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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공동체 안에 계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8:19-20)

by 【고동엽】 2022. 11. 16.

신앙공동체 안에 계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8:19-20)

논지 :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속에 주님께서 임재하신다. 임마누엘 약속

대강절 ;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임마누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예수님 오심)
기다리는 절기


제가 여러해 전에 러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내자도 없이, 블라디보스톡으로 해서 모스크바로 굉장히 긴 길을 혼자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러시아말을 하나도 모르구요, 러시아 글자는 또 알파벳으로 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도데체 이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안내자도 없이 그렇게 여행을 할 때에 러시아 사람들은 또 외국사람을 우대하지도 않습니다. 외국사람을 천대해서 비행기를 타도 좌석표대로 앉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좋은 자리를 다 앉고 그 다음에 남는 자리가 있으면 그 다음에 외국사람이 앉는겁니다. 공항에 내려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택시라고 써있는 것도 없어요. 우리로 치면 자가용 영업하는 그런 것인데, 택시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또 깡패가 많답니다. 그래서 그 목적지까지 가는데 얼마나 불안했던가 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여행을 하지 않고 안내자와 함께 여행을 한다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 그 사람한테 내맡기면 되니까요. 나는 그저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고 또 같이 안내를 받으면 됩니다. 안내자와 함께 가면 평안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 인생길도 다음 시간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의 갈 길,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것이 인생길입니다. 그 인생길을 안내자가 없이 혼자 길을 가고자 했을 때에 정말 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인도자가 되시고 안내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면 인생길을 평강 가운데에 갈 수 있겠지요.

여러분 우리가 대강절 두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대강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다는 것인데, 그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신다는 것은 임마누엘 약속의 성취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성취하는 그런 것이 바로 성탄절이고, 그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대강절입니다.

저는 이 대강절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에 대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계시는 것을 전하겠습니다.


가. 공동체

1. 공동체의 특성 –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20a)

1) 세상의 모임들

세상에 여러가지 모임들이나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모임과 단체들은 각각 자기 이름들을 표방을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한기총’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NCC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기독교교회협의회. 이런 단체들은 교회들이 모인 단체다 라는 것을 그 이름 가운데 분명히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체가 왜 모였는지? 무슨 목적을 가졌는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하는 것들을 그 이름 가운데 나타내는 것이지요.

1) 우리 교회는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표방하고 나가는 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신앙고백하는 공동체, 신앙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교제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예수님만이 가장 중요한 분이시고, 예수님만이 가장 높임을 받으실 분이시고, 예수님 말씀이 가장 중요한 표준이고 가치입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 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생명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교회 안에 신앙고백하는 공동체 속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에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경배하게 하고 또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들로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아예 모일 이유도 없구요, 예수님이 없으면 교회 자체가 아무 가치가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이름 때문에 모였고 예수님 이름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우리 교회입니다.

1) 교회는 또한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가 바로 우리 교회지요.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날마다 교제하고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우리 신앙과 인격이 거룩하게 날마다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곳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드러내고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전파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각 다 재능과 은사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노래를 잘하고 어떤 분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어떤 분은 가르치기를 잘하고 각각 다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전문분야가 있습니다만, 그런 자기의 재능을 다 발휘할 때에 궁극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여러가지 활동들을 합니다. 구제도 하고 봉사도 하고 찬양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합니다만, 그 모든 활동들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나타내고 전파해야 되는 것이지요. 교회는 예수님 이름 때문에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수님 이름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1. 공동체의 인원수 (19a, 20a)

1) 그런데 교회라는 공동체를 오늘 성경에서는 그 인원수를 굉장히 우습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사람, 혹은 두세사람, 한사람 혼자서는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니까, 두사람 이상 복수가 되어야 공동체를 형성하니까 두사람이나 두세사람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본래 유대교는 남자 10사람, 열가정, 열세대가 모이면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를 했습니다. 그래서 회당도 형성을 하고 랍비를 청빙해다가 성경을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열사람에 비하면 두사람, 두세사람은 굉장히 작은 것이지요. 그 공동체의 구성인원을 굉장히 완화시킨 것입니다.

1) 여러분, 세상에서는 숫자가 많이 모이는 것이 힘이고 중요합니다. 나라도 민족도 숫자가 많아야 강대국이 되는 것입니다. 군대도 군인 숫자가 많아야 강한 군대구요, 회사도 사원 숫자가 많아야 대기업입니다.

1) 그런데 교회, 신앙공동체는 숫자가 얼마나 모이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두사람(19a)이나 두세사람(20a) 모이면 된다고 할 때에 숫자하고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몇 명이 모이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교인 숫자가 많은 교회입니다. 교인 숫자가 많기 때문에 큰 교회라고, 힘 있는 교회라고, 인정도 받고 대접도 받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감사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만, 그러나 숫자로 교회를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세속적인 일입니다. 교회는 숫자가 중요한 조건이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모였느냐가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숫자가 작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공산권이라든지 회교권이라든지 핍박을 받는 곳에서는 교인들이 많은 숫자가 모일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도 적은 숫자의 교인이 모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적은 숫자가 모이지만 예수 이름으로 모일 때에 그 교회는 참된 교회로 우리가 분명히 인정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1) 신앙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수 이름으로 모이느냐 모이지 않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모일 때에 그 신앙공동체는 숫자가 몇 명이든지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해서 의인 10명만 있으면 내가 구원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창19:22-33) 그 도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만, 열명이라는 것은 극히 작은 숫자이지요. 작은 숫자이지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소수가 있을 때에 그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숫자는 적지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이 능력이 있고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면 그 모임이 참된 신앙공동체요, 그 모임에 능력과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음식점은 어떤 음식점이 좋은 음식점입니까? 좋은 음식점은 음식맛이 좋아야 좋은 음식점입니다. 시설이 좋다든지,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좋다든지, 그것도 다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어떤 음식점은 시설도 형편없이 다 찌그러진 집인데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단 말이지요. 왜그렇습니까? 음식맛이 좋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좋은 교회란 예수 이름으로 모인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역에서 혹은 공부반이나 여러 부서에서 모일 때에 예수 이름으로 모이십니까? 예수 이름으로 모여야 참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예수 이름으로 모여서 참된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 임마누엘 약속 (20b)

1. 가장 기본적인 약속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에 우리 주님께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20절에는 뭐라고 약속을 하시냐면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약속을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축복하시는 가장 큰 축복은 뭔가 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반대로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시는데, 가장 큰 저주는 내가 너희를 버리고 너희를 떠나리라 그것이 가장 큰 저주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게 되었는데, 그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약속의 성취인 것입니다.

1. 임마누엘 약속은 평강의 약속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것은 평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그래서 그 백성이 평강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시편 23편 4절 말씀에는 시편기자가 어떻게 고백하냐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고백하고 있습니다. 환경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굉장히 나쁜 환경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만 하면 나는 안전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는 고백이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은 한 집에 모여서 문을 꼭꼭 닫아 잠그고 두려워서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에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하게 된 것이지요.(요20:19-20)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어떤 소유보다도 어떤 환경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마당에서 어린 아이가 자기 부모를 잃어버렸어요. 을고 있는 것을 사무실로 데려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가끔 가다 보면 마당에서 울고 돌아다니는 애들이 있습니다. 자기 부모님을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사무직원이 엄마를 찾으러 나갔는데, 이 녀석이 앉아서 계속 우는 거예요. 시끄럽게 계속 우니까 우는 것을 좀 달래보려고 먹을 것을 줍니다. 먹은 것은 한 손에 쥐고 계속 웁니다. 또 먹을 것을 주면 그것은 또 한 손에 쥐고 먹을 것은 계속 챙기면서 그러나 울기도 계속 우는 것이지요. 그러나 엄마가 딱 들어오니까 울음이 딱 그쳐지고 손에 쥔 것을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 보다도 엄마 아빠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엄마 아빠가 있으면 먹는 것도 입을 것도 다 해결이 되지만 엄마 아빠가 없으면 먹을 것 입을 것을 아무리 갖다 주어도 불안하고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평강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고 하면 예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1. 또 예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 속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에 그 신앙공동체는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마28:19)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마7:22) 예수님 이름으로 병을 고칩니다. 예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 건물과 시설이 얼마나 웅장하냐, 제도와 조직이 얼마나 탄탄하냐, 거기에 권위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이 드러나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에 그 교회는 권위와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이집트에서 서양 백인 선교사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이집트는 회교국가기 때문에 선교사가 자기 신분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몰래 조용히 만났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이집트에 곱딕교회라고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교회가 있는데 왜 이집트가 계속해서 복음화 되지 않습니까, 그 교회는 도데체 무슨 구실을 합니까? 그런데 그 선교사님 대답이 이집트에 있는 교회는 이가봇입니다. 이가봇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이지요. 엘리와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모든 형식과 구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제도와 조직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법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런 제사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지요. (삼상4:21-22)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어요. 이가봇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교회는 건물도 있고 제도도 있고 성직자도 있고 다 갖추고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평가를 다른 사람이 내리게 된 것이지요. 예수 이름으로 모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그 신앙공동체는 권위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모였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영락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교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함께 하심으로 인해서 우리 교회에 평강이 있고 예수님 주시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는 줄로 믿습니다.

나. 기도 응답의 약속 (19b) – 공동체의 능력

1. 예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약속은 기도 응답의 약속입니다. 19절 말씀이 바로 그것이지요. 우리 하나님아버지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는 합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물론 우리가 혼자서도 기도를 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공동체가 합심해서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그 기도는 더욱 더 능력이 있습니다. 각각 다양한 생각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같은 마음으로 일치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더 능력이 있는 것이지요.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고자 했을 때에, 수산도시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3일동안 같이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에스더4:16) 합심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무엘이 자기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아놓고 같이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삼상7:5)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초대교회 온 교회가 같이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행12:5)

2. 합심해서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신 것이지요. 너희 중에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약속을 합니다.(19b)

여러분 우리가 이땅에서 신앙공동체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지요.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 우주만물을 주관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약속을 믿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세계 곳곳의 여러 문제들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고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물론 기도를 하십시요. 그러나 구역에서고 공부반에서고 작은 그룹에서 숫자를 상관하지 말고 합심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합심해서 같이 기도합니다. 우리 기도회 시간마다 기도제목을 내놓고 같이 기도합니다. 이렇게 공동체가 합심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가 참된 교회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모일 때에 예수님께서 그 모임 가운데에 함께 계시는 것이고 그 신앙공동체가 합심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십시다. 우리 영락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모인 신앙공동체로 만들어 가십시다. 예수 이름으로 모이고 그리고는 예수님을 날마다 모시고 나아가는 우리 영락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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