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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간증설교 37편

하나님께 세 끼 밥 얻어먹는 손광석 목사

by 【고동엽】 2025. 1. 15.

하나님께 세 끼 밥 얻어먹는 손광석 목사                          출처

 

<비디오>

인천 주안역에 가면 24시간 문이 열려있는 교회가 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교회!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노숙자나 중증장애를 가졌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들을 환하게 반기는 이가

바로 밀알교회 담임 손광석 목사다.

 

수, 토 오전 11시에는 밀알교회에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들이 드리는

가장 큰 예배가 열린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찾았던 이들은

예배에 참석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손광석 목사는, 지난 2000년 모두가 꺼려하던 밀알교회에 부임하여

이들을 섬기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61세 때의 일이었다.

 

예배가 끝나기 바쁘게 긴 줄이 만들어진다.

점심 한 끼를 위한 줄이다.

 

밀알교회 점심 무료급식은 1년 365일 계속된다.

여타의 급식소가 문을 닫는 공휴일, 명절도 예외 없이 문을 연다.

그래서 의정부와 분당 등지에서도

한 끼 식사를 위해 이 곳을 찾는 분들이 있을 정도이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선다.

이번에는 부식거리를 타기 위해서다.

밀알교회의 사역은 이처럼 한 번의 구제로 끝나지 않는다.

 

(성도 인터뷰) “다 좋죠 다 좋아요!

교회에 오면 마음도 편하고, 기쁘고.. 그래서 오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 고민만 생기는데..”

 

(손광석 목사 인터뷰)

하나님한테 '왜 하필 나를 여기로 불렀습니까?'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내가 너를 발로 차서 보낸 것 아니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자, 불안한 자를

내 몸과 같이 살피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보내고, 내가 하는 것인데 네가 무슨 걱정이냐?'

그런 생각이 나서

‘아 참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밀알 교회를 찾는 이들을 빈민이라 부른다.

하지만 손광석 목사에게 그들은 예수님이다.

더 낮아져 섬겨야될 대상들이다.

 

그래서 70세의 노목사는, 오늘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산다. *2010년 경 비디오

    

...................................... 대담 시작 .....................................

 

 

사회자) 급식을 하루에 몇 명이나 하십니까?

 

요일에 따라 다른데

적은 날은 120명, 많은 날은 380명

평균 약 235명 매일 급식에 옵니다.

명절, 공휴일 없이 매일 급식사역을 합니다.

 

사회자) 이렇게 식사 대접을 하시게 된 것은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 것이죠?

 

저희들이 중증 장애우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우리도 밥 먹을 것이 없었어요. 저희 교회는 원래

연탄공장 하던 자리였거든요.

생활이 아주 어려운 분들이..

 

저희 교회는 문도 없고, 지붕도 없이

맨날 들어와서 밥을 달라고 소리 지르는 겁니다.

며칠 째 굶었다고요.

 

그래서 내보낼 수도 없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목마르고 굶주린 자, 나그네를 영접하라' 하셨으니

이들을 무시해 가지고 우리가 복을 못 받는다..

먼저 일단 시작하자!  해서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사회자) 재정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충당해주시는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돈 보다도, 식사를 준비할 일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중증 장애인들 뿐이었으니까요.

최초에 시각장애우들이 봉사했습니다. 이 분들이 일을 잘 합니다.

 

그분들께 주전자에 물을 끌여서, 컵라면에 부어드시고, 또 나눠드리라고 했더니,

거의 다 컵라면을 드시지 않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를, ‘배가 안 고프신 모양이다’

지금 쭉 지내놓고 보니까, 식사를 거른 사람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분식을 먹게 되면, 소화가 안 되서

위가 아파서 견디질 못 합니다. 그러니 컵라면을 못 드신 거지요.

 

그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밥을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식사 문화가 밥입니다. 그런데 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단을 내려서, 모든 쌀을 다 모아서 그 날 점심을 해 드렸는데요,

누가 대문 밖에 쌀 두 포대를 갖다놓았더라고요.

 

사회자) 데리고 있던 중증장애인들이 먹는 식량인데

그것이 여유가 있지 않았을 텐데,

그 날 노숙인 식사 대접으로 다 써 버리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셨는가요?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굶으면 굶으리라 했었죠)

그때는 김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쌀을 털어서 밥을 지었더니

그 날 오후에 누가 쌀을 두 포대 갖다 놓았고

며칠 있다가 또 누가 쌀을 네 포대 갖다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급식을 하면서 지나왔는데,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계속 가져다 주신 것입니다.

 

사회자) 그럼 목사님, 따로 무슨 정기적 후원이 없습니까?

무슨 모금하는 지로용지 보내고 하잖아요?

‘우리가 이런 봉사를 하니 협력을 해 주십시오’ 이런 방법을 쓰지 않으십니까?

 

네, 우리 교회가 원래 중증장애인들과 생활을 같이 하기에

제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장애우들을 돕기 위해서, 무슨 지로나 이런 것으로 노출시키게 되면

가족하고 헤어져 있는데,

상처를 받게 되고, 회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도 대단하지 않지만

하나님께만 무릎 꿇고 해보자,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자 하면서

 

첫째, 절대 지로를 만들거나 홍보물을 돌리지 말자.

둘째, 저명인사 중심으로 후원회를 구성해서 모금하지 않는다.

셋째, 우리 교회에서는 바자회를 하지 않는다.

넷째, 기도해서 주시면 하나님의 응답이고, 안 주시면 또 그것도 응답이다.

다섯째, 아무 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1년에 연말 한 번은

          공인회계사를 모셔서 회계감사를 받는다.

 

그러다가 수 년이 지나서, 제가 조지 뮬러 목사님의 책을 읽어보니까

그 목사님도 그렇게 하셨더라고요.

지금까지 현재 우리는 변함 없이 급식을 해 오고 있습니다.

 

대단히 감사한 것은 1년 365일 쌀이 없어서

급식을 중단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음식이 모자란 날도 하루도 없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급식을 하면서

저희처럼 급식 하는 데가 다른 지역에도 많거든요..

거의 우리 신앙인들이 하죠.

 

그런데 저희교회는, 전체가 중증장애인이고

우리 교회 성도 중에 직장생활 하면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헌금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점심밥을 주는 것만으로

아침과 저녁식사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점심 식사 후에는 밥을 싸 줍니다. 그 봉지 안에 밥 두 공기를 싸 줍니다.

그러면 아침과 저녁으로 드시라는 겁니다.

 

그 분들이 술이나 담배를 안 잡숫게 하려고, 저희들이 간식도 제공해 줍니다.

또 안 보여서 집으로 찾아가 보면,

어떤 분은 집에 중증장애를 가진 식구들이 함께 사는데

네 명, 다섯 명이 함께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희들이 식량을 싸 갖고 가서, 거기서 식사를 만들어 드립니다.

 

또 일주일에 수요일, 토요일에는 우리가 야채와 과일을 나눠드리는데

그걸 드려도 만들어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희들이 반찬을 갖다 드립니다.

 

해서 밥 한 끼로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의 가정이 회복될 수 있는 단계,

식욕이 있게 되면 일할 생각이 나거든요.

그래서 좀 더디더라도 일 하는데 먼 초점을 두고

저희 교회가 목적이 있습니다.

 

사회자) 그러니까 점심 한 끼 목적이 아니라

그 분들의 식생활을 다 책임을 지고 계신 거네요.

 

목사님, 그 어떤 세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시게끔 하시는군요.

 

그 특별한 경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이 어떻게 헌물을 드렸다든지...

그런 감취진 감동적인 얘기도 숨어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한 80세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양대학교 앞에서

맥반석에 쥐포를 구워 파십니다.

작은 쥐포는 몇 백원 밖에 안 합니다.

그렇게 노점상으로 번 돈으로,

매달 2~3만원을 후원금을 보내 주십니다.

집도 없으신 분들이요.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일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장애우라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하지 않고, 저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아먹기만 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렇게 권고를 드립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눈이 많이 와서

지방 국도에 교통을 통제할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나이드신 여성분이 전화가 왔는데, 이름도 밝히지 않고

‘내일 쌀이 150포대가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밀알교회를 위해서 3년을 기도했답니다.

 

그래서 어디서 사는지도 밝히지 않고,

‘제가 칠순이 되어서 칠순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밥 먹으면 뭐 하겠습니까.

거기 굶고 있는 사람,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해서 쌀을 150포대 실은 트럭이 도착했는데,

운전기사에게, 그 기부자의 인적사항을 혹시나 아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기부자 본인이 가르쳐 주지 말라 했으면, 제가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은,

혼자 사시는 분인데, 생활보호대상자입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에게 쌀이 들어오거나 다른 후원이 들어올 때 보면

굉장히 눈물 겹습니다.

아주 가난하고, 정말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될 사람들,

그런 분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세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어떻습니까? 오시는 분들이 배고픔만 달래시고

영의 양식을 주기 위해 예배를 인도하거나 하면,

백프로 호응하십니까, 아니면 밥만 드시고 돌아가시나요?

복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시는 분도 계실 터인데요

 

해보니까 우리가 맨날 밥만 드려서는

이러다가 우리도 지쳐버리고

저 분들도 밥만 먹다가 결국 돌아가실(죽으실) 것만 같아서 걱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교회를 표방하니까,                *밀알교회

‘예수 믿으라’고 권하면, 힐끗 쳐다보다가

숟가락을 탁 놓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신앙으로 잘 양육하라고 보내신 것인데

밥만으로는 양육이 온전히 되지는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급식은 매일 하지만,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 날은, 일부러 다들 일찍 오십니다.

오전 8시 반부터 오십니다.

 

굉장히 예배 분위기가 좋고,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하나의 전도의 수단으로써

이 사역을 이끄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예배 분위기를 와서 보시면 축제 같다고 느끼실 것입니다.

노인들이 신체적으로 약해서 오래 못 앉아 있습니다.

또 화장실에 들락날락 해야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두 시간 이상 예배를 드릴 때도 있는데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1년에 우리 교회를 거쳐 가시는 분들이 (연인원) 8만~20만명 됩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서, 전도가 다 되어서 굉장히 감사합니다.

 

▲이렇게 밀알교회를 맡게 된 계기는,

그때가 2000년 2월 10일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사업 차 출장을 갔다 왔는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장로님, (그때 제가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이었습니다.)

인천 주안 지역에 밀알교회에 장애우들이 약 70~80명 있는데

후임 목사를 구하고 있는데, 3년이 넘어도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장로님, 장애우 사역은 매우 힘듭니다.

그렇지만 하시게 되면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전화에 제가 “네”하고 대답하고,

지금의 밀알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내 권사에게는 우리 소유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 소유는 없어야 되겠다 해서, 그 때 우리 집을 처분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진 모든 전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놔야 되겠다.. 하고 결심했었죠.

 

그렇게 해서 인천 주안역 앞에 밀알교회로 오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막연했습니다.

제가 전에 설교를 해 봤습니까?

장애우를 돌봐 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의 소대변을 한 번 처리해 본 적도 없었고요.

 

그들 장애우 성도들이 아프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죽으면 어디서 장례를 치러야 되는지,

또 식량은 어디서 구해서 먹여야 되는지..

제 머리에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너무 막연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한테 의지해야 한다고

그때부터 기도하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10여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현재 2019년은 20년 차

제가 어떠한 개인적 목표나 계획이 있었으면, 여기까지 못왔을 겁니다.

 

지내놓고 보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비가 오면 상습 침수지역입니다.

가슴까지 물이 찹니다.

남의 창고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데요,

그때 여러 가지 생각도 많았죠.

 

그 날도 양식이 안 되고, 먹을 것도 없고

어디서 정기적으로 지원해주는데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가 뭐하고 왔냐?’ 물어보시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그 양떼를 위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제가 그 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애쓰다가 왔습니다.’

 

최후 심판 때 그 대답을 드리겠다고 제가 늘 생각하며

이 사역을 해 왔습니다.

 

또 하나, 우리 자녀들을 다 모아놓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러 가는데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고 거기에 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아이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들도 또 부모한테 의지하지 않고요.

자녀들이 부모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니까 굉장히 감사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밥 한끼 얻어먹으러 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흘 나흘을 굶었다가 옵니다.

그러면 그 한 끼 안 먹으면, 그것 때문에 그 분이 죽는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 못하면 사람이 죽는다’ 생각하면서

저희 권사(사모)가 굉장히 고생 많이 했습니다.

돈도 없고, 봉사자도 없고, 또 막일도 안 해 본 사람인데

매일 주사바늘 꽂고 살던 사람인데

 

한 번은 울면서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이 안 보여요’ 실명이 되어버린 겁니다.

왜냐면 담낭 잘라냈죠. 췌장 잘라냈죠.

고혈압에

그러고 피가 돌지 않아서 눈의 모세혈관이 막혀서 시각이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 거죠.

그러면서 무릎 꿇고 저보고 살려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서서 주방 일을 하니까, 항문이 내려와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가 살겠다고 이 사역 팽개치고 나가게 되면

저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길을 지나가다가도 간판도 떨어져서 맞아죽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인도로 갔는데도 차가 돌진해도 죽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이 일 하다가 죽는다면

누군가 와가지고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고 찬송가 불러주면

끝이지 않느냐! 이렇게 살다가 일생을 마치자!"

그랬는데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아내가 잘 지내왔습니다.

 

사회자) 아니 목사님, 사모님까지 실명했다는데

그 말 들을 때 목사님은 사모님께

‘내가 이건 너무 심하게 못할 일을 시키고 있다’

그런 생각은 안 드셨나요?

 

아내 말고 식당 봉사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자원봉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성도들은, 중증 장애우들이니까

스스로 걷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안 하면, 안 되는거고

특히 우리는 중증장애자 중에

지체장애자만 있지 않고, 정신장애자도 많이 있습니다.

 

1초에도 몇 번씩 변하고 그러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제게 맡겨주신 것,

그 사람을 내가 불쌍히 품고,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울 수 있는 것.. 

 

참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일을 시키신 것,

그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제게 보내주신 것을 생각하면요

굉장히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그런 하나님 은혜 감사하면서

또 알게 모르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사회자) 목사님, 이렇게 정말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셨는데

따님이 안타깝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제 딸이 그 때 당시에 44세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딸이 그 부름 받은 일로 인해서

우리가 불쌍한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딸은 오히려 부모인 저희 부부보다도,

하나님이 딸을 더 사랑해서 일찍 데려가셨구나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사회자) 그 정말 가슴에 따님을 묻어야 되는데

그 어머님(사모)께서 그 안 좋은 건강에 거의 실명하실 뻔 하셨다가

저희들이 사모님을 화면으로 만나됩겠습니다.

 

김경화 사모 인터뷰)

처음에 여기 주안 밀알교회에 와서 보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비가 사방에서 새고,

전기선이 막 누전되서 불이 날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전체가 다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은, 대개가 다 팔을 못 쓰거나 다리를 못 쓰거나

하는 중증장애인들이었어요.

그 분들이 뭔가 도와줘요? 장애 특성상 못 도와주죠.

그래서 남편과 제가 둘이서 그걸 다 치우고 하느라고 처음에는 힘들었죠.

 

지금은 천국으로 변했어요.

지금 저는 여기를 천국이라고 불러요.

 

(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을 때의 심정은?)

그 딸이 치매 노인들을 자기 집에 모아서 돌보았는데

그러다가 과로사를 했는데,

저희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사고가 나서 듣게 되었어요.

 

저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죠. ‘네가 무슨 그런 일을 하냐?’

제게 딸 하나, 아들 둘이 있는데

제일 큰 딸이었어요.

뭐 하나님께 간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좋은 일 하다가 갔으니까

그냥 그렇게 마음 편히 생각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쉬지 않고 이 시간까지 왔으니까

앞으로도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는 기도하는 것이

하루하루가 그저 감사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부디 우리 열심히 기도하면서 계속 섬겨 나가게 되길 발바니다.

 

사회자) 참 특별한 사역으로 부르셨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목사님을 부르셔서

이런 사역을 시키시려 하실 때

그렇다면 왜 좀 이른 나이에 부르셔서 시키시지

비교적 늦은 나이에 (60세에) 부르셔서 시키신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생각해 보셨는지요?

 

저는 하나님이 저를 늦게 부르신 뜻을 전혀 모르죠.

환갑이 넘어서 하나님이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때도 생각이 ‘참 막연하다..’

설교를 해 본 적도 없고, 어디서 지원을 받을 데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니까

그 많은 사람 중에서도 서로 오라고 해도 가지도 않는 곳인데

저를 택하시고, 이 나이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개인이나 가정에 참으로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굉장히 참 지내놓고 보니까

우리가 어떠한 의도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도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고, 지금도 우리 교회 성도들을

숫자로 보고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놓고, 예를 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뼈가 약해서 잘 부러집니다.

그래서 차량에 태우려고 해도, 달팽이처럼 몸을 모아서

차로 옮겨야 합니다. 아니면 다치니까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저 분을 우리가 휠체어를 차에도 못 태우고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차에 올라가는데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가 있으면,

뒤에서부터 휠체어 통째로 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량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면서 기도했죠.

우리 교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상상도 못 하죠.

 

그리고 주보에다 ‘중증장애인을 실을 수 있는

리프트가 장착된 버스를 주십시오!’ 한 번 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젊은이가

하루는 남루한 옷을 입고 왔습니다.

넥타이 맨 것도 서툴러 보였는데,

큰 사진기 담는 가방 같은 것을 메고 와서

제 책상 위에다가 딱 놓더라고요.

 

‘목사님, 이 돈이 29인승 버스 한 대 값인데,

(리프트 장착비가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데)

거기에 리프트 장착비, 보험료, 등록세,

그리고 1종대형면허를 딸 수 있는 학원비 3명 분,

해서 그 돈을 제 책상 위에 딱 놓고 갔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산비탈 길에 살거나 하면 차가 못 올라갑니다.

그래서 ‘장애우를 목욕시킬 수 있는 이동 목욕차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놓고 기도했는데, 그것도 주보에다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동목욕도구 장착비가, 차량값보다 비쌌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어떤 분이 오셔서

자기는 라면 세끼만 먹을 것 있으면 걱정하지 않는데요.

그렇게 어렵게 사시는 분인데, 그 분이 역시

이동목욕차량비, 목욕도구 장착비, 보험료, 등록세,

다 해 가지고 열쇠만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차가 네 대가 되었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고,

생활이 여유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영수증을 써 주려고 했더니

‘하나님 것인데 제가 어떻게 영수증을 받아가느냐?’

그러다라고요.

 

그래서 저희 교회가 조그맣지만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사역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면

굉장히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급식으로서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가정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을 목표 중 하나로 둡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정말 가정이 다시 합류되고

건전한 생활이 될 수 있게 되도록,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가

부모가 “있는” 고아가 많습니다.

 

우리 당대, 내 당대 때는 보지 못하지만

미래에 열매를 바라보고 투자를 하자.. 해서

저희 교회에서는 5살 때부터 지금 유학 가 있는 장애자까지

교육을 많이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넉넉한 자가 부족한 자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와주고 공존공생하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지역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이

자기 자녀를 몰래 불러서 우리에게 보내면, 저희들이 학비를 댑니다.

 

그래서 이번에서 대학생 3명이 졸업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되었는데

625사변 때 에티오피아가 참전해서 이 나라의 평화에 기여했는데

그런데 그 나라에 물부족 문제가 지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은혜를 갚는 방편으로

한 달에 2만원 내면, 거기 아이 한 명이 먹고, 학비까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아공, 콩고, 에티오피아,

요즘 전쟁이 나고 있는 팔레스타인, 몽골, 인도, 방글라데시

 

그래서 여러 나라에 아이들을 상당히 많은 숫자를

학교에 보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해서 들어간 물질은

그 안에서 성령이 폭발하게 되면

그 아이들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스운 얘기 같지만, 우리교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오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십년이 넘도록 기도해 오고 있는데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IOC 위원장이 나오고,

OECD 위원장도 나오고, 세계에서 인류역사상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도했는데

반기문 총장이 나오셨습니다.

 

아마 다른 교회에서도 기도했겠지만, 우리 교회에서 우리 성도자체에서는

동장 나올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니까

반기문 총장 같은 훌륭한 분이 나오셔서

그래도 우리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우리가 풍요로운 믿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사회자) 정말 목사님의 사역이 밀알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이렇게 영향력을 떨치는 것을 봅니다.

그런 비전을 갖고 계신데, 앞으로 또 기도하실 제목이 있으면 나눠줘십시오.

 

1. 먼저는 특히 인간적인 면인데요

제가 지금 나이가 들어서 굉장히 힘듭니다.      *2019년 80세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식목일 때 나무 심어 놓고, 부목을 댑니다. 부목 같은 부교역자!

그러니까 내가 희생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

우리 교회에서 그런 사람이 와서 이 일을 이어서 할

후임 목사가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2.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일을 누구든지 와서

몸으로 봉사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 직장이나 생업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좀 건강한 사람이 와서

(건강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도와가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3.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도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돌본 것처럼

저희들도 물질이 있어야 이 사역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 기도해 주시는 분들!

우리가 정말 비천하고 준비 안 되고

천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계속 하기 원하시니까

그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5. 우리가 사막도 보게 되면

큰 나무가 먼저 쓰러지는 게 아니라

잡풀이, 잡초가 없게 되면, 큰 나무도 결국 쓰러지는 것을 봅니다.

그 다음에 사막이 되고 말죠.

 

작은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고,

하나님께서 쓰신 교회이니까

큰 교회에서 작은 교회들에게

많은 기도와 사랑으로 배려하고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기를

이 마지막 때에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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