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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34장18-37 / 욥의 무식함에 대한 엘리후의 분노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26(금)■
 
(욥기 34장)
 
 
18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21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28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30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묵상/욥 34:18-37)


◆ 엘리후의 말 -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19)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사람들은 왕, 고관, 부자들은 특별하게 대하나, 하나님은 전혀 그런 것이 없으시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똑같다.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바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룻 밤새에 그를 데려가실 수 있다(25).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도 없다. 모든 것을 그대로 아시기 때문이다.


부자나 세력 있는 자들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만,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도달하고 있고(28) 그것에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것을 모른 것은 그들의 뼈아픈 실책이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범하면 안된다.


아무도 주님을 자기 멋대로 판단하거나 자기가 원한다고 하나님의 얼굴을 함부로 뵐 수 있는 자도 없다(29).


33절은 난해 구절 중에 하나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의미는 욥이 하나님의 판단을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시고 판단을 돌이키시겠느냐? 라는 책망인데, 그 뒤에 나오는 '내가'가 엘리후를 의미한다면 해석이 무척 어려워진다.  그러나 '내가'를 하나님을 지칭하는 일인칭으로 보면 자연스러워진다. 즉 욥이 심판자요 하나님이 심판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식의 표현은 선지서에서 종종 발견된다(렘 51:50-52).


만일 '내가'가 엘리후를 의미한다면, 그대가 말하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모든 의견을 철회하겠다는 의미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경외의 대상이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지 하나님을 거느리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분수를 깨닫고, 제대로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기초다.


◆ 무식함에 대한 분노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욥은 충성되었지만, 그의 무식함이 하나님을 비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엘리후가 '무식'이라는 말을 쓴 것이 결코 과격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욥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다. 오늘날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원망들을 만한 분이라서가 아니라, 무식한 자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일 뿐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대적하는 철학, 드라마, 영화, 소설 등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은 그 무식에 동조하여 함께 대적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나는 욥의 무식을 인정하지만, 엘리후가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라고 말한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엘리후의 분노도 이해가 된다.


오늘날 우리의 무식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비난받으며, 하찮은 인간들에게 멸시받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지만,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의 사랑으로는 부족합니다. 더 노력하세요.
이렇게 건방지고 이기적이며 철저하게 교만한 자들을 참으시는 이유가 뭘까?
이토록 많은 것을 베풀고서도 이렇게 함부로 대우받는 존재가 우주 전체에 있을까?


엘리후의 분노는 이런 것에 기인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사랑은 '십자가'로 충분하다.
나는 더 요구하지 않겠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증명되었다. 그 사실 앞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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