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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31장23-40 / 욥의 마지막 항변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22(월)■


(욥기 31장)


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24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6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27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28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30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33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34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묵상/욥 31:23-40)


◆ 욥의 마지막 항변


어떤 재미교포가 교회에서 여러 봉사와 헌금으로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여러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유능한 장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덜컥 암에 걸려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자 태도가 돌변했다. 그는 교회 성도들이 위로하러 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회 목사가 안타까워서 여러 말로 권고해도 그는 멍하니 있으면서 침묵만 지켰다. 마침내 그가 임종이 가까워져 오자 목사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러자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 한마디였다고 한다.
"예수고 뭐고 귀찮소"


'자기 의'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그동안 해온 게 얼마인데...


그러나 욥은 위의 장로와는 궤를 달리한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떠나지 않았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자신에게 닥친 재앙과 고통은 원망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람이다. 이게 욥의 위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한가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하다는 것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욥의 자기변호를 들어보자.
욥은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죄를 지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23).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는 앞에서 말한 그런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말이다.


26, 27절에서 해와 달빛에 유혹되어서 손에 입 맞추었다는 말은 당시 사람들의 관용어다. 예배를 의미하는 헬라어 '프로스퀴네오'가 손에 입 맞춘다는 의미도 있음을 참고할 때, 욥의 말은 해와 달을 예배하는 미혹에 빠지지 않았음을 표현한 것이다.


표준새번역은 제대로 의역했다.
"해가 찬란한 빛을 낸다고 하여, 해를 섬기지도 않고, 달이 밝고 아름답다고 하여, 달을 섬기지도 않았다."


욥은 자신의 무죄함과 의로움을 여러 사례를 들어서 주장한다.


> 욥은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기뻐하지 않았고, 자기 재산을 의지하지도 않았다(24-25).
> 욥은 해와 달 같은 것을 섬기지 않았다(26-27).
> 욥은 자기 원수의 멸망이나 재난을 기뻐하지 않았고, 그들을 저주하지도 않았다(29-30).
> 욥은 자기 장막에 거하는 사람 중에 배부르지 않은 사람이 없게 했다(31).
> 나그네와 행인에게 언제나 숙소를 제공했다(32).
> 악행을 숨긴 적도 없고, 죄악을 품은 적도 없다(33).
> 다수가 두려워서 비겁하게 침묵한 적도 없다(34).


만일 한 번이라도 그런 일이 있었음을 고소하는 고소장이 있다면 자신을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쓰기도 할 정도로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38절에서 밭이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운다는 뜻은 남의 밭을 강제로 탈취하였음을 표현한 말이다.
오늘날 그의 재물과 땅이 그의 악행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욥은 그런 적이 없다. 만일 그랬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욥은 선언한다.


욥의 항변을 듣고 있자니, 욥은 참으로 대단하고 위대하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는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대단한 의인이다.
하나님께서도 욥의 이러한 점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지 몰랐다.
간음, 살인, 도둑질…. 등 이런 것은 죄의 열매일지언정 죄의 뿌리는 아니다.


인간의 죄의 뿌리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방짐이다.
언제나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우기는 옹고집이다.


욥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욥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사람들은 죄와 의에 대해서 모른다. 이것을 알게 된다면, 예수 안 믿는 유명한 도덕가보다 예수 잘 믿는 동네 아줌마가 더 의롭다는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욥은 자신이 의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십자가의 은총과 용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하나님은 욥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욥을 이 진리까지 인도하시는 것 같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의란 구제, 친절, 예절, 신실함 등이 아니라, 자신이 앉아있는 하나님 자리에서 내려오고 하나님을 그 자리에 앉으시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주신다.


주님, 여전히 내 멋대로 사는 탕자로 살면서, 집에 돌아왔다고 착각하는 무지에서 건져주십시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로 가리이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찬 280)

출처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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