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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사랑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하기 (마 22:37~38)

by 【고동엽】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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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하기   (마 22:37~3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작정을 했는데도 때로는 고난과 역경이 다가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은 그래도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을 비교해 볼 때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새롭게 정리해 주셨는데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음’, '목숨', '뜻', '힘' 네 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마음(heart)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결정하는 기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십시오. 두 번째는, 성품(soul)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해지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도 먼저 영혼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찾기에 갈급함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 같은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와 네 번째를 계속해서 말씀드립니다.


3.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뜻(intellect)’이란 지성을 말합니다. 신명기의 말씀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는 말씀에 예수님은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시면서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그의 저서「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하기」(IVP출판사)라는 책에서 "뜻"을 지성(知性- intellect)이란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우리의 생각과 이성(理性)과 인지능력과 지성(知性)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도 육체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안 되며 우리의 생각을 모두 다 드려야 합니다. 지성(知性)은 깊은 심연의 삶을 살게 합니다. 믿음이란 지성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으로 받아 드려질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의심이란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에서 일치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할 때 이것을 의심이라고 합니다. ‘불신’이란,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에 거부될 때입니다. 즉 지성이 마음에서 거부될 때입니다.

다윈이나 프로이드 같은 사람들은 이성으로 하나님을 접근 하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윈은 목사의 아들로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며 신앙교육을 받았지만 지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 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프로이드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신이란 단지 욕망의 투영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에는 신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중대한 5가지 핵심진리인 ① 동정녀 탄생, ② 십자가의 죽음, ③ 부활, ④ 승천, ⑤ 재림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합니까? 남자 없이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는 것을 어떻게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시킬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믿는다는 것은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의 역학 속에서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의 예를 도마에게서 잘 보여 주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도마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마는 자신의 손으로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드레가 지나서 다른 제자들과 도마가 있는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네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고 내 옆구리에 창 자국을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그것을 만져본 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람어로 이것은 “아도나이”라는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향하여 아도나이라고 하지 않는데 도마는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인 “아도나이”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향하여 “도마야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더욱 복되다(요20:29)"고 하셨습니다. 뜻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키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공상에도 빠지고, 의문도 제기하며 이해가 안 될 때 하나님을 지성의 한계에 가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안의 종교를 부르짖은 사람입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가면 빈센트 고흐의 작품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나무탁자 위에 성경이 놓여있는데 이사야 53장이 펼쳐져있습니다. 그 옆에는 에밀졸라의「삶의 기쁨」이란 책이 있고, 그 뒤에는 불 꺼진 초한자루가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을 바니타스(vanitas)라는 라틴어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17세기의 인생 무상함을 나타내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바니타스’란 무상함 허무함이란 라틴어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했더니 허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을 주님께 복종 시키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4.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지막 네 번째가 힘을 다하여(all your Strength)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힘이란 영어의 ‘Strength’란 단어로 능력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면 ‘힘쓰고 애쓰는 육체적인 노력’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 힘쓰는 것이 아니고, 행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기적입니다. 사랑은 주지만 우리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만 우리는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순종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순종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원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류 구원의 방법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쓴 잔이 지나가길 원했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순종의 싸움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은 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구체적인 의도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순종의 극치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위대한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이 하라고 한 그 일을 했습니다. 시대의 추세와 경향을 버리십시오. 신앙은 자기성취가 아니라, 순종하며 살면서 사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정체성을 발견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달리는 말의 최고 가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개미로서의 최고의 가치는 개미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는 성 육신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을 사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들어가서 성육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에 순종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① 동기가 순수한가? ② 축복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순종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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