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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창세기 32장21-32 /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시다

by 【고동엽】 2022. 11. 16.
■2022년 5월25일(수)■
 
(창세기 32장)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묵상/창 32:21-32)


◆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얍복 시내는 깊은 곳이 아니다. 양들과 사람들이 건너기에 무리가 없다. 야곱이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건너게 하고, 모든 소유도 건너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홀로 남았다. 야곱이 남은 것은 비겁하게 도망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과 자신이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야곱은 그것을 이루어줄 사람과 담판을 짓기 위해서 남았다.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고 늘어졌다.


야곱의 씨름은 마치 성도들이 밤새 애쓰며 기도하는 모습과 닮았다.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야곱이 인간적으로는 매력이 떨어질 지 몰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며 끈기 있게 구하는 모습은 몹시 귀하고 아름답다. 이런 끈기는 진정한 믿음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대부분 사람이 조금 기도하다가 마는 것은 기도 응답을 별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것은 마치 약간의 기대감으로 보험 들듯이 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야곱은 이 길 외에는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매달렸다.


야곱이 위대한 믿음의 선진인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이다.




◆ 야곱이 다치다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 사람은 야곱이 놓아주질 않자 결국 야곱의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내리쳤다. 아마도 고관절을 가리키는 듯하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관절이다.
부러뜨린 것은 아니고, 접질리게 한 듯하다. 그래도  완전히 나으려면 한 달은 요양을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평생 절뚝거릴 수도 있다.


살길을 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완전히 마지막 희망마저 부숴버리셨다.
이젠 에서가 쫓아오면 도망가지도 못한다. 인간적인 모든 퇴로를 끊으셨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종종 성도에게도 이런 상황이 닥친다. 채워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있는 것마저 가져가신다. 이게 웬일인가? 그러나 그것은 백 퍼센트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사인(sign)이다. 생과 복만 달라고 외치는 우리에게 생사화복을 모두 하나님 손에 맡기라는 교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의 처분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라는 말씀이 어떤 경지인지를 깨닫게 된다.


 
◆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과 씨름한 이분,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천상의 존재이시다.
이분이 야곱에게 준 축복은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이다.
'속이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야곱을 '하나님과 사람을 겨루어서 이김'이란 의미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운명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더는 옛 운명으로 살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이름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끈기로 매달린 결과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끈기있게 매달리는 자가 받는 믿음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름이다. 이때부터 야곱의 위대한 믿음의 여정이 시작된다.
 
야곱과 씨름한 이분이 누구일까?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는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과 사람들과 싸워서 이겼다'고 하셨다. '사람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스라엘이 미래에 사람들을 이기는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미래에 오실 이분의 정체를 암시한다고 봐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참사람이시자, 참하나님이시다.
 
◆ 브니엘에서 맞이한 아침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야곱은 고관절이 접질러져서 걷기 힘들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은 차라리 편했을 것이다.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곳을 '브니엘'이라고 불렀는데, '하나님의 얼굴'이란 이란 뜻이다
야곱에게는 브니엘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어제의 해와 달랐을 것이다.
 
어제까지 펄펄하게 살아있던 야곱은 죽었다.
눈치로 먹고 살던 야곱은 죽었다. 
모든 것을 얄팍한 인간적 지혜로 해결하던 야곱은 죽었다.
내 힘으로 이것 이것저것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자신감 넘친 야곱은 죽었다.
 
절뚝거리며 얍복 시내를 건너는 야곱은 이제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부터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를 모를 때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이것 저것하며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자신의 의가 얼마나 걸레같이 더럽고 추한지를 깨달았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우주를 바라보라. 인간이 그런 광대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위할 수 있는가? 어린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단지 그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할 뿐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바울의 고백처럼 오해되는 구절이 없다.
그 고백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헌신의 고백이 아니다.
자신의 무력함, 연약함을 고백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한 구절이다.
 
더는 자기 의로 하나님 앞에서 깝쭉대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그런데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믿음'으로 바꾸어서 외운다. 야곱처럼 고관절이 접질려져서 절뚝거려봐야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될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자.
야곱은 브니엘에서 비로소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하나님 아버지,
생사화복은 모두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배우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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