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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판단하고 더 사랑하십시오/로마서 2장 1-8절

by 【고동엽】 2022. 10. 23.

덜 판단하고 더 사랑하십시오

2002-08-27 17:34:23 read : 3159

 

로마서 21-8// 20000825

 

<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

 

옛날에 한 공작새 부부가 예쁜 외동딸 공작새를 곱게 키워 숲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집 간 딸이 얼마 되지 않아 잔뜩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엄마 공작새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딸이 하소연을 했습니다.

"엄마! 숲의 새들이 다 저를 따돌려요.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남편도 이해 못해요."

 

노련한 엄마 새는 마음속에 집히는 것이 있어서 물었습니다.

"너 숲 속에서 아무 때나 꽁지를 활짝 펴서 다른 새들 앞에서 뽐냈지. 내 말 맞지!"

딸이 깜짝 놀라 말합니다. "엄마! 우리 꼬리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조금 펼치면 어때요?"

 

엄마가 말해줍니다. "얘야!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남을 부끄럽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냐!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젠틀맨 골프 상식'이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야기하는 좌중에

골프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골프 얘기를 안 꺼내는 것이야! 그 의미를 알겠니?"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집으로 날아가서 그때부터 숲의 새와 잘 어울려 지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사는 법을 잘 배워야 합니다. 내가 제일인 줄 알면 결국 혼자가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한 존재입니다. 영원한 원고도 없고 영원한 피고도 없습니다.

그저 다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인 줄 알고 서로 격려해주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남을 격려하기보다는 남을 비판 잘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디 가도 비판하고, 어떤 사람도 비판하고, 칭찬할 것도 비판하고, 심지어 자기도 비판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 비판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저 자기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사랑과 격려가 넘쳐야 할 가정에서도 비판하고, 교회에서도 비판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교회를 비판하고, 교인을 비판하고, 교회 일꾼과 중직들을 비판합니다.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예수님도 비판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교회 봉사자들을 위해 밥 한끼 사주지도 않으면서 이러쿵저러쿵 비판합니다.

유흥비에는 넉넉하고 헌금에는 인색하면서 교회가 돈 얘기를 한다는 비판에는 참 빠릅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들이 있으면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냉랭해지고, 그곳을 멀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격려하고 칭찬하는 분들이 있으면 분위기는 밝아지고, 그곳을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수원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은 이야기할 때 남 안 좋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모임에 참석해서 누구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비판하는 이야기가 심해지면 표가 나지 않게 슬쩍 자리를 피해버리십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는 남을 헐뜯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오직 칭찬과 격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장점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교파에서 총회가 개체되면 분위기가 좋고 모든 안건이 순조롭게 잘 풀립니다.

결국 그 목사님을 통해서 그 교단의 분위기는 점점 따뜻해지고 밝아졌다고 합니다.

 

요새 정치권에서는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총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자주 말합니다.

옛날 운동권에서는 제국주의적 사상이 아주 나쁜 것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왜 요즘 사람들은 제왕적인 모습과 제국적의적인 사상이 나쁘다고 여깁니까?

남의 의견과 생각을 무시하고 내 의견과 생각을 그에게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을 욕하는데 혹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생각과 내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못 견뎌 하지는 않습니까?

건설적 의견을 내놓지 않고 별로 헌신하지 않으면서 비판거리만 찾고 남만 탓한다면

제왕적인 위치에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그런 태도 자체는 제왕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삶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며 다른 사람의 살맛을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살맛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살맛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을 자기 멋대로 살 수는 없기에 시야를 넓히고 기본적인 도리는 지키면서

자기 스타일을 살리고, 남의 스타일을 존중하며 살면 얼마나 웃음꽃이 넘치겠습니까?

 

< 판단하지 마십시오 >

 

오능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남의 잘못을 사사건건 트집 잡고 남을 헐뜯는다면 그 사람이 과연 복된 사람일까요?

목회자가 매일 성도들의 잘못하는 것을 다 파헤쳐 두루 퍼뜨리면 바른 목회자일까요?

복된 삶은 좋은 것을 생각하며, 좋은 것을 말하며, 좋은 것을 바라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형편없는 사람도 쓰시려고 하는데 우리가 사람을 형편없게 만들면 됩니까?

성경을 보면 "저 사람은 정말 형편없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는 그 눈으로 항상 나 자신을 먼저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고 좋게 말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담임목사 사모님 이름이 '명순'입니다.

한 성도는 사모님이 좋으니까 이름도 순박하게 여겨지고 부르면 부를수록 좋다고 합니다.

반면에 다른 한 성도는 사모님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름이 촌스럽다고 흉보고 다닙니다.

사람은 마음의 상태와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사람을 달리 볼 수 있습니다.

그처럼 관점에 따라 사람을 달리 볼 수는 있지만 말은 항상 믿는 성도답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교회가 어렵게 되는지를 잘 압니다. 교인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 신앙이 너보다 낫다"고 남을 판단하고 그런 말을 주변에 퍼뜨리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와 그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맞아! 네가 훌륭하구나!"라고 칭찬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판단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도 같은 행동을 하면서 남을 판단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특징 >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본문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똑같이 행하면서 핑계가 많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은 남의 잘못은 지적하면서 자기 잘못은 회개할 줄 모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수군대며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고집, 즉 아집과 독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참 많습니다.

어디선가 다른 사람의 약점의 흔적이 들려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남의 약점을 캐어내는 데는 참 부지런하고, 그런 소리가 들리면 크게 확대시킵니다.

 

만약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느껴지면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바뀌고, 내가 정신차리고, 내가 헌신하는 것이 그 걱정하는 문제를 푸는 방법입니다.

나의 변화와 헌신이 없이 말로 수군대면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판단하는 말이 됩니다.

그처럼 나의 변화와 헌신이 없이 남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큰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판단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엄하게 질책하십니까?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잘못에 대한 핑계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꿈도 꾸지 말라고 합니다.

4절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용서를 멸시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5절 말씀을 보면 판단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라고 합니다.

 

< 판단의 기준 >

 

우리는 자기 생각만으로, 교만한 모습으로,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판단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살면서 판단해야 할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더 알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열을 알면서 하나를 말하면 바른 충고가 되지만, 하나를 알면서 열을 말하면 판단이 됩니다.

 

판단 자체가 죄악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724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판단할 때는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지 말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알지 못하면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섣부른 판단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면 판단 기준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까?

 

1. 진리를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2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여기서 진리는 하나님 말씀이고, 조금 확대 해석하면 성실함과 진실함도 진리입니다.

 

우리는 진리대로 판단해야지 자기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술 담배 안 하는 사람이 술 담배 하는 사람보고 신앙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자기가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로 판단하고, 자기가 봉사를 많이 하면 봉사로 판단하고

그처럼 자기 잘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남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입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개와 닭이 대화를 하는데 개가 물었습니다. "닭아! 왜 요새 꼬끼오 안 하지?"

닭이 대답합니다. "우리 주인 명퇴해서 밤늦게 비디오만 보잖아! 좀더 자게 놔두어야지!"

이번에는 닭이 묻습니다. "개야! 그런데 너는 왜 멍멍 안 짖지? 도둑놈이 오면 어떡해!"

그러니까 개가 말하더랍니다. "그 놈이 그 놈이야! 민나 도로보데스! 뭘 힘들게 짖어!"

요새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보다 진실해야 하고, 보다 덕을 세워야 합니다.

 

2.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행함이 아주 중요합니다. 본문 1,2,3,5,6절이 바로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듣고 아느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가 듣고 깨달은 말씀을 많이 행하느냐?"를 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빨리 선행을 결단하고 행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알면서 안 하면 인생 낭비요, 하나님의 축복은 그 인생에 담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술을 먹으면서 "목사님! 제가 술을 끊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하지만

"목사님! 제가 술을 끊었습니다. 다시 안 하도록 기도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은 봉사에 대해 "목사님! 제가 앞으로 봉사 많이 하게 기도해주세요."라고 하지만

지금 봉사하면서 "목사님! 이 봉사하는 마음이 식지 않게 기도해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생각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행을 하면서 생각하고, 선행을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떤 사람은 고아가 제일 불행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아를 우습게 알지 마십시오. 고아로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선한 일을 알고도 하나도 행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선을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선행을 할 때 조용히 해야 합니다. 선행이 자랑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은 사라집니다.

바리새인의 잘못은 선행을 한 것에 있지 않고, 자기들의 선행을 자랑한 것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갈무리하려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암탉이 알을 낳고 가만히 있으면 알을 뺏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꼬끼오(알을 낳았어요) 하고 자랑하고 다니면 주인이 와서 알을 가져가 버립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고 "꼬끼오(제가 이런 일 했어요)" 하고 은근히 과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도로 가져가 버리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봉사하고, 선행을 하고, 특별 헌금을 내면

그 봉사와 선행 자체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이미 인정받을 것은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드러내는 모습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한다고 하나 그 선한 일의 목적이 자기에게 있으면 어찌 복된 모습이겠습니까?

선행은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항상 은근한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 판단하기보다 사랑과 격려를 주십시오 >

 

여러분! 가만히 앉아서 판단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선행을 베풀려고 해야 합니다.

이번 수해로 남쪽 지역 사람들이 많이 피해를 보았다고 합니다.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남을 실제적으로 돕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미국 뉴욕에 가면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 근처에 라과디아 공항이라고 있습니다.

뉴욕의 명 시장 라과디아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가 즉결재판소 판사로 있었을 때 일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배고파서 빵 하나 훔친 노인이 즉결재판소로 잡혀 들어왔습니다.

라과디아 판사가 "벌금 10!"을 때리자 방청석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저런 불쌍한 노인에게 빵 하나 훔쳐먹었다고 벌금 10불을 때리나!

 

바로 이어서 판사가 자기 주머니에서 10불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10불을 가지고 가서 벌금 내세요.

배고픈 분이 우리 주변에 많은데 잊어버리고 산 것에 대해 제가 내는 벌금입니다."

 

우리는 판단하는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 판단만 하면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 무연고 지체 장애아동 73명이 생활하고 있는 <주몽재활원>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 재활원에서는 중중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마련해 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중증장애인의 가장 큰 소원은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전동 휠체어가 있다면 그들의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고,

중증 장애인 한 명을 돌볼 수 있는 한 명의 봉사자가 동시에 여러 명을 돌볼 수 있어서

봉사자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런 분들 돕는 문제로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전동휠체어는 7대이고(대당 350만원), 필요한 대상자는 원윤희(14), 강성구(17),

홍석찬(17), 정승락(19), 이경보(19), 이향미(25), 정윤종(26), 7명인데,

이분들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들의 어려움이 해결되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적으로 혹은 단체명의로 이들을 돕기를 원하는 목사님들 및 성도님들은 연락주세요)

이한규 목사(017-705-4347) 후원안내 - 신한은행 642-12-079560 이승연 (주몽후원)

 

우리가 우리 돈을 남을 축복하는데 쓰지 않고 내 맘대로 쓰면 그것은 복된 삶이 아닙니다.

내 돈을 내 맘대로 쓰는 것은 자유지만 그런 모습이 죄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4:6)"라고 말씀하신 것은

못 배워 무식해서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죄를 죄로 인식 못하는 무식으로 망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다음 막이 펼쳐질 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이웃을 더욱 살펴야 합니다.

 

< 우리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

 

이 세상은 눈물을 강요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눈물을 강요받고 슬퍼하는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수군거리고 입방아를 찧는다면 하나님께 어떻게 여기시겠습니까?

 

남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은 싫어하면서 나는 남에 대해 수군거린다면 되겠습니까?

남의 자랑은 못 봐주면서 내 자랑은 조그만 것도 자랑하고 싶어 못 견디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인간관계를 하면서, 교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해야 할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섣부르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해서 진노를 쌓기보다 남을 축복해서 축복을 쌓아야 합니다.

내가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 축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러나 내가 남을 판단하면 그 판단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판단은 반드시 판단을 낳고, 격려는 반드시 격려를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판단하기보다 나의 의무를 다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총체적 위기라고 불안해하고, 한탄하는 시간에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회가 혼란해도 내가 신앙을 바로 세우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면 곧 사회는 안정될 것입니다.

그처럼 나부터, 그리고 조그만 일부터 시작하면 우리의 위기는 반드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자연 파괴범은 산불이나 홍수가 아니라 작은 해충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나 가정은 산불이나 홍수와 같은 눈에 보이는 큰 어려움으로 파괴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 즉 판단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등으로 인해서 파괴됩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단점을 덮어주고 격려하면 그 교회와 가정은 반드시 살아나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겸허하게 서서 남을 판단하기보다 나 자신부터 성찰하고,

사랑과 격려로 가지고 해야 할 일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희망찬 공동체의 초석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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