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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퇴장

by 【고동엽】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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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퇴장 - 기쁜소식교회 김영준목사 - YouTube

 

◈멋진 퇴장                  왕하2:1-11             

 

◑멋지게 퇴장한 성경의 인물들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끊임없이 염려하고 고민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을 요구할 힘도 없고, 그럴 권리도 없습니다.

미래가 "이렇게 되라"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미래에 대하여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뭐라고 말씀 하셨냐면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의 염려는 오늘로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장래가 어떻게 될지 다 아셨을 것 같지만, 예수님도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안다면 믿음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인류역사의 미래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것이고,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하실 것이라는 것이고,

그리고 당신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이에요.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당신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멋진 퇴장을 하신 분이 없습니다.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 믿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성령에게 맡기시고 당신은 떠나가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은, 미래를 알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성경말씀에 아브라함은 장차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여쭙기를

"주여,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 나 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주여,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 나이까?'

미래는 미지수였어요. 미래를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고, 모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모세 예를 봐도 마찬가지에요. 모세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공로를 세운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가 아니면 이스라엘은 400년 종살이에서 건짐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모세가 아니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때 모세는 떠나갔어요.

장래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리더십을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자신은 깨끗하게 떠나갔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멋있게 퇴장한 인물이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죽을을 보지 않고 떠난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에녹이고 하나는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떠났어요. 그러나 떠났다는 점에는 마찬가지에요.

죽음을 겪든 겪지 않든 세상을 떠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엘리야 선지자는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이것이 얼마나 멋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은 엘리사 한 사람 뿐이었기 때문에,

엘리사 한 사람만이 얼마나 멋지게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봤어요.

그러나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거기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간증하는 성도

 

▲사도 바울이 말씀하길 '우리는 살아도 주의 것이요 죽어도 주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도 하나님을 섬겨야 되고, 우리의 죽음으로도 주님을 섬겨야 됩니다.

 

살아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지만,

우리의 믿음의 "죽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왜 재수없게 죽음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세상 떠날 때에 믿음으로 떠나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에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그 때 가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멋지게 퇴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1. 첫째는 자기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들은 모르고 죽은 것이 아니고 알고 있었어요. 그것을 알고 준비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사람이 산 사람을 위로했어요. 산 사람이 죽을 사람을 위로한 게 아니에요.

죽을 사람이 살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로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당신의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을 위로하셨어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너희가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가면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여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얼마나 멋있는 분입니까?

먼저 가서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겠다는 말씀이에요.

 

▲2. 두 번째 공통점은 남의 동정이나 위로를 구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에요.

사람이 자기에게 어떤 병이 있다고 말을 할 때, 뭔가 측은함이라던가 동정을 얻기를 바라죠.

'제가 이런 이런 병 진단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뭔가 사람이 이런 저런 식으로 동정을 하고 불쌍히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살을 암시하는 사람들도, 뭔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말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의 말에 평소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인데,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나와서 우는 것을 보고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이렇게 죽는 일이 너희가 슬퍼할 일이 아니다,

너희는 엉뚱한 것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말씀이에요.

 

'내가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니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었어요.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 달리셨을 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의 영혼 구하는 일을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다는 말은 세상을 떠난다는 말인데

남들 같으면 누군가가 같이 있어주기를 바랄 것 같죠.

 

고독한 길이니까, 혼자 가는 길이니까 누군가가 같이 해주기를 바랄 것 같은데

엘리사가 자꾸 쫓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겼어요. 그래서 자꾸만 떼어놓으려고 했어요.

 

'나는 어디로 가니까 너는 여기 있어라.'

그런데 엘리사가 '주님이 살아계시는 한 내가 당신을 결코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 라고 해서

겨우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까지 보게 했는데요.

 

▲3. 세 번째로 왜 죽음을 고독하게 여기지 않았느냐? 혼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못된 그런 습관이 있어요.

사람들이 자살할 때 같이 모여서 하는, 아주 이상한 그런 습관들이 있는데

그건 아마 혼자 가기가 싫기 때문에 그럴지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오히려 세상에서 살 때는 혼자 가는 것 같아도

세상을 떠날 때는 맞아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셔야 됩니다.

 

스테판이 숨을 거두기 전에 뭐라고 말했는지 아세요?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도다.'

스테판이 순교할 때 예수님이 일어나 그를 맞이하셨습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도 보면 나사로가 죽을 때

천사들에 들리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살 때는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떠날 때

주님이 말과 병거와 천사를 보내어 맞아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맞아주신다고 하셨어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세계 공항마다, 국제공항에 가보면 그 나라 말로 환영합니다,

"웰컴, 어서 오십쇼, 환영 웰컴"이라는 말을 붙여놓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어서 들어오시 옵소서, 좌정 하옵소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예수님이 우리를 영접하십니다.

'어서 오너라, 기다리고 있었다, 너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였노라' 주님이 우리를 영접하신다고 했습니다.

 

왜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어야 되느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알아두어야 세상을 떠날 때에 주님이 우리를 안다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안다고 하세요. 김 아무개, 이 아무개 내가 그를 안다 I know him, I know her,

내가 그를 안다라고 말씀하셔야지 김 뭐? 난 모르겠는데 그렇게 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야 되요.

어떻게 하면 주님을 아느냐.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올라가 주님을 만나뵐 때 생소한 만남이 아니어야 됩니다.

'저 분이 누굴까, 처음 뵙는 분이다'가 아니고

'아, 내가 과거에 저 분을 여러번 느끼고 경험을 했지만 이제야 눈으로 뵙는구나'

이렇게 익숙한 경험이 되어야 됩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 보면,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영혼이 그 몸에서 이렇게 올라오는,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기억 못하시는 분들은 다시 봐야 되요.

거기에 병원 중환자실에 와서 자기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이 있어요.

자기 아내가 세상 떠나기를 기다리는 남편이 와있어요.

 

그런데 이제 중환자실의 어떤 환자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가서 그를 영접해가는 것을, 그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그걸 지켜보고 있는 할아버지가 "Lucky SOB"라고 부러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 부럽다. 부럽다.'

 

자신은 지금 세상에 있는데

저렇게 숨을 거두는 순간에 천사가 내려와서 영접해주는 것을 보니까 부럽다.

그 장면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주님이 나를 영접해주시겠구나.'

여러분 그 길이 결코 홀로 가는 길이 아니에요.

 

▲4. 네 번째로 멋지게 퇴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세상에서 미처 못 이룬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모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떠난 건 아니에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어요.

이스라엘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또 아합 왕의 아내는 여전히 살아있고,

여전히 해결할 문제가 많이 있지만 그건 엘리사 선지자가 할 것이고

엘리사가 다 못하면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는 미처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고, 떠나간 거에요.

깨끗이 떠나간 거에요.

 

마치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뚜벅뚜벅 지평선을 향해서 떠나가는 것처럼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도다".

그런데 이상한 게 아직 교회도 시작하지 못했고, 이방인에게 복음도 전하지 못했고,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지도 못했고,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어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는 말이냐.

 

당신의 역할을 이루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역할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그 이후의 일은 성령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직 일이 많이 남았지만

하나님을 믿고서, 예수님은 "나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떠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얻으려고 할 수 없습니다. 다 얻고, 다 이루고, 다 가지려고 할 수 없습니다.

"암"이란 한자를 보면 입 구 자가 세 개가 있고 그 밑에 뫼 산 자가 있죠. 癌 

입 세 개를 벌리고 산을 삼키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병이 듭니다.

입을 세 개를 벌리고 산을 삼키려고 하다가 병이 드는 거에요. 인간의 탐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자기가 할 일만을 하고 떠나간 거에요. 예수님도 당신이 하실 일만을 하고 떠나가신 거에요.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5. 다섯 번째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뿐만이 아니고

죽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삼손이 세상을 떠날 때에 죽인 블레셋 사람이 살아있을 때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다.'

죽을 때 이룬 일이 살아있을 때 이룬 일보다 더 많았다는 애기에요.

 

엘리야도 마찬가지에요. 엘리야가 살았을 때 행한 일보다

병거타고 올라간 일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과 마찬가지에요.

 

진짜 믿음의 여부는 세상을 떠날 때에 증명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의 믿음을 너무 자랑하려고 하면 안 되요.

그 때 가봐야 알기 때문입니다.

정말 믿는지, 안 믿는지, 정말 진짠지, 가짠지는 그 때 가보면 알게 되는데,

아마 여러분 중에 왜 목사님은 재수없게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합니까?

 

   여러분, 생명보험을 드는 사람을 보셨어요?

   생명보험을 들고 나면 이상하게 안 죽어요. 만약에 생명보험을 드는 사람마다 죽어보세요.

   보험회사는 망합니다. 보험회사가 귀신처럼 아는 거에요. 안 죽는다는 사실을.

   그러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돈을 버는 거에요. 보험을 들면 이상하게 안 죽어요.

   화재보험을 들면 이상하게 불이 안 나요. 또 산재보험을 들면 이상하게 사고가 안 나요.

 

   자동차를 렌탈할 때 보험을 들 수도 있고 안 들 수도 있습니다. 보험을 들면 돈이 더 듭니다.

   그러나 돈이 더 들더라도 보험을 들면 이상하게 사고가 안 나고 그리고 운전할 때 아주 담대합니다.

   반대로 돈을 아끼려고 보험을 안 들면 차를 돌려 줄 때까지 그야말로 벌벌 떱니다.

   '조금이라도 차가 긁히면 어떡할까.'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에요.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준비하는 사람은 담대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살아요.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죽음은 누가 자기를 두려워하는지 압니다.

그래서 쉽게 찾아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죽음이 냄새를 맡아요.

 

흑인영가에 "아침에 병거를 타리이다"라는 곡이 있지요.

우리는 흑인들이 운동이나 음악은 잘 하지만 나머지는 못한다라고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흑인들에게는 놀라운 영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영적인 감각을 표현할 줄 압니다.

우리는 백년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곡을 그들은 영적인 감흥을 통하여 표현할 줄 압니다.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가 병거타고 올라간 것을 성도의 죽음에 비유해서

내가 아침에 병거타고 가리이다 라는 곡을 만든 사람들이 흑인입니다.

 

chariot, ride the chariot in the morning Lord.  

 

그 곡이 얼마나 흥겹고 기쁜 곡인지 몰라요.

아주 즐거운 곡이에요.

그런데 그 가사를 읽어보면 "당신은 떠날 준비가 됐는가, 주님 만날 준비가 됐는가,

당신은 심판날을 맞을 준비가 됐는가, 나는 아침에 병거타고 주님의 얼굴을 보리라,"

놀라운 일이에요.

 

여러분, 여기에 믿는 사람의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영광, 우리가 천국가는 일은 힘든 일, 고독한 일, 또 고통스러운 일로 생각하면 안 되고,

주님이 보내주실 병거타고 불말과 불수레 타고 우리도 하늘에 올라갈 것입니다.

 

출처 : https://rfcdrfcd.tistory.com/1597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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