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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금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1년이라면? 시39:4, 왕하20:1, 딤후4:6~8 출처, 정리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39:4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체감속도가 더 빨라진다고 합니다.
물론 시간의 절대량은 변하지 않지만,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그렇게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제가 초등학교 교실에 영원히 앉아있을 것처럼 느꼈습니다.
학교의 벽시계가 왜 그렇게 느리게 돌아가는지요? 집에 돌아가는 종이 왜 그렇게 느리게 울리는지요?
그런데 지금 제가 50대가 되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가 하면,
한 달, 일 년이 금방 지나갈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단위가 정말 금방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제는, 앞으로 내게 남은 날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보다,
더 작게 남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약간 초조해 질 때도 간혹 있습니다.
‘중년’이란 것이, 제가 어릴 때는 30대 중반부터가 ‘중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나이를 먹어보니, 그때는 ‘중년’을 너무 일찍 잡은 것이군요.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50대 중년이라도, 너무 상심하지는 마십시오.
백살 가까이 사시는 몇몇 분들 눈에는, 지금 우리 나이도 아주 젊게 보이니까요.
시39:4절, 본문을 다시 한 번 봉독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여러분, 간혹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살 날이 6개월, 또는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러지요.
물론 그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아마 90%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2013년을 시작하는 즈음에, 한 번 그렇게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금년이 나의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한 해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가정하는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 때,
우리가 정말 금년 한 해를, 남다르게 살지 않을까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마지막 그 한 해’를 누구나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금년이 정말 나에게 ‘그 마지막 한 해’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매 해를, 내게 남은 마지막 한 해로 여기고,
한 번 지혜롭게, 또한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실제로 의사로부터
‘이제 당신은 살 날이,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선고를 듣고서,
이런 칼럼을 썼습니다.
‘나는 더 자주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겠고,
그래서 우리 집 카페트가 더러워지고, 소파가 탈색되는 것을, 개의치 않겠다.
그리고 늙으신 부모님의 말씀 듣기를, 귀찮아하지 않고, 좀 더 귀담아 듣겠다.
나는 아이들과 잔디밭에서 노는 것을 더 자주 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예쁜 잔디가 훼손되는 것을, 개의치 않겠다.
나는 TV를 보면서 울고 웃으며 보내는 시간을 좀 줄이고,
좀 더 많은 시간에 빛(즉, 영원, 하나님)을 바라보겠다.
우리 어린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서 몸을 부빌 때에도,
‘얘들아, 지금 바쁜데 빨리 손 씻고 와서 저녁 먹어야지’ 하면서, 그들을 밀어내지 않겠다.
내게 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정말 그것을 소중하게 사용하고, 헛되이 버리지 않을 터인데...
누가 나를 싫어한다거나, 누가 뭘 많이 가졌다거나, 누가 뭘 어쨌거나에 관계없이,
즉 그의 사회적 신분, 지위고하, 소유의 유무, 내 성향에 그가 싫고 좋음에 관계없이,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는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최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면,
정말 의사로부터 ‘6개월, 1년 남았습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되면,
내가 평소에 소중하게 여기던 것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왔던 것들이
다 뒤바뀌게 됩니다.
오늘 내가 평소에 소중하게 여기고 좇아가던 모든 것들도,
그 때가 되고, 그 시간이 되면.. 허무한 것들로 판명이 나고,
오늘 내가 별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죽음과 영원을 대면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었음을.. 내가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년을 내 마지막 한 해로 여기고 살자>는 이유는,
나중에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정말 소중한 것들을,
내게 시간이 좀 더 남아있을 때, 미리부터 소중하게 여기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진짜 소중하게 발견되는 것이
크게 보면 3가지, 즉 faith, family, friends입니다. 믿음, 가족, 친구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중에서 믿음과 가족에 대해, 주로 살펴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한 기자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만나서 인터뷰했습니다.
“지금 목사님이 많이 연로하신데, 만약에 목사님이 중년을 다시 살게 되었다고 가정할 때,
그때는 지금과 달리 살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지요?”
그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가 연구를 더 많이 하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여행(집회)을 좀 더 작게 다니고,
집회 약속도 좀 더 적게 잡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제 삶을 다시 살게 된다면, 기도와 묵상을 좀 더 많이 하고,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더 많이 하며, 좀 더 깊이 영원을 묵상하며 살 것 같습니다.”
훌륭한 믿음의 선배의 삶을 사신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보니,
<좀 더 영원을 생각하며 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다시 살게 된다면, 좀 더 영원을 오래, 깊이 생각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선왕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병들어 죽을 것이고, 다시 회복되지 못하리라’라는 암울한 선고를 받습니다. 사38:1
히스기야는, 급작스런 사망 선고에, 아마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기적적인 응답을 받아, 병을 치료받고,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 15년 사이에, 므낫세를 낳았는데,
그는 남유다 역사상 가장 악독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왕이 됩니다.
남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 포로가 된 배경에는,
므낫세의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이 격노하신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므낫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되지 않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응답된 히스기야를 보십시오!
내가 누구랑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그때 하나님께 응답받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여러분, 제가 히스기야를 예로 든 이유는,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의미 있는 삶을 살 때.. 장수가 축복이지,
죄를 짓고 살며, 제 멋대로 살 바에는.. 오래 사는 것이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길게 살았지만, 말년에 잘못 살았던 사람의 예로 히스기야를 들었다면,
반대로, 짧게 살았지만, 아주 영광스럽게 살았던 사람, 짐 엘리엇을 살펴보겠습니다.
짐 엘리엇은, 신혼 4년차에, 1956년, 에쿠아도르 아우카 부족에게 피살되어 순교하여
당시에 잠자던 미국의 선교운동을 일깨운 한 알의 밀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유명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선교지에 같이 있었던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그토록 크게 다른 일이란 말인가?”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최후로 쓴 서신서입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즈음에, (그는 디모데후서를 쓰고 나서 얼마 후에 순교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딤후4:6~8절에서 이렇게 나타나있습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바울은, 자기 인생이 주안에서 성공적이었으며, 만족스러우며,
이제 조금 후에,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자기가 끝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여러분, 젊은 사람들은, 항상 ‘디즈니랜드로, 산으로, 바다로 가자!’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그만 놀고, ‘빨리 집에 돌아가자’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우리는, 항상 ‘집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나는 떠날 시간이 가까웠도다!’ 라고 말할 때가, 반드시 닥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내 인생을 잘 마쳤다. 내 사명을 다 끝냈고,
더욱이 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웠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되돌릴 시간이, 만회할 시간이, 그 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6절에 바울이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했는데,
여기서 ‘떠나다’는 말은,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던 막사를 걷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할 때 쓰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사’가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것은, 이생에서, 저 천국으로 이사를 떠나는 것입니다.
뭐가 없어졌다가, 천국에서 다시 생기는 게 아니고, 내 영혼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지상에서 천국으로 이사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이나 들판에서 텐트치고 자는 캠핑을 해 보십시오.
그게 즐거우면서도,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집이 훨씬 편합니다.
그래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지잖아요? 경험해 보셨지요?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는 사도바울의 심정이, 지금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편하자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지키고, 자기 사명을 끝냈으니까, 내가 왔던 곳 천국/고향에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금년이 여러분의 최후의 한 해라고 가정해 보십시다.
본문의 사도바울처럼, 내가 최후를 맞이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그때 여러분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는 후회가 없다. 그래서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바울처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들 가운데, 그렇게 바울처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아마 80%의 신자들은, 후회하며, 아쉬워하며, 황급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년을 나의 마지막 한 해로 여기며 살자>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또 <그 해를 나의 마지막 한 해로 여기며 살고>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바울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금년이 나의 마지막 한 해이다>라고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금년이 마지막 한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일이라도 당장에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빌리 그래함의 인터뷰 말고,
최근에 제가 목회자 디너 모임에 가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회자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 당신은 살아생전에 참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직 더 남은 일이 있다.. 아직 하지 못한 일이 있다.. 라고
생각되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주저함 없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건 세계복음화도, 전도집회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 룻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룻 사모님은, 몇 해 전에 먼저 소천하셨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여러 곳을 방문하시면서, 많은 성취와 업적을 남기셨지만,
한 가지 후회랄까, 자기 삶을 되돌아볼 때,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면,
그것은 가족과 함께 더 오붓한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신 것이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정말 혼신을 다해,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지만,
그런데 우리는.. 엉뚱한 일에 매달려서 시간을 다 허비하고, 나중에 후회할 수 있습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인생을 한참 진행 중일 때는.. 여러 성취와 업적들이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제 ‘떠날 기약이 가까우면’.. 가치관이 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현세적 가치관에서, 천국 영생의 가치관으로 변화됩니다.
그때는 성취나 업적이 아니라,
-나의 믿음이 중요하고,
-가족이 중요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즉, 믿음의 친구들이 중요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우리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땀을 흘리고, 분초를 아껴야 하지만,
만약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나의 명예와 업적과 관련된 것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집에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나누며, 주님과 교제하는
개인적 친밀한 시간을 갖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우리가 많은 모임을 갖고, 대회를 열며, 모여서 바쁘고 거창한 일을 하지만,
어쩌면 그 중에는,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별로 불필요한 일들도
되돌아보면 많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뒤를 돌아볼 때도..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붙잡혀져서,
그 분의 강권적인 섭리 속에 철저히 살아가지 않으면,
내가 명목상 주님을 위해 많은 시간을 쓰고, 땀을 흘리며 수고했지만,
실제로는 내 이름과 내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애쓰고 수고한 일이 될 때,
우리는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탕진한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냥 술먹고 방종하며 자기 생을 낭비한 것이나,
명목상 주의 일, 사역을 하면서 낭비한 것이나.. 낭비한 것은 똑같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그런 의사가 있는지 모르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부 의사들은, 자기가 잘 나가는 바쁜 의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괜히 세미나에 좇아다니고, 환자들 기다리게 하고, 사람들 눈에 굉장히 바쁘게 사는 것처럼,
시간에 매우 쫓기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자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그저 자기가 바쁘게 사방을 돌아다녀야.. 유능한 인생인 것처럼, 그렇게 비춰지기를 원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다가..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헛된 일에 낭비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80년 산다고 하지만,
사실 주님을 위해 사는 소위 ‘골든 아워’(황금기)는 20년이거나, 길면 30년에 불과할 것입니다.
특별히 크리스천의 중년기는.. 그 골든 아워를 지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골든 아워 20년 중에,
한 해, 한 해를,
정말 ‘금년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한 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20년은 긴 세월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가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 이끌려, 주님께 잡아채져서, 주님의 섭리가운데 수동태로 살게 되지만,
그때 불평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억지로 끌려가지 말고, 자발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금년 말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후회 없이 살자는 것입니다.
‘금년 2013년 연말에, 내가 주님을 만나고 뵙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금년 한 해를 한 번 살아보십시다.
그래서 주님께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라고
칭찬을 듣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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