이 붙었습니다, 한번 수술하 는 데 1만7천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돈으로 약 1천3백만원입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과 허상
여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젊게 보인다 고 진정 젊은 것입니까? 육체가 짙었다고 젊은 것입너까? 아니, 젊은 것이 곧 유능한 것입니까? 깊이 생각해야 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주 전에 명문대학의 대 학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젊은이 가 단지 외모가 시원치 않다는 이유로 연달 아 회사에 취직을 못하게 되자 이를 비관해 서 자살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 까?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치중합니다. 전 은 사람들은 결흔할 때에 99%외모부터 봅 니다. 다른 것은 볼 생각을 안합니다, 이것 이 결정적인 실수인 줄을 알면서도 번번히 여기에 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위 역사에 나타난 존경받는 인물 들은 대체로 잘생긴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 전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난 것을 보았습 니다,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여수상이었던 골다 메이어의 수기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
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도 못생겨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았다, 심 지어는 부모도 나를 시원치 않게 여겼다. 그 래서 에라, 공부나 해야겠다 하고 열심히 했 더니 결국은 오늘에 정치가가 되었다" 여자 로서 얼굴이 못생긴 것은 아주 기가막힌 어 려움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수 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눈도 작은데다가 튀 어나오고, 키도 조그맣고, 정 말 가장 못생긴 사람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 의 조소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존경 하는 칼빈도 빼빼마른 몸에, 눈에는 항상 눈 꼽이 끼어 있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오늘의 큰 역사를 이루 어 놓았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몸파 얼 굴이 깡마르고, 다리는 뀨달리 길어서 고릴 라라는 별명이 붙어다녔습니다, 정치가들 까지도 조소하고 비웃는 인물이었다고 합 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인물 사도 바울은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키는 작고, 시 력도 좋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작하는 병까 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래도 외 모를 찾아야하겠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저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머떤 사람이 가게를 냈는 데, 진열해놓은 물건에 자기 양심대로 정가 표를 죽 붙여놓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하나 에 3만원 하는 핸드백들이었지요, 그런데 몇 주일이 지나도 물건이 하나도 안팔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화가 나서 그 중 하나에 한개를 더 닥여서 30만원으로 값을 매겨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그 핸드백 이 팔리더랍니다, 손님 하나가 그 핸드백의 가격을 보고 조금 깎자고 했는데, 절대로 못 깎겠다고 했더니 고스란히 30만 원을 내고 사간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핸드백을 산 것입 너까? 도대체 무엇을 산 것입니까? 왜 이래 야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나라 물가 가 올라가는 이유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 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보이면서 "이 게 얼마짜리다" 하는 기분에 살아가는 것입 니다.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비쌀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 그 놈의 허영심 때문입니 다, 그래서 물가가 그냥 치솟듯하는 것입니 다, 싼 것은 안팔리고 비싸야 팔리니까 장사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 니다. 자, 누구한테 이 이야기를 해야 합니 까? 언제까지 이렇게 허영심에 등등 떠서 살아갈 것입니까? 정말 문제가 아니겠습니 까?
하나님이 보시는 나다운 진실
사람이 몸집이 크면 거인이라고 합니다. 마 음이 크면 거물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젊어 야 젊은 것이요, 마음이 커야 인물입니다. 그런데 얼굴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왜 외모에 더 신경을 쓰며 살아가야 합니 까? 외모라는 것은 엄격히 말해서 내가 보 는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나를 의미 합니다, 사실은 내가 보는 내가 진실입니다. 남이 보는나에게 신경을 쓸때에 이것이 체 면이요, 위신이요, 허영이요, 바람기요, 거
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닥명히 "사람 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교 회봉사 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한 일 하 는 것처럼 세살에 초라하고 비참한 것이 없 습니 다,
돌이켜 생각해보십시오. 아내는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을 쓰고, 안알아준다고 을 고 불고 합니다, 도대체 사람꼴이 아닌 경 우가 많습니다. 또 남편은 아내에게 잘보이 려고 했다가 아내가 안알아준다고 배집니 다, 이게 다 뭡니까? 도대체가 신통치가 않 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을 깨끗이 털어버리고 어떻게 한번 좀 당당하 게 살아 볼 수는 없습니까? 왜 이렇게 시시 하고 너절하게 살아야 합니까? 웬 체면을 그리 따집니까?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 까? 여기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평가절하되 고, 위선자가 되고, 거짓하는 자가 되고, 아 무것도 아넌 존재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다 른 사람이 나를 평가해주는 기준에 좌우되 는 인간은 결국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되 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내가 있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내 가 있고,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쪽으로 신경을 씁니까? 어디 에다 마음을 두고 사십니까? 어디에다 총력 을 기울이고 살아야 할 것입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어떻고, 저렇게 말하면 어떻 습니까? 성공했다고 하면 어떻고 실패했다 고 하면 어떻습니까? 어느 경영학 책을 보 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 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성공했다고 할까, 실패했다고 할까? 거기에 신경쓰기 시작하면 그 사업은 괄난다고 합니다, 실패 했다는 말을 안들으려고 뻔히 안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계속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것 은 아주 망하는 일입러다, 여러분,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외모를 꾸미려는 것, 이것은 참 으로 비참찬 일입니다. 나대로 살 수는 없겠 습니까?
하나넘의 기준은 외모가 아닌 중심
오늘의 본문에 보니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 지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이 내 마음에 안든다. 그래서 내가 그를 폐위시키려 한다, 너는 이새의 집으로 가라. 내가 택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 하나를 지명해줄 터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을 왕 통치하에 서 그 자체가 어려운 일어었습니다마는 사 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기름병을 준비해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에 나타난대로 보면 여기가 얼마나 재미있 는 장면인지 모릅니다, 이 사건 자체를 한번 파노라마처럼 생각해보십시오. 이새의 집 에 사무엘 선지가도착을 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네 아들 중에 하나 가 앞으로 유대나라 왕이 될 것이라 하셨느 니라. 아들들을 내게 보이라," 그래서 요새 말로 사열을 하는데 맏아들부터 사무엘 앞 에 딱 섰습니다, 곧바로 하나님께서 사무엘 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아니다," 그
다음에 둘째 아들을 보이니까 그도 아니라 고 하십니다. 이렇게 일곱 아들을 다 세웠는 데 다 아니라 하십니다,
사무엘이 이제 한마디 합니다, "네 아들들 이 다 여기 있느냐? (11절). "아버지 이새가 말합니다,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 키나이다(11전)."저는 여기에 괄호하고 한 마디 더 쓰고 싶습니다, "하나 있기는 한데 신통치 않습니다, 우리집의 이 늠름한 아들 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이어나갈 왕이 나온 다면 몰라도 그 아이는 아럽니다. 도대체가 신통치 않아요,"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했 고, 형제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형들은 그를 향해 "우리는 사무엘 선지를 뵈러 간다. 꼬마야, 너는 양이나 보아라" 했 을 것입니다, 또 다윗도 "우리 형제 중에 하 나가 왕이 되려나보다. 나는 예외야, 여기서 심부름이나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서 양 떼를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부 모도 형제도, 아니 본인까지도 시원치 않게 생각한 그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사무엘 이 그를 데려오라 이릅니다. 그래서 불러오 니까 다윗의 눈에서 빛이 나는 것입니다. 하 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12절)."바로 이 사람이 그 사 람이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급 히 기름을 부었습니다. 다윗이 그 때부터 성 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준을 정하셨습니다. "사람 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 느니라(7절)"고 말씀하십니다, 외모가 무엇 이겠습니까? 잘난 것, 돈 있는 것, 똑똑한 것, 훤하게 생긴 것, 능력있게 보이는 것, 이 런 것들이 외모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는 그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먼 저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은 키가 큰 사람입니다. 잘난 사람입니다. 그런 데 보십시오,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하더니 점점 교만해지지 않습니까? 변심하고 인내 력이 부족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말렉과 의 싸움에 이겼다고 해서 자기 기념비를 떡 세워놓고 자기 자랑을 합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너는 안 되겠다"시며 그를 폐위시키십니다, "내 마 음에 합당한 사람을 세우겠노라"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을 세우십니다, 다윗은 키가 작 았습니다, 그러나 예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장군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 니다. 그는 기문고를 좋아하고, 음차을 좋아 하고, 그리고 양을 치는 일개 목동이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도행전 13장 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 라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그 중심이 하 나님의 마음에 합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이란 곧 정직함 이요, 신앙적인 충성심 입니다. 그는 아버지 의 양떼를 지킬 때에 충성했습니다, 그는 자 신에게 맡겨진 일이면 어떤 일이든지 충성 을 다했습니다, 출세의 기회가 많았어도 그 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대신해서 왕이 될 수 있는 왕자 요나단과도 아주 친하
게 지냈습너다, 시기와 질투를 모르는 사람 입니다. 뿐만 아너라 그는 책임을 질 줄 아 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내 잘못이라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될 때에도 내 잘못이라 합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니는 천하에 고약한 아들이 자기를 괴롭혀도 그는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내 잘 못이니까, 내 죄 때문에 이런 일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아들을 피해서 피란길을 나섭니다 이것은 충성입 니다, 이것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한때 그는 사을 왕의 충성된 신하인 동시에 사위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죽이겠다고 창을 직접 세 번 이나 집어던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비껴 나가서 다윗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를 향해서 창을던지는 사을 왕 앞에서 얼마 든지 대항할 수 있었지만 사울을 피해서 정 처없는 피란길을 갑니다. 이 못된 왕은 곧 다윗을 죽이겠다고 광야에까지 나서서 쫓 아다닙니다, 군사를 몰고 토벌작전을 펼칩 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에 다윗이 사을 왐을 굴 앞에서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사을 을 보았지만 사울은 다윗을 보지 못했습니 다. 그대로 뒤에서 창으로 찌르면 일은 끝나 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을 대지 않 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종 이니까 절대로 내가 미워해도 안되고, 내가 손을 댈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넘께 맡겼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중심 입너다, 다윗의 진실입니다. 어떤 피해를 입 어도, 설사 내가 죽어도 나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신하의 본분을 끝까지 다하겠다는 것입너다, 중싱이 아주 곧은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그 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는 결코 의인은 아닙 니다. 그리 깨끗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심만은 똑바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 에 보면 다윗이란 이름이 무려 8백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모릅니다. 다윗의 별명이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는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던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 으셨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 는 그리스도 메시야"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과거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보시 는 예수님의 기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 나는 그 깊은 세계를 보시는 것입니다. 뽕나 무에 기어올라간 샅개오를 보십시오. 체통 도 없이 엉금엉금 올라간 세리장 삭개오웨 충심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위로 를 내리십니다, 비륵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받고 있지만 그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를 아셨습니다. 또 자기 잘못을 앞호, 자기 처지도 알고, 메시야를 기다리초 있는 세리 마태를 보시고, 중심을 보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십너다. 세관 현장에서 부르십니다. 바 로 그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귀신들린 지 18년이 되어서 아무도 사람 취 급을 하지 않는 도깨비같은 여자를 보시고
는 "아브라함의 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 속에 아브라함의 딸이 있었던 것입니 다. 다만 지금 귀신에게 속박되어 있을 뿐입 니다. 이렇게 중심을 보시고, 깊은 곳을 보 시고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미래를 보십니다 그 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네가 보리라" 또 베드로에게 는 "천국 열쇠를 주노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고 도망간 그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장차 네가 나를 위해서 많 은 핍박을 당해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미 래를 보셨습니다. 저 먼 미래에 거꾸로 십자 가에 못박히게 될 베드로를 바라보시면서 오늘의 베드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리분,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를 핍박함니다. 그러나 예수님 께서는 그를 필요로 하시고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방사람을 구원하고 임금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택 한 나의 그릇이다." 사울이라는 극악한 사 람을 부르시고 앞으로 크게 쓰시낀다고, 내 가 텍한 그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 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요, 내게 직분을 맡기 신 것은 나를 충성되이 여기셨기 때문이 라." 바울의 중심에 진실이 있었습니다. 충 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시 그의 편지 디모데후서에서 "큰 집에는 금그 릇, 은그릇, 질그릇, 나무그릇도 있다. 그러 나 어떤 그릇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깨끗한
그릇이냐가 문제이다"고 합니다. 그렇습니 다, 중심이 깨끗할 때에 쓰이는 것입너다. 외모는 낡아집니다
미모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죄 송한 말씀이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든 오십이 넘으면 다 비슷비슷합니다. 잘난 것 도 없고, 못난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 람들은 대체로 감자처럼 밋밋하게 생겨서 그저 비슷비슷합리다. 이제는 러이상 구별 할 길이 없습니다, 외모에 있어서만큼은 대 충 사시기 바랍니다. 깎아버리고 주워 바르
고 하지 말고 마음대로 살아봅시다. 문제는 내적 존재입니다, 중심입니다. 하나넘께서 는 중심을 보십너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적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진실 에 인정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유능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잘 나지는 못했어도 믿음 의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하나님에서 그를 쓰시고, 오늘의 말씀에 주 신대로 그에게 영감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바를 내가 소 중히 여길 줄 알아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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