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31장25-55 / 라반과 야곱이 화해하다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5월23일(월)■
 
(창세기 31장)
 
25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2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묵상/창 31:25-55)


◆ 라반이 야곱을 잡다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알리지 않고 떠난 것은 제대로 된 상황파악이었을까, 아니면 라반의 말처럼 야곱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그동안 외삼촌의 이기적인 태도와 속임수에 여러 번 당한 야곱의 피해의식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야곱이 양들을 도둑맞으면 외삼촌 라반은 여지없이 그것을 물어내게 했을 정도로 야박했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열 번이나 품삯을 바꿀 정도로 이기적이었으며 야곱을 부려 먹기 위해 종종 속였다(39-40. 이런 외삼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과연 라반이 자기 말처럼 야곱을 즐겁게 보냈을지, 아니면 빈손으로 보냈을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라반이 무려 칠 일을 추적해서 왔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이 상하고 분노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을 공격할 순 없었다. 하나님께서 꿈에서 그에게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야곱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산 사람이다.
우리는 바로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 라반의 우상을 훔친 라헬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반이 야곱을 추적한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그 중 하나가 드라빔을 잃어버린 것이다.
드라빔은 성경에서 종종 '우상'으로 번역되기도 한 히브리 단어다(삼상 15:23).  드라빔은 신전보다는 가정에서 모시는 작은 신상으로 추정된다.  크기도 다양한 듯한데, 오늘 본문에서는 라헬이 낙타 안장에 숨길 수 있을 정도였으니 손에 쥘만한 작은 인형이었던 듯하다.


당시의 라반 식구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드라빔으로 형상화해서 섬겼던 듯하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에 금송아지를 새기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칭했던 것과 같다.


그들에게 드라빔은 단순한 조각품이상의 의미기 때문에 드라빔을 찾으려고 애쓴 것이나 라헬이 그것을 훔치고 끝까지 가지고 있으려고 한 것이 당시 사람들의 미신적 사고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서 숭배하기를 좋아한다.
오늘날에도 카톨릭은 마리아나 예수님의 성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일부 교인들은 집에 모셔놓고 예배하기도 한다. 카톨릭의 변명에 의하면 성경을 못 읽거나 무지한 사람들을 위해 성상은 신앙을 돈독하게 유지시키는 좋은 수단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나무나 돌에 묶어두게 하며, 영적인 세계를 육적인 세계로 수준을 끌어내리고. 하나님을 인간의 보호 아래 두는 오만을 범하게 한다(사 41:7, 사 44:9-20).




십계명 제2계명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출 20:4,5).
그러나 놀랍게도 카톨릭 교리서에는 십계명 2계명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카톨릭의 성상 숭배를 반대하며 모두 없앴지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상 대신 십자가를 숭배한다. 그게 그거다. 모두 '드라빔'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신앙방식이지만, 십자가를 조각해서 그것을 신상처럼 위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수시로 성찬을 하면서 무수히 주님의 십자가를 말하고 묵상했으며, 그것이 성도의 거룩한 삶의 기초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십자가를 직접 나무나 쇠로 만들지는 않았다.


오늘날 고신 측 교회는 강대상에 십자가 새기는 것조차도 금한다고 들었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상징물로써 지붕 위에 걸고, 강대상에 새긴 것까지는 용납할 수 있지만, 제단에 모시고 예배하거나 그 앞에서 기도하는 식의 행위를 하면 안된다. 십자가 형상이 하나도 없어도 늘 십자가를 말하고 묵상하는 경건한 교회가 있는 반면, 강대상이고 벽이고 온통 십자가를 새겨놓고도 정작 십자가를 묵상하지 않는 교회도 있다.


라헬은 훔친 드라빔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을 점점 오염시켰다.
후에 야곱은 성결을 위해 드라빔을 비롯한 각종 이방 신상을 모두 땅에 묻을 것을 지시한다(창 35:4).


◆ 야곱과 라반의 언약


야곱과 라반은 언약을 맺고 그 증거로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웠다.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돌무더기를 뜻하는 아람어 '예갈'과 증거를 뜻하는 '사하두타'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야곱은 '갈르엣'이라고 햇는데, 역시 그것도 무더기를 뜻하는 '갈'과 증인을 나타내는 '에드'의 합성어라고 한다. 히브리어인데, 이 구절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아람어가 나타난 구절로서 당시에 아람어와 히브리어가 공용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미스바라고도 불렀는데, 지켜보다라는 의미를 포함한 말로서 '파수대'를 의미한다. 후에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다(삼상 7:5-16).


야곱과 라반이 화해하고, 좋은 결말로 끝나게 됨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외삼촌의 축복을 받고, 일일이 사랑을 확인하고 이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야곱이나 그의 아내들도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겠는가?


애초에 이렇게 돼야 했었다.
이 놀라운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었다.


깨진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우리가 인간관계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실 것을 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 16:7)


주님,
미숙하고 어리석어서 종종 인간관계를 해치곤 합니다.
지혜를 주시고, 은총을 베푸셔서 깨진 인간관계들을 하나씩 하나씩 회복해가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