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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rehensive◑/Seonhee

-[2022년 10월 02일]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고전 9:15~18)

by 【고동엽】 2022. 10. 23.

[2022년 10월 02일]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고전 9:15~18) - 곽선희 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VG6PEHcpv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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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봉독합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9장 15절로부터 18절에 있는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신약성경 278면에 되겠습니다. 278면 고린도전서 9장 15절로부터 봉독하게 됩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봉독할 때에 다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대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으면 내가 부득불 한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한 이것이로다.” 아멘.

어느 마을에 작은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린아이들 네 살짜리를 앞에다 몰아놓고 그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제일 힘이 세냐?” 하고 말했더니, 어린아이들이 전부 다 “나! 저요! 저요! 저요!”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장면을 많이 보았지요? 여성 심리학자인 주디스 해리스(Judith Harris)라고 하는 분은 아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위 사회 계량기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위나 순위가 어떤지를 자각하며 그렇게 자랑한다 하는 해리스의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다시 생각합시다. 지위 사회 계량기가 최고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그래서 네 살짜리 때는 최고입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그런 자의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츰차츰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 센 아이가 있고, 더 센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만큼 자기는 작아지는 겁니다. 자기가 제일 큰 줄 알았다가 그다음에는 작아집니다. 여러분 그런 얘기 들어보셨어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보고 세다고 그래서 살아요. 아버지의 힘은 만능이요, 만능! 그렇게 아버지가 위대해 보이고 세 보이고 그러는 데가 있어요. 그 순간 나는 그만큼 작아지는 겁니다. 자꾸 작아집니다. 차츰차츰 작아져서 지위를 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또 형님들이 있고, 형제가 있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들은 나보다 크고 나는 그보다 작다 해서 자기가 점점 점점 작아지는 사회적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아 시절에는 언제나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가 최고의 왕입니다. 아버지는 뭐 하는 거냐? 나를 위해서 돈 벌어 오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뭐 하는 거냐? 나에게 젖 먹이는 사람이다. 형님은 뭐냐? 내가 타고 노는 장난감이다. 전부가 다 내 밑에 있어요. 내가 왕이야. 그때가 네 살입니다. 이 왕권의 의식은 네 살 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왜요? 형이 나보다, 어머니가 더... 나는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져서 작아져서 마침내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주를 보면서 우주 앞에 내가 얼마나 얼마나 초라한 존재예요? 이 세상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가 하면 하나님 앞에, 십자가 앞에 나라는 존재는 아주 작은 것이에요. 하찮은 먼지 같은 것이에요. 뭘 뭐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한마디로 말하면 철이 난다는 것이에요. 이제부터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최고치를 조정하며 계속 조정하며 자라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랑이 내게 있다 생각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12절에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다." 거룩하게 하는 것, 진실한 것, 은혜로 행하는 것, 이것이 나의 자랑이다. 지울 수 없는 자랑이 있어요. 빌립보서에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나의 자랑이 되고 나는 너희의 자랑이 되리라." 어떤 때는 그런 말도 해요. "이 자랑은 절대로 헛되이 되지 않으리라." 이런 속에 확실한 숨은 자랑이 있습니다. 또한 주의 부름을 받아서 사도로 역사한 것, 한평생 선교하면서 수고한 것, 많이 매를 맞은 것, 감옥에서 고생한 것, 이거 다 하나님 앞에 가면 영광입니다. 이런 큰 자랑, 선교를 위해서 일생을 마친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합니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냥 말한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왜 자랑할 것이 없느냐?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죠. 왜? 부득불 했기 때문에. 부득불 하나님의 뜻에 끌려서, 밀려서 했고, 강권에 그렇게 순종했기 때문에 내가 이제 무슨 자랑을 할 것이냐?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뜻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반대로 가려고 할 때도 하나님께서 강권력으로 붙들어서 이렇게 역사했는데 무슨 자랑을 하겠어요?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서 처형을 하려고 다메섹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러지게 하시고,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게 포로가 돼 가지고, 포로가 돼 가지고 몸도, 상황도, 현실도, 정신도, 신앙도 변하여 한평생 주를 위해서 일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슨 자랑거리가 있습니까?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선택에 내가 고용된 것이요, 끌려간 것뿐이에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좋은 마음으로 끌려간 게 아니에요. 때때로 억지로 끌려갔고, 또 빗나갈 만한 때도 많이 있었어요. 그걸 사도 바울은 알고 있어요. 자기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왜? 받은 것뿐이니까. 받은 은혜뿐이요.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다." 그러면 자랑하는 것이 없죠. 은혜로 된 것에 자랑할 것이 내가 어디에 있어요? 나는 없는 것이야. 오직 은혜의 뿐이요, 은혜의 결과로 내가 있다. 그런고로 나는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나 자신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신비롭고 깊은 뜻의 말씀이 있습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계속 말합니다. 약한 것을 자랑한다. 왜요?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강하니까.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니까. 그런고로 자랑할 것이 없다. 근데 약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내가 그저 별로 원치 않은 일을 하면서도 조금 일하면 좀 하려고 그러고, 조금 일하면 내가 했다고 그러고.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 위대하다고 칭찬하면 아마 그런가 보다 자꾸만 들먹들먹하는 거예요.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려칩니다. 그것이 뭡니까?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예요. 그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연구한 대로 그것이 간질병이에요. 조금 교만하려고 그러면 간질병이 막 발동을 해요. 갈라디아서에 있는 데를 막 보면 설교하다 말고 쓰러져서 누워 있어요.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너희의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내 육체에 이르되." 그건 무슨 말입니까? 너희의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 저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기 뭐야, 간질병으로 쓰러지고, 설교하다 말고 쓰러지고, 빙빙 돌면서 쓰러지고... 이게 무슨 하나님의 사람이냐? 라고 의심하지 않겠어요? 바울도 그걸 느껴요.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은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육체에 있으되 없이 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했느니라." 너희는 참으로 고맙다. 내가 그렇게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다니고 있지만, 나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해 주었으니 참으로 고맙다. 그런 말이 갈라디아서에 나옵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 조금 교만하려고 그러면 콱 찔러 버려요. 고개를 들면 또 확 찔러. 이런 가운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큰 영에 끌려서, 끌려서, 끌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로마 감옥에까지 왔어요. 이제 무슨 자랑할 것이 있어요? 내가 한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고 싶지도 않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 속에 포로가 돼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런고로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또 그런가 하면 본문에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 왜? 부득불 했기 때문에. 굉장히 심리학적인 말입니다. 부득불. 그리고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으리라." 아무도 몰라. 이거 무슨 말인지. 이 뜻을 알 수가 없어요. 어떤 주석가도 해석을 못 합니다. 화가 있을 것이다. 어떤 화가 있다는 얘기예요? 그야말로 **'노바디'**로, 하나님만 알고 사도 바울만 아는 거예요.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거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아요. 짐작을 합니다. 아마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간질병이 더 크게 발동을 한 것 같아. 건강을 잃어버리는 거야.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그 건강도 지켜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부득불 나는 복음을 전한다.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은혜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전하고 있지만 조금 게으르면 딱 칩니다. 조금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얼마나 귀중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 마음의 비밀을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만이 압니다. 그럴 거예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짐작합니다. 조금 게으르면 닥쳐요. 조금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로막아요. 조금 더 빗나가면 병들어 버려요. 여러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까? 순간순간 하나님은 나를 딱 붙들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고 있고, 하나님이 하고 좋아하시는 일을 완성해 가고 있어요. 그런 참 진실한 사람입니다. 마침내 그런 말합니다.

제가 로마서라고 하는 성경을 신학대학에서 한 10년 동안 강의했습니다. 로마서를 가르치면서 보니까 제가 제일 감동받은 부분이 로마서 7장입니다. 로마는 이거 사도 바울이 얼굴을 못 본, 사도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만 알고 있는 로마 사람들에게,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쓰면서 어떻게 로마서 7장을 썼냐 이겁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만 범하는 거야. 내가 원하는 소원은 있으나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어요? 어떻게 위대한 사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원하는 소원을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칼라의" [음악] "비참한 사람이다. 처참한 인간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어요. 사도도 자기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어요. 비참한, 정말 한심한 놈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오늘 내가 이 땅을 살아간다 말합니다. 이제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에 끌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뭘 자랑할 것이 있어요? 무슨 자랑을... 단 한마디라도 자랑을 생각만 해도 안 되지. 이거는. 사도 바울은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부득불 행하였음이니라." 은혜의 빚을 졌거든요. 특별히 오늘 신비로운 말을 해요. "화가 있을 것이다." 어떤 화가 있단 말이야? 쉽게 말하면 아마 간질병이 더 자주 발동을 해. 얼마나 귀중한 말씀입니까?

저는 자랑스러운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정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은 이 친구는 박사를 하고 있는데. 6.25 때 고생 많이 했습니다. 6.25 때 여기저기 숨어 다니면서 고생한 얘기를 정말 한 책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고생을 많이 하고. 그리고 정말 어려운 가운데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유학 갈 때 돈이 없어서 배를 타고 갔습니다.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그리고 그 돈마저 우리 친구들이 돈 모아 줬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해서 유학을 해서 박사가 되고, 공부가 아주 훌륭하게 되어 교수가 되고, 미국에서. 그래 그거를 알고 한국에서 초대했어요. 그래 가지고 경희대학 부총장을 하고, 그분 아닙니다. 문교부 고등교육 국장을 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진학, 모든 대학 총장을 총괄하는 고등교육 국장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잘 지내다가 다 사표 내고 아이 셋 다 데리고 미국 가더라고요. 다시 가더라고요. "아, 이거 안 되겠어. 도저히 내 힘으로는 이 세상을 대응할 수가 없어. 새로 잡을 수가 없어. 그냥 나가서 미국 갈래." 하고 가 버렸어요. 잘 간다고 했거든요.

간 다음에 거기서 또 교수 노릇을 잘 지냈어요. 얼마 후에 왔어요. 올 때도 애들 다 데리고 왔어요. "내가 왜 들락날락하냐? 갔으면 간 거지, 왜 또 왔냐?" 내가 한마디 했잖아요. 그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뭔가 하니, 아주 신중해요. "나는 미국에서 너무 평안하게 사니까 잠을 잘 수가 없어."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많이 입었는데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면 안 되지. 편하면 편할수록 고통이 심하대요. 그래서 애들 다 데리고 나왔대요. 그래서 그 친구지만 존경합니다. 여러분도 아셔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하면 화가 있을 거다. 그렇 느껴야지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죠.

여러분 사명자의 길이라는 것은 뭐 처음에는 그저 무지한 단계가 있습니다. 뭔지 모르고 하나님이 부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끌려갈 때가 있죠. 두 번째 단계는 복종의 단계입니다. 종종 내 뜻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는 걸 알 때 할 수 없이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복종의 단계가 있고, 그다음에는 선택의 단계가 있습니다. 내가 당한 것, 고난당한 그 병든 거, 실패한 거, 모든 거 다 속에 하나님이 콜링, 하나님의 부름이 있구나. 하나님이 하시는 섭리가 있구나. 이런 선택을 깊이 감격하는 선택적 단계가 있고. 그다음에는 마지막에는 감사의 단계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내가 병든 것도 감사합니다. 내가 실패한 거, 고난당한 거, 합하여 오늘 이 자리에 있음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단계에 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실합니다. 그리고 또 겸손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정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강권적 은혜를 피부로 느끼며 순간순간 느끼기만 하잖아요. 피부로 느끼고, 그 선택의 은혜에 감사하며 응답합니다. 딱 한마디로 말합니다. "자랑할 것이 없노라." 왜요? 내 마음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끌려와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많은 일을 했고, 남들은 자랑거리라고 하지만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 왜? "부득불 행하였음이니라." 그의 사도 바울의 진실입니다. "부득불 행하였음이니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봤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거두어갈 거라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건강 마저 취소할 거라고.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더 몸이 아파도, 조금 어지러워도, 조금 힘들어도, 아니, 하나님의 일은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부득불 행하였기 때문에 많은 일을 했지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자랑할 것이 없노라." 자랑을 깨끗이 반납하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도 저희들을 주의 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미련하고 우둔해요. 주의 뜻을 모르기도 하고, 거역하기도 하고, 짐짓 잘못된 길로 갈 때가 많고, 아니, 교만해질 때가 많은 저희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이만큼 겸손하게 하시고, 이만큼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고, 주의 뜻 안에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남은 여생도 축복하사 주의 손에 이끌리어 자랑을 반납하고 겸손한 가운데서 주의 뜻을 온전히 이루도록 축복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설교 핵심 요약: 사도 바울의 자랑과 겸손 (고린도전서 9:15-18)

이 설교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참된 성숙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며, 사명에 순종하는 '부득불'의 자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1.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9:15-18) 해설

  • 자랑의 포기 (15절):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한 물질적/사도적 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도 그의 유일한 자랑거리(값없이 복음을 전한 것)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강조합니다.
  • 부득불 한 일 (16절):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없는 일인데, 이는 자신이 선택해서 한 일이 아니라 "부득불" (어쩔 수 없이, 강권적으로) 해야만 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 상의 본질 (17-18절): 복음 전파를 자의로 행했다면 상을 얻겠지만, 바울은 사명을 받았기에 자의로 하지 않았더라도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바라는 상은 복음을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있는 권리(부양받을 권리 등)를 다 쓰지 아니한 것 그 자체입니다.

2. 인간의 본성과 '철이 듦'

  • 지위 사회 계량기: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의 이론을 인용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최고(왕)라는 '지위 사회 계량기'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세상과 타인(부모, 형제)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철이 난다는 것: 자신이 우주 앞에서, 세상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초라하고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곧 '철이 나는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집니다. 이 깨달음 앞에서 뭘 자랑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됩니다.

3. 사도 바울의 자랑과 겸손의 역설

  • 지울 수 없는 자랑: 바울은 거룩함, 진실함, 은혜로 행한 것 등 분명히 자랑할 만한 것(고후 1:12)과 사도로서의 고난과 수고(매 맞음, 감옥살이)를 자랑거리로 여겼습니다.
  •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 그러나 본문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득불의 역사: 복음 전파가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강권적으로 붙잡혀 포로가 되어 평생 주를 위해 일하게 된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입니다.
    • 약한 것을 자랑함: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 (설교자는 간질병으로 해석)는 그가 교만해지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내려치신 도구였으며, 이를 통해 겸손을 유지했습니다.
    • 화가 있을까 두려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이 '화'가 아마도 육체의 가시(간질병)가 더 크게 발동하는 등 건강을 잃는 것과 같은 것으로 짐작합니다. 즉, 게으르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징계하심을 알았기에, 부득불 순종했습니다.

4. 신앙인의 성숙 단계와 결론

  • 사명자의 길 4단계:
    1. 무지한 단계: 뭔지 모르고 끌려가는 단계.
    2. 복종의 단계: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단계.
    3. 선택의 단계: 고난과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콜링)과 섭리를 깨닫고 감격하는 단계.
    4. 감사의 단계: 내 뜻대로 안 된 것, 병든 것, 실패한 것 모두 감사하며 주님께 감사하는 궁극적인 단계.
  • 결론: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랑할 것이 없노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모든 자랑을 하나님 앞에 깨끗이 반납하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실하고 겸손한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남은 여생도 주의 손에 이끌리어 자랑을 반납하고 주의 뜻을 온전히 이루도록 축복하며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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