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강하게 먹으십시오// 20010121 주일낮예배
2001-12-08 17:33:36 read : 193
여호수아 1장 5-9절(구약성경 320쪽)
요즘 사회의 각종 갈등과 문제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땀을 싫어하는구나!"하는 것을 느낍니다.
땀을 적게 흘리면서, 단기간에 많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이 너무 팽배합니다.
그것 때문에 각종 밥그롯 싸움이 생기고, 갈등과 상처와 문제가 생깁니다.
노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좋습니까? 아닙니다. 노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오래 놀아본 사람들은 정말 노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압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노는 것 좋아하다가는 정말 오래도록 노는 수가 생깁니다.
그리고 잠자는 시간이 너무 많은 분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무덤에 가면 반듯이 누워서 1년 365일 동안 계속 잠만 자고 놀텐데,
너무 잠자는 시간이 많다면 어떻게 내일의 행복이 보장될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일하는 재미를 알고 일하는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사실상 땀을 흘리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땀을 흘릴 줄 아는 사람,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땀을 흘릴 줄 모른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기보다 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돈복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지 마시고 일복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복이 터져 보십시오. 거기에 행복이 있고, 돈과 명예는 덤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험프리 대통령의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너는 침대를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
침대를 멀리하고 땀을 흘려 준비하는 사람만이 내일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개척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교회가 크게 성장하진 못했지만 여러 활동으로 이름은 꽤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 있는 400명 정도 모이는 이민교회에서 청빙을 타진해 왔습니다.
미국 이민교회에서 400명 정도 모이면 한국에서 약 4000명 교회로 칩니다.
원래의 기본 인원이 적어서 한 영혼 전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재정 면에서나 능력 면에서 그 정도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마음이 자꾸 흔들립니다.
"차라리 개척하기 전에 그런 제의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합니다.
너무 예민한 문제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까지는 사모님에게도 얘기 못합니다.
얘기하면 같이 흔들리게 되고, 그러면 인간의 생각이 앞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분명히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청빙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적은 목회 현장으로 돌아와 열심히 내일을 준비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무엇인가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화려한 것, 큰 것, 높은 것을 좋아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능을 어떻게 없앱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그 본능을 덮을 뿐입니다.
그런데 보통 때는 괜찮다가 교회에서 속상한 일을 보면 언뜻 본능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목회현장에 뛰어들어 열심히 내일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니까 작은 교회를 섬겨도 절대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앞날에 대한 강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것은 본인에게 도약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최종 섭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흘렸던 땀의 준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땀을 흘리면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구차하게 살지 않고 여유를 가지며 살게 하사는 큰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흘리는 땀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 흘리는 우리의 땀은 우리의 정신, 우리의 인생, 우리의 비전을 지켜줍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헌신의 의미를 모르면 아무리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지켜주어도
자기의 인생, 자기의 위치, 자기의 자리, 자기의 정신, 자기의 비전을 지키기 힘듭니다.
어떤 개척교회에서 한 분이 교회의 중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합당한 지혜로운 헌신을 하지 않고 그저 최소한의 일만 합니다.
그래도 개척교회 때는 큰 문제없이 그 자리를 지켜가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처럼 헌신이 없으면 교회가 성장은커녕 오히려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습니다.
그래도 일부 사람들의 피나는 헌신으로 그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고,
교회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헌신자가 점차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통계적으로 헌신자는 전체 교인 숫자의 20%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 통계에서 요즘 리더십 원리에서 말하는 20/80 원리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처럼 교인이 많아지면서 헌신자는 늘지만 중직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경우에 최소한의 일만 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는
자기의 자리가 점차 의미 없는 자리가 되어버리고, 존재의 위기가 생기게 됩니다.
담임목사가 아무리 그분의 존재를 지켜주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성도들이 인정을 안하면 그것까지 막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커지면서 목회자의 리더십 스타일이 그에 맞게 변해야 하듯이
헌신 스타일도 변하지 않으면 결국 마음의 상처를 받는 환경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래저래 헌신의 땀이 없는 분들은 어느 공동체에서도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헌신의 땀을 흘리려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에 가나안의 축복과 보람은 주어지기가 힘듭니다.
< 마음을 강하게 먹으십시오 >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그런 말씀을 들어도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할 때 두려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7절 말씀에서 더욱 강도 높게 강조를 합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서 9절에서는 마지막으로 반어법을 사용해서 한번 더 강조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가나안의 축복을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발바닥으로 땅을 밝고,
즉 땀을 흘리면서 마음을 강하게 먹고 극히 담대히 가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만났을 때 가정 문제로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쉽니다.
위로를 하고, 희망을 말해도 "자기 가정은 너무 문제가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런 문제가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이기고 전진하는 것이 우리의 가정생활 아닙니까?
여러분! 건강이 무엇입니까? 병균이 없는 것이 건강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병균이 있고 그래서 넓은 의미로 다 병자입니다.
그런데 그 병균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기 때문에 건강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강인한 마음의 저항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점쟁이가 한 처녀에게 점을 쳐준다고 하면서 말합니다. "살이 꼈는데."
그런 말은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데 이 처녀가 그 말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그 말이 머리에 맴돌면서 결국 그 한 마디로 폐인이 되었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 우리 마음속에 마귀가 와서 가끔 속삭입니다.
"애들이 죽겠는데, 사고가 나겠는데...." 그러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때 담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지 않으면 정말 불행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두려움을 이기면 행복이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근심하는 것 중에 상당히 많은 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언젠가 미국 정신과 의사들이 합동으로 인간의 근심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의 근심은 모두 불필요한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40%의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0%의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에 대해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의 사람들은 헛된 상상을 하며 근심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8%의 사람들은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치를 보면 걱정근심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근심하기보다는 긍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살다보면 인생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새는 중년의 위기 시대라고 합니다. 점차 그 현상이 뚜렷해집니다.
중년은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에 중년의 위기는 우리 모두의 위기입니다.
중년들을 보십시오. 어쩌다 운동 한번 하면 며칠간이나 끙끙 앓아 눕습니다.
건강을 자신하다가 이 시기가 되면 점차 건강에 대해 자신이 없어집니다.
어쩌다 직장에서 심하게 당해도 처자식을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물론 참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적절한 감정조절 없이,
또한 내일에 대한 비전이 없이 참으면 삶의 보람과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가정에서도 고개 숙인 남편들이 많고, 자녀관계도 옛날 같지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 녀석이 너무 말을 안 들어 속이 터져서 한 대 쥐어박으려고 손을 들었는데
그 아들 녀석이 손을 탁 잡으면서 "아버지! 왜 그러세요!"라고 하는데,
손목을 잡은 그 아들 녀석의 묵직한 힘과 굵은 목소리에 기가 팍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이제 내가 늙어가는구나!"라고 탄식을 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경우도 결혼 후 10-15년이 지나면 중년의 위기가 옵니다.
결혼 초기에 아이 낳고 키우다 보면 자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키우고 시간이 생기면 자기 가치에 대한 위기를 느낍니다.
그리고 신체 변화 및 호르몬 변화로 우울증이 많아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입니다.
그때 그 위기를 잘 조절해서 분출하도록 남편들은 그것을 잘 도와주어야 하지,
옛날 식으로 억누르기만 하면 오히려 가정의 행복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곳으로 남편이 지혜롭게 인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교회가 얼마나 좋은 통로가 되는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남편들은 무조건 아내가 자기 옆에 있어주기만을 바라는데
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부작용이 심해지고, 서로 불행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월은 우리의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부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월이 지나도 우리의 삶에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고,
위기 속에서 우리의 생애를 더욱 발전적 생애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게 해 달라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한계는 느껴지지만 그때 주님의 위대성을 볼 줄 아는 시야!
그러한 신앙인의 시야가 필요합니다. 그 시야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십시오. 그리고 좋은 일이라면 과감히 뛰어드십시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 같은 사람이 왜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5분만 해 봐도 안되는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것은 덮어줄 수 있어도, 핑계거리를 찾는 모습은 좋지 않는데,
"누가 어때서!"라는 식으로 무엇 때문에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처럼 벌써 그의 언어에서 불행을 만들고, 실패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행한 삶의 현장에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건국대 유태영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전라도 외딴 섬 출신으로 어렸을 때 머슴살이를 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농업혁명으로 한국을 살리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 답장이 왔습니다. 정말 국왕 초청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에서 공부를 마친 후 다시 이스라엘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결국 가난한 섬 출신의 소년이 한국 학계의 거두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고통스런 환경, 불행한 환경이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가지고
자기 지경을 확장해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능력보다 자세와 태도를 더 보시고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고,
자세와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더 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강하게 먹고 담대히 할 수 있습니까?
5절 말씀처럼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 여호수아와 함께 있을 것이고,
그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 때문입니다.
또한 9절 하반부 말씀대로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나가면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위대했습니까?
모세가 처음 부름 받던 날 그가 한 말 기억나십니까?
"하나님! 저는 입술이 뻣뻣한데, 어떻게 제가 바로와 백성들을 설득합니까?"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슨 명령을 주십니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게 얼마나 불가능한 숙제입니까? 얼마나 암담한 일입니까?
그들에게 무슨 재물이 있고, 능력이 있고, 배운 것이 있고, 기반이 있습니까?
아마 거의 모든 제자들은 '우리는 못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제자들만으로는 절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말씀 중심적으로 사십시오 >
그런데 우리가 담대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한 후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마음을 강하게 한 후에 즉시 가나안으로 쳐들어가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분적인 전술, 전략보다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바로 전체적인 승리의 원리입니다. 그 원리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는 기적의 삶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순종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 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행할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실제 신앙생활에서 조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사각형의 삶이 아닌 원형의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식으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집에 있다 보면 가끔 은혜와 한나가 싸웁니다. 그러면 서로 남 탓만 합니다.
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할 부모는 없습니다.
결국 서로 상대방 탓을 하다가 두 아이가 모두 손들고 벌을 서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맨 날 남 탓만 하니까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구석에 가서 무릎 꿇고 반성해라!"
그러나 가끔 아이들이 자기의 잘못을 먼저 인정할 때가 있습니다.
언니인 은혜가 주로 그렇게 합니다. "한나야.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 잘 할게."
그런 모습을 보면 너무 대견하고 너무 흡족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자세를 원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닙니다. 교회 오래 다녔다고 신앙 좋은 것 아닙니다.
남을 탓하지 않고 어려움과 문제를 자기 반성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자기를 점차 개선해 나가는 사람이 바로 성숙한 사람이요,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가장 뚜렷한 증거 중의 하나는 하나되는 삶의 추구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있으면 어느 곳에서도 천국의 삶과 행복한 삶은 가능합니다.
살다보면 때로 길이 막힙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탄식 속에서도 어렴풋이 우리의 기억 저편을 더듬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제까지 버린 적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깨달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보이고,
이제까지 신음했던 문제가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아주 작아졌습니다.
알고 보니까 스스로 만든 두려움 및 근심과 열심히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있으면 우리의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꿈과 희망이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하나님은 나의 헌신과 사랑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언어도 긍정적으로 바꾸고,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꾸십시오.
우리가 뿌리는 씨앗이 아무리 작아도 반드시 열매 맺는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보조교사였습니다.
그 보조교사가 어느 날 교회에 오다가 어린이 네 명이 골목길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들아 교회 가자."고 해서 네 명의 소년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학생 네 명이 생겼으니까 따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교사 선생님에게 독립해서 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교회 담임목사님의 허락을 받아서 이 보조교사가 정식교사가 되어서
네 명의 골목에서 만난 이 소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오십 년이 지나갔습니다.
오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이 주일학교 교사가 50년 전에 그가 가르쳤던
골목길 꼬마들로부터 동시에 생일 카드 네 장을 받았습니다.
한 장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에게서 날라 온 카드이고,
또 한 장의 카드는 미국 연방 은행(Federal Bank)의 은행장에게서 온 카드였고,
또 한 장은 당시 현직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부터 온 카드였고,
나머지 한 장은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오십 년 전 그가 가르쳤던 네 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누가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은혜 가운데 준비하는 작은 씨앗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흘리는 땀은 미래의 영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희망이 있음을 잊지 마시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넉넉한 마음으로 땀을 흘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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