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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하나님

하나님설교 : 하나님이함게 하는자 (창28:13-15)

by 【고동엽】 202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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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함게 하는자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너희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 28 : 13-15

요즈음 실력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많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살아갑니다. 협력하지 않고 자기 실력만 믿고 혼자 뜁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력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나 외에 없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이사야 47 : 8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 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사 47 : 8-11). 이 말씀은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나보다 못한 자라 하더라도 나와 함께 해줄 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다. 그러고 보면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력 있는 사람을 의지했다가 실망하고 낙심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강한 것 같지만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식이 실력 있는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실력 있는 부모를 만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실력이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한 자입니다. 이사야 56 : 3, 6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를 '하나님과 연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3절에 "고자(鼓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른 나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꽃이 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났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18 : 6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했다고 했고, 7절에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연합하므로 열국들이 두려워하고 전쟁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에 응답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사야 40 : 28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역사가 일어납니까?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두려워합니다. 학생들은 입시를 앞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하게 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촉박하게 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해야 합니다.

야곱은 시간이라는 문제 때문에 불만이 가득찬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장자에게만 축복권이 있기 때문에 자녀가 되는 것에도 시간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야곱은 시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일 년 차이라고 한다면 괜찮습니다. 육개월이라고 해도 문제가 안됩니다. 불과 몇 초 때문에 장자의 축복권을 놓쳤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시간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시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영원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21 : 13 이하에 보면, 바울을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 : 8을 보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은 시간을 초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영원 속에 있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 : 16-18이하를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사람이 일을 하다가 정년이 되면 힘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년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 항상 살아있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야곱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아무리 불합리하고 불리한 시간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앞서게 될 줄 믿습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축복이라는 시간적인 문제를 어머니 리브가가 단축시켜 주었습니다. 교묘하게 별미를 만들어서 에서보다도 시간을 앞서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앞서도록 한 것은 리브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5 : 22, 23을 봅시다. "아이들이 그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에 근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에서보다 앞서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뒤진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을 초월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공간은 초월합니다. 인간에게는 공간이 있습니다. 공간이 있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공허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 공허, 이 공간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가정 안에 공간이 생겼으나 채울 수가 없고, 부부 간에 공간이 생겼으나 채울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에게 공간이 생겼습니다. 잘된 사업이 한꺼번에 주저앉았습니다. 사업에 공간이 생겼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공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초월해야 합니다.

야곱에게도 공간이 생겼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난 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창세기 27 : 41에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가 야곱을 피신시켰습니다. 야곱은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어머니도 없고, 집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습니다. 공간이 생겼습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은 환경이 좋습니다. 옛날과 오늘을 비교해 보면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우리에게 만족을 줍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준다 하더라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공간이 생긴 곳을 무엇으로 채웁니까? 남편을 잃은 아내는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웁니까? 돈을 벌어 잘살아 보자며 남편이 리비아로 떠나있는 동안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울 것입니까? 춤으로 채울 것입니까? 공간을 그릇되게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공허한 마음을 히로뽕으로 채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이 채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마저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공간이 생긴 야곱에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창 28 :10-12). 본문을 다시 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신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야곱의 공간이 채워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인간이 공간을 채우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못된 것이 생겨났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음란하고 부정한 행동을 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직장에 들어가면 먹자판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저축을 하고 적금을 붓고 했는데 지금은 순전히 먹는 데 다 허비한다고 합니다. 그런다고 채워질 것 같습니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공간이 채워질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조건을 초월한다.

'아무개는 참 좋은 조건에 태어났어', '아무개는 유리한 조건이야',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야'하며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백령도를 다녀왔습니다. 백령도는 북한과 아주 밀접한 곳에 있습니다. 일곱 시간 배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왜 백령도를 점령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점령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가? 후에 안 사실입니다만 백령도에는 구천 명의 인구가 사는데 모두 그리스도인이며 그 가운데 90%가 세례교인이라는 겁니다. 불리한 조건에 있었으면서도 모든 주민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조건을 초월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조건을 봅시다. 지리적인 조건을 보아도 강한 공산국가 밑에서 매달려 있는 민족입니다. 경제적인 조건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자원이 풍부합니까? 그렇다고 땅이 넓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함께 하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공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초월하게 된다는 것은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였으나 홍해라는 악조건을 만났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나니 광야라는 악조건을 또 만났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이르니 요단이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악조건의 반복 속에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넉넉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수많은 악조건도 초월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들은 굶는 일도 없고, 목마르는 일도 없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조건도 초월하게 됩니다.

4.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체험을 갖자.

창세기 28 : 16을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부모를 통해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님을 직접 만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체험을 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20-22절을 봅시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께 서원한 야곱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1 : 1을 봅시다.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합니다. 공간을 초월합니다. 조건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초월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관계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너희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 : 13-15

요즈음 실력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많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살아갑니다. 협력하지 않고 자기 실력만 믿고 혼자 뜁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력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 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나 외에 없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이사야 47 : 8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 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니라" (사 47 : 8-11). 이 말씀은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나보다 못한 자라 하더라도 나와 함께 해줄 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력 있는 사람을 의지했다가 실망하고 낙심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강한 것 같지만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식이 실력 있는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실력 있는 부모를 만나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실력이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함께 한 자입니다. 이사야 56 : 3, 6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를 '하나님과 연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3절에 "고자(鼓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른 나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꽃이 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났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18 : 6에 히스기야는 여호와께 연합했다고 했고, 7절에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연합하므로 열국들이 두려워하고 전쟁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에 응답받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사야 40 : 28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역사가 일어납니까?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두려워합니다. 학생들은 입시를 앞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하게 되고 초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촉박하게 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해야 합니다.

야곱은 시간이라는 문제 때문에 불만이 가득찬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장자에게만 축복권이 있기 때문에 자녀가 되는 것에도 시간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야곱은 시간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일 년 차이라고 한다면 괜찮습니다. 육개월이라고 해도 문제가 안됩니다. 불과 몇 초 때문에 장자의 축복권을 놓쳤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시간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시간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영원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21 : 13 이하에 보면, 바울을 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 : 8을 보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은 시간을 초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영원 속에 있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 : 16-18이하를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사람이 일을 하다가 정년이 되면 힘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년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 항상 살아있는 성도가 되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야곱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에 항상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아무리 불합리하고 불리한 시간 속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앞서게 될 줄 믿습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축복이라는 시간적인 문제를 어머니 리브가가 단축시켜 주었습니다. 교묘하게 별미를 만들어서 에서보다도 시간을 앞서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앞서도록 한 것은 리브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5 : 22, 23을 봅시다. "아이들이 그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에 근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에서보다 앞서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뒤진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을 초월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공간은 초월합니다. 인간에게는 공간이 있습니다. 공간이 있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공허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 공허, 이 공간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가정 안에 공간이 생겼으나 채울 수가 없고, 부부 간에 공간이 생겼으나 채울 수 없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에게 공간이 생겼습니다. 잘된 사업이 한꺼번에 주저앉았습니다. 사업에 공간이 생겼습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공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초월해야 합니다.

야곱에게도 공간이 생겼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난 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창세기 27 : 41에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브가가 야곱을 피신시켰습니다. 야곱은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어머니도 없고, 집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습니다. 공간이 생겼습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은 환경이 좋습니다. 옛날과 오늘을 비교해 보면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우리에게 만족을 줍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준다 하더라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공간이 생긴 곳을 무엇으로 채웁니까? 남편을 잃은 아내는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웁니까? 돈을 벌어 잘살아 보자며 남편이 리비아로 떠나있는 동안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울 것입니까? 춤으로 채울 것입니까? 공간을 그릇되게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공허한 마음을 히로뽕으로 채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이 채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공간마저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공간이 생긴 야곱에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창 28 :10-12). 본문을 다시 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신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야곱의 공간이 채워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인간이 공간을 채우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못된 것이 생겨났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음란하고 부정한 행동을 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직장에 들어가면 먹자판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저축을 하고 적금을 붓고 했는데 지금은 순전히 먹는 데 다 허비한다고 합니다. 그런다고 채워질 것 같습니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공간이 채워질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조건을 초월한다.

'아무개는 참 좋은 조건에 태어났어', '아무개는 유리한 조건이야',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야'하며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백령도를 다녀왔습니다. 백령도는 북한과 아주 밀접한 곳에 있습니다. 일곱 시간 배를 타고 백령도에 도착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왜 백령도를 점령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점령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가? 후에 안 사실입니다만 백령도에는 구천 명의 인구가 사는데 모두 그리스도인이며 그 가운데 90%가 세례교인이라는 겁니다. 불리한 조건에 있었으면서도 모든 주민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조건을 초월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조건을 봅시다. 지리적인 조건을 보아도 강한 공산국가 밑에서 매달려 있는 민족입니다. 경제적인 조건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자원이 풍부합니까? 그렇다고 땅이 넓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함께 하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공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초월하게 된다는 것은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였으나 홍해라는 악조건을 만났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나니 광야라는 악조건을 또 만났습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이르니 요단이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악조건의 반복 속에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넉넉히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수많은 악조건도 초월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들은 굶는 일도 없고, 목마르는 일도 없고, 추위에 떠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조건도 초월하게 됩니다.

4.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체험을 갖자.

창세기 28 : 16을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은 하나님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부모를 통해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하나님을 직접 만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체험을 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20-22절을 봅시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께 서원한 야곱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1 : 1을 봅시다.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시간을 초월합니다. 공간을 초월합니다. 조건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초월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관계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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