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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근원(예레미야 17:12∼18)

by 【고동엽】 2022. 11. 13.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예레미야의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1:1) 그는 한마디로 철저 한 하나님의 신앙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정직한 예언자였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 속에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표현이 349회 언급되고 있는데 그 중 157회가 예레미야서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 진실한 예언자요 선지자 입니다. 과대포장을 하거나 각색을 하는 사람은 거짓 예언자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 속에 담겨져 있는 그의 신앙과 고백을 통해 은혜와 교훈을 받고 함 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십니다. 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되시 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12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 이시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 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다시 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 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 되오리니"하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당할 재앙이 어떤 것인가 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생명 책에 기록된다고 했습니다. (출32:32, 눅 10:20)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사람은 흙에 기록됩니다. 흙은 짓밟히고 오물이 쏟아지고 갈아 뒤엎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뒤지 않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멸 시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지방 교도소에 두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벽에는 작은 창문 이 있었고 창문 바깥쪽에는 하수구에서 나오는 하수처리 도랑이 흐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랑 너머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 죄수는 날마다 창밖에 흐르는 냄새나는 하수처리 도랑을 바라면며 울분을 터뜨리 고 한숨을 쉬고 있었고 다른 죄수는 날마다 푸른 초원을 바라보면 출옥후의 삶을 설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두 사람이 함께 석방되었습니다. 날마다 냄새 나는 도랑만 바라보던 사람은 다시 죄를 짓고 교도소로 되돌아갔고 푸른 초원을 바라 보던 사람은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새겨 보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누구에게 소망을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이 결정되고 장래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의 특징은 현실 문제나 환경 때문에 조급하거나 절망하 지 않습니다. 소망은 긍정적이며 미래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오늘 때문에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즐겁게 긍정적으로 삽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는 한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모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선교를 하 는데 북한에서 온 유학생들도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고 멀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핏줄인지라 서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사이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북한 사람들이 선교사에게 "형님. 남한 유행가 하나 가르쳐 주시라요"라며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선교사로서는 마땅히 가르쳐줄 유행가도 없었지만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선 교사는 그들을 모아놓고 남한 유행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넘치네....." "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바다 같은 사랑~~~~~~" 그런데 문제는 "할렐루야"부분이었습니다. 북한 유학생들도 지성인기 때문에 할렐루야 가 무엇인지는 알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할렐루야 대신 "닐리리야"로 바 꿔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멋진 노래, 멋진 가사라며 박수를 치며 부르고 또 불렸고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 속에 감동감화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소망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줍니 다. 그러나 절망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고 패배자로 만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ENQ시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2.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13절 끝을 보면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 음4:14을보면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속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 니다. 본문 13절은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이라 했고, 요한복음 4:14에서는 예수님을 솟아나 는 샘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종류의 물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인 물입니다. 웅덩이에 고이고 하수구에 고이고 폐허에 고여 있습니다. 이 물은 많든 적든 썩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물고기도 살기 힘듭니다. 사해 같은 경우 물의 양이 많지만 고인 물이라 생명체가 살지 못합니다. 둘째는 흐르는 물입니다. 시냇물도 흐르고 강물도 흐릅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습 니다. 셋째는 솟아나는 물입니다. 일컬어 생수라고 합니다. 불란서의 에비앙같은 생수회사 는 전 세계를 시장화 했습니다. 최근 코카콜라 회사가 국내 생수시장에 뛰어들었습니 다. 보도에 의하면 기존 생수판매회사들이 초 긴장상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먹어온 음식의 80%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와 김치류였다고 합 니다. 그런데 그런 식품들도 물맛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맛이 좋아야 장맛도 김치 맛도 좋다는 것입니다. 술 얘기여서 그렇긴 합니다만 맥주 맛도 물맛과 관계가 있고 전세계인의 음료가 된 코카콜라도 물맛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맛좋은 생수가 바닥이 나고 있을뿐아니라 지하수 마져도 다 오염되어 생수 찾기가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출애굽기 15:22 이하를 보면 모세가 마라에서 썩은 물을 고친 기사가 나옵니다. 썩 어서 마실 수 없는 오아시스 물에 하나님이 지정하신 나무를 꺾어 던짐으로 물이 치료 되어 마실 수 있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꺾어 던진 나무에 대하여 주경기 매튜헨리나 베이커는 "그것은 그리스 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2:19 이하를 보면 물 근원(수원지)이 썩어 곡식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여리고 지방에서 엘리사가 물을 고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 근원에 소금을 뿌렸더니 물이 치료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열왕기하 2:21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물을 고쳤 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실 뿐만 아니라 썩은 물을 생수로 고치시는 하 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에 계속되는 예레미야의 기도는 "여호와여 주는 나의 친동이시오 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나를 고치소서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하고 확신 넘치는 기도 입니까? 치유도 구원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그의 신앙이며 고백입니다. 정신의학자들은 현대인의 중독현상을 감옥이라고 표현합니다. 30분마다 담배를 피워야 손이 떨리지 않는 담배 중독증,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 며 잠을 못 자는 알코올 중독증, 날마다 백화점을 도며 쇼핑을 해야 가슴이 안정되는 쇼핑 중독증, 날마다 도박, 섹스 중독증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PC방을 들 락거려야 안정되는 컴퓨터 사이버 중독증, 약물의 독성에 짓눌려 기능장애를 일으키 는 증상을 중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조절하지 못하고 반복하 는 행위도 정신의학에서는 중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독은 나쁜 습관이기보다는 뇌질 환이라는 것입니다. 중독이란 신체조건과 심리상태, 그리고 사회요인이 상호 작용해 발생하지만 그러나 뇌내의 중독 매커니즘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이 의학계의 견해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런 중독증 환자들은 상담과 약물치료 그리고 정신과치료를 겸해야 한 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가운데 10% 이상이 사이버 중독증 환자들이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온통 현대 문명이 사람들을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와 어떻게 상담을 해야 합니까? 저는 1984년부터 16년 동안 기독교 방송을 통 해 성경과 신앙 상담을 맡아왔습니다. 거기서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예수가 대답이 고 예수가 해답이고 예수만이 영원한 상담 자이며 치료자라는 것입니다. 옛날 연세대학 의과대학에 노교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험문제에 소아과 약 처 방을 하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정답은 쓴 사람이 있었고 모르기 때문에 답을 쓰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답을 쓰긴 썼는데 틀린 답을 쓴 학생이 있었습니다. 정답은 A학점, 답을 안 쓴 사람은 pass, 그러나 틀린 답을 쓴 사람은 F학점을 주었 습니다. 낙제 점수를 준 것입니다. 이유는 의사가 약을 안주면 괜찮지만 틀린 약을 주 면 생명을 사살하는 살인 행위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방이 중요하고 진찰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예수말고 다른 처방이 없습니다. 고치시는 것도, 구원하시는 것 도,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3. 피난처이십니다. 17절을 보면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 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6:19을보면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라고 했습니다. 예레 미야 역시 시편 시인의 고백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피난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선배들, 다윗이나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은 그곳을 지리적 위치로 보 지 않고 하나님 자신으로 본 것입니다. 누가 피난처냐?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피해야 가장 안전하냐? 하나님 께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과 신앙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478장 찬송은 시편 17:8을 주제로 삼아 만든 찬송입니다. 함께 찬송합시다. (2절)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나를 못 위로해주 나 거 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3절)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 을 받 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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