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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복하지 못한 가정인가? -마 7:24-27

by 【고동엽】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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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7:24-27


출애굽기 20장에 10계명이 있습니다.
순서적으로 보면, 1-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이요, 5계명은 부모에 관한 계명이요, 6-10계명까지는 이웃에 관한 계명입니다.

종교적으로 제일 계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도덕적으로 제일 계명은 부모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천의 방법에 있어서는 하나님 경외를 어디에서 배우게 되느냐? 부모 경외에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이전부터, 날 때부터 부모와는 같이 생명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을 통하여 하나님 공경을 배우게 됩니다.

레위기 19장 3절을 보면,“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목회생활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부모 공경 잘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도 잘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이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일 부모에게 욕 돌리면서,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 잘하는 척 하는 사람은 바리세인들입니다.(마15:1-6)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도리어 교회가 비난을 받고 전도의 문이 막힙니다.

오늘은 부모님 주일로 지키면서 왜 가정이 행복하지 못한가? 하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상을 보면 가정들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린이 폭력만 아니라 노인 폭력도 점증되어 가는 현상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가정들이 튼튼한 가정들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16만 7천쌍이 이혼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하루 835쌍이 결혼하는 사이 458쌍이 이혼한 셈이라고 합니다.

이혼이 1년 사이 15%나 늘었다는게 심상치 않습니다.

이렇게 5년만 지속되면 갑절로 불어나는 무서운 증가율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법 840조에서 규정한 6가지 이혼사유의 1호는 배우자의 부정(不貞)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양상이 달라져 6호인 <기타 사유>에 따른 이혼이 44%로 압도적이라고 합니다.

이 기타 사유에는 <성격 차이>, <성>(性), <경제적 갈등>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그만큼 서로를 참아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서로 참고 살았으나, 요즘은 참으면서 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 가정 경영연구소에 의하면 요즘 '30대 여성들의 이혼 증가율이 높아 가는데, 소위 묻지마 이혼율'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배우자의 부정 행위나, 폭력, 경제적 궁핍, 고부간의 갈등과 같은 심각한 사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다'는 등의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한지 3년만에 아내(30)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상담소를 찾은 회사원 A씨(33)의 경우입니다.

상담한 결과 외도나 성격불화 같은 부부생활의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A씨가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것은 IT업계에 종사하는 아내보다 연봉이 500여만원 적다는 점 정도였다고 합니다.

A씨 아내는 "재혼할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이가 없을 때, 가정의 구속에서 벗어나 삶을 다시 설계하고 싶다는 것 뿐”이라고 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특히 30대 여성들의 가치관이 빠르게 변했다”며 "현재 남편에게 뚜렷한 문제가 없어도 앞으로 남편의 장래가 비전 없어 보인다든가 재미가 없다면 굳이 결혼생활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연봉 5,000만원대의 비교적 고소득에 성격도 무난한 펀드매니저 B씨(41)의 경우입니다.

'여가시간이 없고 나에게 관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내(38)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다고 합니다.

부인의 이혼 사유는 "나무토막 같은 남편과 살기 싫다”는 것, 결혼생활이 10년에 이르자 외식, 영화관람 등 주말 이벤트도 거의 없고, 아이들과만 대화하는 남편과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이혼소송 전문인 어느 한 변호사는 “우리 법률상 협의이혼을 인정하는 사유가 너무 광범위 한데다가 이혼을 관대하게 보는 사회경향이 맞물려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것 같다”며“이혼을 하고 싶더라도 일정기간 함께 살며 서로를 돌아보는 숙련기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이혼 소송이 접수되더라도 일정 기간동안 유예기간을 두어 판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사랑을 얘기할 때, 첫 머리에 나오는 말이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정의 부부들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일찌감치 갈라서는 것이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가정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 남의 눈에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도 말못할 그늘이 들어 있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참고, 또 참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한계에 이르러 자신의 불행스러운 생활을 드러내는 어느 연예인의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가정들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신앙적 차원에서 말씀에 입각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발견됩니다.


1. 첫째, 가정의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건강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가정이 무엇에 기초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님도 무너지는 집과 무너지지 않는 집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였습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집 짓는 경우에서 보면 자기가 살집과 지어서 팔아버릴 집을 어디에서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기초를 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초를 대충대충 잡석(雜石)을 깔고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물이 스며들면 틈이 생기면서 점점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초를 바위 위에 세워진 집은 아무리 비가 내리고 물이 스며들어도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 반석이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가정에 기초가 되어 있느냐? 없느냐? 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어떤 예수냐? 에 따라 무너지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돈보다 못한 예수, 명예보다 못한 예수, 성공보다 못한 예수, 오락보다 못한 예수일 때는 세상의 온갖 바람이 그 가정에 다 불어닥칩니다.

오늘 크리스천 가정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그들이 믿는다고 고백했던 믿음이 과연 정품의 믿음이었는가? 아니면 싸구려 덤핑의 믿음이었는가? 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정말 믿음의 가정이라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가정을 버티어 주는 기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둘째, <말씀>이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집을 잘 지었어도 지붕이 부실하면 비가 새어 들어옵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부식되어 무너져 내립니다.

지붕이 튼튼하게 비가 새지 않도록 잘 덮어야 합니다.

지붕이 상징하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부모의 권위입니다.

가정이 바로 서려면 부모의 말이 지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모의 말이 권위 있게 받아 들여져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입니까?

<말씀>에서부터 와야 합니다.

부모들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자녀들은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말씀>이 가정에서 모든 생활에서 변두리로 밀려나면 역효과입니다.

그래서 교회 중직의 자녀들이 세상으로 깊이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 같이 믿으려면 나는 안 믿는다'고 대드는 자식들까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늘 듣기는 잘합니다.

얼마나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까?

아마 한국교회의 신자들처럼 <말씀>을 많이 듣는 교인들은 세계에서 없을 것입니다.

예배가 일주일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듣기만 하면서 부모들이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행하지 않는 말씀은 마치 지붕이 새는 집과 같습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 그럴듯한 가정이라도 <말 씀>을 등한히 여기면 새는 집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롯의 가정을 보기를 바랍니다.

소돔성(城)을 죄로 인하여 유황불로 심판하려고 하나님이 작정하였을 때, 그 속에 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식구들을 구원하려고 천사들이 심판을 예고하였을 때 롯의 사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빨리 너희들이 이 성에서 나가지 않으면 불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을 때, 롯의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하였습니다.(창19:14)

오늘도 <말씀>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롯의 사위들이 무엇을 의지하였기에 그렇게 농담으로 여겼겠습니까?

세상연락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삶은 지붕을 제대로 얹지 않은 경우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말씀의 권위가 가정에서 상실되면 지붕에 구멍난 집과 같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잘 나가는 자식들 가운데 부모님들이 '야 너 교회에 좀 나가자' 하면 뭐라고 합니까?

'어머니나 잘 나가세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나 해 주세요'

믿지 않는 남편들이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나 잘 나가서 기도 많이 하라'고...

'당신 천당 갈 때 난 당신 치마폭에 매달려 올라가면 되지...' 등등

이렇게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말씀>의 권위가 상실된 가정은 비만 오면 끝장이 납니다.

인생 역경의 폭풍과 폭우가 쏟아지면 그 가정은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왜 행복한 가정이 못됩니까? 말씀을 듣고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3. 셋째, 비바람을 이겨낼 만한 버팀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삶에는 언젠가 한두번 비가 내리고 장마가 들게 마련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바람이 부는 날이 없는 가정이 어디에 있습니까? 맑은 날이 언제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 내리는 날처럼 축축하고 우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불행의 바람은 한꺼번에 닥칩니다.

겉잡을 수 없이 비참한 현실을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가정을 버티어 낼 수 있는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위입니까? 지식입니까?

요즘 눈물의 비를 맞고 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부부의 감정의 골이 깊어져 일촉즉발의 위기의 바람 앞에 서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온갖 허영의 바람에 들떠있는 가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학벌도 아니고, 재력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고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힘이 아니었으면 깨질 가정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의 버팀목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가정을 위기에서 구출해 낸 버팀목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눈물의 기도였고, 그를 바라보는 소망의 믿음의 줄이었습니다.

오늘도 이 줄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은 가정들이 많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승리의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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