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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율법을 완전케 하심

by 【고동엽】 2022. 11. 12.
(묵상/마 5:17-20)


◆ 율법을 완전케 하심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


신약성경에서 이 구절만큼 오해가 많이 되는 구절도 없다. 이 구절 때문에 많은 교회에서 율법을 시퍼렇게 날을 세우며 성도들에게 강요한다. 
바울은 율법이 폐했다고 하는데(히 7:18,19, 롬 7:6, 갈 3:24,25), 예수님은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시니 사람들은 헷갈려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바울이 작대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바울보다 더 높으시니 무조건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완전'이란 말을 잘못 해석한 것에서 온 오해다. 예수님과 바울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하게 일치한다. 


예를 들어 보자. 밤에는 가로등을 켠다. 가로등을 밝히는 이유는 어두움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두움을 완전히 다 없애려면 가로등을 얼마나 크게 해야 하는가? 빌딩 만하게 한들 어두움이 다 사라지겠는가? 더 이상 크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가로등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 가로등을 업그레이드 해봤자 가로등이다. 가로등은 태양의 임시 대체물일 뿐이다. 어두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오직 태양 밖에 없다.  태양이 떠오르면 가로등은 끈다. 이 비유에서 가로등이 율법이고, 태양이 그리스도이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율법에서는 양이나 소로 속죄제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완전케 하셨는가? 더 고급스러운 양과 소를 더 많이 드리게 하심으로 완전케 하셨는가? 아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제를 완전케 하셨다.  이제는 양이나 소로 드리는 제사를 드리면 안된다. 십자가로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안식일도 마찬가지다(골 2:16,17). 날짜 지키는 율법은 폐하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 준수다. 


십계명의 도덕법도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다. 도덕법의 완성은 사랑이다(롬 13:10, 딤전 1:5). 사랑하라는 명령이 율법의 완성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 바로 그것이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율법 하에서는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으니까 사랑하는 척을 한다. 진정한 사랑없이 계명때문에 억지로 지키는 그런 삶의 방식이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다. 사람들은 그래도 안지키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항변한다.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은 자기 의로 사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랑하게 되고, 자만이 뒤따르며 위선이 깃든다. 진정성 없는 우리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고 있는가? 


믿음으로 사는 삶의 방식은 다르다. 
먼저 마음이 바뀐다. 그리고 바뀐 그 마음에서 행동이 나온다. 율법 하에 있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을 해도 그 마음이 다르다. 믿음으로 사는 방식은 먼저 마음이 바뀌고 거기에서 행동이 나온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찬양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우리 마음을 바꿀 수 있는가? 
못바꾼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이것이 신약적 삶의 방식이다. 마음이 바뀌고 거기에서 행동이 나오는 것!
새 영과 새 마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임한다. 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비밀인가!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고 구약과 신약의 차이이며 자기 의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의 의로 사는 사람의 차이다. 이제는 성도들은 무율법주의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 곧 그리스도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율법과 그 내용과 지키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법에서의  삶의 방식은 오로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삶의 방식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으로 계셔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함과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실체되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경험함으로써 더욱 그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완전케 하신다는 것은 그림자를 더 확대시키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체를 드러내시겠다고 하신 의미다.  실체가 오면 그림자는 폐해진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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