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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33장1-33 / 엘리후의 지적 - 욥의 문제는 무엇인가?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24(수)■


(욥기 33장)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19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23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31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묵상/욥 33:1-33)


◆ 엘리후 변론의 태도


그는 단순히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교묘한 말을 지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정직하게 말하려고 했다(3). 엘리후가 욥에게 일어서서 대답할 것을 요구한 것(5)은 욥이 단순히 친구들의 의견을 꺾기 위해 말싸움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기처럼 진실과 정직으로 말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엘리후는 욥이나 자기나 하나님 앞에서 동일함을 인정했다.  그래서 욥을 나이나 위엄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지 않았다(7).


엘리후는 막연하게 욥이 죄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죄인처럼 대하지 않았다. 엘리후는 지금 현장에서 보고 들을 것을 가지고 말할 뿐이다(8).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므로 욥이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이런 점이 엘리후가 친구들과 다른 점이다.




◆ 엘리후의 지적


욥의 잘못은 무엇인가?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에 의하면 욥은 의로운데, 하나님은 불의하시거나 적어도 올바른 재판관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아, 인간이 얼마나 건방지고 교만한가?


인간은 누가 자기를 함부로 판단하면 무척 불쾌하게 여긴다.


대학 시절에 친구 권유로 어느 선교회 수련회에 처음 참석했다. 당시에 나는 몸이 무척 약했다. 그런데 그 단체에서는 설교하면 두 시간 가깝게 했다. 의자가 없는 곳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듣는 것이 내게는 고문과 같았다. 자연히 내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떤 형제가 내 자세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메시지 후에 나에게 와서 기도하자고 했다. 무릎 꿇자 이렇게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최 형제의 교만함을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당황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 형제가 무슨 근거로 나를 이렇게 판단하는가?
하긴 모든 사람이 교만이란 죄에서 벗어나기란 어렵지만, 당시 나는 그의 경솔한 판단이 몹시 불쾌했다.


나는 이 선교회는 내가 활동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선교회에 속하지 않은 다른 친구를 통해 내게 말씀하셔서 결국 그 선교회에서 15년 이상을 사역했다.


인간들은 누가 자기를 함부로 판단하면 불쾌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막상 자기는 모든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하나님마저 함부로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기준이 되어 선악을 판단하는 인간의 원죄다. 인간이 노력과 극기를 통해서 윤리적으로 제법 훌륭하게 성취해 보일 수는 있지만 이런 판단의 죄성에서 자유롭기란 무척 어렵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


(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기 멋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안다면 감히 하나님께 이런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연 침묵하실까?
아니다.
오늘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시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꿈이나 환상으로 경고하신다. 심지어 악몽조차 교만한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17).


혹은 병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죽음을 직면하게 하시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교훈하신다.


◆ 중보자의 존재


(23-24)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이 구절은 다소 엉뚱하다. 엘리후의 앞의 주장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징계하셨는데, 천사(메신저) 중의 하나가 정당함을 보였다는 것이 모순이고, 정당함을 보였는데 대속물이 제공되었다는 것도 모순이다.


이 구절은 표준새번역에는 다르게 번역되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천사 천 명 가운데서 한 명이 그를 도우러 올 것입니다. 그 천사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킬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칠십인역도 동일하게 번역했다.


개역개정은 사람의 정당함을 하나님께 변호하는 것으로 번역되었지만, 표준새번역에는 사람에게 정당한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그렇지만 이 번역도 대속물이라고 번역한 '코페르'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  대속물이란 그 사람이 회개하고 선을 행한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물인가?


만일 이것이 엘리후에게 감동을 주신 성령의 예언이라고 간주한다면, 우리는 갑자기 등장한 엘리후의 엉뚱한 말이 이해된다. 종종 예언은 그렇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시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됨을 변호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대입하면 엘리후의 말은 너무나 놀랍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일천 천사들 중에 하나일 수는 없다. 그러나 '천사'라고 번역한 '말아크'는 보내심을 받은 메신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역할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의 역할은 하나님의 메신저였고, 대제사장이며, 중보자이셨다. 


우리에게 이런 중보자가 계심을 감사, 또 감사드린다.


주님, 
주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의로움을 입혀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제 영혼을 건지시고 제 생명이 빛을 보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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