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0일] 겐그레아의 서원(행 18:18~23)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W-mVKKsL75s
오늘 아침 특별히 종교개혁 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8장 18절로부터 23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219면입니다. 신약성경 219면 사도행전 18장 18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시고 작별하여 이르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 아멘.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리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 사는 조류입니다.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쯤 됐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솔개는 40세가 되면 발톱은 노화되어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잡아채지 못하고 움키지도 못하게 되고, 부리는 길게 자라서 구부러져서 가슴에 닿을 정도가 돼서 음식을 마음대로 뜯어 먹을 수가 없게 된다고 합니다. 깃털도 너무 두텁게 자라서 마침내 마음대로 날 수가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됩니다. 하나는 그대로 앉아서 죽든지 아니면 반년에 걸치는 매우 고통스러운 자기 수련의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기 갱신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솔개는 산정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시작합니다. 부리는 바위에 쪼아서 마침내 부리가 빠져나갈 정도가 되고, 그리고 새 부리가 나오게 되고, 발톱은 하나하나 다 뽑아내서 새 발톱이 나오게 되고, 그리고 깃털도 하나하나 다 뽑아버려서 그 다음에 새 깃털이 나와서 새로운 솔개가 되어 그 다음에 30년을 더 살고 그렇게 향유한다고 합니다. 놀라운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리더십의 대가인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라고 하는 사람은 이런 신중한 말을 합니다. "자기 경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면허 의사와 같다." 계속적으로 자기 발전, 자기 개혁, 자기 혁명, 자기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겁니다. 성공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의 문제고, 세상이 어떤 것이든 내가 필요한 개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종교개혁 하면 우리는 마틴 루터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이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고 오늘날 교회론적으로, 신학적으로, 구원론적으로 큰 역사를 이루었는데 이 종교 개혁의 뿌리는 루터라고 하는 한 수도사의 자기 개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루터는 수도원에 가서 수도사가 됩니다. 수도원에 무슨 죄가 그렇게 많겠습니까? 죄를 지을 수도 없지요. 그런 곳인데도 불구하고 루터의 마음속에는 남다른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죄의식. 그래서 그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루터가 하루에도 세 번, 네 번 성당에 가서 신부님을 불러 가지고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여러분 고해성사 하는 거 아시지만 조금만 박스 속에 신부가 이렇게 딱 비스듬히 앉아 있으면 꼭 귀에다 대고 자기 죄를 자복합니다.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다 들은 다음에 신부님이 "예수의 이름으로 사하노라" 뭐 이렇게 사죄의 선언을 하면 감사하고 돌아가는 그게 고해성사인데, 고해성사를 하러 가서 초인종을 누르면 그 신부가 나와 앉아 있거든요. 고해성사를 했어요. 몇 시간 후에 또 가요. 몇 시간 후에 또 갔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고해성사를 하러 가니까 신부가 귀찮아 가지고 "루터야, 죄 좀 짓고 와라" 그랬대요. 너무너무 괴로웠어요. 전 궁금했어요. 이 루터에 대해서 연구할 때 도대체 무슨 죄가 그렇게 많아서 무슨 죄를 자복했나, 그것이 알고 싶어서 상당히 많은 책을 들춰보았습니다. 연구했더니 대체로 그렇습니다. 루터가 자복한 죄가 신앙의 의심,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의심한 죄, 그리고 교만한 죄, 하나님의 은혜에 배반하고 절망한 죄 이런 죄예요. 어쨌든 물리적으로 짓는 죄는 아니에요. 마음속에 있는 죄예요. 그리고 왜 이렇게 죄에 대해서 고민했을까? 문제 거기에 있어요. 이 죄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회개도 해보고, 고해성사도 해보고, 또 무슨 고행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아니요. 마음속에 사죄의 은총이 임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회개해도 더 문제는 눈앞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어요. 하나님의 심판이,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다시 말하면 죄와 사망 이 문제를 놓고 고민 고민합니다. 고민하다가 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수행을 하다가 끝내 귀중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Justification by Faith) 오직 믿음으로.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그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삽니다. 그렇게 살아가는데도 또 죄책이 있습니다. "너는 이런 죄인이다, 이런 의심을 했다, 이렇게 이런 교만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외칩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그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이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하는 것을 깨닫고 거기서 자기 갱신을 합니다. 인격이 갱신합니다. 신학이 갱신합니다. 감성이 갱신합니다. 온 인격이 새로워질 때 비로소 종교개혁은 이루어지는 겁니다. 루터의 자기 갱신, 자기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루터가 그 대주교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이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는 그런 재판을 받던 때 아주 엄숙합니다. 그때 그가 거기에 서서 "오 하나님이여, 나 여기 서 있습니다. Hier stehe ich!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라고 외쳤어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총만 믿고 했던 그 자리, 거기에 정당한 표지판은 없어졌습니다만 바위에 요만한 걸 제가 가서 확인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오 하나님, 나 여기 서 있습니다."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개혁 없이는 바른 변화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율법대로 살으려고 몸부림을 친 그런 사람입니다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납니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부활의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기독교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예수와 같이 부활 될 것을 믿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하나는 주로부터 사명을 받습니다.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 그런 사명을 받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를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깜짝 놀랐습니다. 사울이 핍박한 것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교회고 교회가 나다. 이걸 알아야 된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핍박하느냐?" 여기서 사도 바울은 기독론과 교회론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생을 하고 복음을 전파했지만은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가 아덴에 갔을 때 그 아덴은 헬라 철학의 본거지거든요. 많은 우상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철학자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토론을 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그들과 변론을 합니다. 변론을 하고 쟁론을 하는 가운데서 그만 잠깐 생각이 돌아갑니다. 그렇지 잘못돼서 우상을 섬기는 걸 보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말을 듣고 그 써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 서서 "너희가 모르고 섬기는 하나님을 내가 알게 하노라" 하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선포 말하게 됩니다. 거기서 선교에 실패합니다. 아덴 전파의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습니다. 결국은 큰 핍박도 없는데 아덴에서 선교 실패하고 그리고 초라하게 고린도로 내려갑니다. 고린도에 가서 그는 많은 고민을 합니다. 용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서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아주 초라한 몸이 돼서 그래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그저 연명하고 살면서 조용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개인 전도할 정도로 이렇게 초라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여기서 예수를 만나서 중생했지마는 그만 그 마음속에 있었던 옛 신학, 옛 철학이 남아 있어서 십자가 중심의 신학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 십자가를 떠나고 나니까 두려움이요, 의심이요, 초라한 모습이 되더라는 겁니다. 모두 저버리고 십자가 중심의 믿음을 회복하니까 새로운 용기의 사람이 되어서 사도의 사명을 다하게 됩니다. 이거 신학적 중생입니다. 신학적 중생이 고린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제3의 신앙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겐그레아에서 그는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 유대 사람들은 머리를 깎지 않습니다. 머리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수염도 깎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이 머리를 홀랑 깎아버린 건 결심을 한 겁니다. 비상한 결심의 상징입니다. 여기는 신학적 결정을 하는 시간입니다. 조용한 가운데에 깊은 결단을 합니다. Total Commitment. 전적으로 하나님께 위탁하는 새로운 신앙체계를 세웁니다. 그동안에는 문이 열리면 감사하고 복음의 문이 닫히는 것 같으면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왜 전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을까? 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데 이렇게 핍박이 많아서 이렇게 감옥에 가서 이런 고생을 하고 모욕을 당하나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 왜 이렇게 해야만 되나? 많은 의심이 있었습니다. 선교와 선교 전략과 그의 사생활에까지 그런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는 순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Total Commitment. 다 하나님 앞에 맡겨 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제3의 개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환난이든 어떤 순교든 마다하지 않고요,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다 위탁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내가 고난에 감옥에 가는 거 아닙니다. 내 전도가 막히는 것 아닙니다. 내 모습이 이렇게 힘들어지는 거 아니옵시다. 이는 다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있어요.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있단 말입니다. 다 모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가 이 속에 있어요.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역경과 고난과 환난 속의 이 시련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세요, 사랑의 능력이에요. 계시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한번 돌아가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생각해 봅니다. 그가 쓴 '그리스도인의 삶'(Life of Christ)이라고 하는 책에서 그 중간에 있는 꼭 세 페이지가 나오는데 이게 너무 좋아서 제가 이걸 다 외웠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가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보면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 후회할 수가 없다. 능력도 많고 지혜도 많고 의도 많은데 왜 십자가를 져야 하나? 또 진리라고 하시나? 그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 이게 빌라도가 한 말입니다. 그것을 주제로 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탁했습니다. 먼저는 결과를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이제 던져야 됐든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있는 일이요. 완전히 결과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Effects(결과)**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했고, 그 다음에는 방법을 하나님께 위탁했어요. 왜요? 하나님의 지혜입니까? 안 되는 거 같으면서 잘 되고, 뭔가 되면서도 가깝고, 막 다 끝난 거 같은데 아니옵시다. 이건 하나님의 지혜 속에 있어요. 모든 방법, 어떤 좁은 길로 가든 어떤 고통이 있던 이건 다 하나님의 지혜 속에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께 위탁할 것. 그런가 하면 명예를 위탁했다. 그 말은 간단히 말합시다. 사람이 뭐라고 평가하느냐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성공했다고 했든 실패했다고 했든 생각하지 않기로. 사람의 평판 잊어버려요.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마음속에 작으나 참 묘한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나 어떤 평판을 듣고 있나 신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이 명예를 하나님께 깨끗이 위탁해요. 능력이 있다고 하나 못 하나, 실패했다고 하나, 저주를 받았다고 하나 상관없어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명예를 하나님께 위탁해 버렸어요. 이것이 본회퍼가 쓴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이제는 불평이 없습니다. 이제는 의심도 없습니다. 잘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영광이요. 길이 막히든 열리든 하나님께 영광. 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기 때문에.
사실로 그랬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로 호송되어 재판도 없이 감옥에 2년 동안을 썩습니다. 속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2년 동안. 그리고 나서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로마로 가던 배가 왜 파손이 됩니까? 사도 바울이 탄 배가 왜 파손이 됩니까? 파손되고 표류할 동안 고생을 하고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의 위상이 높아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렇게 돼서 로마로 돌아간 다음에 생각해 보세요. 276명이 전부 사도 바울의 전도자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이번에 배를 타고 오신 분 가운데 죄수가 하나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이요. 이건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온 로마가 뒤집힙니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이게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런고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역사에 깨끗하게 순종하고 깨끗하게 감사하고 깨끗하게 충성할 것이에요.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앙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일 저런 일, 건강이고 질병이고, 성공이고 실패고 있겠지만, 성공할 때 감사하고 실패할 때 몸부림을 치고 아니에요. 개혁적 신앙의 수준에 올라가면 범사에 감사해요. 항상 모든 일은 성공이에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요. 이것이 종교개혁자의 신앙입니다.
기도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특별히 주일 종교개혁주일을 당해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봅니다. 개혁적인 신앙 다시 한번 회복하게 하시고 오직 믿음, 오직 사랑, 오직 능력으로 항상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고 그리고 그 크신 능력을 전파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혁적 신앙을 재점검하고 그 믿음 안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설교 내용 상세 요약: 종교개혁 주일 말씀 - 자기 개혁과 전적 위탁
본 설교는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자기 개혁(Self-Reformation)**과 **하나님께 대한 전적 위탁(Total Commitment)**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솔개의 갱신 과정,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세 단계 신앙 개혁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 본문 봉독: 사도행전 18장 18-23절
- 배경: 바울이 고린도에서 여러 날 머물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수리아로 떠나는 여정.
- 핵심 구절 및 사건:
- 겐그레아에서 서원: 바울이 서원이 있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음 (비상한 결심의 상징).
- 에베소 사역: 에베소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으나, 더 오래 머물기를 청하는 요청을 거절함.
- 다음 행보: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 상륙, 교회 안부를 물은 후 안디옥으로 내려감.
- 제자들을 굳게 함: 안디옥을 떠나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함.
2. 🦅 솔개의 자기 갱신 (Self-Renewal)
- 솔개의 장수: 솔개는 약 70세까지 사는 장수 조류이나, 장수하기 위해 40세쯤에 매우 고통스러운 결심이 필요함.
- 40세의 위기:
- 발톱이 노화되어 사냥감을 잡을 수 없게 됨.
- 부리가 길게 구부러져 음식을 뜯어 먹을 수 없게 됨.
- 깃털이 두껍게 자라 마음대로 날 수 없게 됨.
- 갱신 과정 (반년의 고통스러운 수행): 그대로 죽든지, 아니면 자기 갱신의 길을 택해야 함. 솔개는 높은 산정에서:
- 부리를 바위에 쪼아 빠지게 하고 새 부리를 얻음.
-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 새 발톱을 얻음.
- 깃털을 모두 뽑아 새 깃털을 얻음.
- 결과: 새 솔개가 되어 30년을 더 살게 됨.
- 적용: 워렌 베니스의 말처럼 "자기 경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면허 의사와 같다." 성공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며, 끊임없는 자기 발전, 개혁, 변화가 필요하다.
3. ✝️ 마르틴 루터의 자기 개혁 (Root of Reformation)
- 종교개혁의 뿌리: 종교개혁은 루터라는 한 수도사의 자기 개혁으로부터 시작됨.
- 루터의 죄의식: 루터는 수도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는 남다른 죄의식으로 괴로워했음.
- 하루에도 여러 번 고해성사를 하러 가 신부에게 "루터야, 죄 좀 짓고 와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음.
- 그가 자복한 죄는 주로 신앙의 의심, 교만, 절망 등 마음속의 죄였으며, 어떤 행위로도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음.
- 진리 발견: 죄와 사망의 문제를 고민하던 끝에 귀중한 진리를 발견함.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Justification by Faith).
- 갱신 선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여전히 죄책이 올 때마다 유명한 말을 외침.
-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
- 종교개혁의 완성: 이 깨달음을 통해 인격, 신학, 감성 온 인격이 새로워지면서 비로소 종교개혁이 이루어짐.
- 루터의 선언: 대주교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오 하나님이여, 나 여기 서 있습니다 (Hier stehe ich!)"라고 외침. 오직 하나님과 그 은총만 의지하는 자기 개혁의 출발점이 되었음.
4. 🚶♂️ 사도 바울의 세 단계 신앙 개혁
바울은 한 번의 회심(중생)으로 그치지 않고, 세 단계의 개혁을 거쳤음.
(1) 제1의 개혁: 다메섹 도상에서의 중생 (기독론적/교회론적 변화)
- 사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
- 결과:
- 사명 받음: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할 사명을 받음.
- 신학적 변화: 예수님의 질문("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을 통해 **"내가 교회고 교회가 나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해함. (기독론과 교회론의 큰 변화).
(2) 제2의 개혁: 고린도에서의 신학적 중생 (십자가 중심의 회복)
- 실패 경험: 아덴(헬라 철학의 본거지)에서 철학자들과 변론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메시지가 없는 선교로 실패하고 초라하게 고린도로 내려감.
- 고민: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고백할 정도로 용기를 잃고 초라해짐.
- 문제 인식: 중생했음에도 옛 신학, 옛 철학이 남아 있어 십자가 중심의 신학을 놓쳤음을 깨달음.
- 결단: 고린도전서 2장 2절의 선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
- 결과: 십자가 중심의 믿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사도의 사명을 다함. (신학적 중생).
(3) 제3의 개혁: 겐그레아에서의 전적 위탁 (Total Commitment)
- 상징적 행위: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음 (유대인에게 비상한 결심과 전적 헌신을 의미).
- 내적 변화: 선교의 성공/실패, 고난/핍박 등 삶의 모든 문제(선교, 전략, 사생활)에 대한 의심과 고민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 (Total Commitment).
- 위탁의 내용:
- 능력에 위탁: 환난이나 순교도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있음을 믿음.
- 지혜에 위탁: 일이 막히거나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속에 있음을 믿음.
- 사랑에 위탁: 모든 역경과 시련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계시되어 있음을 알게 됨.
- 결과 (본회퍼의 'Ecce Homo' 인용): 예수님처럼 결과(Effects), 방법, 명예까지 모두 하나님께 위탁함. 사람들의 평가나 평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함.
- 개혁적 신앙의 특징: 불평과 의심이 없어지고, 잘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 영광이 됨.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일이 성공이며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짐.
- 실제 예시: 예루살렘 체포, 2년간의 감옥 생활, 로마행 선박 파손 등의 고난이 오히려 바울의 위상을 높이고, 그를 통해 로마 교회의 기초가 되는 역사를 이룸.
5. 🙏 결론 및 기도
- 핵심: 우리는 종교개혁자처럼 개혁적인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회복해야 함.
- 실천: 오직 믿음, 오직 사랑, 오직 능력으로 항상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 크신 능력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것.
- 당부: 개혁적 신앙을 재점검하고 그 믿음 안에 충성할 것.
다음으로, 이 설교에서 강조된 '자기 개혁' 또는 '전적 위탁'의 개념을 현대 기독교인의 삶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예시를 찾아볼까요?
🙋♀️ 현대 기독교인의 삶에 적용되는 '자기 개혁'과 '전적 위탁' 예시
설교에서 강조된 자기 개혁과 하나님께 대한 전적 위탁의 정신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일상생활과 신앙생활 속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1. 📖 자기 개혁 (루터의 '믿음으로' & 바울의 '십자가 중심') 실천
| 개혁 정신 | 루터/바울의 적용 | 현대 기독교인의 실천 예시 |
| 신앙의 핵심 회복 | 루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바울: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 |
* '성경이 답이다' 정신 회복: 성경 읽기와 묵상 생활을 습관화하고, 성령의 조명 아래 말씀에 순종하기 (개혁주의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
| 내면의 죄와의 싸움 | 루터: 의심, 교만, 절망 등 마음의 죄를 고백하고 해결책을 찾음. | * 철저한 자기 부인과 회개: 눈에 보이는 죄뿐만 아니라 자기사랑, 바리새적 교만, 내면의 불신과 같은 마음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 (종교개혁자들의 '인간의 절대적 절망' 인식을 자신에게도 지속적으로 적용). |
| 신앙과 삶의 일치 | 바울: 율법적 삶에서 십자가 중심의 삶으로 전환. | * 신학보다 앞서는 신앙: 지식적인 신앙이 아닌 삶으로 고백되는 인격적인 신앙을 추구하며 교회의 훈련과 삶에 동참하기. |
2. 🙏 전적 위탁 (바울의 '겐그레아 결단') 실천
| 위탁 영역 | 설교의 내용 | 현대 기독교인의 실천 예시 |
| 결과 위탁 (능력) |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있음을 믿고 맡기기. (Total Commitment) | * 시험 및 취업 준비: 노력과 최선을 다하되, 합격/불합격 등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고 평안함 유지하기. |
| 방법 위탁 (지혜) | 고난, 길이 막히는 상황도 하나님의 지혜 속에 있음을 믿기. | * 직장/사업의 어려움: 예상치 못한 문제나 고난이 생길 때, 이를 '실패'가 아닌 하나님께서 더 나은 길(좁은 길)로 인도하시거나 성숙시키려는 지혜로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
| 명예 위탁 (사랑) | 사람들의 평판(성공/실패, 잘했다/못했다)을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기. | * 교회/사회 봉사: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명예)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기. '내가 얼마나 잘했나' 대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삼기. |
| 범사에 감사 | 개혁적 신앙은 범사에 감사하며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림. | * 감사의 생활화: 성공뿐만 아니라 건강, 질병,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큰 능력과 사랑을 믿기에 불평 대신 감사를 고백하며 충성하기. |
이러한 개혁과 위탁은 죄책감이나 율법에 대한 책임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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